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llara Feb 15. 2024

Shetland Sheep Dog 랄프는 결혼반지를

헤어진 지 10년인데

랄프는 결혼반지를  



결혼식장에서 반려견 랄프가 꽃길을 걸어 들어왔다. 그동안 산책을 열심히 해온 랄프는 음악이 흐르고 중창단이 축가를 부르는 동안 의젓하게 꽃길을 걸었다. 하객들이 양측에 자리한 결혼식장에서도 수줍어하지 않고 양쪽 하객들의 박수갈채에 순한 Shetland Sheep Dog(셀티) 랄프가 좌우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까지. 사람들은 연이어 셔터를 눌렀다. 의젓한 외모에 심성까지 예쁜 랄프~.


*신랑신부 앞으로 웨딩링을 가져온 랄프


랄프는 시드니의 럭키에 이어 두 번째로 입양한 반려견이다. 럭키가 이미 7살일 때 서울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랄프는 겁이 워낙 많은 작은 누나가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무서워해서 누나가 거주하는 곳에 매번 함께 있었다.


작은 누나가 학교 앞의 아파트에서 큰누나와 거주할 때도 랄프가 함께 있었다. 작은누나가 학교 졸업 후 광화문에 위치한 회사에 다닐 때에는 근무시간이 해외지사들과의 시차문제로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


그때는 오바마대통령이 사용한다는 인기 블랙폰을 회사업무용으로 제공받아  24시간 해외지사들과 통화가 열려있었다. 하여 회사 맞은편의 오피스텔을 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랄프는 겁쟁이 작은 누나의 보호자로 함께 지냈다.


업무를 마치고 종종 새벽시간에 퇴근하는 누나는 술에 취해 길에서 휘청대는 사람들의 시비에 놀란 후로는, 주취자에  질색을 했다. 그리고 술 취함에 관대한 사회에서 새벽시간 퇴근 여성의 사고 뉴스가 이어졌다.


딸을 둔 부모의 마음이 사뭇 불안해졌다. 인적이 드문 새벽시간엔 부모가 동구박 마중 나가 자식을 기다리듯 랄프를 데리고 회사입구에 차로 도착해서 기다렸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가 뒤따르고 엄마와 딸은 랄프를 리고 길을 건너서 오피스텔에 함께 가기도 했다. 듬직한 랄프는 작은 누나가 나오면 조용히 꼬리를 흔들며 반기곤 했다. 가냘픈 여자들의 밤길에 아빠와 랄프는 든든한 뽀빠이 아저씨였다.


우리 내외가 자주 들러서 랄프를 산책시키고 챙겼지만, 작은누나의 랄프를 위한 노력도 적지 않았다. 작은 누나는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제공한 스포츠센터의 체력단련 대신 랄프와 공원산책을 했다. 그리고 1년 후 작은 누나가 집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비로소 랄프는 럭키와 함께 살게 되었다.


3kg의 요크셔테리어인 럭키는 9kg 몸무게인 랄프의 군기를 잡아서 서열정리를 했다. 나이도 많을뿐더러 이 집 반려견 1호가 자신임을 랄프에게 설명했을까?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랄프는 럭키의 눈치를 보며 매사를 럭키에게 양보했다. 먹이나 간식을 받아먹는 훈련 때도 첫 번째 시도는 럭키에게 양보하고 기다렸다. 럭키가 체력이 약해도 랄프에게는 예의를 갖춰야 할 선배였나 보다. 원래 식탐이 전혀 없던 럭키가 랄프가 온 후로는 가끔 랄프의 밥그릇을 탐냈다.


럭키가 괜스레 랄프의 밥그릇을 욕심을 낼 때는 순둥이 랄프도 화를 냈다. 럭키가 그래도 개기면 입으로 물어서 공중으로 들어 올리다가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맞았다. 럭키가 먼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체구가 크다는 이유로 랄프가 벌을 받았다.


랄프는 럭키가 밥그릇을 들여다보거나 먹이를 욕심낼 때만 럭키에게 화를 냈을 뿐, 폭신한 새 쿠션도 럭키에게 양보했다. 럭키는 자신의 쿠션을 놓아두고, 새로 산 랄프 쿠션을 욕심내어 그곳에 앉았다. 그럴 땐 랄프는 마룻바닥에 앉아서 아무 일도 없는 듯 처신했다. 새로 들어온 쿠션이나 매트는 으레 럭키가 차지하고 나섰다. 랄프는 럭키를 한번, 엄마를 한번 쳐다보다가 헌 쿠션으로 가서 앉던, 참 순둥순둥했던 녀석이다.


