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대국 대원제국(大元帝國)의 전 세계 식민통치 다루가치, 총관체제
세계 역사상 최강의 정복자 칭기스칸의 손자이자 군인 출신의 대정복자인 쿠빌라이 칸이 1271년 대칸직에 올라 건국한 대원제국도 몽골제국을 계승하면서 당시 세계 역사상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제국이었으며, 전 세계를 정복하여 식민지배하였다. 쿠빌라이 칸이 선봉대장이 되어 친히 군사 원정대를 이끌고 금나라, 거란제국, 남송(南宋)까지 차례대로 정복하고(1279년) 중국 대륙 전역을 정복하였으며, 멀리 동남아시아의 버마(미얀마의 파간 왕국)까지 정복하여 식민지 주둔군들인 다루가치를 주둔시켰다. 대원제국은 세계 최강의 식민지 통치 체제를 통해 전 세계를 식민지화한 군국주의 제국이었고, 유라시아 세계 대무역로인 실크로드까지 완전히 장악하여 몽골제국의 세계 군사 패권기인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를 실현하였다. 이로써 몽골제국과 대원제국은 세계 패권국만이 가질 수 있다는 '팍스(Pax)'의 호칭까지 차지한 것이다. (예 : 영국은 팍스 브리타니카,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
대원제국은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부터 전개된 몽골제국의 세계 군사 패권의 유산을 물려받았으며, 세계를 식민지배했다. 결국 대원제국은 중국 대륙 전역 이외에도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과 시베리아, 투르크스탄, 페르시아(일칸국) 등등등까지 패권을 투사했으며, 그 외의 전 세계 지역들은 다른 몽골제국의 분열제국들(차가타이 칸국, 킵차트 칸국, 일칸국, 오고타이 칸국, 티무르 제국)이 각각 세계를 지배했다.
대원제국은 전 세계에 대원제국의 식민지 주둔군들을 주둔하여 전 세계적 패권을 투사했다.
세계 최강대국 대원제국은 세계를 정복한 후 강력하게 식민통치하기 위해 몽골제국식 식민통치 체계를 운용했다.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패권기 때 '다루가치(達魯花赤)'는 전 세계 식민지들에게서 군사비(군자금)을 빼앗을 목적으로 세금 징수와 군인 식민통치를 수행한 식민 총독이었다.
'다루가치'는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이 전 세계 군사 정복지들에 주둔시킨 군인 감독관이자 군인 총독을 정의하는 뜻의 몽골어다. '몽골어'로 '식민지배하다', '제압하다'는 뜻의 '다루(daru-)'에 행위자를 뜻하는 접미사 '-가치(-gachi)'가 붙어 '제압하는 군인', '인장을 찍는 군인'라는 정의를 가진다. 이는 대칸의 대리인으로서 전 세계 식민지, 정복지들의 군사 행정, 재정 등 전반적인 통치권을 행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군 계급, 군직(軍職)이었다.
참고로, 다루가치는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정복전 초기에 칭기스칸이 정복한 군사 식민지들을 군사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신설한 군직(軍職)이다. 이는 칭기스칸 혼자서 전 세계를 식민지배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전 세계 식민지들에 자신이 임명한 '다루가치'들을 주둔시켜 그들에게 군령(軍令)을 하달해 강력하게 식민통치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1211년 군사 정복지 행정 총독을 위해 설치되었고, 오고타이 대칸의 유럽의 킵차크·러시아 원정(1237년~1240년) 직후 오르다스, 사르신, 볼가르, 키예프 등에 다루가치를 주둔시켜 식민지배를 수행하도록 총독직에 임명시켰다. 이후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함에 따라 페르시아 제국의 바그다드(이란)나 동유럽의 블라디미르(러시아) 등등등까지도 정복하면서 다루가치를 주둔시켜 식민 통치를 총독하게 했다. 또한, 대원(元)제국 시대에는 중국 대륙의 각 지방 성, 요새, 도시, 마을, 영지들 곳곳까지 다루가치들을 주둔시켜 제국 전역 식민통치를 강화하였다.
게다가 다루가치는 군인이기도 했지만 현지의 군정·민정까지 총괄하는 최고 식민 통치자였다. 원사 기록 등에 따르면 다루가치는 전 세계 정복지들에서 군사·민정 전반을 총독하고 전리품(군마, 매사냥용 매, 군견, 각종 갑옷, 투구, 강철검, 전쟁 무기들) 강탈, 군사비 목적의 세금 징수, 독립 반란 감시를 위한 치안 유지, 군법 및 사법, 형법 권한을 행사하며 실질적인 최고 식민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던 식민지배자들로서 최종 결정권을 가졌다.
