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약속된 장소에 속지마라.

by 노석

5월 21일 새벽 2시경 의문의 남자가 우리 아파트 16층에서 투신 자살을 했다.

난 다행히 그날 근무가 아니었다. 아침에 출근하자 전날 근무한 분들이 말해주었다. 새벽에 아파트 보도블럭 위 피를 치우고,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게다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봐야 했다고 말이다. 그 분의 충혈된 눈을 보며 비참한 현장이라 추측될 뿐이었다.


나는 소장님의 지시로 경찰에게 그 남자가 투신 자살을 하기 위해 우리 아파트 입구에 들어 온 모습과 엘레베이터에 탄 모습이 찍힌 cctv를 USB에 저장해야 했다. 영상에 저장된 남자를 봤다. 40대 중반 정도, 스포츠 머리, 상하 같은색 츄리닝 차림, 손에는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 아파트 입구에 들어 올 때도, 엘레베이터를 탈 때도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주저함도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오고 내렸다.


그 영상이 녹화된 시각은 밤 12시 반 그가 자살하기 전 1시간 반이나 미리 죽을 장소에 와 있었다. 영상을 보다 답답한 마음에 아파트 현장으로 올라가 봤다. 16층 복도 창문을 열고 남자는 뛰어 내렸다. 그가 뛴 장소에는 여러 개의 같은 담배 꽁초가 뒹굴고 있었고, 창문 문턱은 좀 높았기에 그걸 넘어가기 위해 그의 발자국인 듯한 어지럽게 찍힌 신발 자국이 있었다.


그는 도대체 1시간 반 동안 이곳에 서서 담배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동네의 모든 정보는 한 손에 쥐고 계시는 경비 반장님의 조사에 따르면 그는 이 아파트 주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금산에서 여기로 올라와 공장의 조그만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뛰어내린 아파트 옆 동에는 그의 공장 사장이 살고 있었고 말이다. 임금 체불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그의 죽음에 대한 답은 없었다. 다만 추측만이 무성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뛰어내린 보도블럭 위에 자신의 핏자국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5월 30일 오전, 소장님 지시로 사무실 옆 창고를 말끔하게 치웠다. 오전부터 힘든 일을 해서 피곤에 쩔어 점심먹고 치운 창고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소장님, 전기 과장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급히 달려 나갔다. 보니 직원들은 소방용 에어 메트를 들고 달리고 있었고, 소장님은 소리를 치며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아파트 6층 베란다 난간에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람이 불어서 아주머니의 긴 머리카락에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때문일까, 밑에 펼쳐지는 소방용 에어 메트 때문일까. 그 아주머니 갑자기 난간에서 자기 집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누가 신고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119 구급대, 경찰이 출동했고, 소장님의 지시로 이분들을 데리고 집으로 올라갔다. 문 앞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119 구급대원들은 자동 반사적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를 이용해 현관문을 뜯어내 버렸다. 그리고 안으로 번개같이 들어갔다. 하지만 거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방문이 꽉 닫힌 작은 방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쏠렸고, 구급대원들은 바로 그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 방에는 목을 맨 아주머니가 있었다. 밑에서 잡고 위에서 목맨 줄을 잘라 버렸다. 뒤따라 구급차 이송 침대가 들어왔다. 구급차에 실린 젊은 아주머니는 집에서 흔히 입는 원피스 차림의 츄리닝이었다. 목에 아주 빨갛게 목맨 자국이 확연히 나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냥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급한 와중에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걸치고 있는 작업복 점퍼를 벗으며 여자 구급대원께 말했다.


“밖에 사람들이 많아요. 밖에요.”


이 말은 들은 여자 구급대원은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인 채 점퍼로 아주머니 얼굴을 덮어 주고 이송 침대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주머니를 태운 구급차는 출발했다.