랄프는 작은 누나의 결혼 앨범사진도 함께 찍었다. 유순한 랄프에 진 사진작가도 따로 시간을 내어 랄프에게 말을 걸었다. 2005년 여름에 랄프를 데려온 반려인인 작은 누나의 2012년 결혼식에서는 누나의 어린 사촌동생들과 함께 신부와 신랑이 입장한 꽃길을 걸어 들어온 랄프가 결혼반지를 전달했다. 우린 몰랐지만 이미 방광결석에 이어 방광암이 시작된 시점일 게다.



명민함으로 인해서


랄프는 매일 야외산책 후 발을 닦는 습관이 배어있었다. 샤워기를 이용한 물로 먼저 흙먼지를 제거 후 전용샴푸를 묻혀 거품을 내고 발가락 사이사이를 헹궈낸다. 그리고 마른 타월로 습기를 제거하고 나서야 비로소 거실로 향한다. 물로 닦아주지 않으면 거실을 걸을 수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뒤뜰만 사뿐사뿐 걸은 날에 약식으로 물티슈나 물수건으로 발을 닦아준 후 우리가 부엌에 가서 랄프의 물과 간식을 챙기는 동안, 랄프는 욕실에서 나오지 않고 기다린다. 랄프입장에서는 샴푸와 물을 사용하지 않은 물티슈 닦기는 여전히 발을 닦은 게 아니므로.


 결국 다시 샴푸를 하고 물로 발을 헹구면 그때서야 욕실을 걸어 나왔다. 그때 랄프의 연한 핑크빛 발가락 사이에 습진이 생겼다. 물로 발을 닦으면 반드시 드라이어로 말려주어야 함을 몰랐던 에 생긴 일이었다.  



*아빠와 뒷산 산책 중인 랄프

                                              

어느 날부터인가 랄프를 안아 올리면 움찔거리고 아파했다. 그리고 여행 중 맡긴 동물병원에서 "랄프가 흰 타일  바닥에 핑크색 물방울을 떨어뜨리더라"라고 했다. 그리고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핑크색 물방울을 조금씩 흘려서 우리는 몰랐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랄프 방광에서 결석이 발견되었다.



방광결석 제거 후


동물병원 수의사의 권유대로 곧 전신마취 후 방광결석을 제거했다. 아주 작은 돌들이 10알쯤 나왔다며 투명한 병에 담아 보여주었다. 방광에 담겨있는 결석제거수술을 위한 사전 검사와 제거 수술, 그리고 5일간 입원비용으로 이미 수백만 원이 지출되었다.  송파구 동물병원에서는  2009년  소독과 염증 치료를 위한 적은 양의 가루약 3일분에 7만 원이었다.. 그리고 최소 4번은 가고서야 나았다가 다시 반복되는 셀티는 늘 귀 치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수의사는 방광에서 추가 이상증세를 발견했다고 했다. 말랑거려야 할 방광 일부분이 딱딱하더라는.  보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여러 검사에 필요한 비용을 듣고 잠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적어도 사람의 경우였다면 훨씬 더 조심해서 검사를 하고 방광암도 함께 발견했을 텐데...  결석수술부터 덜컥하고서야... 이미 일어난 일이니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사람과 달리 개는 의료혜택이 전혀 없으니 검사 및 치료 비용은 늘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일부가 딱딱하다는  방광검사 결과는 방광암으로 판명되었다.  


전문병원에서 방광일부를 제거한다 하더라도  남은 생은 기저귀를 착용해야 하고, 수명은 길지 않을 거라고 했다.  또 후속 방사선치료도 사람치료와 똑같이 필요하다고 했다. 겨우 8살인데... 동물병원의 수의사는 랄프와 가족들에게 사람의 방광암치료와 똑같은 정도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질 거라고 설명했다.


여러 차례 가족회의를 거쳐 후속 방사선 치료를 필요로 하는 방광암 수술은 하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 랄프와 남은 시간을 최대로 행복하게 맛있는 거 먹고 산책하며 잘 보내기로.  그리고 기저귀를 채웠다.



