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상 군인들이 통치한 군국주의 병영제국들

세계사의 군인들이 통치한 군인정권, 병영제국들

by 전쟁의 세계사


세계사의 군국주의로 군인들이 제국을 통치한 병영 제국들 심층 분석한다.

우선 본격적인 나열에 앞서 군사 정권과 병영 제국의 정의부터 설명하겠다.


군사 정권(Military Regime/Stratocracy): 군부가 국가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법률이나 헌법보다 군의 명령체계가 우선시되는 형태의 국가(제국)이다.


병영 국가(Garrison State): 국가의 모든 사회, 경제적 자원이 전쟁 수행을 위해 조직된 국가를 의미한다.




제1부. 세계 최강의 군인 패권제국 대원제국(大元帝國)


세계 최강군 대몽골제국군의 세계 정복 군대 막사 게르 군견.jpg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 - 야율초재(그러나 세계 최강의 군인 패권제국 대원제국은 '몽골제일주의'를 실시하며 철저한 군사 통치를 감행했다.)


천호제(Mingghan): 군대-제국 일치 체제


세계 역사상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대몽골제국의 힘은 '천호제'에서 나온다.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정복자인 칭기스칸은 세계 모든 유목민을 십진법(10호, 100호, 1000호) 단위의 굉장히 철두철미하고 체계적인 기병 군대 조직으로 재편했다. 이는 1년 365일 내내 전시체제였던 세계 최강의 군인정권이자 병영제국 시스템이었다.


<군인 통치 체제>


군사 통치 체제: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천호제(Mingghan)'의 세계 최강 군대 조직 체계로 인해, 제국의 모든 남성은 군인이었으며, 가축(군마, 군견, 검독수리와 매, 양)들은 군용이자 정복 군수 물자였다.


케셰크(Kheshig): 대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페르시아의 세계 역사가인 라시드 앗 딘이 기술한 『집사』에 따르면, 칭기스칸의 세계 최정예 친위군단인 '케셰크'는 세계 최정예 경호군단을 초월해, 세계 최강 제국의 뛰어난 군 장교 훈련소이자, 황제의 군령을 집행하는 실질적인 군사 정부였다.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 조직이 곧 통치 기구였기에 군사 행동이 곧 제국 통치였기 때문이다. 대칸의 친위군단이자 제국의 세계 최정예 사관학교 역할을 한 군대 조직인 케셰크는 세계 최강 제국의 핵심 정치를 결정했다.


세계 최강의 군인 패권제국 대원제국(Yuan Dynasty): 세계 정복자 칭기즈칸과 그의 군인 계승자들(오고타이 장군, 차가타이 장군, 바투 장군, 쿠빌라이 장군, 훌라구 장군, 귀유크 장군, 몽케 장군 등등)들은 아바스 제국, 호라즘 제국,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 송나라, 금나라, 키예프 대공국, 헝가리, 폴란드, 아프가니스탄, 유럽, 조지아, 고려, 중앙아시아 세계 전역, 동남아시아 미얀마 등등등을 정복하며 세계 정복하여 세계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정복했다.


쿠빌라이 대칸은 중국 대륙을 정복 및 식민지화하며 중국식 연호를 채택하며 '대원제국(大元帝國)'을 시작했다. 이는 몽골-튀르크 제국식 중앙아시아 북방의 유목 군사 제국과 중국식 통치체제를 융합하려 한 시도였으나, 여전히 대원제국은 군인 귀족(몽골인)이 세계 최상위 계급으로 군림하는 군인 우위 사회로 군인정권, 병영제국이었다. 그렇기에 대원제국은 제국기 내내 과거제도를 단 한 번이라도 실시하긴커녕 과거제도를 완벽하게 탄압하고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세계 군사 패권의 제국화:


당시 중세시대, 대원제국은 전 세계의 식민제국이자 종주국으로서, 몽골제국의 세계 최강 기병대의 기동력에 문명제국의 통치력을 결합한 세계 패권 제국이었다.


