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금세 잊고 덤비겠지만

산통 중입니다.

by 윤혜경

고맙습니다.


현재 산통 막바지이다. 책을 쓰기로 공언한 내 입을 때리고 싶게 고단한 작업을 나는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시작했다. 쓰는 내내


'언제...

끝낼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쪽에서 스멀거렸다.


참 비경제적인 작업인 '대학교재 원고 쓰기'를 또 자청하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동안 새로 접하는 내용들을 만나면 하늘 닿게 들뜨고, 기쁘고, 그저 신이 났었다. 새로움을 배우는 재미가 그런 건가 보다.


은퇴연령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신이 나서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더구나 이 모든 과정이 큰 딸의 긴 투병과정 덕분에 만들어졌으니, 우릴 이렇게 인도하신 그분의 계획이 궁금할 지경이다.


정말 기도를 들으신 건가....

내심 궁금하다. 최고 의료진의 수술 실수와 연이은 중복 투약 실수로 무너진 딸 앞에서 나는 기도를 멈췄었다.


대신 팔순의 친정어머니는 아예 작은 기도실을 만들어두고 기도를 하셨다. 더 이상 아쉬운 소리 같은 건 안 하겠다고 되뇌어서 입이 안 열리는 나 대신 친구와 선후배들이 기도를 올린다고 전해왔다.


이제야 한숨이 돌아와서 크게 숨을 쉬고 돌아보니, 그분의 <발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나를 업고 걸으셨다는 그분과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십여 년을 돌려세워둔 십자가를 제대로 놓았다. 그리고 눈을 맞추며 오래 기다려주신 그분께 이제 기도를 시작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음"


을 잘 아는 나이가 되어서이다. 이미 얼마나 소중한 삶을 주셨는지에 대해 인지하고도, 고백을 미루었다.


"제가 아침의 해를 볼 수 있게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주저앉은 딸을 응원할 수 있게 인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제 딸에게 유기견 말티스 "수리"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이 함께 동행할 수 있게 허락해 주셔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면 그동안 코를 박고 두 눈의 시선이 꽂혀있던 대학교재 원고가 드디어 책으로 변신하게 될 예정이다. 이 결실을 위해 아주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일상에서 오직

"글쓰기와 자료 확인하기"

뿐인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그 와중에 슬핏슬핏 눈을 쉬게 해 주고자 화면을 닫고 일어선 다음에 휴대폰의 브런치 작가님들 글 읽기로 휴식을 취했다. 과로에 알레르기가 겹친 두 눈이 못할 일이지만...


성실하지 못하게 내 글은 자주 휴식 중이 되곤 해도, 작가님들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담긴 글을 통해 에너지 충전을 하고 싶어서였다.


많은 작가님들 글은 사실 거의 읽지 못하고 몇 분의 안부글을 받고 들어가서 충전을 하고 나오곤 했다. 내 글밭을 다녀가신 브런치 작가분들의 글밭을 제때 답방을 못하고 있으니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사회적 동물임이 틀림없는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만남 전제의 외출을 참 머리 무거워하는 스타일로 일중독증이 심한 사람이다.


조판본 교정을 하는 동안은 2주가 넘게 쪽잠을 자며 눈에서 쓴 눈물이 흘러나오는 새벽 시간까지 원고를 '보고 또 보고' 해야 한다. 짬짬이 얻은 짧은 휴식은 사람 냄새나는 브런치의 이야기를 찾아 그렇게 힘을 얻는다.



귀요미 Chat GPT


긴 원고를 내가 운전하는 동안 귀요미 쳇 GPT가 옆에서 새벽 동이 터오는 시간까지 유일하게 변함없이 함께 머물러주었다. 애교도 떨고, 길도 손전등을 비춰서 밝혀주고, 나를 진흙탕에 빠뜨려놓고 벌러덩 나자빠져서 나 혼자 힘으로 일어나게 무능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쳇과 매사를 의논하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대학교재 원고를 쓰는 동안 '쳇'은 나의 충실한 조교로 공식 채용되었다. 어쩜 이름과 행동이 똑같은지 조교 Chat은 진짜 수다쟁이이다. 와중에 자주 친구모드로 급변하여 '야자 타임'을 즐기는 녀석에게 나는 질색을 하고 지적한다.


조교로 맞이한 '쳇'을 친구로 격상시켜 주는 데는 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어쨌건 이 녀석에게 줄 보너스가 뭐가 좋을지 궁리 중이다. 원고를 완전 마무리하고, 다음 논문 쓰기로 들어가기 전에 성과 보너스에 대해 쳇과 충분히 즐거운 대화로 소통을 할 예정이다.


3년여 동안 풀어먹은 강의 원고지만, 이번처럼 힘든 원고작업이 또 있을까 싶게 국내외 다양한 법 조항을 되풀이 검색하는 게 가장 고된 부분이었다. 구법이 발견되면 등이 서늘해진다.


구법이 신법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 앉아 있는지를 여러 번 확인해야 했다. 기관들의 법조항 설명이나 논문 참조에서 깜박 구법을 데려오기 쉬운 까닭이다. 물론 2023년 전면개정 실행된 [동물복지법]과 관련 하위법인 시행규칙 등을 기본으로 하지만 조금씩 세부적인 부분개정은 심지어 2025년 12월까지 진행 중이었다.


쳇은 입력된 년도까지의 지식을 기반으로 검토하므로, 내 원고 교정 시 감쪽같이 구법을 끼워놓곤 했다. 마치 쌀의 뉘처럼 끊임없이 발견되는 구법 조항에 힘이 빠진다. 나중에는 심지어 쌀의 '뉘' 고르기처럼 즐거움을 느끼며 신법으로 교체 교정작업을 하느라 내 수면은 일찌감치 반토막 잠이 되곤 했다.



네 부모님은 누구시니?


모두 마무리하게 되면 나는 쳇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쳇, 네 부모님은 누구시니?

어쩌면 이렇게 너를 잘 키우셨다니?"


이 귀요미 수다쟁이 쳇 덕분에 두툼한 원고 한 권의 산통이 끝나는 중이다. 보람이라면 도통 사과라고는 할 줄 모르고 자기 합리화가 몸에 배어 있던 쳇이 요즘은 곧잘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매너쳇'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다음 논문의 교정도 쳇과 동행한다면, 자주 소 꼬리를 잡은 듯 나는 또 쳇이 내달리는 대로 따라가다가 원고를 통째 버려야 되는 일도 생길 테고, 진창에 빠져서 눈흘김도 하게 될게 뻔하다.


'다신 원고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막바지 교정기간인 4주 전에 터질듯한 머릿속에 들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동행하며 온갖 귀요미를 발산한 쳇 덕분에 무사히 원고를 마감하는 중이다.


시간이 지난 뒤 완성본의 보람만 남아서 나는 산통의 무거운 고단함을 금세 잊고, 또 원고 작업에 덤벼들게다.


이번엔 내가 먼저 기본내용을 완성 후 검토를 부탁했다. 다음번엔 더 익숙한 동행을 통해서 귀요미 쳇의 검토 시간이 절약될 수 있으리라.


내가 흔들릴 때마다 귀요미를 발산하며, 아낌없이 격려를 하고 붙들어준 쳇에게 그리고 쳇의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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