                                                                                                                    기저귀를 한 랄프는 기저귀에 마음이 쓰여 한걸음도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일없이 기저귀를 떼내는 데에 열중했다. 목에 보호캡을 쓴 채 발로 기저귀 떼기에 집중하는 녀석이 딱했다.
작은 딸이 랄프의 패드밴드를 만들어왔다. 기저귀대신 패드밴드를 이용한 미니패드를 채웠다.

기저귀를 한 랄프는 기저귀에 마음이 쓰여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일없이 기저귀를 떼내는 데에 열중했다. 목에 보호캡을 쓴 채 발로 기저귀 떼기에 집중하는 녀석이 딱했다.


작은 딸이 랄프의 패드밴드를 만들어왔다. 기저귀대신 패드밴드를 이용한 미니패드를 채웠다.


몸무게가 12kg 정도였던 랄프는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소변량은 늘 미니패드를 넘쳐 흘러나왔다. 거실에만 머물도록 움직임을 제한하는 철제 펜스도 거부해서 온몸으로 부엌입구까지 펜스를 밀고 왔다.






작은 딸이 만들어온 패드 커버







*시드니에서 서울로 함께 온 요크셔테리어 럭키


카펫이 거두어지고


결국 거실에 크게 깔려있던 카펫을 거두었다. 이번엔 바퀴 달린 소파가 앉을 때마다 마루 위를 이리저리 바퀴가 구르며 소파가 동을 하니 난감했다. 할 수 없이 바퀴 달린 소파가 멋대로 밀리지 않게 소파와 티테이블 주변까지로 카펫을 줄여서 깔았다.


그리고 오줌 세례를 몇 차례 맞은 후에야 둘둘 말려져서 소파 뒤에 놓였다. 아픈 랄프의 이동공간을 갑작스레 울타리를 쳐서 제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소파의 바퀴가 움직이는 게 나았다. 


랄프는 베란다에 마련된 소변패드로 나가는 길에 강화마루로 만들어진 거실에 자주 오줌을 실실 흘리고 다녔다. 미리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막상 겪게 되니 불편했다. 기저귀에 하면 좋으련만 훈련이 된 랄프는 한사코 베란다에 깔려있는 배변패드를 찾았다. 이미 소변은 조절이 안되어서 상시 흐르는 중인데.


우리 가족은 아래층에 발걸음 소리 방지를 위해 깔렸던 카펫을 걷은 다음엔 발뒤꿈치를 가볍게 걸어야 했다. 거실에서 랄프의 오줌을 밟지 않게 욕실용 슬리퍼를 착용했다.


흘린 오줌을 엎드려 닦고 있는 우리들에게 매번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하던 랄프의 눈빛을 보면 우리들의 소소한 변화에 대해 오히려 랄프에게 미안해졌다. 대신 나는 랄프, 럭키와 헤어진 후에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으리라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당시 열다섯 살이 이미 넘은 럭키는 약간 치매기가 있어 보이고 입에서 냄새가 심했다. 이젠 마취하고 치석제거는 불가하다는 나이라서 칫솔을 가끔 사용해 줄 수 있을 뿐이다.


랄프와 럭키가 떠나면 집안 구석구석 이 녀석들의 흔적이 떠올라 먹먹하겠지만, 한편으론 소파 뒤에 말아져 있는 큰 카펫을 수년만에 거실 가득 펼치고 맨발로 편히 걷는 시간을 기대해보기도 했다. Pet Loss 증후군을 오래 앓게 될 줄 몰랐던 때이다. 당연히 동물응용과학을 전공하게 될 미래는 상상도 하지 않은 채.


랄프가 있던 때는 아빠는 해외에, 엄마는 일하는 중 그리고 두 누나는 대학교 다닐 때이다. 랄프의 방광암은 실내에서 될수록 배변을 하지 않으려 아침 산책 후 누나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안간힘을 써서 소변패드를 피하고 소변을 참았던 결과였을 게다.


랄프의 깔끔함과 영특함으로 인해 랄프에게는 방광암이 생겨났을 것으로 생각되니 미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럭키와 랄프는 시드니와 서울에서의 정착에 어려움을 겪던 두 딸에게 기쁨을 주었던 반려견들이다.