『원사』 병지에 따르면, 대원제국군은 몽골제국군(세계 최강 기병대인 케셰크), 탐마적군(특수부대), 한군(북중국군), 신부군(남송군)으로 군대를 완전히 체계적으로 조직화하여 통수권을 황제에게 집중시켰다.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대원제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앞세워 역참제(Jam)를 통해 동서양을 하나로 정복했다. 이는 단순한 세계 정복을 초월해, 압도적인 세계 군사 패권으로 세계 대무역로를 운용한 세계 최초의 시작이자 '세계사(世界史)'의 진정한 시작이다.


세계 군사적 잔재: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정복전에서 사용된 수많은 기병전술, 기동전술, 파괴전술, 초토화 전술, 전격전술, 포위전술, 심리전술, 정보전술, 첩보전술 등등등은 현대 군사학의 교과서가 되어 러시아과 러시아의 군인들이 필수적으로 훈련하는 핵심 훈련 지침이기도 하다.




제2부.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


"나는 세계 정복자 칭기즈칸의 사위(구르겐)이자, 티무르 제국의 검이다."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군인 후예 티무르:


'아미르(Amir)'는 총사령관, 총관을 뜻하며, 몽골제국의 세계 패권 하에서는 군사 지휘관을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티무르는 칭기스칸의 직계 혈통(황금씨족)은 아니었지만 몽골제국의 군인 귀족 무가(武家)인 바를라스(Барулас)부 출신이었고, 더 나아가 칭기스칸계의 장군 귀족 무가(武家)인 보르지긴(황금씨족)가의 공주와 혼인하여 '구르카니(부마, 사위)'라는 칭호를 획득, 몽골제국의 공식 군인 계승자임을 군사적으로 증명했기에 '칸(Khan)'이 아니지만 '몽골제국의 아미르(대장군)'로 군림하여 병영제국인 티무르 제국에서 군인정권을 휘두를 수 있었다.


배경: 14세기 중반,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분열제국인 차가타이 칸국이 분열되며 중앙아시아에 군사 권력 공백이 발생했다.


계기: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군인 귀족 무가(武家)인 바를라스(Barlas) 부족 출신의 군인 티무르(Timur)가 등장했다. 그는 칭기즈칸의 직계 혈통이 아니었지만 대몽골제국의 군인 귀족 무가였던 바를라스 명문가 출신이었기에 '칸(Khan)' 대신 군사령관을 뜻하는 '아미르(Amir)' 칭호를 사용하며 실질적인 군사 통치자로 군림했다.


군사 독재: 티무르 제국은 오로지 '아미르 티무르 칸' 개인의 군사적 카리스마와 군사적 능력에 의해 통솔되었다. 그는 즉위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정복전쟁만을 했으며, 수도 사마르칸트는 티무르가 정복한 전 세계의 수많은 전리품들과 기술자들로 채워진 대규모 군사 병영 수도로 군림했다.


칭기스칸을 따라서 기동하는 병영제국으로 세계 정복: 티무르는 최강의 기동 군단을 이끌고 전 세계를 정복, 파괴하고 약탈하는 세계군사 원정을 끊임없이 감행했다. 칭기스칸의 후예인 티무르 제국은 자신의 라이벌인 킵차크칸국과 세계 패권 전쟁을 해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 델리 술탄국, 오스만 제국(앙카라 전투, 1402년)까지도 차례로 정복했다. 이렇듯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은 당시 세계 초강대국들을 모두 무릎 꿇린 순수 세계 최강대국이자 세계 군사 패권국이었다. 티무르 제국은 군사적 수도 사마르칸트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게 군림시켰지만, 티무르 본인은 평생 정복전쟁터만을 누빈 군인 대칸이었다. 그의 제국은 행정 관료가 아니라 군인들이 실권을 장악한 전형적인 군사 정권, 병영제국이었다.


