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제국들 중 최강의 제국 '티무르 제국'
<제1부.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정복자 '칭기스칸'의 후예, 바를라스부(Барулас) 출신 '티무르'>
중세시대 때,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대몽골제국은 12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전 세계를 정복하며,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군사적 패권과 대무역망을 구축하여 '세계 패권(팍스 몽골리카, Pax Mongolica)'을 구가했다.
그렇게 전성기를 지나 먼 훗날인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반이 되면, 세계를 지배하던 대몽골제국은 4개의 거대한 세계 제국인 '대울루스'들로 분열되었다. 중국 대륙과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식민 지배한 대원제국(원나라), 유럽과 러시아를 식민 지배한 킵차크 칸국(주치 울루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식민 지배한 차가타이 칸국, 그리고 중동과 서아시아, 오스만 제국(튀르키예 포함) 전역을 식민 지배한 일칸국, 1309년경 멸망했으나 아프가니스탄과 북인도와 서남아시아 전역을 식민 지배한 오고타이 칸국으로 전 세계로 분열되었다.
이러한 분열과 쇠퇴기에 접어들었을 때, 중앙아시아 트랜스옥시아나에서 등장한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후예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 1336년~1405년)'는 스스로를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계승자들 중 최강"이라 선포하며,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영광을 재건하고자 했다.
'아미르 티무르'는 대몽골제국의 장군 귀족 무가(武家)인 '바를라스(Барулас)'부 출신의 장군이었다. 그는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정복자인 칭기스칸의 '직계 후예'이자 '군사적 계승자', 그리고 '재건자(再建者)'라는 본인의 위치야말로 세계 최강의 전력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티무르는 자신의 가계를 몽골제국의 황금씨족인 보르지긴(ᠪᠣᠷᠵᠢᠭᠢᠨ) 무가(武家)도 강력하게 계승했다.
물론 아미르 티무르 본인은 확실한 몽골인이었으나, 부친이 아니라 모친이 보르지긴 출신이라는 점에서 혈통적 한계가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남성우월주의'가 강한 대몽골제국의 남성우월주의 사상에서는 오로지 부친이 황금씨족이어야만 '칸(ᠬᠠᠨ, Qan, Khān)'의 군사적 계승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가타이 칸국 출신의 몽골제국군 장군 티무르는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세계 정복자인 칭기스칸의 직계 후예인 황금씨족의 일원이 되기는 힘들었기에 '칸(ᠬᠠᠨ, Qan, Khān)'에 즉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티무르는 본인이 티무르 제국을 세운 '태조(太祖)'였음에도 불구하고, '칸(ᠬᠠᠨ, Qan, Khān)'보다 한 단계 아래의 군사 계급인 '아미르(Amir, 장군/사령관)'로서 군림했다. 그의 공식 명칭이 '아미르 티무르(장군 티무르)'인 요인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마치 중세 일본 막부의 쇼군(정이대장군)처럼, 형식적인 칸을 즉위시켰을 뿐 모든 군사적 실권과 군대 통치권은 티무르가 장악하고 있었기에 사실상 그는 '칸(ᠬᠠᠨ, Qan, Khān)'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수많은 세계 사학계에서는 그를 '티무르 칸' 혹은 '아미르 티무르 칸'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어쨌든 몽골인인 티무르는 칭기스칸의 직계 혈통(황금씨족)이 아니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몽골제국 군인들의 절대적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반드시 '황금씨족'의 권위가 필요했다. 따라서 그는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정복자인 칭기스칸계 장군 귀족 무가(武家)의 공주인 '사라이'를 부인으로 맞아들임으로써 혈연적 연결고리를 형성하였고,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정복자인 칭기스칸계 장군 귀족 무가(武家)의 사위를 뜻하는 '구레겐(Guregen, 부마/사위)' 칭호를 획득하여 사실상 황금씨족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칭기스칸의 직계 후예라는 정통성을 확보한 그는 차가타이계 장군 귀족 무가(武家)의 허수아비 칸(소유르가트미시 등)을 즉위시켜 형식적 명분을 세우고, 본인은 '아미르(장군)'로서 실질적인 군대 통치권을 행사하는 이중 통치 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군사적 권위를 빌려 세계 패권을 행사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였다.
