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가득이면 꽃도
*부모님 댁 아파트 베란다 풍경
두 번째 대학교재가 발행되었다.
매일 15정의 약을 복용하는 큰딸과 함께 쓴 전공서적이다. 법률이 포함된 교재라 그동안의 강의자료를 기반으로 내용을 더 충실하게 다듬고자 노력했다.
딱딱해질 수 있는 내용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풀어보고 싶어, <쉬어가기> 코너에는 푸른 혈액을 가진 바다생물 이야기, 과학 발전 뒤에 숨겨진 실험의 이야기, 동물권의 역사 등을 담았다. 그래도 이 책이 비인간 동물들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출판사에서 집으로 인사용 책을 한 박스 보내주었다. 오랜 시간과 수정의 반복 끝에 완성된 책이다.
1권은 두 분 부모님께 드릴 책으로 따로 보관해 두었다. 내게 끈기와 감각, 그리고 좋은 기억력을 물려주신 부모님 덕분에 책 출간이 가능했다. 구순을 넘기신 두 분께 감사 인사를 담아 책을 드릴 수 있으니 큰 은혜이다.
책의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부모님께,
제 삶의 시작과 방향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한 권은 퇴근개념 없이 서재 컴퓨터 앞에 앉은 '윤 고집' 아내의 안전을 지켜준 옆지기에게 선물했다.
그이는 한밤중에 깨어서 말했다. 내가 여전히 컴퓨터 작업 중이면 한숨을 크게 쉬고
"이건 정말 위험해. 내일부턴 내가 자정에 전등을 꺼야겠어. "
그러면서도 자정이 넘은 1시와 신새벽 3시 즈음에 뜨거운 차를 내어주었다. 그이에게 선물한 책 앞에 쓸 감사문구를 아직 못쓰고 생각만 많다.
책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부모님께 늦은 새해 인사를 드리러 새벽 KTX를 탔다. 늘 미루다 늦어진 발걸음이라 마음이 더 조급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기도를 놓지 않으신다.
손녀의 아픔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큰 교통사고를 겪고 다시 일어나 걸으신 분이다.
부서진 뼈를 이겨내고 아장거리듯 다시 걸음을 배우며 끝내 일어나신.
그리고 앉고 서기가 불편한 몸이 된 친정어머니는 1달 간격으로 이어진 두 딸의 산후조리를 도우셨다.
그 고단함 속에도 어머니에게는 기쁨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덕분에 어머니는 몸을 많이 움직이고, 딸자식 둘의 산바라지를 총 지휘하시는 즐거움이 몽실거려서 건강에 도움이 되었을까?
십 년이 지나 80세에 넘어져 팔부터 골반까지 뼈가 또 부서진 어머니는 교통사고 때보다 더 긴 회복기간을 거쳐 일어나셨다.
보조 스틱도 거절하시고, 매일 규칙적인 걷기로 재활에 성공하셨다. 이제는 바퀴 달린 보조 기구에 몸을 기대시지만 그 걸음 하나하나가 이미 기적이다.
어머니 머리가 새하얗다. 아버지는 심근경색과 뇌졸중 이후 많이 약해지셨다. 더불어 '엄격함' 대신 '외로움'이 더 크게 남아 있다. 시드니 시절 교통사고로 심하게 다친 어머니의 어깨 재활을 위해 천장에 도르래를 매달던 분이다. 그 덕분에 6개월후 떠나올 무렵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 오른 팔이 절반은 올려지고,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박수를 쳤다.
두분이 함께여서 감사하다. 구순의 어머니는 여전히 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하신다.
부모님 아파트의 베란다에는 꽃이 송이송이 탐스레 피어있다. 사철 빨강, 분홍, 노랑, 하양 꽃들을 돌아가며 피워낸다.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의 손끝에서 그 꽃들이 자란다.
오래 건강하게 잘 자라며 꽃을 보여준 산세베리아, 장미허브, 그리고 클레로덴드롱, 군자란 등 우리 집 화분들은 겨울 이사를 못 견디고 시들 거리다가 빈 화분이 되는 중이다.
어머니는 달걀 껍데기를 물에 담갔다가 그 물을 조금씩 부어주니 꽃이 훨씬 풍성해진 듯하다고 하셨다. 사랑이 가득이면 화분도 다르다.
떠나올 때 큰 딸의 손을 꼭 붙드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볼 수 있을까나? 내가 나이가 있으니... 담엔 자고 가면 좋겠다"
많이 죄송하다.
"내일 아침 미팅이 있어서요.
곧 다시 올게요"
자동차가 수리되는 대로 이번에는 옆지기와 함께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