<군인 통치 체제>


병영 국가적 성격: 티무르는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후예라는 호칭답게 평생을 세계 원정길 위에서만 보냈다.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는 세계의 군사 중심이었으나, 티무르 제국의 본질은 이동하는 군영(군사 막사)에 있었기에 사마르칸트는 곧 몽골제국의 세계 정복 군사 막사인 게르(유르트)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전형적인 중앙아시아의 유목 기병제국의 세계 최강점이다.


전술적 혁신: 티무르 제국의 군대는 세계 최강 몽골제국과 튀르크 제국의 철갑기병대와 경기병대, 페르시아의 보병대, 그리고 인도의 전쟁 코끼리 부대까지 결합한 무적의 군대였다. 오스만 제국과의 앙카라 전투(1402)에서 보여준 군사적 천재성은 그가 칭기스칸 이후 세계 최강의 정복자임을 입증했다.


티무르 제국의 기병대는 몽골제국군처럼 '치고 빠지는' 전술과 중무장 철갑기병대를 활용한 정면 돌파 모두에 능했다. 이는 오스만 제국과의 '앙카라 전투(1402)'에서 바예지트 1세를 생포하며 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의 군대가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입증했다. 티무르 군대는 몽골제국군의 세계 최강 기동성과 정주 문명제국의 공성 기술을 완벽하게 결합했던 것이다.


철혈 정치: 칭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철저히 파괴했던 철혈 통치, 파괴 통치를 그의 후손인 티무르도 똑같이 따라했는데, 그 역시도 저항하는 제국들은 정복한 후 철저히 파괴하고 해골 탑을 쌓는 등의 심리전을 통해 통치하는 등 칭기스칸과 완전히 똑같이 군인정권식 철혈 정치를 펼쳤다.


무굴제국: 티무르 제국의 세계 패권은 그의 사후 유지되진 못했으나, 훗날 그의 후손인 바부르 칸이 아프가니스탄 전역과 인도 대륙을 정복한 후 세운 무굴 제국(페르시아어로 '몽골'이란 뜻)이 몽골제국과 티무르 제국을 계승했다. 비록 무굴제국은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이나 대몽골제국을 계승해 세계 패권국가가 된 티무르 제국처럼 세계를 정복하거나 세계를 지배하지는 못했으나 인도를 강력하게 정복하면서 대몽골제국과 티무르 제국보다 오랫동안 존속했다.


즉, 대몽골제국과 티무르 제국은 세계 최강대국, 세계 패권제국으로 세계 위에 군림했으나 존속 기간이 100년인 반면에, 무굴제국은 비록 세계 최강대국, 세계 패권제국이 되지는 못했지만 존속 기간이 엄청 길었다.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티무르를 국가의 영웅이자 국부로 추앙하고 있다. 참고로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주력 민족인 우즈베크족이라는 국명, 민족명 이름 자체가 세계 정복자인 칭기스칸의 후예인 '우즈베크 칸'을 섬기는 백성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참고 문헌: 저스틴 마로지 『티무르』, 이란/우즈베키스탄 사학계 연구]




제3부. 일본의 막부(군부, 幕府) 정권: 가마쿠라, 무로마치, 에도


"세계사에서 가장 유명한 군인정권이자 병영국가의 표본, 중세 일본 막부(군부) 정권."


막부(군부): 막부라는 명칭 자체는 '군부'라는 뜻과 동일하다. 여기서 군부란 '군부 쿠데타'를 지칭할 때 그 군부가 맞다. 본래 '장군의 진영'을 뜻하는 군사용어였으나, 일본은 고대시대부터 근세시대까지 사실상 역사 내내 군인 계급(무사 계급)이 국가 전역을 정복, 통치하면서 정부를 의미하게 되었다.


군사 정부: 가마쿠라(이후 에도)의 막부(군부)는 군사, 행정, 입법, 사법의 모든 실권들을 차지했었고 교토의 천황 정부는 사실상 군부의 통치를 받는 체제였다.


