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본드 36,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학산문화사(만화)
사장님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여기서 일하는 스포츠 머리의 청년은 올해 25살. 지체 장애인 3급이라고 했다. 몇 달 전 수레를 끌고 다니며 파지를 모아 오길래. 젊은 청년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 봤다고 한다.
이 청년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어머니는 생수 공장을 다니시다 몇 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서 누워 계시고, 아버지는 허리 디스크가 도져서 병원도 못 다니시고 집에만 계시기에 자신이라도 돈을 벌려고 파지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매미의 시끄러운 소리와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교통방송. 찌는 듯한 더위. 그 속에서 듣는 청년의 삶은 더 덥고 숨이 막혔다.
사장님은 그럼 왜 직장 같은 데나 공장으로 취직을 하지 파지를 모으냐고 물어 보았다. 파지 줍는 일은 정말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청년은 어머니가 쓰러지셨을 당시 벼룩시장 같은 걸 보고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인천까지 일을 하러 갔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가 지체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1년 동안 일을 시켜 준다는 명목 아래 그를 컨테이너에 가두고 일을 시키며 집에 보내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을 가 보았지만 얼마 가지도 못 해 다시 잡히고 또 잡히면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만화처럼 아침에 컨테이너에서 일어나니 문도 열려있고 자신을 감시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런 기회를 놓치면 탈출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그곳을 달리고 달려 탈출했다고 한다. 전철역에서 집에 가고 싶지만 돈이 없어, 역에 오시는 분들께 사정을 말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결국에 역의 직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집에 연락해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후, 경찰에 신고했던 그에게 법원에서 하나, 둘 우편이 오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3천만원의 빚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여기까지 듣고. 기가 막히더라고, 지체장애인들 데려다가 노예처럼 일 시킨다는 건 들어 봤는데 직접 들으니 어이가 없어서 말이야. 내가 그래서 정운이(지체장애인 청년)에게 집에 있는 통지서 가지고 와 보라고 했어.
근데 봤더니 핸드폰 요금이 300만원 넘는 것도 있고, 그게 한, 두 개가 아니더라고. 게다가 내용들이 무슨 사기 같은 것을 했다고 법원에서 벌금을 내라고 천만원 정도 통지서가 나왔어. 빚이 그리 많으니 핸드폰 하나 개통도 못하고, 어디 직장에 취직이나 할 수가 있나. 게다가 본인도 그럴 엄두도 못 내고 말이야.”
사장님은 파지로 돈을 벌 수는 없으니 자기 일을 도와주며 월급을 받으라고 권유했고, 그때부터 정운이는 이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밖에 못 나와서 말이야. 이거 뭘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아까 학생이 책을 버리는 데 법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더라고. 우리한테 사실 직접 버리러 오는 사람들은 없거든. 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가지고 오시지. 그래서 아 글쎄, 학생이 책을 버리는 데 막 감이 오더라고. 이 사람은 뭘 알겠지 하고 말이야.”
그러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을 향해
“정운아! 정운아! 이리와 봐! 얼른, 얼른 그거 나중에 하고!”
뭐냐. 이 주체 못하는 운명적 파도의 흐름.
정운이는 땀에 흠뻑 젖은 채 목에 걸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들어왔다.
사장님은 아빠 미소를 지으시며
“인사드려. 이 분이 법 전공하신 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30분가량 앉아 있었는데 어느새 법 전공 학자가 되어 이곳 사무실에 존재했다.
토요일 담뱃값 벌려고 책 팔러 왔는데 법학 전공 학자가 되어버린 청년의 기구한 사연을 그대들은 들어 보셨는가.
무대는 갖춰졌고 난 그 역할을 멋지게 해 내야 했다.