『약속된 장소에서』란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사건에 대한 인터뷰 2부다. 우리나라에서는 1권 『언더그라운드』, 2권 『약속된 장소에서』로 출판되어 있다. 『약속된 장소에서』에 인터뷰 대상은 옴진리교 전, 현직 신자 8명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키가 『약속된 장소에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적 특성이 있을 때 아사하라 쇼코라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지닌 자가 나타나 그런 사회 시스템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흡수해 버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흡수된 사람들은 고뇌를 극복하고자 자신의 믿음을 쇼코가 만들어 낸 이야기에 '절대귀의'를 해 버린 걸로 보았다.


자기 자신이 과연 어디까지 주체적으로 최종 책임을 지느냐 하는 점이죠.(중략) 그들은(옴진리교 신자들) 결국 그것을 구루나 교의에 떠넘겨버리는 겁니다.

- 『약속된 장소에서』 294쪽


한국은 항상 뉴스에 나오지만, 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의 자살율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자살율은 OECD 회원국 평균의 2배가 넘는 수치로, 수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에 옴진리교 같은 교주는 없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가진 무언가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투신 자살한 사람도 자살을 시도한 아주머니도 나도 어찌보면 옴진리교는 없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내뿜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끌려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나름대로 추측하자면, 거칠게 표현하자면 죽으면 고뇌에서 해방된다. 죽음은 고통을 가져간다는 그런 이야기다. 근데 거기에 대한 증거가 뭐가 있는가? 우리가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뿐이지. 죽음이 모든 고통을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뭐냔 말이다.


나도 잡지사 기자 시절 내 발로 일궈낸 360개의 거래처를 뺏기고 4류 기자라는 칭호만 얻은 채 사장에게 내쫓김 당할 때 감당할 수 없는 분노에 한강 변에 가서 서 있었던 것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혼을 뺏겼던 것은 아닐까?


또 나는 헌책방 시절 노조를 만든 주동자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채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했던 사장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분노에 죽음의 이야기에 혼을 뺏겼던 것은 아닐까?


헌책방을 나온 후 취직하려고 기를 썼지만 넣는 이력서마다 퇴짜를 맞고 1년 동안 백수로 지내며 짐승처럼 집에 처박혀 이름 모를 누군가를 저주하고 있을 때 죽음의 이야기에 혼을 마구 뺏겼던 것은 아닐까?


하루키는 말한다. 그런 죽음의 이야기의 구조성에 대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중략)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한 겹 바깥에는, 혹은 한 겹 안쪽에는 또 하나의 다른 상자가 있을 거라고 잠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이해가 우리 세계에 형체를 부여하고 깊이를 주는 것입니다. (중략) 그런데 옴진리교 사람들은 입으로는 '다른 세계'를 희구하지만, 실제 그들의 세계의 성립 방식은 기묘하게 단일하고 평면적입니다. 어느 부분에서 전개가 멈춰버렸어요. 상자 하나의 분량밖에 세계를 바라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약속된 장소에서』 295쪽


자살이라는 하나의 단편적이고 기묘한 상자 하나의 분량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바라본다. 물론 투신 자살한 사람의 그럴 수 밖에 없던 고민과 자살을 시도한 아주머니의 그 처절한 고통을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럴 수도 없고 말이다.


다만 우리는 마치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는 듯이 저 기묘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려 있는 것은 아닐지 하고 추측한다.


『약속된 장소에서』 하루키는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가진 것을 버리는 동시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고통도 받아 들여

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신용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갈등이라는 게 사라져 버리니까요.

- 『약속된 장소에서』 298쪽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옴진리교라는 이해할 수 없는 컬트 종교에 대한 인터뷰라고 느끼지 않았다. 결국 옴진리교가 발생된 뿌리,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도 결국은 죽음이라고 하는 인간의 거대한 주제와 밀접해 있다.


