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해도 너의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어딜 가도 그곳엔 네가 있어.
Too cool for school 브랜드를 보며,
여러 번 나는 회사 생활하기에는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자동으로 주변을 파악합니다.
누군가의 말에 의미를 담고, 행동에 뒷 심리를 읽어내려고 하죠. 주변 사람을 신경 쓰기에,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도 참기 어려워합니다.
회사 생활의 난이도를 스스로 올리는 느낌입니다.
꼭 가고 싶은 회사에서 인턴 기회를 얻었지만, 정직원이 되지 못하고 전혀 후보에 없던 회사에서 정규직 생활을 시작했어요. 회사 자체도 자랑스럽지 않았고, 기존 회사와 다른 딱딱한 분위기가 잘 적응되지 않았죠.
합격 발표가 된 시기부터도 이직 준비를 했는데, 정말 수 없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나중에는 더 나은 곳이 많나 싶은 곳도 지원을 했었지만 그마저도 되지 않았죠. 매번 탈락할 때마다 이 지옥에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어요. 왜 나는 여길 벗어날 수 없는지 한탄하고 스스로를 한심해했죠.
나를 여기에 방치할 수 없다고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3년의 시도 끝에 처음 인턴했던 회사로 돌아갔어요. 하지만 허니문 기간은 짧았어요. 좋은 것의 적응은 빨랐고, 형태만 다를 뿐 비슷한 형태의 불편함과 문제들을 마주 했어요.
이직이 필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이직은 제 삶에 좋은 영향을 주었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언제 될지 모르는 이직의 순간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건, 지금의 회사 생활에도, 운 좋게 시작한 새로운 곳의 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나‘입니다. 공기를 인지하지 못하듯 어디에 가나 늘 나와 함께 합니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대부분의 내 문제는 반복됩니다. 매번 듣기 싫은 부모님의 잔소리와 매번 볼 때마다 불편한 가족들의 어떤 행동과 모습처럼요. 진실은 그들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내게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봐야 합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회사 생활에 지치고 힘듭니다. 물론 이직도 준비하고 있지만 지금의 최우선 대안은 아닙니다. 퇴근하는 길, 잠시 시간이 날 때 내게 불편한 말을 던지는 사람의 모습을 볼 때 느낀 내 감정, 내 멋대로 불편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만든 순간들의 감정을 곱씹습니다.
이 곱씹음은 상황에 대한 곱씹음 혹은 복수의 방법으로 가지 안기 위해 주의합니다. 오로지 내 자신의 감정 특히 그 불편한 감정에 주목합니다. 그 받아들이지 못해 다시금 마련받은 그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노력하며, 그 메시지를 가져다준 메신저에게는 고마움을 느끼려 노력합니다.
풀지 못한 내 감정의 짐을 온전히 풀고 나면, 언젠가는 지옥 같은 직장도 더 이상 불편해지지 않는 순간이 올 거라 믿습니다.
만약 과거의 저처럼 이직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나를 위한 에어백을 마련해 보면 지금도 앞으로도 도움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