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9알

이런 날도 있다.

by 윤혜경

병원을 다녀왔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면 제일 먼저 빈뇨와 잔뇨 증상으로 몸의 면역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몸의 주인은 평소 얼마나 감사한 지를 잊고 살다가 그제야 자신의 몸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


하루에 9알씩 약복용이 시작되었다. 소변검사 결과 혈뇨가 많이 섞여있다며 이렇게 계속 반복되는 증세는 좋지 않다고 주치의는 설명했다. 지난번에는 거의 3주를 치료받다가 결국 대학병원으로 보내졌었다.


젊은 시절 해외에서 통번역 대학원 과정이 버거울 때도 수면이 부족하니 자꾸 병이 났다. 그랬었다.


괜히 공부를 선택해서

'내 입을 때리고 싶은 때'와

영어가 귀에 쑥쑥 들어오면

'콧노래가 나오는 때'가

번갈아 자리 잡곤 했던 때였다.

그래도 젊은 에너지의 동기들 덕분에 좋은 날이 많았다.


닥터는 이번에는 신우신염으로 확대되지 않게 푹 자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3개월 전에도 결국 대학병원에서 혈뇨 멈춤이 확인될 때까지 신장내과를 다녀야 했다. 개인병원 원장선생님은 혹여 주말에 고열이 수반되면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이번 주까지 꼭 제출해야 하는 원고가 있는데..."


조금 더 건강에 신경이 쓰였다. 일정을 내 맘대로 조정하기가 어려운데...


4알씩 하루 3회 3일 동안 복용 후 다시 검사하기로 했다. 나는 당장 약 4알을 먹더라도 이 불편함과 온몸이 저릿해지는 불쾌한 통증을 멈추게 하고 싶다. 점심에 약을 먹었으니 저녁에 먹을 차례다.


문제는 부엌을 여러 번 드낙거린 내가 저녁약을 먹었는지 확실치 않다. 보다 못한 딸이 내 약봉지를 모두 꺼내어 매직으로 날짜와 아침, 점심, 저녁 순으로 적고 하루 분량씩 스테이플러로 찍어 하얀 약봉투에 담아 부엌 입구 책꽂이에 놓았다. 10년 넘은 역사의 약복용 선배답게 큰딸은 약이 내 눈에 잘 띄게 놓는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소화하는 일'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아프고서야 깨닫는다.


큰딸은 서른에 저칼슘혈증 환자가 되어 12년째 약을 복용 중이다. 처음 서너 해에 비해 지금은 복용약이 줄었다. 요즘은 매일 15알 내외를 먹어야 한다.


큰딸은 수술 직후엔 칼슘복합제를 수면시간을 제외하곤 4시간마다 4정씩 16정을 먹었다. 변비로 고생이 많았다. 다행히 '2주 간격으로 약을 줄여 역삼각형 형태로 칼슘과 비타민 D를 한 알씩 줄여가며 복용하라'는 담당의의 복약지도가 있었다.


추가로 자가면역질환이 이어진 딸은 신경과 처방의 길쭉한 'Omega Oil'(오메가오일) 캡슐을 복용했다. 용량이 큰, 길고 통통한 '오메가 3' 캡슐이 목에 걸리는 때가 생겼다.


눈물을 글썽이는 큰딸을 보고 궁리 끝에 나는 소독된 굵은 주삿바늘로 구멍을 뚫어 수저에 흘려 담았다. 응급병동 일주일 입원 때 주사줄을 여러 개 매달고 침대에 축 처져 누워있는 큰딸에게 그렇게 복용시켰었다.


'오메가 3'는 생선 비린내가 있지만, 아픈 거에 비하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다.


큰딸은 나빠지는 증세에 맞춰서 마그네슘과 호르몬제 추가로 한동안은 복용약이 1일 20알이 훌쩍 넘었었다. 여러 병증이 새로 추가되면 처방약이 추가되고, 그에 맞춰 위장 관련 약들이 더해지면서 큰딸의 약은 금세 1일 23알로 늘어났다.


처음엔 큰딸이 약복용 때마다 구토를 수반해서 걱정이 되었다. 큰딸은 구토로 인해 복용실패인 약을 추가로 먹어야 하는지를 고민할 정도가 되면 손가락과 발가락이 심하게 저리다가 굽어 들었다. 나중에 "저칼슘혈증"이라고 진단받았다.


