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본드 36,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학산문화사(만화)
어느 여름. 책이 어느 순간에 집을 삼켜 버릴 정도의 수준이 된 적이 있었다. 책장이 3개나 있지만 1개당 50권 정도는 꼽을 수 있으나 거기도 꽉 차고, 바닥에는 세로로 위태롭게 쌓여져 있는 책들. 왠지 책에 포위된 이 느낌. 탈출하고 싶었다.
한적한 토요일 오후, 너무 오래된 책들과 철이 지난 법 관련 서적들은 집 앞 고물상에 버리고 그 돈으로 담배를 사려는 창조 경제를 구상하였다.
고물상은 집에서 5분 거리다. 아침 출근할 때마다 이미 철문은 활짝 열려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수레를 들고 출발 준비를 하고 계신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올백하고 꽁지 머리, 위에는 허름한 티셔츠와 조끼. 바지는 군복. 수염이 더부룩한 분이 항상 철문 앞에 나와 여기를 지나칠 때면 청소하고 계신다.
그리고 뭐라 뭐라 써있는 영문 티와 청바지를 입고 스포츠 머리로 여기저기 뒤에서 뛰어다니며 세수대야로 물을 뿌리고 있는 청년도 한 명 있었다. 이 두 분이 여기 고물상의 주인들인 것 같았다. 여기 사장님은 인자하신 듯,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께 손수 커피를 타 주시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고물상에 가서 인사를 하고 수레를 하나 빌린 후 책들을 실어 갔다. 한 무더기의 책을 가지고 가는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두 분.
책들을 저울대에 쌓으며 법학 관련 책이 많이 나오는 걸, 꽁지 머리의 사장님은 유심히 보시는 듯 했다. 책을 모두 계산한 금액, 몇천원을 손에 쥐고 담배를 사려고 급하게 가려는 나에게 사장님은 주저하듯이 말을 꺼내셨다.
“저 혹시 법 공부를 하시나요?”
“네? 아, 그냥 준비하는 시험이 있어서요.”
나의 답변에 무슨 확신이 서시는 지. 사장님은 사무실로 나를 초대했다.
“저기 책 팔러 오신 분에게 죄송하지만 조금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