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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는데요.

올여름 필수템 선글라스의 나이

by 윤혜경

젊은 시절 남편의 출입국이 잦은 덕분에 내게 면세점표 선물이 건네지곤 했다. 주로 색조화장품이나 향수류로 내 취향을 꺼내들 형편은 못되었다. 여권을 발급받는 일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다.

*마우스 손목패드 위의 선글라스


세금이 면세되니 '저렴하다'는 의미로 이해되는 면세점에서 해외 친구들에게 건넬 선물용으로 구입한 전통문양의 소품들은 인사동에서 면세가보다 저렴하게 판매 중이어서 당황했었다. 친구를 따라 들른 남대문 시장에서는 더 저렴했다. 정말 "아이고"였다.


나중에 면세점 판매원에게 이 상황에 대해 문의하니 면세점 판매 물품이 모두 면세품인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 오늘도 내일도 아침햇살과 건강한 심신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인지하지 못했던 옛 시절의 일이다.


2015년경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시작된 큰딸의 3mm 크기의 암 제거 수술 무렵부터인가 보다.


필수품 외의 물품 구매의 즐거움이 사그라든 시점이. 그리고 병동 체류 생활이 점점 잦아지고 우울과 분노 극복을 위한 최고대학병원과의 의료소송을 시작하고, 환자와의 눈 맞춤에 집중하느라.


그리고 함께 우울치유를 위해 대학원 문을 두드리고, 지난한 학위를 마무리하고 나니 9년의 시간이 머리 위로 지나는 중이다.


이제 나의 4,50대에 양가 방문 시에 보았던 묵은 짐들의 모습이 2023년 내 집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중이다.


올여름 필수템인 선글라스의 나이가 지긋하다. 조금 더 젊은 시절에 뽀대 나게 구입했던 선글라스들까지 20년이 넘었다는 걸 잊고 별생각 없이 렌즈만 바꿔가며 사용해 왔다.

요즈음 글씨가 번져 보이는 불편함에 안경점을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 해본다.


안과에서는 내 눈상태를 진찰 후 병진행을 늦추도록 겨울에도 선글라스 착용을 권했다.


다음 주에 강원도 1박 2일 답사 일정 참여에 필요한 선글라스의 렌즈를 시력에 맞추고자 선글라스를 들고 집 앞 번화가의 안경점을 방문했다. 15년을 이 분야에 종사한다는 젊은 사장님은 내가 내민 선글라스를 받아 쓰윽 훑어보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새 렌즈를 바꿔 넣기엔 ...."


선글라스 다리의 흰색이 화장품 탓에 조금 변색 부분이 보였다. 가방에서 꺼내든 또 다른 선글라스는 20여 년 전의 유행 스타일인 가죽으로 둘러져 다리 부분에서 가죽 이탈이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정작 주인인 나는 이제 보았다. 보통 햇살 아래 나갈 때면 그냥 안경과 교체해 코에 걸쳐 햇살의 눈부심을 줄였을 뿐이라.


들여다보니 안경점 사장님의 발견대로이다. 젊은 시절엔 여행길에 여러 구입해서 옷에 맞춰 선택하는 허세의 즐거움이 있었다.


*마우스 손목패드 위의 안경

지금 쓰고 있는 유명 구두 패션 브랜드인 F사 안경테는 나의 애장품 1호이다. 가볍고 편안한 이 안경테 또한 나이가 지긋하다.


20년쯤 되어가니 메이크업 화장품이 착색되어 안경다리의 본래 색상이 퇴색되고 굳어서 조만간에 바꾸어야 한다. 제품관리엔 참 젬병이다.


"이것도 안 되겠는데요! 멀티라 렌즈가격도 만만찮은데... 가치가 없어요."


처음 방문한 안경점의 젊은 사장님은 내가 내밀었던 선글라스와 안경을 차례로 내게 돌려주며 렌즈만 바꾸는 일에 대해 난감해했다. 이런 고급테 사용자인 내 마음에 안 들 거라는 거였다. 난 괜찮은데...


그의 제안대로 새로운 제품을 3개 정도 건네받았다. 그중 플라스틱 재질 1개, 금속 재질 1개를 착용해 보며 최종선택을 할 요량이었다.


