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컬렉션 (상) / 출판사 : 북스피어
그는 나에게 말했다. 비참하다고 항상 비참했다고. 자신이 이런 몸이란 걸 자각한 이후부터 안 비참했던 적이 없다고.
초등학교 시절 동정하는 아이들에게 기괴한 몸을 흔들며 춤도 추었다고 한다.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 속에는 그 당시 자기가 좋아했던 여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춤을 추며 좋아하던 여학생을 보며 난생 처음 설레였다고 한다.
집에 가서 좀 더 웃긴 춤도 준비했었다고 한다. 그런 속에서 그 여학생에 대한 맘은 더욱 커졌고, 주변 친구들에게 몇 번이고 물어본 후 여학생에게 고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고백하자마자 일그러진 그 여학생의 표정을 자신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라고 했다. 그 후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살던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아래를 몇 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그 까마득한 높이. 세차게 불던 바람. 그 속에서 그는 한참을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강하게 자신을 잡아끌어 부둥켜 안아 버리는 바람에 뒤로 자빠졌다고 한다. 놀란 그가 본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였다고 했다.
눈물 범벅이 된 어머니는 자신을 안고 그렇게 속상하게 우셨다고 했다. 어머니의 흙투성이가 된 맨발을 보고,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는 누워서 하늘을 봤다고 했다. 하늘은 평온했고, 조용했다.
갑자기 죽어야 될 이유가 사라졌다는 그는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상황이 와도 그 속에 맞게 대처하고 절대 거기에 비참함을 느껴도 굴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더운 열기가 피는 아지랑이 속에 체육시간이 다가왔는지, 주전자를 들고 선을 긋고 있는 학생 하나가 보였다. 그의 어눌한 말소리 속에서 나는 무얼 느낀 것일까? 하지만 더 이상 비참하지 않냐는 질문은 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결국 고사쿠는 전쟁 속에서 식량 부족으로 병이 악화 돼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가 평생을 걸고 완수한 '고쿠라 일기'에 대한 조사는 전쟁 후 원본이 발견이 되어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냈다. 결과를 떠나서 말이다. 그 조사가 없었다면 그는 인생 자체를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단편 소설에 느껴지는 애잔하면서도 강한 고사쿠의 집념은 읽을 때마다 마음을 울린다.
그도 집념이 있었다. 자신이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그는 강하게 살았다. 그리고 우리는 공부를 잘하면 아이들도 괴롭히는 것을 멈출 것이라 생각해서 밤 새서 서로 집에 전화로 격려하며 공부하여 전교 20등 안에도 드는 쾌거를 이뤄냈다. 물론 그렇다고 괴롭힘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난 중3 겨울방학 때 그에게 내가 괴롭힌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이야기했다.
눈이 오던 그 날, 그는 내 손을 잡고 괴롭혔던 덩치 큰 순박한 아이의 집을 함께 찾아가 주었다. 빌라 지하에 살고 있던 덩치 큰 순박한 친구는 내가 오자 꽤 놀란 눈치였다.
눈이 오던 밖에서 그는 나에게 어눌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덩치 큰 순박한 친구와 나는 '잉?'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는 마침 심판관처럼 엄숙하게 나에게 말했다. '꿇어'라고.
나는 눈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바닥이 너무 차가웠다. 마음속에서는 미안해, 정말 내가 잘못햇어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저기...그러니까..."
마치 눈앞에 중 1때 재수 없던 내가 나타나 입을 틀어막은 듯이 '미안하다'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때 '그'의 손이 내 어깨를 눌렀다. 지긋이...
무슨 신호를 받은 것처럼 뜨거운 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용암처럼 터져 목구멍을 뚫고 나왔다.
"미..미안해. 정말 미안해...너한테 너무 미안했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는 절로 90도로 숙여졌다. 얼굴은 붉어진 채 주저리 주저리 진심으로 절실하게 말했다. 다 말했을 때 주위는 너무 고요했다. 고개를 조용히 들자.
덩치 큰 순박한 친구는 양 손으로 가려지지 않는 수박만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더 가관은 내 어깨를 누르고 있던 '그'의 표정. 양 미간을 찌뿌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강하게 감동을 받은 듯.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조금 더 있으면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분위기...어쩌지 흐름따라 나도 울어야 하나 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추운데 문은 왜 열고 나가. 들어오던지 문을 닫고 나가던지!"
덩치 큰 순박한 친구 아버지의 거친 쉰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난 후다닥 일어났고, 덩치 큰 순박한 친구는 눈물을 쓱쓱 닦고 '들어와'라고 말했다.
우리는 조그만 밥상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와 코코아를 아무 대화도 없이 조용히 먹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평온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지금도 너무나 소중하다.
그 후 나는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서로가 엇갈렸다. 중3 졸업식 때 난 건강을 되찾아 왔고, 그는 한결 길어진 머리를 휘날리며 왔다. 그리고 그 날은 그 누구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