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총각의 길

by 노석

어둑해진 저녁 밤 10시가 되면 관리사무소 문을 잠근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24시간 근무 체제이기에 새벽에도 어느 때라도 문을 두드리면 나가야 하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거나 소란이 있으면 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문을 잠그고 '순찰 중'이란 팻말을 붙이는 게 휴식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행동의 표식이 된다.


팻발을 붙이고 문을 잠그면 사무실의 불을 모두 끄고, 책상에 앉아 인터넷으로 사들인 조그만 책상 등에 불을 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 이곳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긴다.


근데 말이다. 일주일 전이었다. 노트북에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글을 쓰고 지우는데 갑자기 잠근 관리사무소의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는 것이다. 마치 자기 집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들어왔다. 그는 책상 앞에 있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이 시간에 누가 관리사무소를, 게다가 잠근 문을 어떻게 열고란 생각에 어이가 없어서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책상 앞까지 온 그는 나에게 말했다.


“루쉰p, 잊지 말아요. 첫 번째 법칙.”


그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의 모습은 책상 등 불빛으로 조금이나마 비춰졌다. 주황색 꽃이 들어간 알로하 하와이 티셔츠를 입고,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채 미소 짓고 서 있었다.


‘첫 번째 법칙? 첫 번째 법칙이라니 이 사람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공포에 겁에 질려 지레짐작으로 외쳤다.


“저기요, 당신 누구죠? 혹시 당신 만델라에요? 흑백 통합의 상징 만델라냐구요?”


내 목소리가 고요한 사무실에 날카로게 울려 퍼졌다.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는 나에게서 서서히 멀어졌다. 양손으로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며 어깨를 들썩이며 깡총 걸음으로 관리사무소 문을 향해 등을 돌린 채 말이다.


그는 문을 앞에 둔 채 돌아보며 양손을 번쩍 들고


“우문투 응긍문투 응가반투!”


라고 크게 외쳤다.


그러면서 그가 문을 열자 갑자기 너무나 환한 햇살이 어두운 관리사무소를 비추었다. 난 눈이 부신 밖을 향해 나아가는 그에게 말했다.


“대답해 줘요. 당신이 그가 맞는지! 만델라!”


“으어어!”


내 목소리에 스스로 놀라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외친 ‘만델라’가 현실에서는 ‘으어어’로 들렸다. 책상 등을 켠 채 잠들어 있었다. 눈앞에는 깜박이는 노트북 모니터와 티셔츠에 흘린 침 자국만 깊은 잠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가 만델라였나?’


눈이 부신 햇살이 쏟아지던 꿈속의 밖은 여전히 어둡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두운 문을 열자, 훅하고 찬 공기가 확 느껴졌다. 경비 초소까지 걸어가 보았다. 불 꺼진 그 안에는 소파에 누워 열심히 주무시는 경비반장님의 얼굴이 보였다. 반장님 얼굴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반장님은 도대체 무슨 황홀한 꿈을 꾸기에 저리 침을 흘리시며 아빠 미소를 짓고 계시는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꿈속의 그의 말을 뒤짚었다.


‘첫 번째 법칙?'


녹색 표지의 <만델라스웨이>란 책을 폈다.


만델라의 첫 번째 법칙, 두려움이 없다고 해서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델라는 용기를 선택의 방식으로 본다. 두려움 없다는 것은 바보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용기라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만델라의 용기에 대한 해설이다.


그런가? 두려워하는 것일까?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두렵다. 루쉰 선생은 ‘무덤’이라는 책 서문에서 자신의 책이 서점에 수북이 쌓여 있는 책무덤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나 역시 쓰는 이 글이 수많은 글의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용기가 선택의 방식이라면 써야 한다는 것일까? 만델라는 말한다. 용기가 있어서 용기 있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용기는 선택일 뿐 두렵다면 용감한 척이라도 한다. 그러면 용기가 있어 보이고 또 용기도 생긴다. 그런 것이다.


두렵다. 쓰는 것이 두렵다. 그래도 써서 올려라. 용기 있는 척 써서 올려라.


그럼 다시 시작한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글을.


어느 화창한 겨울의 오후, 난 헌책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본 매장에서 전집 창고로 이동 중이었다. 당시 나는 할머니들에게 폐지총각이라는 닉네임을 얻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볼 때 나는 매일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거기엔 책이 가득 실려 있었고, 외모는 어떠한가? 헝클어진 머리, 밀지 않은 턱수염, 책 찾다가 헤져버린 양쪽 무릎이 구멍이 난 청바지. 할머니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헌책을 고물상에 파는 사람인 줄 아셨다. 그래서 폐지 총각이라고 부르셨다. 그 닉네임을 들은 나는 너무 당황하여 아니라고 말했지만, 할머니들은 도둑질해서 사는 것도 아닌데 당당해 지라고 응원한다고 하시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셨다.


운명의 그날도, 본 매장에서 전집 창고 가는 길까지, 달동네 주택가 골목길이기에 손수레로 빠져나가야 했다. 손수레를 드리프트하며 사람 하나 지나갈 만한 골목길을 요령껏 빠져서 나갔다. 그러다 저 멀리 골목길의 끝 쪽에 여학생 두 명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두 명은 청순한 긴 생머리에 치마를 한껏 치켜올려 거의 엉덩이가 드러날 뻔한 상태였고, 상의는 그와 반대로 따뜻한 오리털 잠바를 입고 있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 청순한 여학생들은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입에다가 자꾸 무언가를 가지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녀들의 입 끝에서 보이는 그 희미한 불빛, 그것은 담뱃불이었다.


