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방의 검은 불꽃

by 노석

'말콤 엑스'란 빛바랜 책이 있다. 창비에서 1978년 출판된 책인데 1993년 다시 재판된 책이다. 김종철, 이종욱, 정연주라는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이 1977년 생계를 위해 다닌 '종각번역실'이란 곳에서 번역을 했다. 이 책은 인터뷰 형식으로 쓰인 자서전인데 말콤 엑스의 육성을 기록한 사람은 <뿌리>라는 저작을 쓴 알렉스 헤일리다.


이 책을 어떻게 구하게 됐을까?


22살에 대학을 입학하여 1년동안 다니며 대학에서 배움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런 곳에 부모님이 힘들게 벌은 몇 백만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현실에 분노가 치밀어 자퇴를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를 찾기로 다짐했다. 그런 다짐은 다짐이고 생활은 생활이기에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우리 동네의 DVD방에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근무하는 알바를 시작했다.


DVD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에는 카운터가 있다. 카운터 좌측에는 각 방 수에 맞춰 텔레비전 모니터가 겹겹이 쌓여서 설치되어 있다. 여기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통로가 있고, 각 통로마다 5개 정도 방들이 짝 펼쳐져 ㄷ자 모양으로 배치가 되어 있다. 특이한 건 카운터에만 형광등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뿐 그 양옆의 방들 쪽으로는 아주 어두웠다. 다만,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걷기에 도움이 되는 조그만 불빛이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내가 앉아 있는 곳에만 불이 비춰 어두운 무대 위에서 홀로 조명을 받는 무슨 상품 진열대에 올라와 있는 거 같았다. 가뜩이나 외모에 자신도 없는데 단독 조명을 받으니 더 부끄러웠다고나 할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는 다짐은 알바 시작 사흘 만에 쟁반과 함께 날려 버렸다. 어찌나 할 일이 많은지 음료수가 올려 논 쟁반 들고 달리다 엎어져서 던져버리는 등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사장님에게 업무지시 받으며 사흘의 신입사원 연수를 끝내고, 혼자서 근무를 시작했다.


저녁 8시경 20대 초반의 대학생 커플인 듯한 남녀가 들어왔다. 나에게 감동이 있고 재밌는 전쟁 영화를 틀어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대충 외워둔 지식으로 올리버 스톤 감독의 명작 '플래툰'을 주저 없이 권했다.


커플은 틀어달라 하고 배정된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영화 튼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커플이 있는 방 옆 손님이 나가 방을 치우기 위해 지나치던 중, 남자의 고통스러운 신음과 여자의 야릇한 신음이 들려왔다.

DVD방에는 에로 영화도 있다. 국가 승인받은 영화로, 배우들이 벗은 알몸의 영화이나, 중요 부위는 보이지 않도록 절묘한 카메라 각도로 커버하며 마치 섹스하는 듯이 보이게 만드는 영화다. 이런 에로 영화들은 국내에 어떤 드라마나 영화가 유행하면, 그 제목을 가져와 제목을 붙인다. 예를 들어, ‘공공의 적’이란 영화가 흥행하면 ‘공공의 젖’, 혹은 ‘허준’이란 드라마가 유행하면 ‘혀준’이라든지.


그래서 신음이 나는 커플 방에 전쟁 영화가 아니라 에로 영화를 트는 실수를 했다고 여겨 얼른 카운터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각 방에 틀어지는 영화를 확인할 수 있기에 커플 방에 상영 중인 영화를 모니터로 보았다.

모니터에 나오는 장면은 헬기가 미사일을 투하하고 미국 병사들이 베트남 군에게 사정없이 총을 쏘는 과격한 전투 장면이었다. 더 놀라서 다시 커플 방 앞으로 갔으나 여전히 신음이 들렸고, 다시 카운터에 와서 모니터를 보니 여전히 총알 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가 전부인 전투 장면이 한참이었다.


