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 칸과 수베게테이 바가토르(수베테이, 수부타이)장군, 오고타이 칸, 몽게 칸, 쿠빌라이 칸 등등등의 수많은 대정복자들이 칭기스칸의 세계 정복 전쟁을 계승하였고,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앞세워 영토를 계속해서 팽창하면서 50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몽골제국의 강역은 무려 3,300만 km² 까지 팽창하였다.
이는 '로마제국'이 1,000년을 넘게 걸쳐서 정복한 영토인 500만 km² 보다 약 6 ~ 7배 이상 훨씬 더 거대한 영토를 몽골제국은 100만 명의 소수 정예 총인구력만으로도 50년도 안 되는 단기간만에 정복하면서 전 세계를 정복했으며, 또한 대항해시대 때 급성장한 '스페인 제국(Spanish Empire)'이 1492년부터 1976년까지 평생 정복한 영토인 1,370만 km² 보다도 약 3배 이상 훨씬 더 거대한 영토를 정복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련의 최전성기 강역이 1,709만 8,236 km²이고,
21세기 현대시대 기준 세계 1위의 영토 크기를 가진
'러시아'의 최전성기 강역이 17,098,242 km²인 점을 감안하면,
중세시대 때, 몽골제국이 단 50년 만에 세계를 정복했던 것은
세계 역사상 최강대국 1위 대몽골제국의 세계 패권의 위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세계사적 군사 패권적 위업이다.
게다가 세계 역사상 최강의 진격속도 1위를 자랑한 제국 역시 몽골제국으로서, 몽골제국의 대정복자, 바투의 유럽 원정대가 러시아를 침략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몽골제국의 군사 원정대들은 프랑스 제1제국(First French Empire)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와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까지도 패배하게 만든 러시아의 세계 최악의 혹한 겨울 추위까지도 뚫고 기동력이 1일 최대 151km를 기록하면서 세계 역사상 1위의 진격속도에 등극한다.
그렇게 러시아를 정복하였고 몽골제국은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러시아를 식민지배한 제국으로 등극한다. 이후 몽골제국은 러시아를 240년간 식민지배한다. 이를 '타타르의 멍에'라 지칭한다.
참고로 몽골제국의 세계 패권기를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라고 정의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만든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공동 1위. 대영제국
근대시대의 해양 패권국가
전 세계 역사상 최대의 육상 제국 1위가 몽골제국이라면, 전 세계 역사상 최대의 해상 제국 1위는 대영제국이다.
중세시대 때 세계 최강의 빌런이 몽골제국이라면, 근대시대 때 세계 최강의 빌런은 대영제국이다. 그만큼 근대시대 때만큼은 대영제국의 경제력, 해군력과 외교력은 어마무시하다. 특히 오로지 군사력만으로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등극한 몽골제국과 달리, 대영제국은 경제력, 국방력, 외교력, 높은 인구수 등까지 겸한 제국이었다.
대영제국의 가장 큰 황금기는 단연코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로 그녀의 시대를 일컫어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라고 부른다.
대영제국의 패권기를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라고 부르며, 제2차 세계대전 때 극심한 피해를 입으며 평화를 고수하며 국력을 급성장하던 미국에 패권을 이양하게 된다.
하지만 대영제국은 사실상 현대 국가의 모든 시스템들을 만든 나라로도 평가될 정도로 중요한 나라다.
세계 최강의 패권제국 대몽골제국의 군사 계승제국 티무르 제국의 오스만 제국 군사 원정 장면
2위. 티무르 제국
대몽골제국의 군사 계승제국 티무르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이긴 오스만 제국과 전쟁해서 대승전(勝戰)하면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중동의 패권제국으로 군림
티무르 제국은 몽골제국의 세계 패권기가 지나간 후에 등장한 제국이다.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후예인 '아미르 티무르'가 건국한 '티무르 제국'은 몽골제국을 계승해서 다시 한번 세계 최강대국으로 등극하기 위해 정복전쟁들을 빠르게 전개했다.
