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큰딸 덕분에
수년째 반려견 '수리' 미용을 위해 이용 중인 반려견 미용실 원장은
'예약날짜를 기억하지 못하고 약속사건에 노쇼를 한 견주'
를 책망하듯 자신의 기억을 확신하며 전화를 끊었다. 난감하다.
'난 왜 이럴까?'
요즘 우리동네 주변의 동물병원에서는 '샵인샵(shop in shop) 형태로 운영하던 '반려견 미용실'과 '반려견 숙박시설'을 없애는 추세이다. 2023년 4월부터 전면개정된 '동물복지법' 실행과 함께 설치 기준이 강화된 까닭이라고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폭증해서 수요가 증가한 탓인지 우리 집 근방에만도 동물병원은 여럿 늘었다. 반면에 휴가 가는 동안 개를 돌봐줄 곳과 반려견 미용을 할 수 있는 전문 미용실은 줄어드는 중이다.
지자체에서는 자원봉사자를 동원해서 명절연휴에 반려견 돌봄에 나서고 있다. 명절이나 휴가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유기견 증가를 막기위한 고육책이다.
수년째 다니는 이 미용실을 내일 못 가면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하다. 더구나 늘 예약이 밀려서 일주일 전부터 미리 내 일정에 맞춰 예약을 해오던 차인데... 답답하다.
큰딸에게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다. 마침 큰딸이 집에 있었다. 상황설명을 하니 큰 딸도 당황하며 컴퓨터 방의 일정이 적힌 달력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전화가 다시 왔다.
"엄마 기억이 맞아요!."
휴, 구름 속에서 햇살 한 줄기가 비치는 기분이었다.
"그치이?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딸 핸드폰 일정에도 내 핸드폰 일정에도 내일로 예약되어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아, 내 핸드폰에 자동예약기능이 있어요. 전화로 예약할 때 아마도 녹음되어 있을 거예요."
"어? 진짜? 어머 어머 녹음 확인해 봐. 그리고 빨리 전화 줘."
'무슨 이런 일이...'
난 녹음이 필요할 때마다 제때 녹음을 하는 순발력이 없어 안타까울 때가 자주 있었다.
굵직한 사건 사고 때마다 '대화녹음 파일 증거를 내민다'는 뉴스를 들으면 참 신기했다.
'어떻게 그걸 녹음을 했을까?'
'언제 올 줄 알고?'
'상대가 모르게 녹음버튼을 어떻게 눌렀을까?'
몹시 궁금하다. 사실 나는 음성녹음 버튼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수준이다.
딸은 녹음되어 있는 음성을 골라 들어보고선 내게 전화를 했다.
"엄마, 분명히 내일 오전 11시라고 엄마가 말하는 게 녹음되어 있어요."
"어쩜, 넌 꼭 구두요정 1) 같아."
이럴 때 큰 딸이 내 곁에 있음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주 1) 구두요정: 착하고 가난한 구둣방 아저씨네 가게에 작은 요정들이 밤마다 나타나 구두를 만들어놓고 사라져서 가난한 구둣방 아저씨가 부자가 되었다는 그림동화.
딸과 동화구연가 과정 수료 후 유치원 아동들을 위한 <구두요정> 동화 연극에서 딸은 구두 사러 온 아가씨역을, 나는 구둣방 주인 역할을 했었다.
곧 나는 배에 힘을 주고 반려견 미용실로 전화를 했다.
"그날 예약했던 딸 핸드폰에 음성자동녹음 기능이 있네요.
확인해 보니 2가지 옵션을 먼저 말씀드리고 의논하다가 최종적으로 내일 11시로 예약했네요."
"어머, 그래요?
그럼 내일 11시에 오세요."
"아니, 예약 손님이 계시니 마감시간에 갈게요."
"아니에요. 제가 책임져야죠."
그녀는 절대 안 된다고 했던 좀 전의 주장을 즉시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오전 11시에 예약되었다는 손님과 취소를 하기도 전에 내 예약 시간부터 살려 놓았다.
조금 서운했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음 날 11시에 반려견 미용실에 수리를 데리고 갔다. 수리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가위컷을 부탁했다. 최대한 털길이를 살려서. 그리고 지난번 예약 시 자동저장된 음성을 들려드리겠다고 하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틀렸었나 봐요. 제가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랬어요."
그래도 큰딸은 자연스레 딱 그 시간 약속 부분만 틀어서 들려주었다.
그녀의 마음에 혹여 번뇌가 생기지 않도록.
사실 가위컷은 좀 고가여서 자주 하지는 못한다. 내 머리 커트 가격의 4배가 넘는 가격이므로.
*TV 반려견 프로그램 시청 중 인 '수리'
*가위컷 미용 후의 '수리'
모발 길이를 최대로 살린 가위컷 단장을 하고 돌아온 수리의 모습은 정말 예뻤다. 내일 프로그램에 수리와 가슴을 내밀고 참가할 수 있게. 새삼 그녀의 손길과 수고에 감사하다. 비록 그녀의 실수로 잠시 내 마음을 쓸어내리게 했지만, 그녀는 정말 훌륭한 반려견미용사이다.
어쨌건 큰딸 덕분에 예기치 못했던 혼란을 잠재웠으니 다행 중 다행이다.
지독한 순둥이인 큰아이는 언젠가부터 덤벙대는 엄마 곁의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가고 있다.
"고마워, 큰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