<제2부.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중동, 서아시아 정복전쟁사>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1370년~1507년)은 아미르 티무르 장군의 군사적 집권기(1370년~1405년)부터 광대한 대정복전들을 벌였다. 티무르는 생애 내내 오로지 정복 전쟁에 몰두했던 광기의 정복자이자 침략자, 대학살자, 식민주의 패권자 그 자체였다.
티무르 제국의 역사는 곧 정복 전쟁의 역사다. 1370년대부터 1394년까지 사마르칸트를 기점으로 발흐르, 헤라트(1380년)를 비롯해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등등 호라산(Khorasan) 동부와 중동 전역을 완전히 정복했다. 1401년에는 이미 벌써 이라크 제국의 바그다드까지 함락하며, 수백 년간 오스만 제국, 중동, 서아시아를 식민 지배했던 몽골제국의 일칸국(Il-Khanate)의 중동 패권 식민지배를 종식시켰다. 티무르 제국은 옛날 세계 최강의 패권국이었던 대몽골제국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현하기 위해 같은 몽골제국의 세계에서 막강한 후계 제국들이었던 킵차크 칸국 및 일칸국의 군사적 잔존 세력과도 치열한 패권 전쟁을 벌였다.
게다가 동쪽으로는 1398년 9월 겨울, 인더스강을 건너 12월에 아프가니스탄과 인도를 지배하던 델리 술탄국을 침공했다. 무굴 제국의 후기 학자들이 "세계 정복자였던 칭기스칸을 동경하여 세계 정복을 꿈꾸던 티무르"라고 묘사할 만큼, 그는 델리를 파괴적으로 유린했다. 티무르 제국군은 당시 세계 최강의 몽골 기병대를 동원하여 델리 성벽 근교까지 침략하여 '델리 전투(1398년)'에서 '술탄 나시르 우드 딘 마흐무드 샤 투글루크'의 군대를 대량 학살하여 아프가니스탄과 인도 대륙 전역을 정복하고, 수도 델리를 폐허로 만들어 1세기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면서 세계적 악명을 얻었다.
이때 "세계의 파괴자(World Eater)"라 불린 티무르의 군대는 델리 시민들을 학살하여 해골 탑을 쌓는 등 처절한 공포를 심어주었다. 이후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델리의 숙련된 수많은 금속무기 기술자들과 수공업자들을 사마르칸트로 압송하고 인도의 막대한 부를 약탈하여 제국의 발전을 도모했다.
<제3부.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북아프리카 맘루크 제국 정복전쟁>
티무르 제국은 14세기 말~15세기 초에 걸쳐 시리아 전역을 침략하여 맘루크 술탄국을 초토화시켰으며, 알레포·다마스쿠스를 정복하는 등 시리아·레반트 전역을 정복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군사 기술자들을 전쟁 포로로 삼아 사마르칸트로 끌고 가기도 했다.
티무르 제국은 인도 원정의 성공에 이어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티무르 제국은 1398년, 인도의 델리 술탄국을 침략하여 델리를 철저히 약탈하고 파괴했으며 또한, 세계 최강의 무적의 군단이었던 대몽골제국이 보낸 키트부카 장군의 일개 부대의 침략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맘루크 제국(아인 잘루트 전투)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 맘루크 제국을 침략한 후 알레포와 다마스쿠스를 점령하며 초토화시키면서 대몽골제국의 맘루크 제국 정복을 완수했다.
티무르 제국은 정복지에서 적군과 적장들의 목을 전부 다 베어 해골 탑을 쌓는 공포 정치를 통해 적군대들의 저항 의지를 완전히 말살했다. 이는 심리전을 극대화했던 칭기스칸의 세계 정복 전술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었다.