몽골제국의 수많은 분열제국들 중 하나인 '차가타이 칸국'의 몽골계 바를라스부 출신의 군인인 티무르는 어린 소년 시절에 양떼들을 약탈하려고 몰래 목장에 잠입해 들어갔다가 보초를 서던 양치기가 쏜 화살에 다리를 맞고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뜻의 '타메를란(페르시아어 : تیمور لنگ, 영어 : Tamerlane)'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이 호칭은 훗날 당시 세계 최대의 대정복자가 된 그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게 되면서 그의 악명을 뜻하는 공포의 대명사처럼 불리게 된다.
칭기스칸의 후예이자 몽골족 군인 출신이었던 티무르였으나, 그는 황금씨족은 아니었다. 남성우월주의가 엄청나게 강한 중앙아시아 몽골족 사회에서, 황금씨족이 되기 위해서는 부친이 칭기스칸의 후예가 돼야만 자격이 주어졌다. 하지만 티무르는 모친이 칭기스칸의 후예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티무르는 수많은 세계 최강의 몽골군을 이끌고 '티무르 제국'을 건국했음에도 '대칸'의 지위에는 등극하지 못하고 대칸보다 한 단계 낮은 '아미르(장군)'직으로 등극해야 됐다. 마치 중세 일본 봉건제 사회의 쇼군(정이대장군)처럼 말이다.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의 후예, 티무르에게 대패하고 티무르 제국까지 전쟁 포로로 끌려 온 오스만 제국의 술탄 바예지트 1세
티무르 제국의 최전성기는 바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 중이었다. 그러던 중 티무르 제국군이 빠르게 진격해서 오스만 제국을 침략하고, 마침내 두 세계적 군사 초강대국인 티무르 제국 대 오스만 투르크(오스만 제국)은 1404년 7월 28일 오늘날의 튀르키예의 수도인'앙카라(Ankara)' 근처의 '추부크 평원(Çubuk Ovası)'에서 대회전을 전개하며 '앙카라 전투'를 일으킨다. 그리고 승리는 티무르 제국이 차지했다. '티무르 대제'는 적장이자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바예지트 1세(بايزيد اول)'을 전쟁 포로로 사로잡은 후 끌고 간 후, 오스만 제국을 티무르 제국의 반식민지로 전락시킨다. 그렇게 오스만 제국보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서아시아와 중동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한 티무르 제국은 몽골계 대제국의 사명을 잊지 않고 당시 영락제 치세 때의 명나라로 군사 원정을 개시했다.
그리하여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한 티무르 제국 대 세계 패권국가였던 영락제 치세 때의 명나라라는 엄청난 세계사적 대전쟁이 발발할 뻔했으나, 티무르는 과도하게 쉴 새 없이 정복전쟁들을 계속한 탓에 명나라로의 군사 원정 도중 사망하고 만다.
그 후, 티무르 제국은 마지막 황제인 '바부르(ज़हीरुद्दीन मुहम्मद बाबर)'가 인도 대륙을 정복한 후 '무굴제국(페르시아어로 '몽골'이란 뜻의 국명)'을 건국할 때까지 끊임없이 정복전쟁들과 군사 반란들과 군사 내전들을 쉴 새 없이 이어나가게 된다.
당시 최전성기 기준 세계 최강의 기병대였던 팔기군들의 군 최고사령관 대청제국 건륭제
3위. 대청제국(청나라)
당시 세계 최강의 기병대 대청제국 팔기군
세계사는 물론, 조선을 침략해 한국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었던 '병자호란'을 일으킨 대제국으로 한국사에서도 악명 높은 대제국, 대청제국이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제국 3위다. 대청제국(大淸帝國)은 당시 청나라의 공식 국명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최전성기 기준이며, 당시 대청제국의 제4대 강희제-제5대 옹정제-제6대 건륭제로 '강건성세(康乾盛世)' 때의 '팔기군(八旗軍)'은 당시 세계 최강의 기병대로도 유명했다.
