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채용/운영/정산 모든 일을 한 방에 다하는 보물 같은 포지션
몇 개월의 단기간에 기획/예산편성/인사/채용/운영/진행/정산 등 사업의 첫 시작 기획부터 실행, 그리고 마무리인 정산까지 한 번에 다 해볼 수 있는 포지션이 있다면...? 이 말만 들으면 작은 중소기업에서 처절히 굴려질 것 같은 느낌이지만, 사실 국제포럼 및 행사를 주최하는 NGO(비영리기구)에서 이 경험을 아주 찐하게 하지만 의미 있게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과정을 아주 똑똑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지나가다 혹은 뉴스로 한 번쯤은 어느 정부기관 주최 국제행사가 개최되었다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국제행사는 정부부처에서 매년 혹은 그 해에 주최하는 국제행사의 입찰을 올리고, 수많은 비영리기구에서 제안서를 내고 이 행사를 따내 정해진 예산 안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형식이다. 대략적 콘셉트와 방향성이 정해져 있지만 세부 내용은 전혀 정해져 있지 않고 제안서를 내는 단계에서 세부 내용을 '기획'한다. (ex. 포럼의 경우, 국제 토론 내용/일정/교류활동 등을 대략적으로 적는다.) 그리고 이 기획단계에서 인건비/식비/대관비 등등 어느 정도 각 카테고리별 '예산편성'도 해서 제출한다. 제안서 발표 후 행사 주최로 발탁되면 이제 본격 정해진 행사날짜까지 모든 준비를 시작한다.
행사 준비과정에서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꽤나 스트레스받으며 마지막까지 변수로 남아있는 것이 바로 참가자 및 행사스탭 모집, 즉 '채용' 부분이다. 제안서 속 행사 개요 및 내용을 토대로 어느 정도 포스터/자료/상세 토론내용이 정해지면 바로 여러 대학교 혹은 대외활동 관련 그룹/사이트에 직접 홍보를 하며 행사 참가자를 모집한다. 잠깐 여담이지만, 몇 달 전까지 취업준비를 하던 내가 사람을 뽑는 입장이 되어 아주 조금 설렜었는데 이 설렘은 바로 신선한 충격으로 바뀌었다. 이 부분도 이야기하자면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어 3일은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인데, 아주 간략하게 예를 들면 '증명사진 부분에 엄청난 포샵처리된 브이 셀카를 넣은 사람', '여자친구와 함께 참가하고 싶으니 둘 다 꼭 뽑아달라는 사람', '우리 애가 왜 떨어졌냐며 전화 오던 부모', '내가 왜 서울대인데 를 설명하던 사람' 등등 역시 세상은 넓고 여러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것도 매 행사마다....)
아무튼 이렇게 직접 채용도 진행하고, 강의가 필요하면 직접 교수님이나 대사님들께 연락하며 강사 섭외,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하는 행사라면 전통행사 체험활동 섭외 그리고 제일 중요한 호텔 및 행사장소 섭외 등등 모든 것을 직접 하나하나 준비를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협조 공문도 써서 보내며 약간의 할인이 가능한지도 문의하는 영업(?) 같은 경험도 하곤 했다. 그리고 행사기간에는 거의 잠을 2-3시간만 자며 매일 일정을 하나씩 쳐내는(?) 느낌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모두가 안전하게 그리고 즐겁게 행사를 즐긴 이후에는 모든 영수증 처리 그리고 비용 정리/정산을 하고, 결과발표회까지 하고 나면 비로소 하나의 행사가 끝이 났다.
이렇게 행사 준비 및 진행을 몇 개월에 걸쳐 한 바퀴 경험했더니, 전체 준비기간 및 일정을 계속 머릿속에서 챙기는 '큰 숲을 보는 능력'과 진행과정에서 이슈가 없게 작은 비품/식사/이동 등을 꼼꼼하게 챙기는 '나무 하나하나를 챙기는 능력'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 첫 사회생활 시작에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던 때, 모든 게 기한이 있어 미룰 수 없이 어떻게든 진행을 해야 하는 상황에 던져지다 보니, 일단 막막해도 손을 움직이는 실행력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경험은 어떠한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실행되는 거의 모든 업무와 흐름을 얕게나마 다 직접 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같이 으쌰으쌰 일하던 동료들과는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다' 혹은 '어떤 업무가 나에게 맞을지 모르겠다'라는 사람에게는 '네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일단 다 해볼 수 있게 준비해 놨어' 수준인 NGO가 최고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거의 매일) 하곤 했다.
업무 경험 혹은 능력뿐만 아니라 NGO에서 일하며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사람'이었다. 나와 같이 국제 개발 및 교류 사업에 관심이 있어 뛰어든 동료들뿐만 아니라, 영어로 토론을 하는 국제 포럼 혹은 여러 단체들 혹은 아이들과의 교류/재능기부에 참가했던 학생들 대부분 과거의 어떤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많이 생각해 본 사람들이 많았다. 돈을 받고 하는 '일'과 '직장'이었지만, 나와 완전히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좋은 자극이 되고 배움이 되는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 인연들이 또 다음 행사까지 연결되기도 했고, 몇 년 뒤 결혼식도 참가하고,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끔 연락을 하며 이어나가고 있다.
좋은 인연과 경험을 주었던 NGO였지만 '비영리기구'에서도 돈을 버는 '영리'를 생각해야 했던 현실에 부딪혔고, 국제개발은 기구가 아닌 기업의 ESG(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기업의 사회활동)에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다음 커리어로는 전혀 다른 업계, 데이터 관련 업계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