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대영웅서사시: 마나스

세계 초강대국 거란제국의 침략에 맞선 중앙아시아 전쟁 영웅들의 대서사시

by 전쟁의 세계사


‘마나스’는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대영웅서사시이자 키르기스스탄의 대표적인 역사서, 전쟁서다. 뿐만 아니라 키르기즈족의 국가 형성과 영웅적 투쟁을 다룬 대서사시로, 9세기경 키르기즈 유목부족들이 통합되어 강력한 부족연합을 이루는 과정도 그린다. 이 대영웅서사시는 당시 키르기즈족 유목민들이 중앙아시아의 여러 몽골계, 투르크계, 중국계 대제국들과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무역적으로나 교류하거나 전쟁하며 적대적으로 대립했음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서사시의 줄거리는 9세기를 배경으로 키르기즈족과 다른 몽골계, 투르크계, 중국계 대제국들 간의 군사적 교류와 특히 거란제국(요나라)의 중앙아시아 키르기즈 침략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마나스’에 나오는 키르기즈족 유목민의 전투, 전쟁과 그들을 침략한 거란제국군에 대한 전쟁사는 당시 세계사적 맥락에서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거란제국(요나라)와 먼 미래 훗날의 몽골계 준가르 제국의 키르기즈 침략 및 팽창이라는 세계사적 정세와 맞물린 것으로 볼 수 있다.


1.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거란제국의 키르기즈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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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초에 북방 '거란(契丹)족' 유목민들이 건국한 거란제국(요나라, 907~1125년)은 만주,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을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한 대제국이었고, 송나라, 당제국, 위진 남북조 시대에 이어 중국 북방을 완전히 정복, 지배한 강대한 대제국이었다. 거란제국은 중앙아시아의 몽골, 만주, 시베리아, 중국 지역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아시아 최강의 패권제국이었으며, 중앙아시아 여러 몽골계-튀르크계 유목민족들과도 크고 작은 전쟁들을 겪었다.


세계사적으로 거란제국은 중앙아시아의 대초원과 중원과 사막을 동시에 모두 지배한 최초의 정복국가 중 하나로, 그 군사 및 정치적 영향력은 당대의 서아시아, 유럽의 중세 제국들한테까지도 미칠 정도였다. 현재까지도 튀르크계 국가들 중에는 중국을 '케세이'라고 지칭하는 국가들도 많으며, 중국의 유명한 대표적인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항공'도 그렇고 이 케세이가 바로 거란족 즉, 키타이족(키탄족)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거란제국은 아시아의 군사, 정치 중심이었고, 이로 인해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인도 거란제국의 영역 확장에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았다.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 전승(키르기스스탄의 역사)에 따르면, 거란제국은 한때 “세계 최강”의 군사적 위상을 누리며 키르기즈 영역을 침략해 왔다. 《마나스》에서 키르기즈의 대영웅이자 주인공인 '마나스'는 키르기즈를 침략한 거란제국군과 맞서 싸우며 키르기즈를 수호하는데, 이는 거란제국의 영토 확장이 중앙아시아까지 미쳤음을 시사한다. 실제 역사 기록에 의하면 거란제국이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 전역을 통제했음은 물론, 주변의 중앙아시아의 다른 투르크계 및 몽골계 유목민들과도 끊임없이 전쟁과 군사 동맹을 반복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컨대 10세기 초 거란제국(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 장군은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을 평정했고, 이 과정에서 키르기즈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유목민족들을 침략했던 것이다.


거란제국의 군사력은 단연 중갑기병대 중심이었으며, 전쟁마(馬) 위에서 긴 장검과 긴 장창을 들고 기병 돌격을 주무기로 삼았다. 이러한 동양 군사전략과 거란제국의 영토 팽창이 맞물려, 키르기즈 부족연합은 북쪽의 거란제국의 침략과 남쪽의 송(宋)나라, 서하(西夏) 제국, 위구르 제국 등 복합적인 압박 속에 놓였다. 이 시대의 세계 정세는 당제국 멸망 후 중국 대륙은 분열된 상태였고, 세계 초강대국인 거란제국이 서하 제국, 송나라를 군사적으로 침략하는 삼국 구도를 이룬 시대였다. 거란제국은 북방의 초강대국으로서, 만주,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과 신강(新疆) 일대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거란 대제국이 키르기즈 지역까지 영토가 확장되었음을 당시 서사시와 민간 전승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2. 몽골계 준가르 제국의 중앙아시아 패권