<제4부. 대몽골제국의 계승자들 간의 '아미르 티무르' 대 '토크테미쉬 칸'의 세계 패권 전쟁>
세계 최강의 정복자 칭기스칸의 후예인 티무르는 킵차크칸국의 장군 귀족 무가(武家)인 바를라스부의 군대장인 티무르의 강력한 지원으로 인해 킵차크칸국의 칸으로 즉위하는 데 토크테미쉬(Tokhtamysh) 칸이 배신을 때리자, 1391년과 1395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다. 세계 최대의 끝없는 대초원(스텝) 지대에서 그것도 세계 최강의 무적 군대였던 몽골제국군들끼리의 군사적 내전이었기에 그야말로 세계 역사상 최강의 기동전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전쟁이었다. 이 군사적 내전에서 티무르가 이끄는 몽골군은 '테레크 강 전투'에서 킵차크 칸국이 이끄는 몽골군을 괴멸시키고 수도 사라이를 파괴했다.
이 전쟁의 승리로 인해 킵차크 칸국은 재기 불능 상태에 빠졌으며, 240년간 러시아와 유럽을 식민지배한 킵차크칸국의 식민 지배력이 약화되는 결과로 귀결되면서 그동안 계속 킵차크칸국에게 무장반란을 일으켰다가 학살만 당하던 러시아(모스크바 대공국)가 몽골계 킵차크칸국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될 수 있는 세계사적 기회가 발생한 것이다.
1395년 티무르가 이끄는 몽골군이 중앙아시아(사마르칸트 등등) 전역과 쿠르강(오늘날 러시아) 전투에서 킵차크칸국(Golden Horde)의 칸인 토크테미쉬 칸이 이끄는 몽골군과의 패권 전쟁(1391년~1395년)에서 완전히 이기면서 유럽, 중앙아시아 지배권을 가지고 있던 킵차크칸국으로부터 그 패권을 이양(移讓)받았다.
이렇듯 티무르는 1395년 유럽과 러시아 전역을 식민지배 중인 킵차크칸국의 토크테미쉬 토칸과의 패권 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며 대초원지대들을 장악했으며, 1401년에는 시리아에서 맘루크 술탄국을 대량 학살한 후 알레포, 다마스쿠스를 정복하고 맘루크 제국의 뛰어난 군사적 금속 기술자들을 모두 전쟁포로로 끌고 와 티무르 제국의 군사적 수도인 사마르칸트로 이송시켰다.
<제5부.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오스만 제국 정복전쟁사>
티무르는 칭기스칸의 세계 정복을 계승 중이었기에 언젠가는 북동아시아까지도 정복할 예정이었기에 중국 명나라와는 외교적 무역 및 긴장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티무르는 서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를 정복 중이었기에 명나라와 세계 무역을 활발히 진행했고, 명나라의 군인이자 사신 마환(馬歡) 장군과 천정(陳貞) 등은 정기적으로 중앙아시아의 티무르 제국의 위대한 군사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를 방문하며 세계적인 대무역을 이어갔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바예지트 1세는 '번개(Yildirim) 술탄'이라 유럽 전역에 엄청난 위협을 가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특히 당시 유럽 최강의 군대였던 유럽 기사단을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전멸시킬 정도로 막강한 오스만 제국의 군사력은 이미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의 모든 유럽 국가들을 한참 압도했다.