정의: 고대 헤이안 시대 말기, 군인 귀족들의 폭주와 지방 호족들의 군사 무장화로 '사무라이' 계급이 부상했하면서 군부(막부) 정권이 시작된다.


전개 과정: 미나모토노 일족(겐지)과 타이라노 일족(헤이케)의 거대 내전인 겐페이 전쟁(1180~1185)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대승리를 거둔 후, 천황으로부터 정이대장군(세이이타이쇼군) 직위를 하사받아 가마쿠라에 독자적인 군사 정부를 수립했다.


<군인 통치 체제>


중세 봉건제: 쇼군(정이대장군)과 고케닌(어가인) 사이의 '절대 충성'과 '영토'를 매개로 한 주종 관계가 핵심이었다.


가마쿠라 군부(1192~1333): 일본 역사상 최초의 군인(무사) 정권이다. 세계 최강의 패권제국인 대원제국의 정복자들이 일본을 침략하여 일본이 초토화된 것이 계기가 되어 군인(무사)들의 분노와 막대한 전쟁비 지출로 결국 폭발하여 멸망했다.무로마치 막부 초대 정이대장군


무로마치 군부(1336~1573): 아시카가 다카우지 장군이 무로마치 군부 초대 정이대장군으로 등극하며 수립했으나, 지방 영주인 '슈고 다이묘'들의 군사력이 막강해져 통제력이 약화됐고, 이에 따라 수백 년간의 거대 전쟁 시대인 센고쿠 시대(전국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에도 군부(1603~1867): 도쿠가와 이에야스 장군이 세키가하라 대전투 승리 후 수립된 군부 정권이다. 중앙의 막부(군부)가 지방의 번(대영지)들을 통솔하는 체제였기에 '막번체제'라는 정교한 군인 행정 일치 관료제를 통해 260년간 철저한 군인정권을 유지했다. 군인(무사)가 관료화된 시대다.


이때 등장한 사무라이 정신(무사도)은 일본 사회 규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막부 체제는 일본 특유의 '상징적 권위(천황)'와 '실질적 권력(총리)' 분리 구조의 원형이 되었다.




제4장. 대청제국: 세계 최강의 기병대 팔기군이 황제를 선출하고 제국을 통치하는 군사 제국


팔기제도(八旗軍, Jakūn Gūsa): 기병대 국가의 완성, 군사-행정 일치 체제


대청제국의 대정복자인 누르하치는 군사 제도 '팔기제'로 세계 최강의 기병대인 팔기군(八旗軍) 조직했다. 팔기군은 8개의 강력한 군단을 위시한 기병대 조직으로서, 모든 만주족(여진족)과 만주족 기병군단이 정복한 수많은 중앙아시아 이민족 군단들과 한족 군단, 조선인은 8개의 깃발(Banner) 아래 소속된 다민족 군인었다. 모든 만주족은 8개의 깃발 아래 소속되었다.


만주팔기 외에도 중앙아시아 몽골팔기, 한군팔기를 조직하여 다양한 제국들의 군사적 최강점을 융합했다. 게다가 대청제국군은 명나라의 대포 기술까지도 흡수하여 홍이포 등을 운용하였다. 대청제국이 세계 최강의 기병 돌격력을 앞세워 중앙아시아의 패권국가인 준가르 제국(중앙아시아의 마지막 유목 대제국)과의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고 준가르 제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신장 위구르, 티베트까지 영토를 정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군인 통치 체제>


정복 엘리트로서의 군인:


대청제국을 건국한 소수의 만주족(여진족)이 중국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막강한 기병 군인(軍人)'이 지배 계급으로서 특권을 행사하면서도,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팔기군은 제국 곳곳의 요충지에 주둔하며(주방), 현지 행정이 아닌 군사적 감시와 통제를 담당하는 '병영 제국'의 막강함을 행사했는데, 이런 군사적 감시 통제 체제는 오늘날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에서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군인의 황제 선출권: 칸(황제)의 계승은 유력한 기주(Banner Lord, 팔기군의 각 군기의 총사령관)들의 군사 합의(議政王大臣會議)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는 황제가 절대적인 혈통적 권위뿐만 아니라, 최강의 군사 조직인 기병대 지휘관들의 지지를 받아야 됨을 뜻했다.