10세기~11세기의 거란제국의 부상과 키르기즈 침략과 12세기~13세기의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패권 이후 먼 미래 훗날인 1600년대 들어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 서부의 오이라트(Oirat) 북방 유목민들이 강력한 연합군을 형성해 새롭게 등장한 몽골계 '준가르 제국(西間蒙古)'은 중앙아시아에서 막강한 군사제국을 형성했다. 몽골계 오이라트 제국과 몽골계 준가르 제국의 최전성기 때는 중앙아시아의 모든 영토를 다 정복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준가르 제국은 현재의 중앙아시아 몽골, 신장, 시베리아, 만주 지역을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급부상, 17세기 중반의 가르단 칸, 18세기 초의 가크토르 칸 등 뛰어난 군사 황제들 아래 급속히 팽창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면 안될 사실이 하나 있다. 물론 몽골계 오이라트 제국과 몽골계 준가르 제국은 몽골족이 건국한 중앙아시아계 대제국인 것은 사실이나,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제국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몽골제국은 단순히 몽골족 유목민이 대제국을 형성했다고 계승했다고 볼 수 없다. 일단 오이라트 제국과 준가르 제국의 경우는 몽골제국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세계사적으로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대표적인 제국들로는 티무르 제국, 무굴제국, 카자흐칸국, 우즈베크 칸국 등이 있다. 티무르 제국의 경우는 대몽골제국의 일부인 차가타이 칸국 태생의 대제국이면서 세계 정복자인 칭기스칸의 직계 후예(황금씨족)인 티무르가 건국한 대제국이었다. 그렇기에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제국의 대표주자하면 단연 티무르 제국이 1순위였던 것이다.


무굴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티무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바부르 칸이 인도 아대륙을 정복하고 건국한 대제국이었는데 이 바부르 칸은 칭기스칸과 티무르의 직접적인 직계 후손이었다. 이런 바부르 칸이 몽골족 군인들을 이끌고 인도 아대륙을 정복하여 건국한 대제국이 무굴제국이었기에, 국명부터가 이미 몽골제국을 계승했다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무굴제국은 페르시아어로 '몽골'이란 뜻)


또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의 전신인 우즈베크 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즈베크 칸국은 1428년 '아불 하이르 칸(Abul-Khayr Khan)'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건국했는데, 이 아불 하이르 칸은 칭기스칸의 직계 후예였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의 전신인 카자흐 칸국 역시 마찬가지로, 대몽골제국의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직계 후예인 케레이 칸이 1465년 아불 하이르 칸의 통치에 반발하여 분리되어 몽골족 군인들을 이끌고 오늘날 카자흐스탄 지역에 건국한 대제국이었다.


이렇듯 몽골제국을 계승한 제국들은 모두 칭기스칸의 후예가 건국했거나,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했을 때 몽골제국의 군인 지배층에 포함되어 있었거나, 건국세력이 몽골제국의 군인들이거나, 몽골제국을 계승했다는 계승의지를 천명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지배층이 몽골족 군인들이었다. 물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오스만 튀르크 제국 역시 몽골제국을 일부 계승했다고는 봐야 된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군인 지배층들 중에 칭기스 일족이 있었고 술탄들이 전부 죽으면 크림 칸국의 칸이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할 자격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가르 제국(준가르 칸국)과 오이라트 제국은 몽골계가 건국한 것은 사실이나, 위의 어떤 점에서도 해당사항이 없다. 몽골제국을 계승했다는 의지도 없었고, 칭기스칸의 후예가 건국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당시 진정한 몽골제국의 계승제국인 북원제국과 카자흐 칸국, 우즈베크 칸국, 티무르 제국, 무굴제국, 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서로 완전히 같은 동류(同類)로 여겼으나, 북원제국은 준가르 제국과 오이라트 제국에게만큼은 이질적인 이민족으로 취급했다.


세계 군사사적으로 볼 때, 중앙아시아의 준가르 제국은 중국 대청(大淸)제국과 마지막 대규모 패권 경쟁을 벌인 세계 역사상 마지막 유목제국이었다. 준가르 제국군은 전쟁마(馬)를 타고 화승총, 그리고 대포까지 활용하는 기병 돌격과 강철 무기, 화력 무기를 모두 병용(竝用)하는 대단히 체계적인 무기체계를 갖추었고, 이러한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몽골계 준가르군은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튀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전역에 수차례 원정을 감행하여 중앙아시아 패권을 장악했다. 그 결과 17~18세기 초 키르기즈 지역은 이미 준가르 칸국의 영향권 아래 포함되었으며, 중앙아시아의 다른 유목국가들처럼 키르기즈 부족(오늘날 키르기스스탄의 건국세력)은 항상 몽골계 준가르군의 침략과 간섭에 시달렸다.


키르기즈 측 자료와 사료에 따르면, 1600년대에는 서몽골계 준가르 제국 기병이 키르기즈 스텝까지 내려와 약탈과 점령을 행했다. 실제로 세계사적 기록에서도 1600년대에 몽골계 준가르 제국이 중앙아시아 키르기즈를 침략했다고 전한다. 예를 들어 “1600년대에 몽골(물론 이 시대의 서몽골계 즉 준가르 제국)이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들을 침략, 정복”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준가르 제국의 패권도 잠시, 1700년대 중기에는 결국 대청제국의 폭력적인 정복자인 건륭대제가 준가르 제국을 정복하고 그 군사적 패권을 중앙아시아 일대로 확장하여,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 역시 대청제국의 간섭 대상으로 강제 편입됐다.