몽골계 티무르 제국군은 앙카라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의 수원(水源)을 차단하고, 오스만 제국군 내의 몽골계 타타르 기병대들을 회유하여 배신하게 만들었으며(오스만 튀르크 제국도 나름 몽골제국을 계승한 제국에 속하긴 한다. 물론 오스만 제국이 초기까지 몽골제국의 분열제국인 일칸국의 식민지배를 받았기에 몽골제국의 식민지에 속하긴 했지만 일칸국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후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군사적 지배층에 칭기스칸의 황금씨족이 군림하였고 오스만 제국의 군대 내 최강 기병대는 역시나 몽골계 기병군대인 몽골계 타타르 기병대들이 용병처럼 맹활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몽골제국을 가장 강력하게 계승한 몽골계 티무르 제국이 회유를 하자 결국 몽골계 타타르 기병대들도 자신의 진정한 아군인 티무르 제국의 군대로 가담하게 된 것), 맘루크 제국을 정복한 후 수탈한 전투 코끼리 부대들까지도 동원, 투입해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대공세에 계속해서 저항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 방진'을 1402년 7월 앙카라에서 완전히 무너뜨렸다.
티무르는 이 앙카라 전투에서 서아시아의 물길을 틀어 오스만 제국의 급수를 완전히 차단하는 군사 작전을 활용했고, 몽골계 기병대와 기마궁병대의 협동공격으로 오스만 군대를 포위학살했다. 결과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패배와 내분(1402년~1413년 오스만 내분)이 초래되었으며, 이는 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힘의 균형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서유럽, 남유럽을 비롯한 유럽 전역을 완전히 공포에 떨게 했던 오스만 제국을 침략하여 반식민지로 삼은 티무르가 오스만 제국의 바예지트 1세 술탄을 생포함으로써, 티무르는 "유럽의 공포(오스만)를 꺾은 진정한 세계의 지배자"라는 명성까지 얻었던 것이다.
그렇게 1402년에 티무르 제국은 앙카라를 함락시킨 후 오스만 제국을 정복하여 반식민지로 삼으면서 티무르의 정복 전쟁은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니라, 당시 세계의 주요 군사력 초강대국들을 차례로 정복하며 '세계 최강 제국'의 지위를 입증다.
이처럼 티무르는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를 군사적 거점을 삼아, 서쪽으로는 페르시아 대평원과 코흐리스탄,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조지아 등을 차례로 정복했으며, 더 나아가 북아프리카의 맘루크 제국을 침략하여 초토화 시킨 후에 오스만 제국까지 침략하여 티무르 제국의 반식민지로 삼았다. 게다가 남쪽으로는 인도까지 정복하면서 그야말로 '세계 패권국'으로 군림했다.
<제6부.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무적의 군사제도>
몽골계 티무르 제국 군대의 핵심은 여전히 몽골제국식 기병대였다. 이들은 칭기스칸의 대몽골제국의 세계 패권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 150km 이상을 주파하는 세계 역사상 1위의 기동력과 '치고 빠지는(Hit and Run)' 전술을 구사했다. 게다가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공성전과 산악전에도 대비해, 페르시아와 서아시아, 중동를 정복하면서 그 기술자들을 대거 공병대(工兵隊)로 정복전쟁에 징병했다. 나프타(화염) 투척기, 거대 투석기, 그리고 인도 원정 후 도입한 전투 코끼리 부대는 몽골제국군의 세계 최강의 기동력에 '화력'까지도 더했다. 이는 칭기스칸의 군대가 보여준 세계 최강의 기동력+알렉산더 대왕의 전문적인 공병 능력을 합친, 당시 세계 군사 역사상 가장 최강의 연합군대였다.
티무르는 칭기스칸이 확립한 세계 최강의 군사제도인 만호제(십진법=아르반, 자르군, 투멘) 체계를 유지했다. 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지휘 체계의 명확성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명령 전달력의 신속력을 자랑했다. 특히 티무르는 선조인 칭기스칸처럼 군인 개개인의 약탈을 엄격히 통제하고, 모든 전리품을 중앙에서 배분하는 방식을 통해 군대의 사유화를 막고 황제(티무르)에 대한 절대 충성을 유도했다.