앳된 얼굴에 걸맞지 않게 입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침을 뱉고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여학생들을 보며 뭐랄까 애잔함이 그리고 안타까움이 마음속 깊이 몰려왔다. 아마 남학생이었다면 폐가 썩어 죽던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담배를 피면 어쩌냐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학생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담배 피지 말라고 했다가 ’아저씨가 뭔 데 간섭이에요.‘ 라고 받아 친다면 뭐라 해야 할까?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할까? 아니야, 너무 변태적이야. 인생은 기니 담배도 길다. 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결국 학생들 앞까지 온 나는 나도 모르게 '왠 담배냐며' 큰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목소리에 놀란 여학생들은 황급하게 꺾여 있던 골목길의 안쪽을 냅다 도망을 쳤다. 나 역시 그쪽이 전집 창고를 가는 길이기에 학생들을 쫓아서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순간. 시발! 오로지 시발!이란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골목길의 끝나는 지점에는 조금은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그곳에 20~30명의 아이들이 교복을 입은 채 담배 피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쭈그려 앉은 채, 어떤 아이는 서서 아주 다양한 자세로 한군데 모여 있었다.

담배 연기가 골목길을 가득 채워 마치 영국산업혁명 공장에서 발생한 연기로 인한 스모그가 발생한 런던 길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다행히 여학생들이 주로 많았고, 남학생들은 5명 정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빛, 고독 속에 피어나는 담배 연기 사이를 꿰뚫는 증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손수레에 헌책을 가득 실은 채 넝마와 같은 옷을 입고 나는 그 곳에 서 있었다.


페르시아 대군과 싸우기 위해 좁은 협곡에 자리 잡은 스파르타 군처럼 나는 외로이 골목길 입구에 서 있었다.

증오엔 찬 눈빛의 아이들을 본 순간,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죽는구나, 여기서 죽는구나, 30살의 짧은 인생 그래도 아름다웠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데, 여기서 마무리가 되는건가? 내일 신문에는 ’OO동의 한 주택가 골목길에서 폐지 모으던 젊은 청년 변사체로 발견‘ 이런 기사가 실리는 것은 아닐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 도망간 여학생들을 가르키며 실어증 거린 사람처럼 '어버 어버'하며 서 있던 순간. 불편한 정적을 깼던 건 한 여학생이었다.


‘야, 뒤에 사람들 오나봐! 튀어!’


이 말 한마디에 온 몸이 굳어버린 마법에 걸린 석고상들처럼 있던 아이들이 마법이 풀린 거처럼 아주 재빠르게 후다닥 뛰기 시작했다. 스모그 같은 담배 연기 속을 가로질러 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추측하건데 내가 온 길은 사람 하나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기에 내 뒤로 다른 사람들이 올 것이라 여길 수도 있었다. 더욱이 뒤에 있는 손수레의 책들이 바람이 부딪쳐 음산한 소리를 내기도 하니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오해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들엇다. 결국 아이들은 몇십초 만에 사라졌지만 죽을 고비를 모면한 심장의 소리는 갈비뼈를 뚫고 나올 정도 급격한 바운스를 보여줘 두발로 서있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두려운 게 없다고 해서 용기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에는 총 15개의 넬슨 만델라의 삶의 법칙이 나온다. 그 중 첫 번째 법칙이 바로 저 문장이다.

만델라는 용기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내리고 또 이 책의 저자는 왜 만델라가 그런 정의를 내리게 됐는지 만델라의 인생을 통해 해석해 준다.


비행기를 타면서 두려움에 떨던 만델라가 사람들 앞에서 의연하게 행동한 것, 감옥에서 압박당하는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던 모습 등.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만델라가 왜 용기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용기였다. 그 마음은 나이만 쳐먹은 욕망에 휩싸인 어른이라 불리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나이가 어리면 담배가 안 된다는 무논리의 논리도 아니었다. 그냥 안타까웠다. 그냥 말이다. 그들의 청춘이 안타깝고 속상하기에 그렇게 간 것이다.


자네들이 지금 빨건 담배가 아니라, 희망이라네, 그리고 미래라네란 그런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용기였을까? 아니면 두려움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었을까? 그 구분은 할 수 없지만 다만 만델라 첫 번째 법칙의 마지막 해석에서 조금이나마 해답을 찾았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용기는 얼마든지 낼 수 있다고 말이다. 만델라는 자신의 부인이 자기보다 더 용기가 있다고 했다. 차별의 사회에서 자기 대신 아이들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위대해졌기에 작은 용기가 과대평가가 되는 경우가 있고, 평범한 삶을 살기에 큰 용기가 과소평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적어도 두려움이 있기에 용기를 낼 수 있다는 아니 용감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만델라의 첫 번째 법칙은 나에게도 의미가 무척이나 깊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해서 만델라의 법칙이 이어진다. 신중하게 생각할 것, 다른 사람의 장점만을 볼 것, 앞에서 이끈다는 것 등등 15개 법칙을 모두 풀어서 이야기를 쓰다 보면 아마 이 글은 누구도 읽지 않을거다. 그래서 당당하게 이야기를 줄인다.


만델라가 나에게 꿈속에서 말해 준 말은 아프리카 속담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


폐지총각 루쉰p는 말한다.


'내 글은 다른 작가님의 라이킷을 통해 글이 된다.'



참고 문헌


1. 리처드 스텐절, 넬슨 만델라, 『만델라스 웨이』, 문학동네, 2010, 원제 : Mandela'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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