덜 늙은 시절에 거의 매일 바깥활동이 이루어졌던 것과 반대의 일상인 현재는 주 6일 대부분 서재에 박혀서 컴퓨터 작업 중이니 선글라스 착용 기회가 드물다.


20년 전에도 고가였는데 이젠 환율도 높아져서 같은 브랜드 제품 구입은 내게 문자 그대로 '가치가 없다'. 예전 지출 액수에 맞춰서 렌즈와 안경테를 골라보다가 니의 한 달 수입 수준에 맞게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카드 사인을 가까스로 멈추고 돌려받은 선글라스 2개와 안경을 가방에 담아 오며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요즘 공장들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휴무이므로2 평일기준 작업일을 계산하면 목요일 즈음에 도착하니 결정을 서두르라는 그의 말이 맴돈다. 만일 늦어지면... 후아, 난 금요일 새벽 출발인데.


다음날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랜 단골 안경점을 남편, 큰 아이와 함께 나들이 가듯 승용차로 찾아갔다.


사장님은 우리 연배보다 조금 젊다. 그분은 내 선글라스 테를 보고 둘 다 새로 렌즈를 바꿔 끼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했다. 안경의 흰 다리에 착상된 화장품 오염은 착용 시 내 머리칼에 가려져서 외관상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도 했다.


원래 집 앞에 있던 안경점을 상가 가격의 폭등으로 다소 저렴한 지역으로 옮긴 그분은 아마도 ' 나의 가난해짐'을 눈치채신 듯했다.


사장님은 내게 '가죽다리의 또 다른 선글라스 안경테도 아직 쓸만하니 둘 중 하나만 골라서 렌즈를 갈면 어떨까요?' 하고 물었다.


사장님은 '나의 허세'를 금세 간파하셨나 보다.


백내장이 더 진행되면 수술 후 시력이 또 달라지므로 그때 다시 새로 렌즈를 바꿔야한다나. 아쉬우면 그때 다른 테를 선택해도 좋지 않겠냐는... 이렇게 경제적인 제안이라니~.


선글라스 렌즈교체 문제는 둘 중 하나에 렌즈를 바꿔 끼우는 걸로 가볍게 해결되었다. 렌즈가격이 저렴하기까지~^^.


갑자기 마음이 넉넉해진 내가 고도근시인 큰 아이의 안경렌즈 상태 확인을 부탁드리니 렌즈상태가 좋지 않아 '교체시기'라고 했다. 그동안 렌즈를 닦을 때마다 뿌연 느낌이 깔끔하게 제거되지 않아서 큰 아이가 바꿀 필요를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함께 간 옆지기도 마침 백내장 수술을 하여 시력이 바뀌어서 안경렌즈를 교체하기로 했다.


내가 어제 구매 가능성이 있었던 상품 1개 가격에 나의 선글라스 렌즈교체와 딸의 고도근시 압축렌즈 교체에 이어 남편의 안경 렌즈 교체까지. 와중에 남편은 돋보기도 슬쩍 얹었다. 갑자기 스스로 산타가 된듯한 행복한 지출이다.


이제 일상에서는 물티슈 사용을 멈추고, 될수록 가제수건을 쓰며,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의 코드를 off로 하고, 예전보다 전기와 수도를 아끼도록 애써 노력한다.


1회 용품 사용을 지양하고, 옷등 생필품을 덥석 구입하는 일을 멈추어서 다음 세대의 지구 지키기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노력의 한 자락이다.


덕분에 나의 과시용? 충동지출이 사라져 쇼핑 목적 외출이 멎었다. 물론 다음 주에 들어오는 큰 아이와 나의 원고료를 생각하면 지출해도 무방하지만, 연구소 안착을 목표로 함께 모아가는 재미에 기대어보기로.


새삼 젊은 시절 새벽별을 보고 출근하여 온 가족의 성장을 위한 지출 뒷바라지를 해준 옆지기의 노고에 감사하다. 적은 원고료의 25%는 나를 지지해 준 옆지기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오늘 안경점 사장님은 내게 산타가 되었다. 선글라스 교체 건으로 머리가 무겁다가 안경점 사장님의 제안 덕분에 나는 가족들에게 10월의 산타로 분했다. 오늘도 이렇게 감사한 인연들 덕분에 힘을 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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