제4대 강희대제 (康熙帝): 1600년대 말기, 대청제국의 강희대제는 친히 팔기군들을 이끌고 준가르 제국의 강력한 군사적 통솔자였던 '가르단(Galdan) 칸'과 여러 차례 큰 대규모 전쟁(예: 1690년 울란부통 전투, 1696년 자오모도 전투) 등을 벌여 승전하고 준가르 제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준가르 제국을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다.


제6대 건륭대제 (乾隆帝): 1700년대 중기, 준가르 제국이 잦은 내전과 군부 쿠데타로 분열한 틈을 타 건륭대제는 1755년 대규모 기병대를 파견하여 중앙아시아의 수도를 완전히 점령하고 준가르 제국을 정복했다. 이후 준가르 제국군들의 군사 반란이 발발자, 건륭대제는 이들을 완전히 군사적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멸족에 가까운 대규모 학살을 명령하여 준가르 제국은 세계의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1755년~1758년)


이로써 1600년대에 최정점을 달렸던 서몽골계 준가르 제국의 키르기즈 침략은, 이어지는 1700년대의 대청제국vs준가르 제국vs러시아 제국 간의 군사적 전쟁, 경쟁 속에서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 역시 준가르 제국과 운명을 함께했다.


3. 키르기즈 침략사에 대한 군사패권적, 세계사적 고찰


세계 초강대국인 거란제국과 준가르 제국의 중앙아시아 침략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된다. 거란제국은 중세 아시아의 군사 패권국이었고, 준가르 제국은 근세 중앙아시아의 최강 유목 패권제국이었으므로, 이들의 키르기즈 침략은 대(大)제국들의 지역 정복사와 궤를 같이 한다. 거란제국은 세계 정복자 칭기즈칸의 세계 정복 이전 몽골대초원과 만주,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와 중국 북부를 지배했고, 오이라트계 대제국인 준가르 제국은 칭기즈칸의 세계 패권 이후 먼 미래 훗날의 몽골계가 또 다시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것이다.


두 제국 모두 그들 시대의 군사 정복사에서 세계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장을 차지하며, 거란제국과 준가르 제국의 키르기즈 침략 역시 각각 동유라시아 대륙, 중앙아시아 대륙 정복사 중 하나의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거란제국은 당대 유라시아 실크로드 동단을 통제했고, 서몽골계 준가르 제국은 대청제국, 러시아 제국과 대등하게 전쟁할 정도의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따라서 키르기즈에 대한 침략도 세계 군사패권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대사건으로 이해된다.


세계 패권사적 관점에서,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는 북으로는 세계 초강대국 거란제국, 중앙아시아의 최강자 준가르 제국, 남으로는 송나라, 서하 제국, 둔황, 이슬람 왕조 등 여러 강대국의 경계에 위치했다. 9~12세기에는 송나라, 당제국, 거란제국의 패권적 영향력 하에서, 17~18세기에는 준가르 제국, 대청제국, 러시아 제국 사이에서 대단히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처럼 세계 질서의 변동기마다 키르기즈는 주변 제국들의 힘 겨루기 무대가 되었다. 전쟁사적으로 살펴보면, 키르기즈를 침략한 거란제국과 준가르 제국은 각기 다른 시대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대표한다.


또한, 거란제국의 중앙아시아 키르기즈 침략은 몽골계 기병 돌격과 군인 부족 연맹과 전통적인 유목 군인, 정치 체계의 일환으로, 준가르 제국의 중앙아시아 키르기즈 침략은 몽골식 기병 돌격과 화포와 신식 무기들로 중무장한 유목 중갑기병대의 공격으로 특징지어진다.


군사패권사적 결론으로, 거란제국과 준가르 제국은 각각 자기 시대의 군사적 패권전략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즈를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이 시대 전쟁사에서 키르기즈의 운명은 유라시아 정복사에서 한 축(軸)이 되었고, 이러한 시대들을 대표하는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대영웅서사시인 ‘마나스’ 서사시는 그 속에서 키르기즈와 그들을 대표하는 전쟁 영웅인 마나스가 거란제국의 침략에 저항하고 키르기즈족을 통합하는 서사로 기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거란제국과 준가르 제국의 침략은 단순한 중앙아시아 정복사라는 중앙아시아사를 넘어, 동북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전부 다 아울러 포함한 광범위한 세계 군사정복사의 일부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참고문헌: 본고는 키르기즈 역사를 다룬 여러 세계사적 자료들과 ‘마나스’ 서사시에 대한 설명 등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여기에는 원사와 집사, 마나스 등의 사료가 기술한 대당제국, 거란제국, 준가르 제국의 세계사적 군사 위상과 관련된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김호동, 이주엽, 임용한 등 한국, 국제적으로 대표적인 몽골제국사 석학들의 연구도 참고하여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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