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 삼수 (하)

부활(상),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대우 옮김, 열린책들

by 노석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왜 대학을 가려는지를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하지 못 했다. 집에서는 모두 엘리트들 인데 자신만 공부를 못하는 미운 오리새끼 같아 항상 집에서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고 1 때 친하게 지내게 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녀보다 공부를 잘 하고 활력적인 친구였다.

친구들을 사귀다 보면 그 중에 이 친구만큼 성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 있는 데 그 친구가 바로 그런 사람 이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그녀도 공부에 자신감을 가지고 할 수 있었고, 친구는 그녀가 홀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시험 때는 밤을 새며 그녀를 가르쳐 주기도 했었다. 그녀는 그 친구를 평하기를

타인의 사상을 소화해서 그것을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을 지닌 덕분에
- 열린책들 <부활> 하 607쪽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시험 점수를 금방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한 적이 없었다. 고 3의 겨울 방학 때 조르고 졸라서 놀라간 친구의 집은 슬레이트로 지은 판자집이었다. 친구는 부끄러워 하며 집에 초대한 친구는 그녀가 처음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고3 수능을 마치고 친구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 갔지만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의대를 보내려고 하는 부모님들에 의해 다시 재수를 하게 됐고 친구와는 연락이 뜸해 지게 됐다.

재수 생활을 하며 칙칙한 생활을 보내던 어느 여름 날 저녁 전철에서 그 친구와 마주치게 됐고, 친구는 그녀에게 연락 좀 하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친구와 헤어진 후 4주 정도 지난 어느 날 그 친구의 어머니로 부터 연락이 왔다.

친구가 죽었다는 전화였다. 그녀는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였고, 친구의 시체가 있는 병원에 부랴 부랴 달려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다. 교통사고나 그런 사고로 숨진 것이 아니라 집에서 목을 메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죽었는지는 아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친구의 시체를 염하는 모습을 보며

어째서 그/그녀는 괴로워 했을까? 무엇 때문에 살았던 것일까? 이제는 그것을 깨달았을까?
- 열린책들 <부활> 하 p665

라는 생각과 슬픔 속에서 울고만 있었다. 더욱이 벽제 화장터에서 친구의 시체를 화장하는데 화장터 옆에는 살아 생전 그 친구가 소유한 물건들을 소각하는 곳도 있었다.

그곳에 친구 어머니를 부축해 갔는데 20년의 인생을 살아온 그 친구의 흔적은 겨우 비닐 봉지로 세 봉지와 수 십권의 책들 뿐이었다.

비닐 봉지가 소각로로 불태워 질 때마다 어머니는 오열을 했고, 불 태워지기 위해 던져지는 책들 속에서 도서관 대여라는 도장이 찍힌 책은 소각로 아저씨가 가져가라 해서 그녀가 챙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중에 한 권이 바로 톨스토이의 <부활>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 책들을 도서관에 반납하지는 못 했다. 후에 친구의 죽음에서 조금 벗어나 톨스토이의 <부활>을 보던 그녀는 맨 뒷 장에 친구가 살아 생전에 쓴 소감 같은 글을 발견했다.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매년 90억의 재산을 버는 인간이었다. 나는 그러지 못하다. 항상 쫓겨야 한다. 공부에 돈에 그리고 가난에, 난 노보드보로프 같은 인간이다. 나에겐 죽음 이외에는 아무런 답도 없다."

이 소감을 언제 썼는지는 모르지만 오로지 그녀에게 떠오르는 것은 전철에서 씁쓸하게 연락 좀 자주 해 달라고 했던 그 친구의 표정이었다. 그 때 내가 친구와 더 대화를 했다면 그 친구의 어둠을 내가 해소 줄 수 있었다면 이란 자책감과 대학 따위를 가기 위해 친구의 고민 따위는 생각도 안 한 자신의 모습에 경멸스러웠다.

창피하고 비열한 일이야, 비열하고 창피한 일이야
- 열린책들 <부활> 상 165페이지

네흘류도프가 읆조린 저 구절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친구의 죽음을 극복하고 싶어 <부활>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읽었다고 한다. 그리곤 조금이나마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신념이란, 동물의 세계나 식물의 세계에서 거름이 되고 곡식이 되고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며 애벌레는 나방이 되고 도토리는 떡갈나무가 되듯 어느 것도 소멸되지 않고 끊임없이 어떤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하는 것처럼 사람도 소멸되지 않고 다만 변형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는 항상 활달하고 명랑한 태도로 죽음을 직시했고, 죽음으로 이끄는 고통을 잘 극복해 왔다.
- 열린책들 <부활>하 598페이지

그녀에게 있어서 친구의 죽음은 <영혼의 정화>를 불러 왔다.