세계 최강의 기병대는 대청제국 팔기군, 세계 최강의 보병대는 오스만 투르크의 예니체리(يڭيچرى, yeniçeri)였던 셈이다. 강희제의 카리스마는 서구에까지 퍼져서 당시 강희제는 ‘철혈황제’ 혹은 ‘철혈대제’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
대청제국(청나라)은 조선을 침략(병자호란)해서 모조리 다 초토화시켰으며,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승전하면서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중앙아시아의 패권제국이었던 준가르제국을 정복하고, 카자흐칸국(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전신)을 영향권 하에 편입시켰으며, 코칸트 칸국을 정복하고, 신장 위구르도 정복하고, 정성공 왕국(동녕국, 東寧國)의 명나라부흥운동 기지였던 대만(타이완) 섬을 식민지로 전락시켰고,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라오스, 시암도 위성국가로 전락시켰고, 미얀마를 조공국가로 전락시켰으며, 러시아 제국과 군사 충돌하여 국경까지 확정하는 등등 엄청난 팽창 정책으로 현 중국의 2 ~ 3배 이상 가는 강대한 강역을 정복했다.
하지만 건륭제 사후 대청제국은 과도한 팽창 정책과 막대한 군사비 소모로 인해 제국이 순식간에 몰락하게 되고, 게다가 팔기군의 군인 출신인 '니오후루 허션(뉴호록 화신, 만주어: ᠨᡳᠣᡥᡠᡵᡠᡥᡝᡧᡝᠨ, Niohuru Hešen, 鈕祜祿 和珅)'은 황제들이 잦은 정복전쟁으로 황궁에서 부재한 사실을 이용해 군부독재를 시행하였고, 그 결과 대청제국(청나라)은 1799년 2월 7일 건륭제 사후에 경제적 파산과 함께 군사 반란, 내전, 독재 등등등의 악재들이 겹치면서 결국 빠르게 몰락하게 된다.
참고로 1746년에 태어난 대청제국의 '홍량길(洪亮吉)'는 세계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구를 절반을 없애서 조절해야 된다는 '인구론'을 멜서스보다 훨씬 먼저 주창한 한족 출신의 철학자, 고위급 관료였다.
당나라의 군용검 '당태도(唐太刀)'
4위. 당나라
실크로드를 이용해 세계 무역의 기반이 됐던 대제국, 당나라
한나라가 개척한 실크로드는 제국의 몰락과 동시에 줄곧 중앙아시아계 북방 유목제국들의 정복지로 전락해 있었다. 그러던 중 치열한 통일전쟁 끝에 건국된 대제국 당나라는 실크로드를 재탈환하는데 성공하면서 고대시대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세계제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한다.
당나라는 제국을 육로와 해로를 이용해 당시 전 세계 최고의 무역 기반으로 등극시켰고, 그로인해 중앙아시아계 유목제국들과 중동의 아랍 제국들과 페르시아(이란) 제국, 한반도 국가들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대표국가들의 인력들이 모두 당나라로 몰려 들었다. 대표적으로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이백(李白, 혹은 이태백[李太白]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참고로 태백은 본명이 아니라 자[字]다) 역시 한족 출신이 아닌 당시 당나라가 지배하던 안서도호부의 통치 영역이었던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 지역 출신이다. 이처럼 당나라에는 당시 세계적인 외국인 군인, 외교, 무역 인력들이 넘쳐났다.
당나라 고선지 원정대의 정복전쟁 장면
특히 당 현종(唐玄宗)의 치세 때, 고구려 유민 출신 군인인 고선지(高仙芝) 장군은 원정대를 이끌고 중앙아시아 ~ 서아시아의 72개 국가들을 정복한 적도 있다.
게다가 당나라 최고의 정복황제들 중 1명이었던 당태종(唐太宗)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대제국, 돌궐제국(괵튀르크 카간국, 突厥帝國, 튀르키예어 : Göktürk Kağanlığı)의 황제직인 천가한(天可汗)을 겸임(兼任)하기도 했다.