[참고 문헌: 마크 엘리엇 『만주족의 길』, 김태유, 임용한]




제4부. 고려 무신정권(Military Regime of Goryeo)


"고대시대~근세시대 역사상 한국의 유일한 군인정권이다."


배경: 고려 중기, 문벌(여기서 문벌이란 문관의 문이 아니라 사병 군단을 소유한 귀족 가'문'을 뜻함) 귀족 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었다. 군인(무신)들은 수많은 전쟁터들에서 전공을 세웠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군직에 승진하지 못했으며 이에 따라 분노가 폭주하였고 관료(문관)들의 모욕으로 인해 분노가 폭발하였다. 대표적 예: 수염을 태우는 모욕 등.


시작점: 당시 군왕이던 의종의 행차 중 정중부 장군, 이의방 장군 등 군인들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문관들을 학살하고 군왕을 폐위시킨 보현원 사건(1170년)이 신호탄이다.


<군인 통치 체제>


중방(重房)과 교정도감: 초기에는 군인들의 군정 합의체인 중방이 군정을 운영했으나, 최충헌 장군의 장기 집권 이후 교정도감이라는 독자적인 군사 통치 기구를 통해 군인들이 완전히 국가를 통치했다.


사병 조직: 도방(경호 부대), 삼별초(특수 부대) 등 정권 유지를 위한 막강한 대규모 사병 조직들의 군사 권력이 정규군보다 우월해졌다.


혼란기: 이의방 장군 -> 정중부 장군 -> 경대승 장군 -> 이의민 장군으로 이어지는 서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내전을 일으키고, 암살하고, 죽고 죽이는 군사 권력 전쟁이 극심했다.


최씨 무신정권(1196~1258): 최충헌 장군이 군사 권력을 잡으며 아주 잠시 안정기에 진입하는 듯했으나, 4대 60여 년간 군인 세습 통치했다.


게다가 이 시대 때 하필, 세계를 정복한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원정군들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고려의 군사 정부는 강화도로 피난하며 30년 항쟁을 이어갔지만(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대몽골제국의 침략에서 살아남는 것은 국가-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이에 고려 정부는 종교적 기적을 통해 국가적 대재앙에서 생존하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팔만대장경을 조판하기에 이르렀다), 끝끝내 고려는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에게 정복당하면서 세계 패권제국인 대원제국이 고려를 100년간 식민지배한 '원 간섭기'가 시작된다.


군인정권기(무신정권기)는 군사 쿠데타, 내전, 암살 등등 하극상의 풍조가 만연했지만, 역설적으로 신분 해방 운동(만적의 난) 등 워낙 역동적인 시대였기도 해서 사회 변동의 에너지가 폭발한 시대이기도 했다.


군인정권의 종식:


최씨 군인정권이 무너지고, 세계 최강대국 대원제국군에게 항복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득세했다. 이에 따라 1270년 개경 환도가 이루어지며 군인정권(무신정권)은 공식적으로 종식되었고, 이에 반발한 특수부대인 삼별초가 제주도까지 남진하면서 끝까지 항전했으나 고려군에게 완전히 진압되었다.


참고 문헌: Edward J. Shultz, 《Generals and Scholars: Military Rule in Medieval Korea》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0); 《고려사(高麗史)》.




제5부. 고구려 연개소문 정권


"군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지 않으면, 대막리지가 대신 그 검을 쥔다."


배경: 7세기, 고구려는 당시 세계 패권국이었던 당제국(당나라)의 팽창주의에 직면해 있었다. 영류왕을 위시한 온건파 귀족들은 당과의 화친을 주장했으나, 연개소문 장군을 위시한 강경파 장군들은 이를 굴욕으로 여겼다.


