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화에서 행복하기
'인문학과 동물교감치유 리딩독' 프로그램에서
이번 회기엔 동물교감치유 현장경험이 풍부하신 교수님 한 분을 모시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의 실행을 지원하는 어린이도서관에서는 입구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바로 신발을 벗게 된다. 마루 위로 맨발로 올라서서 벗어둔 신발을 문이 없는 신발장에 넣고 도서관에 들어가야 한다.
첫 방문일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시스템이 생소했다. 늘 덧신을 준비하고 있으니 맨발은 아니지만, 나는 식당에서도 신발을 벗는 곳이면 순간 주저하게 된다.
장례식장이나 음식점 신발 벗고 입장하는 곳에선 비슷한 신발이 많아 으레 신발이 바뀌고 분실하는 소동이 생기곤 한다. 심지어 <신발분실은 책임지지 않으니 고가의 신발은 알아서 비닐에 담아 보관하세요> 안내문이 나붙은 식당도 있다. 안내문 행간에서 신발분실로 썩 번거로운 담당자의 경험이 전달된다.
이런 일은 자연스러우나, 상대가 알아차리고 돌아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이 번거로운 까닭이다. 요즘 장례식장도 식당도 '신발 신고 입장'으로 많이 바뀌었다.
<지난번 ㅇㅇ 일자에 사진의 신발을 놓고 가신 분은 방문하셔서 안내 창구에서 교환해 가시길 바랍니다.>
의 안내문도 도서관 입구 안 벽에 붙어있다.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에 "신발 벗고 입장"은 첫 방문객을 잠시 머뭇거리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수년 전 방문했던 경기도 특수학교에서 여러 교실 중 면역이 약한 어린 아동들이 있는 교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큰 딸도 오래 자가면역치료를 받으면서 감염위험 탓에 긴장을 경험했던 일이지만, 미리 안내가 없어서 우리는 프로그램 실행 대상자가 장애아동이라는 것 외엔 특정 아이들의 상황에 대해 모른 상태였다.
이젠 미리 보호자의 동의를 받지 않으면 정보공유가 어려우니 프로그램 진행팀이 참여자의 상황을 미리 알기는 어렵다. 다행히 당시 대부분의 아동들이 다양한 장애가 있지만 체력은 건강한 편이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운동장의 초록 잔디밭이 관리가 잘되어 있는 그곳은 원래 실내화를 신는 학교인데, 여러 교실 중 한 곳인 그 특수 교실은 실내화도 벗게 되어있었나 보다. 나는 그날 슬립온 흰색 실내화를 새로 사서 세탁하여 가져갔다.
손도 발도 노화되니 원인파악을 못하는 알레르기가 수시로 올라오게 자리 잡았다. 이들을 다독이고자 새 옷과 새 신발의 새 내음을 큼큼거리여 좋아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은 냉큼 잔여 화학물질을 물세탁으로 또는 드라이로 제거 후 착용한다. 큰애 입원실 동료로 병원에서 만난 섬유회사 직원이 내게 '새 옷 세탁은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했었다.
약자를 대상으로 리딩독이나 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핸들러나 전문가의 슬리퍼 착용은 참가자 보호나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는 강아지 관리에 부적합하여 (넘어지거나 다치기 쉬워서) 실내 슬리퍼는 선호하지 않는다.
교실문을 열고 담당교사, 보조교사, 아이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리드줄에 메인 강아지와 함께 들어가려는 순간
"여기는 모두 신발을 벗어야 해요."
양말을 신은 어린 아동의 귀요미 제지가 날아왔다.
"여기서 착용할 수 있게 새로 사서 선생님이 깨끗하게 씻었어."
유머가 부족했던 나는 동물교감치유견인 말티스 종 강아지 '수리'와 함께 입장하며 답했다.
해가 지나고서야 그 상황에 대한 기억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연잎처럼 떠오르며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머러스하게 대응하거나, 어린아이를 존중해서 그녀 말대로 실내화 신발을 밖에 벗어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부득이 실내화라고 주장하며 신고 들어갔던 유연하지 못함에 지난 일이지만 오래 자주 미안했다.
다음엔 방식이 바뀌었는지 그 반도 모두 실내화를 신고 있어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 한동안 잊고 있었다.