난 그때 알았다. 왜 이리 커플이 DVD방에 많이 오는지. 이곳이 젊은 열정의 커플들에게 영화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란 걸 이제야 이해했다. 왜 DVD방의 조명이 어두운지, 방 안의 소파는 왜 눕듯이 제작이 돼 있는지, 또 방들의 창문은 내부에서 포스터로 덕지, 덕지 붙여놔 안이 보이게 않게 해 놓았는지 말이다.


사장님은 알바를 시작한 첫날 나에게


”DVD방 생명은 은폐야, 은폐. 밖에서 안 보이게 포스터로 꽉 꽉 붙여놔야 해. 알았지?“


라며 업무 개시 전에 각 방을 순찰하며 경건한 몸가짐으로 방에 부착된 포스터가 손상되어 안이 보이지 않는지를 꼼꼼히 체크하셨다. 또 한 가지, 사장님은 나에게 손님들이 질문하면 웃으며 말대꾸하지 말고, '명작이죠'란 대사만 하라고 하셨다.


커플 방의 영화가 끝나고 커플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카운터를 지나가며 나에게 '좋은 영화인데요. 감동했어요'라고 말했다.


난 사장님의 직감에 감탄하며 배운 대로 '명. 작. 이. 죠' 라고 웃으며 말했다.


백인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는 쇼만 해주면 뭐든지 산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구두 닦는 헝겊으로 팍팍 소리를 내는 것과 똑같은 원리였다.

- 말콤 엑스


나중에 ’말콤 엑스’에서 그가 구두닦이, 기차 간식 판매원, 웨이터 등 직업을 전전하며 백인들의 심리를 파악한 구절들을 읽으며 손님을 대하는 건 동, 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이구나 하고 느꼈다.


하지만 나는 DVD방에 오는 그런 열정의 커플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진심으로 말이다. 그런 소리가 들리면 내 안에서 발동되는 성욕을 거부하기 위해 깨달음의 경계를 향해 나아가는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여자의 나체가 썩어 뼈로 변하고 재가 되는 상상도 하였으며, 그 성욕의 방을 지나쳐 청소하러 갈 때는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뛰어가거나 했다.


하지만 그런 수행도 하루, 이틀이지 나도 성욕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지지 않았다. 22살의 젊은 육신에 그런 성욕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상대가 있어야 들어가는 세계에 혼자서는 갈 수 없고, 더욱이 상대를 사귀어야 하는데 그런 가능성은 제로이기에 차라리 성욕을 극복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 전략은 성욕을 발동시키는 커플의 소리를 다른 소리로 잡는다는 계획이었다. 성욕의 소리가 들려오면 카운터에서 다른 영화를 틀고 감상에 집중했다. 성욕을 이겨내기 위해 보기 시작한 영화는 한, 두 편씩 보다가 실력이 늘어 나중에는 하루 최고 4편의 영화를 보는 기록도 경신하였다. 또 영화를 점차 많이 보다 보니 외국 영화의 경우 3배속으로 빨리 돌려서 자막만 보며 스토리를 파악하는 능력도 생겼다.


얼마만큼 영화를 봤을까? 어느 날은 'X'라는 표지의 영화를 발견했다. 표지를 보며 속으로는 조금은 야할 거란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이번에 미국 의회도서관이 선정한 '영구 보존작품'인 스파이크 리 감독의 '말콤 엑스(X)'였다. 시작부터 흑인이 나오더니 노래 부르고 춤추더라.


보는 내내 흑인민권운동가는 ‘마틴 루터 킹’이라는 상식만 가지고 있던 나에게 '말콤 엑스'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일까? 영화 속에서 알려주는 내용만으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결국 퇴근 후 근처 헌책방을 찾아 책들을 뒤졌다. 그렇게 발견한 책이 ’말콤 엑스‘였다. 책은 상, 하로 나뉘어 있었다. 재미로 따지자면 단연코 ’상‘이 압권이다. 거기에는 왜 자신이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헤쳐나올 수 없었는지, 그리고 그가 겪은 다양한 비참의 기록이 아주 재밌게 기술되어 있다.