이런 군인 인력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최첨단 기술들도 모두 당나라로 흡수되었다. 대표적으로 당시 전 세계의 모든 최첨단 기술들을 집대성해 제작한 당태도가 있다. 세계 최강의 검 제작 기술력을 가진 당나라를 선두로 당나라에 정복당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날카로운 도검 제작 기술들, 서아시아 페르시아의 당초문 문양 기술, 중동 아랍의 기술력 등등을 모두 흡수하고 총동원해 제작한 군용검이 바로 당태도였다. 당태도에 페르시아의 당초문 문양이 새겨져 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당시 당나라가 얼마나 국제적인 세계제국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당태도가 일본도(카타나)의 전신인 오오타치 및 타치의 기원이 되는 검이기도 하다.
칭기스칸의 후예 티무르에게 대패하고 전쟁 포로로 끌려간 오스만 제국의 바예지트 1세 술탄
5위. 오스만 투르크
신라, 조선, 로마제국 못지 않게 오랫동안 장수한 대제국
한민족과 영원한 형제의 민족이라는 튀르키예의 전신, 오스만 투르크다. 참고로 오스만 투르크-오스만 튀르크-오스만 돌궐-오스만 제국 다 똑같은 뜻이다. 세계 최강대국 몽골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한 이후 룸 셀주크 제국까지도 정복하고 식민지배하였는데, 몽골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룸 셀주크 제국에서 도망쳐나온 가문 중 하나인 오스만 가문의 오스만 가지(عثمان اول ,عثمان غازى)가 세운 왕조가 바로 오스만 제국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이 1402년 7월 28일 오스만 제국을 침략하면서 '앙카라 전투'를 일으켰고, 티무르 제국과의 전쟁에서 대패한 오스만 제국은 그대로 티무르 제국의 반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전쟁 포로로 생포당한 술탄 바예지트 1세는 티무르 제국까지 끌려가는 오스만 제국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를 겪게 된다.
그리고 먼 훗날, 티무르 제국의 반식민지배에서 해방된 오스만 투르크는 본격적으로 날개를 펴기 시작하면서 유럽에 대한 총력전을 개시했다. 오스만 투르크의 첫 사냥감은 동네북으로 전락한 '동로마(비잔틴, 비잔티움) 제국'이었다.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메트 2세는 청동대포라 불리는 '우르반 거포'와 예니체리들을 포함한 3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이끌고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쳐들어가 마침내 1453년 6월 7일 함락시키는데 성공하였고, 결국 이 공방전에서 제129대 황제였던 콘스탄티노스 11세와 함께 같이 멸망한 로마 제국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는 서아시아의 아나톨리아 반도를 기점으로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등지로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서구인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는 유럽을 고립시키면서 압박한다. 그 결과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은 생존을 위해 배를 띄우면서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게 된다. 하지만 유럽보다 군사력이 훨씬 더 막강했던 대륙세력이었던 오스만 투르크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평생의 숙적 러시아 제국과 충돌하게 되고, 1568년부터 1918년까지 무려 12회 이상 대전쟁들을 치르면서 국력을 소모하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던 러시아 제국과 달리 오스만 제국은 내부 관료들의 부정부패들과 술탄들의 잇달은 무능함, 예니체리의 근대화 거부 운동 등이 쌓이고 쌓이면서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면서 결국 망조의 길을 걷게 된다.
오스만 투르크의 최후는 대청제국(청나라)의 최후랑 매우 유사하다. 아시아의 두 대제국인 대청제국과 오스만 투르크는 최전성기 때 세계 초강대국들로 군림했으나, 결국 과도한 정복전쟁으로 인해 군사비를 막대하게 소모하면서 얼마 안 가 경제적으로 파산하였고 그 결과 제국을 통치할만한 재정이 남아나질 않아 근대시대 때 서구에게 완전히 추월당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명나라 정화의 대함대는 콜럼버스의 산타 마리아호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와 화력을 갖춘 대함대였다
6위. 명나라
서구보다 훨씬 더 앞서 세계 바다를 모험한 명나라 정화의 대함대
고대시대부터 중국은 전통적으로 대륙세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중국이 해양 패권을 가지기 시작한 시대는 송나라 시대부터로, 송나라는 세계 해상 실크로드를 석권하였고, 그런 송나라를 정복하고 세계 패권제국으로 등극한 대원제국(원나라)도 세계 육상 실크로드와 세계 해상 실크로드를 둘 다 이용해 전 세계 무역까지도 확실히 지배했다.