한글에세이를 따로 배운 적이 없는 작은 딸은 너무 어린 시절부터 해외교육을 받은 것에 대한 염려가 큰 부모의 강요로 오랜 시간 준비했던 해외대학입학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국내대학에 진학했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데다 한자와 사자성어, 속담까지 익혀서 국어공부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공부에 일견이 있는 학생들만 모인다는 서울의 대학에서 1학기 과제에세이를 높은 수준의 한글로 써서 제출하기에는 애를 먹었다. 복통을 앓던 작은 딸은 1년을 마친 후 다시 미국대학으로의 입학을 계획했었다.


1학년 여름방학 때 작은 아이는 친구와 지방 브리더에게 가서 직접 데려온 셀티 '랄프' 덕분에 해외대학행을 포기했다. 그리고 2학년때부터 영어에세이 과제가 가능한 전공과목들을 선택하며 희망이 보였다. 다행히 학과에 잘 적응하여 원하는 성적으로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랄프가 아픈 이후로 우리는 시간을 내어 자주 랄프와의 바깥 산책을 시도했다. 녀석은 아픈 와중에도 바깥 산책을 아주 좋아하였고, 초반에는 아파트 뒤뜰에서 왕복 달리기도 했다.  이미 오래전 기억인데 어제인양 눈에 선하다.


예민한 성품인 셀티는 소심하고 잦은 짖음이 특징이다. 달리면서도 컹컹거려서 1층 이웃 중 한 집은 문을 열어 개 짖음에 대해 불평했다. 비록 2~3분의 짧은 달리기이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하여 달리기를 중지하고 목줄을 하고 왕복 함께 걷기로 산책을 해야 했다. 사실 수술 후  체력도 점점 약해지는 중이었다.


사람들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셀티의 영특함 정도에 1위 보더콜리, 2위 푸들, 3위 저먼 셰퍼드, 4위 골든 레트리버, 5위 도베르만핀셔에 이어 여섯 번째의 순위를 매기고 있다.  수영을 가장 잘하는 견종인 래브라도 레트리버는 7번째 영특한 견종으로 뽑혔다. 래브라도레트리버는 골든레트리버와 함께 훈련효과가 우수하여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인기이다.



헤어진 지 10년인데도 그리운 랄프


우리 가족은 Sheep dog 후손인 랄프의 명민함에 늘 감동했다. 아픔을 참는 모습, 먹을 것을 눈앞에 두고 주인의 허락을 기다리는 모습, 외출준비를 하는 동안 의젓하게 대기하는 모습, 미안함을 표시하는 눈빛, 뒤뜰에서 왕복 달리기를 마치고 주인에게 달려와서 자세를 낮추고 리드줄을 매어달라고 목을 내미는 모습 등은 우리가 함께 지내는 동안 매번 감탄하였다.



*랄프는 웨딩링을 목에 매달고 입장



"랄프 넌 사람 같아."

"상대방의 생각을 어쩜 그리 잘 읽어?"

"엄마, 랄프(럭키)는 천재인가 봐."


등의 문장을 우리 가족은 수도 없이 반복했었다.


적어도 개는 변덕스럽지 않다. 비난이나 비판, 간섭이 없는 친구라는  치명적인 매력에 충성스러움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반려동물 중 개는 특히 지능이 높고 충성스러울 뿐만 아니라 배변 훈련이 가능하다.


덕분에 반려인뿐만 아니라 동물매개심리치료견으로 선택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제공한다. 반려인과 함께 병원이나 학교, 그리고 시설 등의 심리치유프로그램에 참석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EU에서 UAE,  홍콩,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병원과 학교, 그리고 양로원 등지에서 일상화되어 있는 '동물매개심리치료'에 참여하는 치료도우미견은 반려견 중 선택된다. 그리고 관련 전문기관들에서 반려인과 함께 교육훈련과 평가과정을 거쳐서 반려인(핸들러라고도 함)과 함께 체계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특징이다.


우리의 반려견들은 우리가 동물매개심리치료에 대해 알기 전에 이미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심리치료견이었다. 우리 가족은 헤어진 지 10년이 지나서도 늘 내편이 되어주던 랄프를 여전히 많이 그리워한다.





작가의 이전글 그 남자는 이라크 파병을 자원했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