이처럼 티무르 제국의 세계 정복사와 군사 제도는 대몽골제국을 이어받은 세계 최강의 기동력 높은 기병전(mongol nomadic warfare)과 초토화 전술이 결합된 전력을 보인다. 게다가 티무르는 칭기스칸의 후예답게 정복대상을 정복한 후 철저한 대량 학살과 침탈, 강탈, 약탈, 수탈 등을 통해 정복지를 완전히 초토화시켰고, 필요시 기술자(인력)과 자원까지도 모조리 흡수하여 티무르 제국의 세계 패권에 활용했다.
티무르의 군사 전략은 주로 기동력과 기병 돌격, 충격 전술, 그리고 테러 작전에 기반하였다. 대몽골제국을 계승하여 기병대를 주력군단으로 삼았고, 필요하면 신속히 경로를 바꾸어 기습을 가하는 전술에도 굉장히 빨랐다. 또한 정복 대상을 정복한 후에는 피난하거나 항복한 주민들을 학살하고 생포하여 공포 지배를 행했다. 예를 들어 델리 포위전 때는 전쟁 포로와 전쟁 노예 수만 명들을 그자리에서 학살한 후, 살아남은 기술자들만을 사마르칸트로 강제 이송하여 수도 발전에 이용했다.
전술 측면에서도 굉장히 철두철미한데, 델리 전투에서는 코끼리 군대를 절멸시키기 위해 대규모 참호와 성벽을 만들었고, 화염병과 불타는 낙타를 이용해 코끼리 군단을 혼란시킨 후 기병 돌격을 감행했다. 몽골계 티무르 제국이 오스만 제국을 정복한 앙카라 전투에서는 티무르 제국군이 하천의 물줄기를 틀어 오스만 제국군에게 단물을 차단한 후, 매복해 있던 기병대와 기마궁병대로 측면을 기습하여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이처럼 티무르 제국은 막강한 기병대를 자랑하면서도,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형·환경까지 이용한 군사 작전과 첨단 군사 기술, 병장(당시 기준 폭발물·화승총 등)을 활용해 항상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요약하면, 티무르 제국의 군사 전략은 빠른 정복 후 정복지의 기술·자원을 빠르게 흡수하는 방식으로 세계 패권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는 옛날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정복 방식과 굉장히 유사하지만, 티무르 제국은 여기서 한 가지를 추가하여 이슬람 및 페르시아 문화와 결합하여 독자적인 전술·관리 체계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티무르 제국의 정복전쟁사를 대표하는 두 사례를 살펴보자.
첫째, 서남아시아 델리 술탄국 정복(1398년)에서는 티무르가 군사 전략적 기습과 살벌함을 보여주었다. 티무르는 먼저 델리 전투(1398년 12월)에서 델리 술탄의 근위대(전차와 코끼리 부대)를 학살했다. 이어 수도 델리를 철통같이 포위한 후, 티무르 제국군은 화약 투척기와 방화 전술까지 사용해 델리 도심 전역을 파괴했다. 전투 후 티무르는 처절한 학살과 함께 기술자·예술가들을 전쟁 노예로 포로삼아 수탈을 극대화했다. 그 결과 델리 술탄국은 1526년 무굴 제국의 등장까지 고립된 상태로 전락하였다.
둘째, 앙카라 전투(1402년)은 오스만 제국보다 훨씬 더 강한 티무르 제국군의 군사력과 군사 기술과 전략적 우위를 잘 보여준다. 이 전투에서 티무르 제국은 군 병력 규모(약 140,000명 병력)와 공세 전술까지도 활용하였다. 티무르가 강제 징병한 사마르칸트 출신의 군인들은 오스만 제국 바예지트 1세의 85,000명 병력을 맞아, 강물의 수로를 조절하여 적 진영의 급수원을 차단했다. 이후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후예 티무르는 기병대와 기마궁병 협공으로 양 날개를 공격하고, 중앙의 적군 주력 예니체리 보병 부대를 집중 궤멸하는 작전을 펼쳤다. 전투는 수시간 만에 끝났고, 수천 명의 오스만 제국 병력이 티무르 제국군에게 전멸당하거나 투항하였다. 유럽 전역을 멸망시킬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바예지트 1세 역시 전쟁 포로가 되어, 오스만 제국은 기나긴 내분의 수렁에 빠졌다. 이 사례들은 티무르가 얼마나 철두철미하고 치밀한 군사 작전과 세계 전략으로 항상 압도적인 승리만을 견인했음을 잘 보여준다.
