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해
겨울바람이 매섭다.
12월이라 매서운 칼바람은 당연하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길을 나섰다.
신용산역 우체국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바람이 코 끝에서 맵다.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등에 맨 배낭 속 얇은 천 지갑의 크리넥스 티슈 두 장으로 눈물과 콧물을 정리했다.
"늙으면 단순해져야 하는 데 더 복잡해지더라.
남의 눈에 안 띄게 작은 사이즈를 골랐는데 그것도 욕심이었다. 보청기의 오른쪽과 왼쪽 구분이 도대체 쉽지 않다. 더구나 남자는 손가락이 굵어 둔하잖니. 잘못 꽂아서 몇 차례를 시도해야 제자리를 찾는다.
조금 쓴 것 같은데 금세 건전지가 닳았다고 빨간 불이 들어와. 네 엄마랑 둘이 사니 뭔 얘기를 얼마나 하겠냐? 하루종일 필요한 것도 아닌데 자주 배터리를 바꿔 끼워야 해서 낭비하는 것 같아 아깝다.
이빨도 그렇다. 젊은 시절부터 소금으로 잇몸을 마사지하고 열심히 닦은 덕에 치아는 오래 사용했다. 그래도 늙음은 어찌할 수 없어. 80년이 넘게 썼으니 이제 어금니도 흔들거려서 사용하기 어렵다.
식사 후에는 틀니를 꺼내서 잘 닦아주고 또 내 잇몸을 따로 잘 닦아야 해. 젊은 시절보다 몸 관리 사항이 많아 번잡하다. 잇몸도 늙으니 조금씩 변하는지 잘 맞던 틀니가 이제 불편해지더라. "
올해 93세이신 친정아버지가 80대에 내게 고백하듯 전하신 불편함이 떠오른다.
이제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반신마비가 왔다. 근육 유지를 위해 힘겹게 보조기에 기대어 어머니와 함께 거실을 몇 바퀴 돌고 자전거 기구 위에 앉아 애써 두 다리를 움직여보는 게 하루 움직임의 대부분이다. 그래도 두 분이 함께 계시고 맑은 정신이시니 감사하기 그지없다. 두 분이 평생 일기를 기록해 오신 덕분일지도.
거의 누워서 책 읽기로 하루를 보내신다. 임플란트를 하셨는데 오래되니 깨져나가 다시 해야 한다지만 다시 하는 일 자체가 번거롭다고 완강히 반대하셨다.
"얼마나 더 산다고."
얼마큼 불편하실지 아직 경험하지 않은 나는 감도 잡을 수가 없다.
나도 이제 정갈함에 특별히 더 신경 써서 '보고 또 보고' 나이가 되었다. 어린아이의 코는 손으로도 닦아줄 만큼 예쁘지만, 어른의 콧물은 불결해 보이지 않게 깔끔하게 처리할 일이다. 날렵한 나이가 아니니 점점 귀찮지만 손도 몸도 더 자주 닦을 일이다.
이제 눈물까지 줄 줄이라니...
영문을 모르다가 '눈이 시립다'는 생각에 안경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영어사전 글씨가 잘 안 보였다. 10년 넘게 미루어온 백내장 수술을 최근에 양안 한꺼번에 받았다. 샤워를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번거롭고 큰 행사를 앞두고 있어서였다. 이미 옆지기가 한쪽씩 차례차례 양안 모두 수술을 받고 경과가 좋다고 적극 권하는 터였다.
난 꼭 엉뚱한 때 용기가 뻗친다. 70대 중반의 선배언니는 신중하게 한쪽만 수술했다는데 귀 얇은 나는 옆지기가 이미 예약해 둔대로 순한 양처럼 따라갔다. 한 번에 양안수술을 감행하고서야 '쯧' 했다. 백내장 수술 후 두 눈이 많이 부셔서 실내에서 임시로 사용할 도수 없는 색안경을 아주 오래된 옛 안경테에 넣어 맞췄다.
옆지기는 불편이 전혀 없고 아주 잘 보여서 좋다는데 난 이물감도 심하다. 그이는 눈도 부시지 않다며 안경을 벗어버렸다. 나는 그이에게
"자기는 괜찮아?" 묻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난 날이 지날수록 다시 근시가 나타나고 원시도 예전으로 돌아왔다.
*작은 딸은 빨리 전기로 바꿀 것을 권유 중인 도시가스 불빛(출처: https://www.newsquest.co.kr/)
백내장 수술 다음날 눈에 들어온 부엌 가스불은 세상에 그토록 예쁠 수 없는 '청보라색'이었다. 내 평생 가스불 색상이 그렇게 선명한 청보라색인걸 본 기억이 없다. 정말 어여뻐서 앞에 한동안 서서 보고 또 보았다. 뭔가 '시'라도 한 편 나올듯한 감탄이었다. 큰아이처럼 고도근시의 불편을 겪은 것도 아닌데 백내장 수술 결과가 이런 감격이라니. 부엌 가스 불빛에 반해 보고 또 보며 자리를 못 뜬 일은 처음일 게다.
백내장 제거뿐만 아니라 색상조절세포를 건드렸나 싶을 만큼 색상 판단에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입고 다녔던 거위털 점퍼와 겨울 기모바지 색상도 밤색이 아니고 약간 바랜 자줏빛 밤색이 났다.
이건 또 뭔 조화인지...
설마 부분색맹 시력이었나?
수술은 이미 지난 일이니 결과에 맞게 대처할 일이다. 안경을 가져왔을지도. 가방 속에 선글라스 케이스가 보인다. 줄줄 흐르는 맑은 눈물과 콧물을 티슈로 정리하고, 연한 빛깔이 넣어진 선글라스를 쓰니 해결된다.
아, 내 두 눈이 커서 솔솔 들어온 바람에 눈이 시린 거였다. 그동안 쓰고 다닌 다초점 안경이 글자 보기에 더해 눈앞의 바람을 막아준 것도 모르고 안경집에 담아 어딘가에 넣어버렸다. 이제 사용하지 않으려고. 맞다.
사실 노안이 더해지면서 다초점 렌즈안경을 자꾸 벗어놓게 되었다. 안경을 벗으면 오히려 책글씨가 조금 더 선명한 까닭이었다. 그렇지만 부엌에서 식용유를 넣어 당근이나 청경채 등을 볶거나 생선을 튀길 때는 둔해진 눈깜박임이 불안하여 안경을 찾아 쓴다. 그동안 안경은 눈으로 불시에 튀겨오는 위험물질들을 앞에서 척척 막아주는 파숫꾼 역할도 해왔는데 정작 고마움을 인지하지 못했다.
"안경아, 고마워!"
여고 때부터 썼으니 오랫동안 안경이 눈을 보호해 준 것을 깨닫지 못하고 백내장 수술 덕분에 안경을 벗게 되어 좋아했었다. 이번 안경테의 나이는 15살쯤 되나 보다. 화장품이 묻어 바래서 핑계치고 버리려던 참이었다.
미팅을 위해 사무실에 들어서서 첫 번째 한 일은 오래 최선을 다한 내 낡은 안경을 부드러운 천으로 정갈하게 닦아주기였다. 고마운 마음을 듬뿍 담아서.
아, 아무래도 지금은 안경과 헤어질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부모님이 먼저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며 경험하는 일만 남았다.
이해가 안 되었던 어르신들의 불편함을 점점 실감하며 이해의 폭이 조금 커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