그리고 이는 명나라의 최전성기 황제, 성조(成祖) 영락제(永帝樂) 역시도 세계 패권을 차지하려는 야망은 마찬가지였다. 번왕 출신으로 자신의 사병 군대들을 이끌고 군사 반란 '정난의 변(靖難之役)'를 일으켜 황제로 등극한 그는 황제 즉위와 동시에 곧바로 세계 바다를 개척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가 보낸 선봉장은 바로 정화(鄭和)였다. 중앙아시아계 무슬림 출신이었던 정화의 일족은 명나라가 중앙아시아를 정복하면서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것이다. 어찌됐건 정화는 천재적 군사 능력을 인정받아 대함대의 사령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렇게 1405년부터 시작된 정화의 대함대는 1433년까지 총 7차례나 대원정을 전개하면서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 케냐까지 진출하면서 그야말로 세계 패권을 장악했다. 일부 미국이나 영국 역사학자들은 정화의 대함대가 신대륙인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아직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정화의 대함대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 케냐까지 진출했다는 것이 공식화된 사실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케냐까지 진출한 정화의 대함대들을 황제께 바칠 조공으로 그곳에서 어떤 거대한 동물을 포획해서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北京)까지 압송한다. 그리고 그 거대한 동물을 받고 흡족해 한 영락제는 그 아프리카 동물의 이름을 '기린'이라고 명명하여 21세기 현재까지도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목이 긴 초식동물을 '기린'이라고 부르게 됐다.
몽골제국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러시아를 제국으로 출범 '표트르 대제'
7위. 러시아 제국
몽골제국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어 초강대국으로 급성장한 대제국, 러시아 제국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비극적인 암흑기라 하면 당연히 몽골제국이 러시아를 240년간 식민지배한 '타타르의 멍에' 기간이며, 가장 영광의 역사라 하면 러시아 제국, 소련,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독소전쟁의 소련군의 승전을 꼽는다.
특히 몽골제국이 러시아를 240년간 식민지배한 후, 해방된 러시아가 다시금 일어서는 기간이 바로 러시아 제국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전체 역사에서 가장 의미가 깊다.
특히 러시아 제국은 몽골제국의 식민지배에서는 해방됐으나, 240년 간이나 식민지배를 당했기에 엄청나게 식민지배의 잔재들이 깊게 박혀있었다. 러시아의 군사제도도 몽골제국식 기병 군사제도를 배낀 것이었고,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몽골제국풍의 의복이 유행한다거나, 몽골족의 이름이 유행한다는 식이 많았다. 그리고 그 식민지배의 잔재들에서 완전히 해방되기 위해 노력한 황제가 바로 러시아 제국의 최전성기 황제 '표트르 대제(Пётр I)'였다. 그는 러시아를 몽골제국의 식민지배의 잔재들에서 빠르게 해방시키고 근대화를 추진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표트르 대제도 몽골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애초에 몽골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하고 식민지배하면서 러시아에 주둔한 다루가치 주둔군들과 러시아의 왕가들의 피가 혼혈이 됐다. 1672년 표트르(Пётр I Великий)는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차르와 그의 두 번째 황후인 나탈리야 키릴로브나 나리시키나 사이에서 알렉세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모친인 나탈리야 키릴로브나 나리시키나의 모친 선조가 러시아를 식민지배하던 몽골제국 군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선조가 몽골족이었고 표트르 1세 그 자신도 몽골족의 후예였다. 어쨌든 그는 임페라토르를 칭하면서 러시아 제국을 출범시켰다. 러시아 제국은 시베리아로 진출하고, 오스만 제국과 치열한 전쟁을 계속하면서 점차 세계 초강대국으로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8위. 프랑스 제1제국
근대시대 때, 패권국가가 되지 못했던 영원한 2인자
중세시대 때, 세계 패권제국이 대몽골제국이었고, 근대시대 때 세계 패권국가는 대영제국이었다. 즉, 근대시대의 프랑스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봤자 항상 2인자일 뿐이었다. 근대시대의 1인자는 대영제국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제1제국의 나폴레옹은 분명히 영국을 뛰어넘을 뻔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1제국은 스페인, 러시아에서 대패하고 반(反) 나폴레옹 정서가 유럽에 확산되면서 결국 영국, 프로이센 왕국, 네덜란드가 똘똘 뭉쳐 연합군을 형성하여 1815년 6월 18일에 벌어진 역사적인 전투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16년에 걸친 나폴레옹의 유럽 지배는 막을 내렸다. 그후 다시 폐위당한 나폴레옹은 1815년 남대서양에 있는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고 6년 간 살다 1821년에 결국 쓸쓸히 최후를 맞이하면서 그의 백일천하도 끝이 났다.