이 자서전의 머리말을 쓴 뉴욕 타임스의 기자 M.S 핸들러는 그의 인상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아내는 말콤이 떠난 뒤에 조용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뭐랄까요, 검은 표범과 차를 마시는 기분이었어요.'

나는 그 표현에 움찔 놀랐다. 검은 표범은 동물계의 귀족이다. 그 짐승은 아름답다. 그리고 위험하다. 한 인간으로서, 말콤 엑스는 타고난 귀족과 같은 육체적 거동과 내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 말콤 엑스


그렇다. 방황하던 성욕의 포로가 된 내 인생에 쳐들어온 말콤 엑스는 검은 표범 그 자체였다. 깊은 어둠 속에서 눈이 불꽃처럼 빛나며 나에게 물었다. 넌 성욕에 휘둘려 무얼 하고 있냐고 말이다.


말콤 엑스의 아버지는 마커스 가비란 흑인 민족주의자를 따르는 열성적인 신자이자 침례교 목사였다. 가비는 흑인종 순수성의 가치를 치켜들고, 흑인 대중은 선조의 고국인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는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었다. 이것은 후에 말콤 엑스가 이슬람교를 믿으며 흑인 민족주의자로 간 것이 아버지의 이런 발자취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백인 극우자에 의해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경제고 파탄으로 정신병에 걸려 말콤 엑스를 비롯한 형제들은 뿔뿔이 나뉘어 키워지게 된다. 말콤 엑스의 어머니가 가난 속에서도 오로지 남은 것은 자존심이었기에, 정부에서 나누어 주는 구호물자도 거부하고 싸워가다 미쳐가는 과정을 보며 가난은 얼마나 잔인하고 비참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말콤 엑스는 어머니와 헤어진 후 백인 가족에게 보호 입양이 된다. 그 가족들 속에서 학교에 다니며 그는 반장도 하게 되고, 공부에도 훌륭한 성적을 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좋아했던 역사 공부를 가르치던 선생이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말콤X) 그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 중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의 한 사람이고 학교에서도 가장 우수한 축에 들었지만, 그의 눈에 비친 나의 장래는 거의 모든 백인이 흑인을 보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네 처지에서' 장래를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 말콤 엑스


변호사가 돼 보겠다는 말콤 엑스에게 역사 선생은 웃으며 네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손재주가 좋으니 목수나 되라고 말한 것이었다. 말콤 엑스보다 공부도 못하는 백인 학생들에게는 더 좋은 목표를 가지라고 격려하면서 그한테는 '네 처지에서' 어울릴 일이나 찾아보라고 한 것이다!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부도 안 하고 수능 시험을 보겠다는 결기 어린 나에게 수능 원서를 줘야 했던 담임은 이런 말을 했다.


”수능 시험을 보고 성적을 보면 자살할 수도 있으니 원서 줄 수가 없는걸."


아주 화사하게 웃으며 말이다.


말콤 엑스는 그 역사 선생이 자신에게 목수가 되라고 했던 것은 악의가 없었고, 호의에서 나온 말이지만 다만 그것이 미국 백인으로서의 그의 본성이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나 역시 담임이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담임은 말콤 엑스의 역사 선생처럼 '네 처지에서' 어울릴 일을 찾아서 공장을 나가든 기술을 배우러 어디 회사로 취직하라고 나에게 권유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실업계 교사로서의 그의 본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나라는 인간은 나 자신이 원하는 인물이 될 정도로 똑똑한 인간은 못 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속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 말콤 엑스


말콤 엑스는 그 이후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닦이로, 소다수 판매원으로, 기차 샌드위치 판매원으로 살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뉴욕의 할렘에 거처를 정하고 술집 웨이터로 일을 시작해 대마초도 팔고, 사창가에서도 살며 노름과 마약에 찌들어 살기 시작했다. 허슬러라는 사기꾼의 인생이 시작한 된 것이다.