마치 법 공부 몇 년 한 사람처럼 일어서서 정운이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정운이는 손을 수건을 닦은 채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했다. 고개를 숙이는 그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등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땀의 열기를 보며, 그가 얼마나 고단하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줄 알 수 있었다. 루쉰 선생은 서점에 자신의 책을 사러 온 노동자가 준 돈을 두 손에 받고 그 무게가 돈의 무게가 아닌 이름 모를 생명의 무게처럼 느꼈다고 쓴 구절이 있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 셋 다 피 본다. 왠지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할 것 같고,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저 눈들을 향해 외쳐줘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머리에선
‘깨끗하게 돌아서라. 모른다고 해라. 여기서 더 들어가면 큰일이다.’
입에선
“사장님, 제가 지금은 경황이 없이 와서요. 모레 다시 한번 찾아올 테니 정운씨에게 온 통지서 좀 가져다 주시겠어요. 한번 저도 살펴봐야 될 것 같아요.”
망했다. 망했어. 육체와 정신이 따로 노는 나란 남자. 멋진 남자.
사장님은 자신의 예견이 맞았다는 듯이.
“어, 그래. 그래. 학생도 봐야 더 자세하게 알 수가 있겠지? 내가 준비해 놓을께.”
환하게 웃으시며 커피 한잔을 더 타 주셨다.
밖으로 나와 사장님과 담배피며 옆에서 서 있는 정운이를 천천히 보았다. 정운이는 담배피며 하염없이 바닥을 보고 있었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쑥스러운 탓인지는 몰라도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정운아 우린 소개팅 하는 게 아니란다. 너가 나에게 부끄럼을 탈 필요가 없어.
난 가슴 큰 여자가 좋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고뇌, 고뇌의 폭풍우였다. 어떻게! 어떻게! 도울 수 있단 말인가? 뭘 알아야 돕지. 나도 법을 모르는 데 어쩌냐!
인간의 정지된 뇌와 다르게 자연은 규칙적으로 움직였고, 하루, 이틀이 지나갔다.
저녁에 찾아가야 하는 고물상을 앞에다 두고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이대로 튀어야 하나? 아님 사실대로 말하고 변호사에게 찾아가 보시라고 할까?
변명을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그들의 기대에 찬 그 눈빛들이 생각났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 교직원으로 읽하고 있었기에 교내 법학과 교수님 사무실을 찾아갔다.
교수님 사무실 앞에 있는 철문이 어찌나 무거워 보이던지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옥에 빠진 그들과 나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나는 문을 두드렸고, 그 안에는 한 분의 노신사가 앉아 계셨다.
읽으셨던 책을 덮으시고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시는 교수님께 인사를 드렸다.
“학점 때문인가?”
교수님은 차분한 표정으로 양손에 깎지끼고 책상에 팔꿈치를 올리시며 말했다.
“고…고물상 때문입니다.”
더운 날씨, 날카로운 인상의 교수님, 연구실이라는 막힌 환경.
난 그곳에서 뇌세포가 뒤엉켜 버렸나 보다.
“고물상? 신의칙 판례에 나온 거 말인가?”
이건 뭔 소리냐?
교수님의 진지한 대답에 난 더 당황하고 무슨 대화인지 모르는 혼란속에 자아가 붕괴되는 줄 알았다.
뽑아간 음료수를 책상 앞에 올려 놓으며 난 땀을 폭포수와 같이 흘리며 내가 겪고 있던 일들을 얘기해 드렸다.
교수님은 허허 웃으시며.
“아, 직원이셨군요. 저도 학생 같지 않아 보이기에 좀 놀라기는 했었어요. 민사 소송이 걸린 듯 한데 저도 근거 자료가 없으니 뭐라 답변드리기는 힘들고, 무료법률구조공단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마 O시에도 그 사무소가 있을 테니 거기를 꼭 찾아가 보세요. 전문가들이 있으니 무료로 그 부분들을 해결해 줄 겁니다.”
무료법률 구조공단! 내 귀에는 그 단어가 천국의 트럼펫처럼 울려 퍼졌다. 교수님에게 감사하다고 고개를 푹 숙이며 여러 번 인사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