즉, 다루가치는 ‘군정을 선봉으로 한 식민통치 총독’으로서 전 세계 식민지들의 군사·군법·형법·사법·재정까지 전방위적 막강한 권한을 지녔다.
역할 : 대몽골제국이 식민통치한 전 세계 정복지들의 식민 통치 감독, 전리품(군마, 매사냥용 매, 군견, 각종 갑옷, 투구, 강철검, 전쟁 무기들) 주기적 약탈 및 강탈, 식민지 독립 반란 감시, 세금 징수, 인구 조사 등
정의 : 몽골 제국의 직접적인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군직(軍職)
'총관'은 다루가치의 휘하 장군으로, 식민지 총독이었던 다루가치가 군사적 명령(군령軍令)을 하달하면 그대로 수행하는 군 계급이었다. 대원제국(원나라)의 식민지 고려의 영토 전역에 설치했던 특별 식민지 행정 구역인 '총관부(摠管府)'의 군인 총대장을 정의하는 한자어 군직(軍職)명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화주(和州, 현재의 함경남도 금야군) 전역에 설치되었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와 제주도(탐라국)에 설치되었던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항상 등장할 정도로 한국사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막강했다.
대원제국의 세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세계사인 '원사(元史)'에 따르면 대원제국의 대칸인 쿠빌라이 대칸은 1283년(충렬왕 9)에 식민지인 고려에 상로(10만 호 이상)·하로(이하)마다 총관을 한 명씩 주둔시켜 식민 행정을 총관시켰고, 고려 양계(兩界) 지역을 직접 식민통치하기 위해 쌍성·동녕·탐라에 총관부들을 설치하여 총관들을 각 총관부들의 총대장(長官)으로 임명, 주둔시켰다.
또한, '총관(摠管)'은 대원제국이 설치한 식민 총관부(식민 총독부)의 군 장관급 군 계급으로, 식민지 행정구역들을 총독하였다.
역할 : 총관부 직할 식민지의 행정을 총괄하는 최고 식민지배자
임명 : 대원제국의 대칸(황제)이 직접 전 세계 식민지들에 주둔할 다루가치들과 총관들을 임명했으며, 주로 몽골인이나 현지인이 임명되었다. 고려에 주둔했던 식민지 총독으로는 동북면의 군벌로 영향력이 막강했던 이성계 장군의 고조부인 이안사 장군부터 아버지 이자춘 장군까지 대대로 쌍성총관부의 총관 혹은 그에 준하는 군 계급을 수행했는데, 이들은 대원제국이 고려를 식민지배할 때 임명한 '다루가치' 출신들이었다.
개념의 범위 :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다루가치'들은 전 세계 정복지들에 주둔한 몽골제국의 군인 총독들을 총칭하는 넓은 의미의 용어다. 즉, 다루가치는 전 세계를 정복하고 식민지배한 대몽골제국이 '창설'한 식민지 지배 군인 총독직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에 주둔했다. 하지만 '총관'은 몽골제국이 아니라 대원제국(원나라)이 '창설'한 식민지 총독직이었기 때문에 원나라가 설치한 '총관부'라는 식민지 통치기구의 총대장(長)이라는 구체적인 군 계급, 군직(軍職)명이었다.
요컨대, 다루가치는 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정복전 초기부터 신설·확대되어 세계 정복지들에 주둔한 식민 총독 군직(軍職)인 반면, 총관은 주로 대원제국군의 전 세계 식민지들에 주둔한 군인 총독 장관 군직(軍職)이었다.
세계 최강대국 대원제국의 다루가치는 총관(總管)보다 상급 장군이었다. 실제 전 세계 식민지들에 다루가치 1명과 총관 1명이 배치되었으나, 다루가치가 군권의 전권을 장악했다. 다루가치는 기존 군인 총독(총관)급을 감독하는 장교였다. 다루가치는 군정(軍政)을 총지휘했으며, 총관은 자신보다 훨씬 더 높은 다루가치의 군령(軍令)에 절대복종하여, 군 상관(上官) 계급의 군령을 수행하였으며, 총관은 다루가치의 참모장이었다.
중앙아시아·유럽 등등 전 세계 식민지들 : 세계 최강대국 몽골제국의 전 세계 분열제국들 중 하나인 킵차크 칸국도 대원제국처럼 전 세계 식민지들에 식민 총독들을 임명하여 주둔시켰는데, 특히 킵차크 지역에서는 바스크(basqaq)라는 명칭의 식민 총독을 주둔시켰다.
중동: 세계 최강대국 몽골제국의 전 세계 분열제국들 중 하나인 일칸국(이란)도 중동, 서아시아 식민지들에 대표적으로 바그다드 등등등 대도시들에 다루가치를 주둔시켜 식민통치했다.