나 역시 먹고살기 위해 술집 웨이터, 편의점 직원, 아파트 공사 현장 잡부 등 알바, 알바 그렇게 끊임없이 알바하다가 천국 갈 것 같은 알바천국의 인생을 보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잠시나마 이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PC방 가서 게임하며 밤을 새곤 했다. 목적이 없는 인생의 사기꾼(허슬러) 같은 삶을 살아 버렸다.


이 시절 내내 나는 정말로 죽어 있었다. 정신적으로 죽은 상태였다. 다만 그런 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 말콤 엑스


그는 결국 자신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백인 여자 자매(그래, 역시 말콤 엑스는 이런 것도 나보다 낫다)와 짜고 흑인 둘을 합쳐 조를 편성해 도둑질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범죄를 눈치챈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그는 도둑질보다도 흑인이 백인 여자와 놀아났다는 사실에 격분한 사회에 의해 10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교도소에서 일하는 백인들, 특히 교도소에 주재하는 심리학자와 목사들에게 음담패설을 계속 퍼부어댔다. 감방 동기들은 맬컴을 ”사탄“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지독한 반종교적 태도 때문이었다.

- 맬컴 X vs 마틴 루터 킹 p92


그는 ”사탄“으로 불릴 정도로 감옥에서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다 동생이 편지를 보냈는데,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말에, 그게 자신을 감옥에서 빼줄 방법이라 여겨 돼지고기를 한순간에 먹지 않았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하자 여태 그를 사탄으로 보던 사람들이 너무 놀라워 했다. 그는 거기서 이상한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독학으로 공부한 지식이 풍부한 감방 동료 빔비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맬컴은 빔비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빔비가 늘 그렇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내가 머리를 쓰려한다면 나에게도 어느 정도는 쓸 머리가 있다고" 이로써 삶 자체를 변화시킨 맬컴의 독학이 시작되었다.

- 맬컴 X vs 마틴 루터 킹 p93


회심(回心)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잘 시간이 되어 불이 꺼지면 희미한 복도 불에 의지해 책을 읽었다. 부족한 자신의 어휘를 보충하기 위해 사전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독학을 했다. 그래서 평생 안경을 쓴 이유도, 그때 당시 혹독한 독서 때문에 눈을 상했기 때문이다.


말콤 엑스가 회심(回心)을 시작한 부분을 신나게 읽는데, 갑자가 DVD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손목에 차고 있는 카시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를 가르키고 있다. 말콤 엑스가 말하기 자기 재산은 오로지 시계와 안경 그리고 서류 가방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계에 대해 이런 말을 덧붙였다.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시계를 차고 있지 않은 사람을 보면 제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관념이 없거든요. 우리가 행동할 때 시간에 대한 올바른 존중심과 가치 관념이 있는가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 말콤 엑스


그러나 난 시간에 관대했고, 나와 같이 시간에 관대한 인간이 또 있었다. 지금 문 두드리는 바로 저 자식이다. 검정색 츄리닝을 위, 아래로 입고 있는데 가운데 자크가 있는 곳에는 마치 도로 중앙선처럼 노란색이 그어진 알기 힘든 차림으로 문 앞에서 헤헤거리며 웃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 에로본좌다. 이 녀석은 근처 PC방에서 알바를 한다.


친구는 이 시간이면 알바가 끝나, 맨날 어두운 DVD방에 혼자 근무하면 위험하니 자기가 지켜줘야 한다며 오는 녀석이다. 근데 나는 이 녀석이 왜 오는지 안다. 에로 본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다른 성욕으로 일본 성인 영화 수집에 최선을 다했다.


