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의지가 전부라고 믿었을 때, 어느 습관도 만들지 못했다.
새 해 첫날.
추위에 몸을 떨어가며 첫 해를 보아도 습관을 갖지 못했다.
의지가 클수록, 자괴감이 컸고 일상마저 무너졌다.
20년 넘게 작심 3일로 살아가던 내게 변화가 생겼다.
마법노트가 생긴 것처럼 적으면 습관이 되었다.
습관이 선택의 문제가 된 건, 감정을 알아가면서였다.
좋다는 습관을 쇼핑하듯 추가했다.
6시에 일어나, 스트레칭, 명상, 일기, 독서로 하루를 시작한다.
루틴을 지속한 지 1,680일, 4년이 넘었다.
지난달에는 첫 시도로 100번 100일 쓰기에 성공했다.
100번 쓸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려워, 휴대폰 템플릿을 만들었다.
어디서든 휴대폰을 돌려 펜만 꺼내면, 100번 쓰기가 가능했다.
횡단보도, 엘리베이터(.. 화장실)에서도 썼다.
한 때는 효율적 방법으로 습관을 만든다 생각했다.
하지만 방법은 도구일 뿐이었다.
버튼 누르기 수준으로 설계한 효율적인 습관도 '내가 왜 하고 있지' 의문을 이겨내지 못하면 지속할 수 없었다.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의지만으로 해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의지로는 부족했다.
습관 만들기에 한계를 경험했다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감정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감정과 가까워질수록, 습관의 난이도가 떨어진다.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는 인간을 조정하는 실체, 감정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스스로 이성적 존재라 믿지만 사실이 아니다.
인간이 내리는 결정은 감정적이다.
인간의 결정은 최소 70% 이상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의식의 영향 하에 나머지 30%가 있지만, 그 마저도 감정에서 자유롭진 않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극히 일부만 의식적 영향을 미칠 뿐이다.
의식은 청와대 대변인처럼 감정이 결정한 내용을 공표할 뿐이다.
의지만으로 습관을 만들려는 것은, 바다에서 생수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목이 마르다면, 계곡에 가야 한다.
습관의 난이도를 낮추고 싶다면,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
한 남자가 넓은 초원에 페인트 칠을 하고 있다.
초원을 3개 구역 나눠 경계선을 그었다.
구역 이름은 동물(여우, 토끼, 소)에서 따왔다.
어느 날 남자의 아들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여우였다, 토끼였다, 소로 변하는 신기한 동물이 있어요."
초원에 나가보니, 말 한 마리가 있었다.
남자가 말했다.
"저건 말이란다. 말이 서 있는 구역의 이름만 바뀔 뿐, 어디 있더라도 말이란다."
우린 아이처럼 감정을 보고 있다.
감정의 위치로 감정을 이야기한다.
기쁨, 슬픔 혹은 좋고 나쁨은 감정의 본질이 아니다.
말을 이해하려면, 줄을 매고 농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초원의 말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형용할 수 없다'란 표현이 보여주듯
감정은 텍스트로 이해할 수 없다.
감정은 몸으로 느껴야 한다.
다시 습관으로 돌아가 보자.
'이걸 왜 하지' 의문에 대한 답은 습관을 시작할 때 이미 있었다.
다만 그 질문 뒤에 감정을 견뎌낼 수 없어,
게으름으로 감정을 회피할 뿐이다.
감정을 온전히 느끼면, '이걸 왜 하지'란 질문만 남는다.
행동으로 답하면 된다.
오랜 시간 목줄에 매인 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관심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감정과 가까워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