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리 사진 좀 찾아줘요
* 펭귄 섬에서 허용된 유일한 가족사진: 펭귄이 놀라지 않게 숨을 죽이고.
*출처: 팸플릿 표지
"Phillip Island"는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남동쪽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이곳의 ‘펭귄 퍼레이드 (Penguin Parade)’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생동물 보호 프로그램이다.
이곳에 서식하는 펭귄은 흔히 ‘페어리 펭귄 Fairy Penguin’이라 불리지만, 현재는 Little Penguin (소형펭귄)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한다. 남극 바다에서 먹이활동을 마친 펭귄들이 어둑한 밤중에 모래사장에 상륙해서 출산(알 낳기) 둥지로 돌아오는 장면이 유명하다.
그 장면은 전문 해설가의 안내 아래 제한된 인원만 숨을 죽이고 관람대에 앉아서 관람할 수 있다. 사진 촬영도 허용된 장소에서 안내원이 찍어주는것 외는 금지되었다., 강한 조명은 철저히 통제된다.
그날 단 한 장의 가족사진을 안내원이 직접 찍어주었다. 조금 앞에 상륙하여 안전을 확인하는 리더 펭권의 인솔아래 해변으로 밀려오던 키 작은 펭권 무리들의 모습이 담긴 필름과 팸플릿은 안내소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야생동물 보호와 지역 관광산업의 균형.
그곳은 이미 오래전부터 ‘동물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동물의 생태를 우선하는 질서를 지키고 있었다. 그 어둑함 속의 숨 죽인 생태관광이라니.
동물권 관련 원고가 오랜 진통 끝에 마무리 중이다. 이런 날도 있다.
다소 지난한 작업이 되는 원고의 시작은 강의 중 아쉬운 부분이 반복되는 전공 교재의 아쉬움이 계기가 된다. 이후 동료 연구자들과 소통 중에 공감을 얻으면, 집필에 대한 강한 동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원고 시작에 대한 생각들과 긴 수고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머릿속에 정리해 본다.
"Yes~"
결론이 내려지고도 조금 더 생각을 이어간다.
매일 자료를 다시 추리고, 정리해 읽고, 시간을 그만큼 꺼내고, 잠을 줄이고 원고를 써볼 것인지...
출판사와 언제, 어디에,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이 분야의 대학교재 출판이 경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이토록 비경제적인 작업에 대한 매력이 마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은퇴 나이의 혜택이다.
가족부양 의무가 가벼워진 상황이니, 구태여 젊은 시절처럼 월 급여 무게는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또, 시간강사나 교수직을 맡아 바쁘게 생활하는 젊은 동료연구자들에 비해 나는 시간조절에 유연하다. 자료를 차분히 검토할 수 있어서 좋다.
원고 시작 초기의 내 마음은, 마치 타조의 날개가 달린 듯 발이 땅에서 살짝 들린 상태가 된다.
그렇게 조금 들뜬 채로 글의 차례 목록을 세우고,
큰 제목 아래 서너 개의 소 제목을 넣어 글밭의 고랑을 만든다.
모아둔 자료를 검토하며 전체 방향이 일목요연해질 때까지 집중한다. 그 시간 동안 다른 모든 일은 벼슬이라도 한 듯 ‘off’ 상태로 둔다.
글밭 고랑이 완성되면 한숨을 크게 쉬고 일어나 몸을 돌린다. 머릿속의 무거운 자료들을 흔들어 털어낸다. 다시 새로운 자료를 채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그렇게 긴 과정을 거쳐 끝날 것 같지 않던 원고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조판본 교정 시간이 돌아왔다.
조금 높은 위치에서 풀밭을 내려다보듯 원고를 훑어본다. 문득, 야생동물 복지와 멸종 위기 동물 부분에 우리들의 바랜 사진첩에서 찾아 넣을 사진이 떠올랐다.
"아지아빠, 혹시 남극 펭귄 상륙작전 사진 있지 않아요?"
"아지아빠, 혹시 사파리 방문 때 찍은 동물 사진 찾아줄 수 있어요?"
동물원과 사파리 방문 사진이라니, 그게 언제 적 일인가? 오랫동안 나 혼자 정리해 온 사진첩들,
그 생소할 짐박스를 옆지기에게 단 두 문장으로 부탁한 셈이다.
벽장 앞의 키 큰 옷걸이 대를 밀어내고, 좁은 틈에서 앨범들을 빼내야 할 텐데, 덩치 큰 남자가 좁은 틈으로 몸을 욱여넣고, 가능할까?
사실 큰 기대는 못했다. 구글링으로 무료 이미지를 찾거나, 비용을 내고 사용 허가를 받는 방법이 훨씬 현실적이다.
이사 후 정리 중인 집에서 벽장 속에 막무가내로 넣어두었을 박스 속에 담겨있는 사진첩을 꺼내 일일이 확인 후 목표사진을 꺼내어야 할, 너무 복잡한 일을 단숨에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처럼 부탁했다. 참 난감한 아내의 횡포이다.
지금 나는 조판본을 교정 중이다.
옆지기에 대한 미안함을 잠시 접어둔 채, 건조한 얼굴로 동료연구자인 큰딸과 함께 교정 마무리에 몰두하고 있다. 마치 온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라도 된듯 벼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