계기: 642년, 제2차 고수전쟁의 영웅이었던 영류왕을 위시로 한 군벌 세력들이 연개소문을 제거하려 하자, 연개소문 장군이 선수를 쳐 군사 반란를 일으켜 영류왕과 대신 100여 명을 검으로 베어버리고 허수아비 군왕인 보장왕을 즉위시킨 후 자신이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실권을 모두 차지했다.


<군인 통치 체제>


대막리지(大莫離支): 연개소문 장군은 기존의 최고 관직인 대대로보다 상위 계급인 '대막리지'라는 전무후무한 직위를 창설해 그곳에 올라 군권과 정치 권력과 인사권을 모두 독점했다. 이는 완전한 군사 독재였다.


정복욕의 화신이라 할 정도로 평생을 전쟁터만을 누볐던 당 태종 이세민의 대규모 침공(고구려-당 전쟁)을 안시성 전투 등을 통해 막아내며 뛰어난 군사적 리더십을 증명했던 연개소문 장군은 철저한 강경 외교 노선을 견지했다.


이로 인해 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적 카리스마를 가진 군인 정치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단재 신채호는 그를 '4천 년 역사상 제일의 영웅'이라 칭송했으나, 김부식은 '군왕을 시해한 반란군 대장'으로 기록하는 등 평가는 엇갈린다.


게다가 666년 연개소문 장군이 사망하자, 그의 세 아들인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간에 군사 정치 권력 전쟁이 내전으로까지 치달으면서 장남인 연남생이 군대와 함께 당제국에 투항하며 고구려의 북방 국경 방어선이 완전히 당제국에게 넘어갔고, 결국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는 정복당하면서 멸망했다. 이는 강력한 1인 독재의 부작용(후계 리스크)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비록 연개소문 장군의 군사적 능력은 천재적인 수준이었으나 결국 연개소문 사후에 후계자들 간에 군사 정치 권력 전쟁으로 인해 고구려가 당제국에게 정복당했다는 점 때문에 연개소문 장군에 대한 평가는 천재적인 군사 정치가 vs 고구려 멸망의 주범 등 양날의 검이다.


참고 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




제6부. 맘루크 왕조(Mamluk Sultanate)


"노예로 팔려온 소년들이 술탄이 되어 제국을 다스리다."


배경: 이슬람 세계의 아이유브 왕조는 튀르크계 노예 용병인 '맘루크'에 군사력을 의존했다.


계기: 1250년, 제7차 십자군 전쟁 중 맘루크들이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을 살해하고 정권을 탈취했다.


<군인 통치 체제>


군사 과두정: 술탄은 세습되지 않고, 유력한 맘루크 장군들 사이의 합의나 무력 투쟁을 통해 선출되었다. 모든 지배층이 군인이자 전직 노예 출신이라는 독특한 체제였다.


이슬람의 마지막 생존자: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던 대몽골제국의 일개 장군인 키트부카 장군의 개인 소수부대가 북아프리카를 침략하면서 발발한 1260년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키트부카 장군의 오만함과 자만심으로 인해 당시 맘루크 제국에 모인 북아프리카 연합군을 정복하지 못했다. 그 이후 대몽골제국은 분열되면서 북아프리카를 정복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이 북아프리카의 맘루크 제국을 침략하며 초토화시키면서 결국 북아프리카 정복이라는 몽골제국의 숙원사업은 몽골계 티무르 제국이 완수시킨다.


십자군 축출: 바이바르스 술탄 등은 중동에 남아있던 십자군 국가들을 완전히 몰아냈다.


그 이후:


1517년, 화기(총, 화포) 도입을 거부하고 육군을 고집하던 맘루크 왕조는 대몽골제국의 식민지였다가 해방된 오스만 투르크에게 패배하여 멸망했다.


참고 문헌: James Waterson, 《The Knights of Islam: The Wars of the Mamluks》.