<제6부.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세계 패권으로 인해 구축된 세계 질서>
12세기~14세기 전 세계를 정복하고 식민지배한 세계 최강대국이 대몽골제국이라면,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은 14세기 후반~15세기 전반 세계를 지배한 최강 제국으로서, 세계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잔재들을 세계 전역에 각인시켰다.
첫째,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던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세계 지배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세계의 절반을 식민지배했는 점이다.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남아시아, 이란, 중동, 서아시아, 오스만 제국, 북아프리카의 맘루크 제국들 등등을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들을 정복했으며, 이는 몽골제국과 티무르 제국을 계승한 무굴제국의 기틀이 되었다. 실제로 사마르칸트에서 티무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바부르(Bābur) 칸은 16세기에 아프가니스탄을 거점으로 인도 대륙을 정복하여 무굴제국을 건국하였다.
둘째,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후예 티무르의 살벌한 제국주의적 정복은 동·서양의 연대를 단절시키기도 했다. 앙카라 전투의 결과로 오스만 제국이 서구열강을 정복하는 것이 지연되었을뿐 아니라 오스만 제국은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반식민지로 전락했다, 유럽 전역과 동로마 제국은 일시적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몽골계 티무르 제국 자체는 이렇게 세계 정복과 세계 지배, 세계 패권의 영광을 누렸으나 티무르 사후 곧바로 내전과 잔존 황자들 간 황위 전쟁으로 곧 분열되었고, 지속적인 제국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셋째, 군사적, 세계적으로 티무르 제국의 세계 질서가 구축다.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군사적 수도인 사마르칸트는 세계 최고의 강철검 제련자, 금속무기 기술자, 각종 무기와 갑옷 기술자, 과학, 수학, 울루그 베그 천문대를 위시한 천문대, 예술 문학 산업의 중심지로 세계를 선도하였고, 위대한 건축 기술과 공예(구르 에미르 사원 등) 기술로 이후 페르시아, 인도 등 중동, 서아시아, 남아시아 이슬람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세계사적 관점에서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패권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위대한 장군”이며, 중앙아시아의 세계사가들은 이를 “이란과 투란(Iran-o-Turan, 몽골인과 튀르크인, 페르시아인의 영역) 전통을 결합한 제국”이라 평가한다. 이는 아무다리야 강을 경계로 중앙아시아 몽골(Turan)의 스텝 유목 군사 정신과 페르시아 문화권(Iran)의 개념이었다. 실제로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축에 자리하여, 중앙으로는 몽골계 세계, 동쪽으로는 중국 명나라 세계, 서쪽으로는 이슬람 페르시아·아라비아 세계, 남쪽으로는 인도아대륙과 맞닿았다. 이런 지리적 위치 덕분에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세계 초강대국들의 무역로를 적극 활용하였고, 국제적·외교적 무역을 촉진했다.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세계 지배는 중세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세계 지형을 완전히 재편했고, 이후 인도, 페르시아, 러시아 등등 세계 지역들에 직접적 영향을 가했다.
