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마라! 지지마! (4)

배가본드 36,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학산문화사(만화)

by 노석

셋이서 돌아오는 길에 사장님은 냉면을 사주셨고, 우리는 같이 먹으며 서로를 칭찬했다. 예전에는 잘 몰랐던 느낌이었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근데 참 신기한 것은 그를 도와주며 나 역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도 복잡한 것들 것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면 해 낼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내 안의 이런 용기가 있는가 하고 말이다. 아마 내 일이라면 이렇게 용기를 가지고 부딪치진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복잡한 일은 해결이 되어 마무리가 됐지만, 제대로 말도 못하는 정운이를 위해 같이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못하는 건 읽고 쓰는 능력이 퇴화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문득 스친 생각은 고물상 사무실 책꽂이 있던 만화책들이었다.


사장님은 그 책들은 팔기에는 아까워 남겨 놓았다고 하시는 데, 그 책들 중에는 ‘배가본드’ 전 권도 들어 있었다.


방랑자 – 배가본드


난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미야모토 무사시를 그릴 때 그를 반대했었다. 1권부터 한 10권까지 읽다가 내가 알고 있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무사시가 사라진 듯 해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나마 전권이 갖춰진 ‘배가본드’는 내 마음을 흔들었고, 독서를 끊은 지 오래인 나에게도 그리고 정운이에게도 부담 없는 만화가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는 사장님의 배려 속에 조용한 사무실에서 ‘배가본드’를 읽었다. 타케히코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며 그냥 눈으로만 봤던 그의 책들이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17년간 그리고 있는 미야모토 무사시. 그는 그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배가본드는 어느 정도 읽을 무렵 정운이는 자신은 소설을 써 보고 싶다고 나에게 말을 했다. 무언가를 향해 전력으로 도전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랬던 바 아닌가!

난 며칠 뒤 노트와 필기구를 사서 정운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가 글을 쓴다면 좋을 거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을 향해, 천하무적을 향해 달려가는 무사시를 보며 나 역시 몸을 단련하자 마음먹고 직장 근처 수영장을 끊었다. 7시~8시까지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5시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수영장에 가서 기초 수영을 배우며 잠도 밀려오고 피곤한 마음에 하라는 수영은 되지가 않고 물속으로 자꾸만 가라앉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날은 나무토막처럼 둥둥 떠 다니기도 했다.


그런 동안 사장님은 정운이가 일 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이면 하늘을 보며 중얼거리며 노트에 열심히 뭘 적더라고 얘기해 주었다. 내심 기대가 되었던 나는 정운이에게 한, 두 달이 흐를 무렵 무얼 그리 적고 있냐고 물어 보았고. 정운이는 연애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3부작으로 구성 중인 데 그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네 건방진 입술을 뺏어봐!’


내용은 건방진 아가씨의 입술은 순수한 청년이 뺏어간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자신의 소설을 낭독하는 정운이에게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 조용히 듣기는 했는데 여자 대사를 할 때는 여자 목소리를 내는 정운이를 보며 감정 안 넣어도 이해하니 이상한 여자 목소리 내지 말라고 멱살을 잡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말을 잘 못하는 것과 다르게 이야기도 논리적이고 잘 쓰는 정운이가 대단한 생각이 들어. 한번 연애 소설 사이트 같은 곳에 올려 보자고 했고, 우리는 글을 올린 후 그 반응이 기대가 되어 설레는 마음을 품은 채 며칠 기다리며 댓글을 기다리기로 했다. 며칠 뒤 사이트를 열어본 우리는 100여개의 댓글 수를 보며 이러다가 소설가로 책 출판 하는 거 아니냐며 자축을 하고, 댓글 내용을 보았는데.


‘똥구멍으로 글을 쓰냐’

‘아주 지랄도 풍년이다.’

‘입술을 뺏는 게 왜 주제냐. 도대체 무슨 의도로 글을 쓴 거냐’


엄청난 악플의 현장을 목격했고.


가장 나은 댓글은


‘그래도 쓰느라 고생했네요.’


댓글을 다 보며 우리는 말이 별로 없었고, 정운이는 고개만 하염없이 숙이고 있었다.


그 때 난 요시카와 에이지의 무사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월, 모두 새해를 맞이해 분주하던 날. 무사시도 무사 수행 중 이었으나 가족이 그리워 자신의 이모가 보고 싶어졌다. 추운 밤 배가 고픈 무사시는 이모를 찾아갔다. 늦음 밤에 찾아간 이모는 오랜만에 만난 무사시에게 소문에 ‘너가 흉폭하다’ 하며 곳간이라도 좋으니 재워달라는 무사시에게 차갑게 집에서 재워 줄 수는 없다며 먹던 떡 2개를 싸서 무사시에게 쥐어주었다.

무사시는 그 얼은 떡을 먹으며 잠도 못 잔 채 거리를 나와 새벽에 강가에서 찬물로 목욕하며 스스로 외쳤다.


난 여기서 정운이에게 말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곤경에 빠질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무사시는 검으로 인생을 찾겠다는 자신이 잠시 사람의 정이 그리워 찾아가고 이런 대접을 받았다며 약해져 있다니 아직도 자신은 멀었다며 반성했다.


사무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정운이를 향해 손을 펼치면 열변을 토하는 내 자신!

우리는 스스로를 단련해 보자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댓글이 무어냐!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지 않는가. 무사시는 검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찾아갔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위에서 뭐라 한다고 못났다고 금방 풀이 죽어 글 쓰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래! 똥구멍을 쓴다고 하면 똥구멍도 좋다. 써보자! 한번 써보자! 다 쓰자! 계속 써 보자!


사무실에서 큰 소리가 나자 뭔 일인가 달려온 양동이 든 사장님도, 멍하니 눈을 깔고 있던 정운이도 신들린 듯한 나의 목소리!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은 듯한 소나무와 같은 나의 팔 놀림. 게다가 난 내 말에 내가 취했다.


이름 모를 감동이 우리 세 명을 덮쳤고, 사장님은 또 말없이 냉면을 시키셨다. 정운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기를 결의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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