그가 <영혼의 정화>라고 일컫는 현상은 오랜 시간을 흐르다가 갑자기 찾오는 것으로, 내면 생활의 지체 또는 정체를 인식하고 영혼 속에 쌓여 그 정체의 원인이 된 모든 찌꺼기를 단숨에 깨끗이 씻어 내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 열린책들 <부활> 상 160 페이지

그녀는 울먹이며 여기까지 말하고 나에게

"난 말이야 오래 오래 살거야. 그리고 반드시 의대를 가서 정신과 의사를 할거야. 그리고 나중에 죽어서 그 친구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 줄거야! 너가 포기한 그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리고 난 왜 죽지 않았는지 그 의미를 찾아서 당당하게 그 녀석한테 말하고 따귀를 한 대 후려갈겨 줄거야 못난 년이라고 말이야..."

비가 내리는 조용한 교실에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 불꽃이 튀기는 그녀의 눈을 보며 난 왜 무엇 때문에 대학을 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얼마나 의미 없이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말이다. 그리고 타인이 만들어준 대학이라는 허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것은 누구든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는 일이 중요하고 훌륭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입장에 놓이든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생관을 반드시 갖기 마련이다.
- 열린책들 <부활> 상 234페이지

나 역시 까쭈샤가 창녀라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그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된 것과 똑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인생관이나 선악관의 왜곡 현상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그런 왜곡된 관념을 가진 집단이 수적으로 많고 또 우리 자신 역시 그런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 열린책들 <부활> 상 235페이지

그래, 그렇다 저 말대로다. 그녀가 나에게 까쮸샤라고 했던 것처럼 난 행동했던 것이다. 그녀의 고백을 듣고 <부활>을 읽으며 나는 점점 내 정체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문학 토론과 더불어 내가 공부를 못 한다는 사실을 알고 수능 공부도 도와줬다.

수학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중학교 과정 자습서를 구해와 일일이 나에게 풀어주고 설명도 해주고 내가 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너도 공부하기 바쁠텐데 나한테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면 어떻하냐고 묻는 나에게 그녀는 자신도 자신의 공부에만 신경 쓰고 내 일은 신경쓰지 않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고 하며 그럴때 마다

바로 지금 자신의 영혼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순간 자기 내면의 삶은 최소한의 힘만으로 어느 쪽으로든 기울 수 있는 저울대 위에 놓여 있다고 느꼈다.
- 열린책들 <부활> 상 232페이지

이 문장을 말해주며 그녀는 네흘류도프가 시베리아까지 까쮸샤를 따라 갔듯이 나 역시 똑같다고 하며 싱긋 웃어 주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부활>도 수능 공부도 계속적인 진척을 해 나갔다.

<부활>안에는 단순한 네흘류도프와 까쮸샤의 사랑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묵직한 물음과 인간을 타락하게 만드는 모든 규칙들 그리고 시설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수능이 코 앞에 다가 오는 시점과 더불어 <부활> 토론회도 거의 끝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부활>에서 이 구절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사람들이 <이름은 뭡니까?>라고 묻곤 하지. 나한테 이름이 있는 줄 아는 모양이야. 하지만 나는 어떤 이름도 없소. 나는 모두 다 거부했으니까. 그래서 이름도, 거처도, 조국도 없는 것이오. 나는 다만 나 자신일 뿐이오. 이름이 뭐냐고? 인간이오. (중략) <황제 페하를 인정하느냐>고? 황제를 내가 왜 인정해야 하지? 그는 그 자신의 황제이고, 나는 나 자신의 황제인데.
- 열린책들 <부활> 하 636페이지

"너는 너 자신의 황제일 분이야. 절대 잊지마" 그녀는 다짐을 하라는 듯 눈을 찡끗하며 웃어 주었다.

결국 수능에서 난 그녀 덕분에 150점이 오르는 성적을 거두며 성공을 했고, 그녀 역시 수능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점수를 얻었다.

대학 합격 소식을 서로 가지고 만난 날 우리는 술을 실컷 먹고 그녀는 나에게 자신은 정신과 의사돼 인간의 암흑을 파헤쳐 보겠다고 결의를 했고 나는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황제는 나다라고 살거라고 얘기했다.

전철에 오르기 위해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그녀는 술취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넌 참 신기해. 남자들은 여태껏 나한테 좋다고 치근덕 거렸거든. 근데 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내가 매력이 없니?"

"아니, 난 정말 너 엄청 좋아해. 근데 넌 네흘류도프고 난 까쮸샤 잖아. 난 말이야. 시몬손을 만날 계획이거든."

내 얘기에 그녀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시몬손은 반드시 여성으로 만나라고 조언도 해 주고 말이다.

그녀는 내가 얘기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충분히 이해를 했다. 그 날 전철을 타고 손을 흔들며 신나게 웃으며 헤어진 그녀에게 그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녀 역시 나에게 연락을 해 오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내 자신을 잃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좌절도 많이 했지만 틈이 날 때마다 그리고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마 <부활>을 읽으며 그녀를 떠 올린다. 그러면 그녀는 조용한 교실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나에게 해 준 말이 귓가를 맴돈다.

"행복은 고난에 지지 않는 거야, 모든 것이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싱끗 웃는 그녀의 표정과 더불어 생각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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