또한 제국의 등장은 유라시아 전역의 세력 균형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티무르 휘하 군대는 초원 전사와 이슬람 병력이 결합된 혼합 군단을 이끌었으며, 이는 동유럽과 중동의 여러 왕국들에 경계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 당시 유럽과 중동은 몽골·튀르크계 군주국들의 잔존 분열국이었는데, 티무르의 등장은 이들 세력 간의 재편을 가속화했다. 비록 단기간에 제국이 붕괴되었으나, 유라시아 연합군의 역사적 경험으로 기록되었다.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세계 지배기 때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는 동서 문명이 빠르게 무역, 모험, 발전하는 전 세계의 용광로로서 전 세계를 주도했다. 동양의 막강한 군사 기술, 강철검을 비롯한 금속 제련 기술, 과학, 천문학 지식들을 적극 수용하여 우주론, 수학 분야에서까지도 명성을 얻었고(예: 울루그 베그의 천문대 등), 북아프리카 이집트의 맘루크 제국, 중동 전역을 완전히 정복하여 끌고 온 전쟁 포로(기술자)들로 인해 전세계가 결합된 티무르 제국의 세계 질서가 구축됐다. 따라서 티무르 제국은 중세의 마지막 세계 패권국(대장국)으로서 세계 질서를 주도했다.
북동아시아(특히 명나라)와의 군사적, 외교적 무역 관계에서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강하게 나갔다. 당시 중국 명나라의 최전성기인 영락제(永樂帝) 통치 기간(1402년~1424년)에는 서역으로부터 사신들이 빈번히 왔는데, 티무르는 적극적으로 사마르칸트를 세계 무역, 외교의 중심지로 승격시켰다. 예를 들어, 명나라의 군인 마환(馬歡) 장군과 천정(陳貞)은 1405년부터 1420년대에 걸쳐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를 방문하여 서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잇는 세계 무역로 개척에 기여했다. 한편 명나라도 티무르를 ‘사마르칸트의 공(公)’으로 공식 확인하면서 상호 관계를 유지했다. 물론 이는 아직 이 시대까지 티무르가 중앙아시아를 선봉으로 해서 서아시아, 오스만 제국, 중동, 시베리아, 서남아시아, 남아시아, 북아프리카의 맘루크 제국 등등을 정복하는 데 주력 중이었기 때문에 명나라를 침략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고,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세계 정복은 중국 대륙을 정복해야만 반드시 완수되기 때문에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명나라 침략도 곧 시간문제였다.
이렇듯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칭기스칸의 세계 최강의 기병 전술에 화약 무기와 공병 기술까지 융합시켜, 당대 세계 초강대국들(킵차크 칸국, 오스만 제국, 맘루크 제국, 델리 술탄국)들을 모두 단신으로 군사력만으로 제압한 유일한 제국이다. 이는 대몽골제국을 계승했다는 몽골계 티무르 제국의 확실한 신호였다.
그리고 티무르는 선조인 칭기스칸의 군법인 '자사크'와 이슬람의 '샤리아'를 철저히 결합하여, 중앙아시아 북방 유목민(몽골족)과 정주민(이슬람) 모두를 지휘할 수 있는 진정한 세계제국을 완성했다.
또한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유라시아의 심장부(우즈베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를 정복하고 실크로드의 이익을 독점함으로써, 대몽골제국의 경제적 기반을 재현하면서 세계 군사적 패권사의 중요한 장을 차지한다.
이렇듯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패권 이후 다시 한 번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서 대몽골제국의 군사적 최강력인 기동력과 파괴력을 완벽하게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당대의 세계 최첨단 군사 기술과 융합하여 14~15세기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티무르는 선조인 칭기스칸 이후 등장한 그 어떤 정복자보다 더 막강한 초강대국들을 격파했으며, 몽골제국의 세계 최강 군사력을 계승하여 유라시아 대륙에 마지막 '세계 최강 대몽골제국의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세계 역사상 최강의 군사 계승자인 셈이다.
전신 시대인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하여 세계 패권을 구가했다면, 몽골계 티무르 제국은 그 유산을 계승하여 14~15세기 세계사를 다시 쓰려 했던 마지막 몽골계 세계제국이었다.
<제7부.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과 '몽골계 티무르 제국'을 계승한 '무굴제국'>
그리고 세계 패권국으로 군림했던 티무르 제국의 5대손인 '바부르(Babur) 칸'은 아프가니스탄, 인도 대륙을 정복해 무굴 제국(Mughal Empire)을 건국했다. '무굴'은 페르시아어로 '몽골'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