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를 냄비에 넣고 적당히 익었을 때 불을 끄세요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추억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 인생 첫 게임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오빠 덕분에 게임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익숙한 것만 찾던 나와는 달리 늘 새것에 흥미를 갖던 성격 때문인지, 오빠는 예전부터 새로운 것을 곧잘 알아 와 내게 알려주고는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게임이었음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2000년대는 플래시 게임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유아 교육을 목적으로 한 게임부터 캐릭터 사업, 그리고 단순 오락 용도의 게임까지. 한 분야의 게임이 질리면 다른 카테고리의 게임으로 넘어가면 그만일 정도로 종류가 상당했다. 오빠가 플레이하던 플래시 게임을 옆에서 구경하기만 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오빠와 함께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수많은 플래시 게임 중에서 내가 가장 즐겨 하던 게임은 바로 ‘슈게임’이었다.
‘슈게임’은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가득한 게임이다. 여아 캐릭터 사업이 대개 그러하듯이 패션부터 음악, 요리, 우정, 그리고 로맨스까지 모든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내가 이 게임에 눈길을 주게 된 것은 분명 이러한 요소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슈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든 점은 도전욕을 불러일으키는 난이도가 아닐까 싶다. 특별히 ‘슈게임’의 요소에 흥미가 없던 오빠조차도 어느 정도 컨트롤이 필요한 게임에는 흥미를 두고는 했으니 말이다.
오빠와 내가 가장 열심히 도전했던 게임은 바로 ‘슈의 라면집’이다. 말 그대로, 라면을 ‘잘’ 끓여서 손님에게 대접하여 1만 원을 버는 것이 목표인 단순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이 단순한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특징들이 존재했다.
① 라면을 잘 끓인 순서대로 0원부터 1천 원까지의 금액을 책정받는다.
② 라면 조리 시간이 무척 짧아 라면을 ‘잘’ 끓이기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라면을 길게 끓이면 국물이 졸아들어 짜다는 이유로 최대 가격의 절반밖에 안 되는 500원을 벌었고, 그 이상으로 냄비를 내버려 두면 냄비가 새까맣게 타버려 팔 수도 없는 라면이 되고 만다. 그야말로 타이밍이 중요한 게임이다. 면은 퍼지지 않게, 계란은 완전히 익었으며, 국물이 완전히 졸아들지 않도록.
우리는 한 명이 라면 재료를 냄비에 넣으면, 다른 한 명은 냄비의 라면이 적당히 끓을 때까지 지켜보고 알려주는 식으로 역할을 분배하여 게임을 플레이하고는 했다. 서로가 제때 지시에 응하지 못해 라면 냄비를 태워 먹으면, 상대를 탓하면서도 다음 판을 기약하며 웃었다. 이번에는 꼭 1만 원을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슈게임’은 아이를 대상으로 한 게임치고는 굉장히 악랄한 난이도를 가진 게임이었다. 그렇지만 원래 사람은 공통의 시련을 마주할 때 강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슈게임’이 기억 속에서 잊힐 때까지 게임을 클리어하지는 못했지만, 오빠와 나는 그 시간 동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을 쌓았다.
유년기의 추억은 새까맣게 타버린 냄비를 새것으로 대체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못하다. 재료를 적당한 시간과 함께 알맞게 익히는 것처럼, 그 시절의 우리이기에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5살 터울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건 우리가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잠시나마 이어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리라.
현재까지도 오빠와 만나면 게임 이야기를 한다. 더는 같은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각자가 게임에 가장 큰 관심을 둔다는 것을 여전히 잘 알고 있다. 몇 개월간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연락하지 않아도. 어린 시절의 기억이 줄곧 우리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