1990년대 호주 시드니 거주시기에 전자제품 수리기사 등 외부에서 방문객이 있을 때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올 수 있게 슬리퍼를 내놓았었다. 물론 대부분의 호주 가정이나 은행 등 기관 건물들은 입구의 거친 러그에서 신발 바닥을 털고 다시 현관입구의 부드러운 러그를 밟아 신발을 깨끗하게 한다.
그렇다 해도 밖에서 신던 구두를 그대로 신고 실내로 들어가거나 신은 채 방문객을 맞이하는 호주 가정의 습관은 당시 내겐 낯이 설었다. '비위생적일 텐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성경공부하느라 모인 호주 친구집에선 2층 자녀방에 낮 시간에 침대 위에 엎드려 쉬며 닌텐도 게임 중인 자녀들이 있었다. 우리를 맞은 주인도 구두차림이었고, 방문객인 멤버들도 모두 구두를 밖에 놓인 거친 사각 러그와 안의 부드러운 둥근 러그천에 여러 번 문질러 닦고 들어갔다.
당시엔 부모들이 가끔 현관문 밖에 놓인 거친 사각 러그 밑이나 우체통에 현관열쇠를 넣어두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기도 했다. 하여 좀도둑들이 현관키를 열고 편안한 입장을 위해 맨 먼저 살펴본다는 두 곳이다.
그날 호주 친구 집에서 주인의 안내로 손을 닦으러 2층 화장실을 향해 가던 중, 자녀 방 침대 위에 엎드려 닌텐도 게임 삼매경 중인 사춘기 아들 발에 목이 긴 농구화 모습의 운동화가 신겨져 있는 상태임을 목격했다.
신발을 신은 채 방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은 수영장 샤워실에서 만난 모습보다 더 큰 문화충격이었다.
호주 시드니 수영장의 샤워실은 샤워탭 한 칸씩 만들어져 프라이버시용 여닫이 문이 달려 있다. 한국의 목욕탕처럼 모두 벗은 몸 샤워장과는 다른 형태이다.
매달아 진 여닫이 문을 열어둔 채 수영복 차림으로 휘휘 샤워탭의 물을 맞아 금세 헹군 뒤 큰 타월을 두른다. 옷 등이 담긴 헝겊가방을 어깨에 메고 젖은 맨발로 걸어 나가 수영복 위 둘러진 타월 차림으로 차를 운전해 떠나던 호주인들의 모습도 처음엔 충격적이었다.
반대로 한국인은 샤워장에 머무는 시간이 참 길다. 어떤 한국인 엄마는 1인용 공간에 함께 들어가 아이의 몸에 거품을 듬뿍 묻혀 깨끗이 헹군 뒤 이태리타월을 사용해 박박 때를 밀었다. 닫힌 문 아래로 비누거품이 둥둥 떠내려 흐르고 안에 있는 아이들이 아프다고 소리쳤다.
결국 안에선 바깥 사정을 모른 채였고 바깥에선 문을 열어둔 채 간단히 헹구고 떠나는 호주인들에 비해 한국엄마가 들어간 샤워칸 앞의 대기 중 줄이 가장 길었다.
당시 건물 현관과 복도에 이어 실내에 카펫이 바닥 전체에 깔린 시드니에서 대부분의 한국가정은 실내 슬리퍼를 착용하거나 맨발 차림으로 생활했었다. 양말차림은 카펫 위에서 미끄러워 자칫 넘어지기 쉽다. 카펫이 깔린 실내에서도 그저 달려다니기를 좋아하는 연령의 아이들은 차라리 맨발이 낫다.
우리 집도 갑자기 이주하게 된 시드니로 출발하기 전 한국 인사동에서 예쁜 꽃무늬가 수놓아진 성인용 실내화를 준비해서 출국했다.
1년쯤 후 냉장고 기사가 물이 흐르는 냉장고 수리차 방문했던 날에 그 기사의 신발은 끈이 높이 달린 군용화 같은 나이 든 가죽구두였다.
그 기사는 현관에서 큰 키를 구부려 구두끈을 풀어 벗으며 난감해했다.
옆에 서서 기다리던 나도 덩달아 미안해졌다. 업무를 마치고 다시 신발에 발을 넣으며 끈을 묶을 때까지 그 기사도 옆에서 계산서에 사인을 끝낸 나도 또 난감했다. 그래도 신는 중이니, 기사도 나도 감정이 훨씬 수월해져 웃으며 인사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이 도서관에 처음 도착하던 날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어두고 들어오세요'라는 입구안내문을 보고 순간 난감했다. 마치 옷을 벗는 느낌이었다.