에로 본좌가 사실상 찾아오는 이유는 부모님 눈치 때문에 집에서 성인 DVD를 마음껏 못 보니, 여기 빈방에서 실컷 보려고 오는거다. 어찌됐든 빨리 에로본좌를 아무 방에나 밀어넣고, 추우니까 담요 좀 달라는 말에 ’시발 놈아 여기가 여관이여‘라고 욕 한번 해주고 문을 닫았다.


말콤 엑스는 감옥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자기 뿌리에 대해 알았다. 그리고 이슬람교로 흑인들을 위해 사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길을 향하여 암살당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이슬람교에서 이인자로 성장하며 몇백 명만 있던 신도들을 몇만 명으로 만들어 냈고, 후에 이슬람교의 일인자의 성 추문, 또한 조직 내에서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슬람교를 나왔으나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메카로 떠나 증오의 검은 불꽃이 아니라 통합의 검은 불꽃으로 다시 자신을 불태워 갔던 것이다.


더욱이 이슬람교에서 활동할 때는 할렘가의 마약에 찌든 청년을 설득해, 그가 마약을 끊을 마음이 있으면 데려가 강제로 며칠이고 묶어 마약의 금단 증상을 이겨내게 만들어 마약을 끊게 했다. 그렇게 그는 강인한 실천력으로 빈민가 흑인들의 구세주가 되었다.


난 그게 너무나 놀라웠다. 말콤 엑스는 감옥에서 회심(回心)했어도 출옥 후 유명해지면서 많은 유혹이 있었을텐데 어떻게 그것을 단칼에 끊어내고 갈 수 있었을까? 단 한번도 타락의 길로 빠지지 않았을까?


잠시 책을 덮고 사색하며 그의 회심(回心)에 나도 동화되어 뭔가 회심(回心)될려고 하는 찰나였다. ’끼이익‘ 소리가 나더니 에로본좌가 문을 열고 슬금슬금 나오더니 방에 휴지가 다 떨어졌다고 나보고 휴지는 어딨냐고 물었다.


’아, 말콤 엑스 선생님, 저 시발 놈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두루마리 휴지를 두 개나 던져 주며 에로본좌를 방에 다시 집어넣었다.


밤안개가 한참 피어 오르는 새벽 5시경, 힘든 일을(?) 마치고 방에서 나온 에로본좌는 PC방에서 가지고 왔다며 파리바게트 ‘소보루빵’ 두 봉지를 보여주며 같이 먹자고 했다.


어두운 DVD방 새벽의 찬바람을 느끼며, 친구와 빵을 먹었다. 불현 듯 그에게 묻고 싶은게 있었다.


”야, 너는 성욕에 왜이리 집착해? 맨날 성인영화 보지만 내용도 비슷비슷한데 그렇게 재밌냐?"


그는 입가에 묻은 소보루 빵 부스러기를 털더니 자세를 고쳐 앉고 진심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이건 내 인생의 목적이야. 너나 나나 고졸이고 공장가서 일해야 하는데 그건 싫잖아. 우리 둘 다 전기과 였지만, 너 기억나지 우리 소형 발전기 만들다가 불낸거. 우린 기술에도 소질이 없어. 난 집에 형광등도 못 갈거든. 그런데 집에 돈은 있냐? 사업 같은 건 꿈도 못 꾸지. 게다가 우리가 그러면 외모가 낫냐? 길에 지나가다 이유없이 얻어 맞아도 될만한 얼굴들이잖어."


'아, 시발 놈아 그만해. 너무 현실적인 말만 해서 현기증 날 거 같아.'


괴로워하며 얼굴을 찌뿌리는 나에게 그는 불쑥 노트 한권을 들이밀었다.