이처럼 '다루가치', '총관(摠管)'의 군사적 권력은 소수의 몽골인 중심의 세계 지배 체제를 통해 군사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일반적으로 대원제국은 피정복민들(대원제국에게 정복당한 이민족들)은 저위 등급에 배치하고, 핵심 요직인 군직(軍職)들은 몽골인으로 독점하여 세계 지배층의 독점적 군사 정치 권력구조를 강화했다.
다루가치, 총관은 대원제국의 군사 식민지들에 주둔한 군인 총독들이었다. 예를 들어 대표적으로, 1231년 처음 고려를 침략한 몽골제국군은 72명의 다루가치를 주둔시켜 고려 식민지배를 시도했으나, 고려 측의 거센 저항으로 결국 장기 주둔까지는 하지 않고 철군했다. 하지만 이후 '1259년 강화 조약으로 고려가 대원제국의 식민지'로 완전히 전락하자, 다루가치 주둔군들이 고려에 주둔하는 것에 저항할 힘도 고려로서는 더 이상 없었다. 게다가 대원제국은 아예 몇몇 다루가치들은 외국 정부까지 주둔시켜 세금 징수는 물론, 내정 간섭 임무까지 수행하도록 하였으며 멋대로 고려의 군왕들까지 갈아치우도록 명령을 수행하도록 하였으며, 고려 조정에까지도 대원제국의 식민 총독인 다루가치들을 주둔 배치하여 고려 조정 운영에 직접 개입시켰다. 이들은 대원제국으로부터 전쟁 물자와 월급을 받고 고려 정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투사함으로써 완전한 식민 지배권을 행사했다.
대원제국 말기까지 계속된 이러한 식민 총독 체제는 대몽골제국의 군사 식민지들인 페르시아나 러시아 등등등 대몽골제국의 전 세계 식민지들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 공통점들이었다. 예를 들어, 몽골제국의 군사 식민지인 러시아, 셀주크 튀르크 제국들에는 몽골제국이 보낸 총독부가 있었으며, 몽골제국의 중동 이라크 바그다드 정복(1258) 후에도 몽골제국은 중동 전역에 다루가치들을 주둔시켜 식민지배했다. 이처럼 다루가치·총관 식민지배 체계는 단순히 대원제국의 고려 식민지배뿐 아니라 세계사적 패권 전략에서 핵심적인 수단이었다.
이를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대원제국군의 고려 정복기 때(1231년)부터 대원제국은 고려를 훨씬 더 강력하게 식민지배하기 위해 1232년(고종 19)에 개경·북계 전역에 72명의 다루가치를 주둔시켰으나, 고려의 거센 저항으로 일시적으로 철군했다. 하지만 이후 강화 천도 전(1260년대) 고려에 다시 주둔하기 시작하더니, 공민왕 시대(1270년대)에 대대적으로 주둔하여 다루가치들이 고려 전역을 완전히 식민통치했다. 또한, 대원제국은 고려의 압록강 북부·제주도에까지 직할령을 삼고 각각 쌍성총관부(1258년), 동녕부(1270년), 탐라총관부(1275년)들을 설치했으며, 이곳에까지도 모두 총관들을 주둔시켰다. (예: 쌍성총관부의 총관은 최장기 존속하며 고려 북부를 식민지배했다.)
이처럼 총관은 군인 총독직으로 군무를 수행했다.
게다가 대원제국의 식민지배 체계에는 '정동행성(征東行省)'이라는 식민 행정 기구까지 설치되어 고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식민지들에 주둔, 배치, 설치했다. 이는 쉽게 설명하자면,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와 그 역할이 정확히 동일했다. 1280년 창설된 대원제국의 전 세계 식민 통치기구인 '정동행성'은 대원제국군의 동방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고려의 군사비, 자원들을 수탈, 동원하고 감독할 임무도 수행했던 식민 행정기구였다. 고려에 주둔, 설치된 정동행성의 본부는 고려의 수도(개경)에 배치했고, 대원제국 황제(대칸)의 명령에 의해 고려 군왕이 명목상 수장을 강제적으로 수행해야 됐지만(이는 고려뿐 아니라 정동행성이 설치됐던 대원제국의 전 세계 모든 식민지들이 동일함) 실질적인 군사적 권한은 대원제국이 주둔시킨 군인 총관, 다루가치들이 장악했다. 당시 고려는 대원제국의 군사 식민지인 동시에 부마국으로 강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몽골식 관제와 복식을 도입하여 몽골화가 강제되는 가운데 정동행성은 대원제국의 직접 식민 통치기구처럼 작용했다. 또한 대원제국은 고려 조정과 군대까지 직접 식민통제하기 위해 '정동행성의 승상'이나 '부마국의 장군' 같은 대원제국의 식민지배하의 고려 군사 직책까지 창설하여 고려 내부 권력까지도 깊숙이 군사 개입하였다.