사람들은 욕망이란 것이 다 채워지지 못할 때 그리고 고난이라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짓누를 때 자살이라는 죽음이 그것에 대한 해답인 것처럼 행동을 한다. 이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신이 그 고통을 감수하고 인내하고 가야 하는데 그것이 인생인데, 그러지 않고 죽음의 이야기 모든 것을 절대귀의하고 자신의 믿음을 그곳에 바쳐 버린다.


그럼 그런 죽음의 이야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야오 : 작은 상자에 들어가서 자꾸 생각에만 잠기려고 할 때,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인간관계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죠. 감정입니다. 그것이 작동하면 왠만해선 그런 조그만 상자에 들어 가지 않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질 테니까요.

하루키 : 균형감각이 작동한다는 뜻이군요.

- 『약속된 장소에서』 313쪽


아주머니의 사건이 지나고 며칠이 지난 뒤, 홀로 야간근무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새벽 1시 정도 되었을까, ‘순찰 중’이라 붙여 놓은 유리문 관리사무소 앞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왔다갔다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뭔가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며 그 그림자는 없어졌다.

오밤중에 사람 그림자는 귀신보다 무섭다. 그림자가 사라진 걸 확신한 후 문을 열어보니 조그만 박스가 하나 있었다. 열어보니 아주머니에게 덮어준 내 점퍼가 들어 있었고, 편지가 한 장 있었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이 너무 어려워져.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자신에게 덮어 준 점퍼가 너무 고마웠다고 쓰여 있었다. 밀린 관리비는 빠르게 방법을 찾아 해결하겠다고 쓰여 있었다.


다음날 편지를 소장님에게 보여 주었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뚱뚱한 몸, 대머리의 소장님은 김구 선생님처럼 굳은 표정으로 일어서더니 아주머니를 찾아가셨다. 돌아오신 후 소방대원이 열쇠고리들을 다 뜯어내 찌그러진 문을 관리사무소의 명예를 걸고 고치라고 지시하시고, 현관 도어락은 관리사무소 남은 자재를 활용해 달아주라고 하셨다.


또한 경리 아주머니께는 주민센터에 연락하여 직접 담당자가 현장을 방문해 지원해 줄 수 있는 사항이 있는 지를 요청하라 하셨고, 그날 저녁 동대표 회의를 긴급 소집하여 입주민들에게 아주머니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셨다.


나는 전기 과장과 함께 현관 도어락 설치를 하라는 소장님의 지시를 이행했다. 우리가 현관 도어락을 설치할 동안 아무 말도 없이 계단에 앉아 힘없이 있는 아주머니를 보며 무언가 힘이 되어 주는 말을 해야 한다고 서로 생각했다.


역시나 그런 일에 베테랑인 30대 후반인 전기 과장님은 아주머니께 이번에 설치하는 현관 도어락은 그 어떤 도둑놈이 와도 못 연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힘없이 베시시 웃으며 30대 초반인 듯 한, 머리를 뒤로 단정하게 묶은 아주머니는 ‘우리 집은 뭐 훔쳐갈 것도 없어요’라고 조용히 말하셨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어떻하지란 초조한 마음에 손이 떨렸지만,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베테랑 전기 과장님은 ‘이제 앞으로 훔쳐갈 거 많이 생기실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하하’라고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하며 상황을 마무리 했다.


말이 안 되어도 뭔가 앞으로 치고 나가는 듯한 희망적인 전기 과장님의 말에, 아주머니 조용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밝게 웃으셨다.


하루키는 경고했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위험성을 내포한 컬트 종교 사이에 가로놓인 한 장의 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얇을 지도 모른다.

- 『약속된 장소에서』 333쪽


진짜 얇다. 너무나도 얇다. 그러니까 방심하면 안 된다. 지금 지옥 같아도. 아무리 지옥 같아도. 거짓된 약속된 장소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그곳이 고통을 해방시켜 준다는 보장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1. 무라카미 하루키 , 『언도그라운드 2: 약속된 장소에서, 2010, 원제 : 約束された場所で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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