제7부. 프로이센 왕국(Kingdom of Prussia)


"다른 국가들은 군대를 소유하고 있지만, 프로이센은 군대가 국가를 소유하고 있다." - 미라보 백작


배경: 30년 전쟁으로 황폐화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은 생존을 위해 강력한 상비군이 필요했다.


계기: '병사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궁의 사치를 없애고 예산의 80% 이상을 군에 투입하여 국가 전체를 거대한 병영으로 개조했다.


<통치 체제>


사회적 군사화: 귀족(융커)은 장교가 되고, 농민은 병사가 되는 사회 구조가 정착되었다. 관료제 역시 군의 보급을 위해 발전했다.


칸토니스템(Kantonssystem): 지역 징병제를 통해 효율적인 병력 충원을 제도화했다.


프리드리히 대왕: 그는 물려받은 강인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 7년 전쟁을 치르며 프로이센을 유럽 5대 열강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이후:


프로이센의 상무정신은 훗날 독일 통일의 주축이 되었으며, 독일 제국과 나치 독일로 이어지는 독일 군사 문화의 원류가 되었다.


참고 문헌: Christopher Clark, 《Iron Kingdom: The Rise and Downfall of Prussia》 (Harvard Univ. Press, 2006).




제8부. 고대 스파르타(Sparta)


"이 방패를 들고 돌아오거나(승리), 아니면 방패 위에 실려 돌아와라(전사)."


배경: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형성된 스파르타는 피지배 계급인 '노비(헤일로타이)'의 수가 시민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약 7:1), 봉기를 억제하기 위해 시민 전체의 병졸화가 필요했다.


계기: 전설적인 입법가 리쿠르고스가 스파르타의 모든 제도를 병졸 중심으로 재편했다.


<통치 체제>


아고게(Agoge): 7세부터 시작되는 혹독한 군사 훈련 제도다. 모든 농민 남성은 평생을 병졸로 살아야 했다.


다이어키(Diarchy): 두 명의 임금님이 존재하되, 싸움 시에는 한 명이 수장으로 출발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고대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꺾고 그리스 패권을 장악했으나, 폐쇄적인 사회 구조와 시민 인구 감소로 결국 쇠퇴했다.


참고 문헌: Paul Cartledge, 《The Spartans》.




제9부. 로마 제국의 군인 황제 시대(Crisis of the Third Century)


"병사들을 부유하게 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신경 쓰지 마라."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계기: 서기 235년,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군에 의해 암살되면서 시작되었다.


<통치 체제>


50년간의 혼란: 마치 대원제국의 말기 때처럼 약 50년 동안 26명의 황제가 난립했으며 대부분이 군단장 출신으로 전임자를 살해하고 즉위했다.


병졸 황제: 원로원의 승인보다 군의 추대가 황제 옹립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출현하여 제국을 4분할 통치(사두정치)하고 전제 군주정을 확립하면서 혼란을 수습했다.


참고 문헌: Edward Gibbon,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총론>


위에 나열된 제국들은 세계 역사적으로 "군사력이 곧 정치적 정당성"이었던 대표적인 세계 제국들이다.


세계 패권제국 대원제국, 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 중앙아시아 유목 기병제국식 '전 군인-제국 일치화'를 통해 세계 최강 제국으로 군림했다.


중세 일본 막부, 고려 무신정권: 기존의 귀족 중심 질서에 반발하여 군인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독자적인 군사 행정부를 구성했다.


프로이센 왕국, 고대 스파르타: 국가 생존을 위해 시스템 전체를 병영화한 사례다.


고구려(연개소문 장군), 맘루크 왕조: 외세(세계 패권국)의 침략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를 하나로 통일할 군사 리더십이 필요했다.


이들 군사 정권들은 강력한 추진력과 국사력을 제공하여 세계를 제패했으나, 대부분 군사 권력 승계의 불안정성(군사력에 의한 강제 무력 찬탈 반복과 내전, 군사 쿠데타)과 군국주의, 제국주의, 병영제국화, 군인제국화, 권위주의 제국, 사회적 경직성이라는 공통적인 한계를 가지고 세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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