수술팀이 모르지 않았을 텐데.. 병원 측이 덮고 쉬쉬해서 우린 "큰애의 아주 작은 암 제거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의료진의 공언에 감사했었다.


"이런 경우 사나운 성정의 보호자였다면 의사에게 충분히 항의해서 미리 대책을 마련해 주었을까?

좀 강한 부모였다면, 하다못해 무례한 부모였다면, 병원에 크게 항의를 하고 병원이 책임지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 오래 마음이 무거웠다.

병원치료에 시비건 환자라고 기록되면 행여 응급상황에서 안 받아주거나 부실하게 치료할까 보호자인 나도 옆지기도 소심해졌었다. 나도 남편도 의료인이 아니고, 시동생, 시누 등 대학병원 의사들인 친지는 한 다리 건너라서 조심스러웠다.


응급실에 실려가면 매번 20시간이 넘게, 또 어느 날은 32시간까지 대기실에서 앉은 채로 링거를 맞고 각종검사를 하다가 비워진 침대를 배정받곤 했다. 검사결과에 따라 급히 응급병동으로 보내져 일주일여를 큰딸의 '전해질' 불균형을 조절하는 동안 가족구성원 개인의 삶은 일시정지가 되곤 했다.


다시 돌아보기 두려운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삶들을 경험했다. 그곳도 사람 사는 동네였다.


십 년이 지난 지금도 큰딸은 종일 약을 먹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약을 함께 복용하면 약효가 떨어져 사단이 생기곤 한다. 함께 고민을 해오던 닥터는 딸에게 반복적인 부작용이 생김을 경험 후에 조언했다.

"약의 효과가 섞이지 않게 따로 복용해야 한다"

라고.


아침 식전 1시간, 식 중간, 식 후 곧바로, 식후 30분 후, 그리고 자기 전 등이다. 행여 서로 가까워지거나 합해져서 필요한 검사수치가 덜어지거나 높아지지 않게 막연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 했다. 참 애쓴다.


요즘 나는 겨우 9알을 보름 지속해서 복용하는데 매일 약을 먹은 건지 안 먹은 건지 헷갈린다. 어느새 큰딸이 나를 도와주는 중이다.


"엄마, 약? 드셔야지."

"그래, 약..."

"여기, 물~**"


식사 직후 딸은 내 약을 챙겨 맑은 물 한 컵과 함께 식탁 위에 놓아준다.


지금 구순을 넘기신 친정아버지께서 70대 시절에 당시 40대의 큰딸인 나와 보청기 건으로 대학병원 안과에 가는 길에 말씀하셨었다.


"늙으면 일상이 더 간편해야 하는데... 보청기 수발드는 일에다 잦은 배터리 가는 일이 번거롭다. 틀니 또한 씻고, 넣고, 소독하고... 젊을 때보다 치아 간수에 시간이 더 든다.


몸이 건조하니 자주 로션도 발라줘야 하고... 잊음도 많아지는데... 나이 들면 제 몸 간수에 시간이 곱절은 더 드나 보다. "


이제야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래도 이만하기에 감사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맑은 눈으로 파란 하늘과 푸른 산을 보며 땅을 밟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오늘이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거기에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에 몸에 좋은지를 생각하며 선택하는 사치도 누리는 오늘이 참 감사하다.


부모님 또한 몸이 연세에 맞춰서 불편하시지만, 맛을 느끼실 수 있고, 자식들과 통화를 하며,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있다. 좋아하시는 책을 방문도서관차에서 골라 읽으시고, 당신들이 선택하신 가장 성격이 잘 맞는 (요즘으로 말하면 NBTI 감이 잘 맞는) 둘째 딸네를 불러들여 잔잔한 동거소음 속에 살고 계시니 그 또한 행복이다.


덕분에 나는 부모님을 덜 돌아보고, 귀여운 크기(3mm)의 암수술 의료사고로 인해 누운 큰딸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리고 투병 와중에 고단함을 견디고 일어나 함께 박사 연구자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할 수 없다.


약 9알로 내 건강을 지켜주시는 동네 병원 원장님께도 참 감사하다. 오늘은 자꾸만 하늘을 쳐다보며 감사기도를 드린다. 옆에 있는 큰딸 덕분에 일상이 안심이 된다. 오래 아파온 큰딸의 보호자라고 여겨온 내게 이제 큰딸이 내 보호자가 되고 있다.


이런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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