시드니에서 서툰 영어로 간단히
"신발은 벗고 들어오세요."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신발을 신은 채 성큼 발을 내딛다가 당황했던 그 전자제품 수리기사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표정은 지금도 떠오른다.
문화의 차이라는 게 이해하고 보면 수용이 되는데 소통되기 전엔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어린이 도서관 방문 첫날에 입구의 직원이 나와서 내게 도서관 신발장에 있던 다른 사람의 하얀 실내슬리퍼를 꺼내주었다. 커다란 하얀 슬리퍼를 작은 발에 걸치고 어린이 도서관에서 2시간 강의를 마쳤다.
다음 주 방문에서는 맨바닥 마루의 장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강의 중에는 신발바닥을 다시 세척한 실내용 굽 슬리퍼를 가지고 가서 양해를 구하고 신었다. 화장실이나 도서관 둘러보기 에는 소리 나지 않게 덧신을 신고 갔다.
깨끗이 청소된 바닥은 덧신을 벗어 들고 맨발로 디뎌보니 정갈함이 발바닥 촉감으로 그대로 전해져 문자 그대로 편안했다. 요즘 황톳길도 맨발 걷기를 통해 건강회복을 한다는데, 우린 도서관 마루를 맨발로 걸으며 급속도로 건강을 기대하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딸도 나도 실내 덧신을 신고 다니면서도 어린이 도서관 청소상태가 워낙 좋아 바닥 촉감이 더욱 좋다는데 동의했다.
4번째 회기 전날에 다음날 처음 방문하실 교수님과 안내를 위한 통화를 했다. "도서관측에서 보내온 안내를 보니 맨발로 들어가나 봅니다" 하고 문의하셨다. "네. 교수님. 실내화가 있습니다. 편히 오세요" 했다. 동행하는 큰딸이 손님용 실내화를 미리 준비했다.
비가 호우로 새벽 내내 침수된 지역들 뉴스를 들으며 마음을 졸였다. 혹시 싶어서 다음 시간과 바꿔 할 수 있도록 내 강의 준비도 해두었다. 천안과 익산 노선에서 서해안 지역 침수에 이어 기찻길이 잠겼다는 뉴스가 떴다.
프로그램은 10시에 시작하지만 9시 전에 먼저 도착해서 상황에 맞춰 준비할 수 있도록 일찍 출발했다. 그날 전주에서 출발하신 교수님은 만약에 대비해서 일찍 출발하는 KTX 티켓을 준비하셨다. 중간중간 침수지역에서의 연착에도 불구하고 시작시간보다 20분 전에 도착하셨다. 감사했다.
먼 데서 새벽에 출발해 오신 교수님께서 <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 관련 강의와 카드를 이용한 프로그램 시연까지 잘해주신 덕분에 참여한 수강생들의 관심이 커졌다. 덩달아 보람이 커졌다.
이제 네 번째이니 우린 신발 벗고 들어가는 어린이도서관의 마루가 참 좋다. 무엇보다도 깨끗한 실내에서 책을 보는 느낌이 참 좋다.
아, 그러고 보니 고양시의 리딩독 전문도서실은 저학년 아동들 대상으로 구상했으므로 실내에 바닥매트를 깔았다. 입구의 낮은 선반에 신발을 놓고 의자나 카펫바닥에 앉는다. 겨울 추위에 대비해 바닥매트를 제안했었는데... 나중에 동물교감치유 리딩독 도서관을 설립할 때는 신발 벗고 들어가는 공간으로 구상해 봐야겠다. 어린이도서관에서 아이디어를 배운다.
아침에 일찍 출발해서 오늘 길은 차창에 비가 쏟아부어졌는데 돌아가는 길은 잠시 비가 개였다. 오늘도 교수님 덕분에 강의 기술을 한 수 배우고 간다. 도서관에서도 은사님들께도 동료와 선후배에게서도 늘 배우는 날이 많아 참 고맙다.
잠시 비가 소강상태이지만 7월의 기후 재난으로 인재피해도 재산피해도 심각하다. 팔을 걷어붙인 자원봉사자들의 따스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모쪼록 피해자분들에게 실제적인 위로가 되는 시스템이 작동되어 한숨 돌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