”이거 봐봐, 난 여기에 영화를 스토리로 분류하고, 어떤 여성이 영화에서 제대로 연기하는가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어.“


그가 준 노트는 200페이지로 두툼했다. 그의 말대로 노트 한 장, 한 장에는 작품 번호, 스토리의 개연성, 여성 연기력에 대한 평가 등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빨간, 파랑 볼펜도 사용해서 자신의 감상평을 빼곡하게 적어 놨다. 내용만 보지 않는다면 무슨 고시 시험 공부하는 노트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진심으로 그가 얼마나 신경써서 노트를 적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정말 자신의 단어를 마음에 심으며 나에게 한마디씩 말했다.


”난 이게 삶의 목적이야. 내가 영화 속에 빠져들어 노트에 적고 있으면 돈 없고, 못 생기고, 아무 것도 못하는 자신에서 벗어나는 거 같아. 생각해 보면 뭔가 나를 불태울 무언가가 없어서 힘들었던 거 같아. 근데 이 노트 작업(?)을 하면서 되게 충실감을 느껴.“


노트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황홀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번뜩 느끼는 게 있었다.


말콤, 내가 너에게서 좋아하는 게 한 가지 있다. 너는 형편없는 애지만 넌 그걸 숨기려 들지 않아, 넌 위선자가 아니야.

- 말콤 엑스


그래, 그래도 이 자식은 위선자가 아니야. 편의점 여자 알바생이 '좋은 하루되세요'라고 말하는 당연한 인사에 마음 떨려서 살 거 없는데도 3번이나 재방문하는 자신, 불타는 성욕을 감추고 길거리에 있는 여성을 힐끔거리며 보는 위선자 같은 자신. 이런 나와 다르다. 그는 자기에 대해 위선이 없어.


말콤 엑스도 이 녀석처럼 삶의 목적을 찾은 거 아닐까? 그가 감옥에서 회심(回心)이후 성욕이나 쾌락이 자신을 허무하게 만드는 걸 알고,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분노의 원인,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의 문제점, 그것을 바꾸는 삶이 그 어떤 쾌락보다 더 큰 쾌락임을 알게 된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 길을 이 녀석처럼 재밌게 평생 흐트러짐 없이 살 수 있던 거 아닐까?


난 왜 이 녀석보다 말콤 엑스보다 못 할까? 성욕을 해결하고 싶다는 짐승같은 욕구에만 몸을 맡긴 채 자신을 낭비하고 있을까? 나도 말콤 엑스처럼 삶의 목표를 찾는다면 모든 욕망을 불태울 검은 불꽃을 가질 수 있을까?


『살색의 감독 무라나시』처럼 기회가 된다면 최고의 성인영화를 찍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도 솔직하게 성욕을 극복하고 무언가를 이뤄내고 싶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날 한동안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퇴근 시간이 되어 방 청소를 때문에 친구를 먼저 떠나 보낼 때,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더니 내 손에 꼭 쥐어 주며 말했다.


”새끼, 진작 말하지. 이거 진짜 아끼는거야. 3일만 빌려줄께.“


어이가 없어 하는 나에게, 마치 자신의 보검을 맡기고 가는 기사처럼 그는 진중한 발걸음으로 DVD방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뒤로 돌아 웃으며 왼쪽 눈을 찡긋 감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진짜 그만해, 미친놈아’


라고 말하려 했으나 이미 그는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주체 못할 정도의 욕망이 온 몸을 휘감을 때 말콤 엑스를 꺼내어 다시 읽는다. 그래도 정말 힘들 때는 친구에게 5년 동안 돌려주지 못한 DVD도 한번 틀어본다.


나는 감옥에서 독서가 내 인생의 경로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바로 그곳에서 알았습니다. 오늘날 내가 보기에, 읽는 능력은 내 안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정신적으로 살아있고 싶은‘ 갈망을 일깨웠습니다.

- 말콤 엑스




참고 문헌

1. 알렉스 헤일리, 『말콤 엑스』, 창비, 1978

2. 제임스 콘, 『맬컴X vs. 마틴 루터 킹』, 갑인공방(갑인미디어), 2005, 원제 : Martin & Malcolm & America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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