세계 최강대국 대원제국의 대제, 쿠빌라이 대칸 치하에서 대원제국은 고려를 군사적으로 정복한 후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몽골제국군은 1230~1250년대에 걸친 대규모 정복 후 1259년 고려를 완전히 항복시켰고, 그 해 강화 조약 체결로 고려는 공식적으로 대원제국의 군사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후 약 100년간 고려는 대원제국의 식민통치하에 있었다. 대원제국은 고려의 군권·내정·인사까지 전부 다 식민지배하며, 고려 왕족들과 왕태자들을 전쟁 포로로 데려가거나, 특히 고려의 왕태자들을 대원제국 대칸(황제)의 호위 군인으로 양성하기도 하는 등 대원제국의 군사 식민지이자 부마국으로 삼았다. 하지만 동시에 정동행성 설치와 다루가치 주둔으로 군사·행정권을 행사하며 고려를 완전히 식민지배하기도 했다.
아울러 대원제국은 고려 동·서·남북에 걸쳐 전략적 군사 요충지들에 '총관부(摠管府)'들을 전부 주둔 배치했다. 대표적인 예가 '쌍성총관부(雙城總管府)'와 '동녕부(東寧府)', 그리고 제주도(탐라국)에 주둔시킨 '탐라총관부(耽羅軍民總管府)'다. 쌍성총관부는 1258년 몽골제국군의 고려 북부 정복 이후 함경도 화주(和州) 전역에 설치한 식민 통치기구로, 요동행성(遼陽行省) 소속 카이위안로(개원로, 開元路)에 속했다. 이 식민지의 총관에는 몽골제국에 투항한 고려인이 임명되어 세습 식민 통치하였으며, 1356년까지 식민지 지배했다. 동녕부는 1269년 설치된 고려 서북 변방 식민 행정구로, 함경도 이북과 평안도 전역을 식민 관할했다. 탐라총관부는 1274년 대원제국군이 제주도(당시 탐라국)까지도 완전 정복한 후 주둔, 배치, 설치한 식민지 직할부이다. 대원제국은 제주도를 몽골제국군의 군마(軍馬) 사육소, 훈련소를 위한 목장과 군사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이곳에 몽골제국 출신의 말 조련사들을 주둔시켰으며, 제주도는 1294년 고려가 해방되어 반환될 때까지 무려 20년간이나 대원제국군의 직할령으로 전락했다. 이들 총관부들은 모두 대원제국이 고려 전역에 주둔 배치한 군사 총독부였으며, 대원제국의 식민지 총독(총관)들이 중심이 되어 고려를 직접 식민 통치한 대표적 예들이다.
세계 최강대국 대원제국의 고려 식민지 통치는 기본적으로 몽골 및 튀르크족 중심의 강력 식민 통치와 현지 토착세력의 제한적 활용을 병행하는 식민지배 방식이었다. 대원제국군은 군사 정복지에 대해 몽골제국의 군인 귀족과 군인 총관들을 임명해 군인 집권층들을 형성시켰고, 식민지들에 군사 주둔과 전리품(군마, 매사냥용 매, 군견, 각종 갑옷, 투구, 강철검, 전쟁 무기들) 획득, 군사비 목적의 세금 징수, 독립 반란 감시를 위한 치안 유지, 군법 및 사법, 형법 권한를 통해 완전한 식민 통치권을 확보했다. 동시에 고려 식민통치의 예에서 보듯, 그 식민지 왕을 이름뿐인 군주로 인정해 형식상의 자치권만을 부여하면서도 주요 정책은 반드시 식민제국인 대원제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또한 대원제국은 정동행성·군사 총관부 등의 관제를 통해 식민지 총독들이 식민지배를 더욱 더 강화하였고, 식민지인 고려인에게도 일정 군직을 허락했으나 고려의 핵심 군직들도 몽골인들이 전부 다 장악했다. 이런 식민 통치 체제는 세계적으로도 공통적이었다. 예컨대 대몽골제국은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식민지배할 때도 몽골제국의 식민지 총독들을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대원제국은 군사적 위력으로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을 이룩하였으나 과도한 세계 정복전쟁과 너무 폭력적인 식민지배 체제로 결국 전 세계 식민지 국가들이 끊임없이 독립운동들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결국 내전까지 겹치면서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던 대원제국은 쇠락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럼에도 세계 최강의 제국 대원제국의 전 세계 식민지 통치 체계는 당시 전 세계에 몽골제국식 군대 체계, 정복전쟁, 식민 통치제를 확산시켰으며, 한국사로만 한정짓는다면 고려-조선의 제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