무굴제국의 최대 영토를 팽창한 제6대 황제 '아우랑제브'
9위. 무굴제국
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과 무굴제국
서남아시아 인도 대륙을 정복한 '무굴제국(هندوستان)'은 페르시아어로 '몽골'이란 뜻의 국명이다.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바부르(ज़हीरुद्दीन मुहम्मद बाबर)'가 인도 대륙을 정복한 후 건국한 몽골-튀르크계 대제국이기도 하다. 국교는 당연히 이슬람교이며 '수니파'였다.
무굴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룩한 황제는 단연코 '악바르 대제(اکبر اعظم)'였다. 악바르 대제는 이슬람교를 신봉하면서도 힌두교를 포용하는 포용정책을 내세움으로써 무굴제국을 역사상 가장 강하게 단결시켰고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 전 분야가 가장 발전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악바르 대제 다음으로 최전성기를 이룩한 황제를 '아우랑제브(اورنگزیب)'라고 하지만, 아우랑제브는 악바르 대제와는 정반대로 양날의 검 같은 황제였다. 정복군주였던 아우랑제브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지역까지 정복할 정도로 전쟁을 잘 했으나 이슬람 우월주의자였기에 이슬람을 제외한 다른 종교는 일절 인정해주지 않았고 굉장히 강하게 탄압했다. 포용정책으로 무굴제국의 국력을 강화시켰던 악바르 대제와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아우랑제브의 치세 때 무굴제국은 영토가 가장 팽창하면서 군사력이 강해지긴 했으나, 과도한 정복전쟁으로 인해 군사비 소모가 지속되면서 재정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한데다가 계속된 이교도 탄압 정책으로 내부에 불만이 심각해지면서 몰락의 징조가 이미 이때부터 나타나게 된다.
참고로 무굴제국은 인도 역사상 가장 막강한 대제국이며, 최초로 인도 대륙을 완전히 정복한 대제국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타지마할(ताज महल)' 역시도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 '샤자 한'의 작품이기도 하다.
아바스 제국의 기마대
10위. 아바스 제국 (아바스 칼리프국)
오스만 제국 이전의 이슬람 세계의 최강국가 호라즘 제국과 패권국가 아바스 제국
아바스 제국(아바스 칼리프국, 아바스 칼리파국)은 오스만 제국의 출현 이전에 이슬람 세계의 패권국 역할을 하던 대제국이었다. 로마 교황이 천주교 세계의 대표자라면, 이슬람 세계의 종교 대표자는 '칼리프'였기 때문에 아바스 제국이 가지고 있는 권위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최고였다. '술탄'보다 훨씬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칼리프'였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보다도 훨씬 더 막강한 종교적 권위를 가진 제국이 아바스 제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였던 아바스 제국도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몽골제국이 세계 정복을 하는 과정 중에 1528년 아바스 제국을 정복하면서 바그다드를 함락시키고 아바스 제국은 완전히 멸망했으며, 몽골제국군들은 아바스 칼리프들을 대학살하였다. 대학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칼리프가 오늘날의 이집트 카이로로 망명하여 맘루크 술탄국에 의탁하면서 칼리프는 맘루크 술탄의 권위를 승인하는 형식으로, 이슬람의 정통성과 맘루크 통치의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종교적으로 상징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는 존재로 전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