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하기만 하고 늦어지기만 하는 것 같던 봄이 삼월 말이 다가오면서 여기저기 휴지를 풀듯 풀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양녕대군의 묘가 있는 지덕사 앞을 지나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랫만에 열린 문 사이로 소나무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19를 이유로 문이 굳게 닫혀져 있던 지덕사가 열렸다는 것 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었습니다. 건양다경, 입춘대길이라 쓴 입춘방(立春榜)이* 다시 찾아온 봄을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양녕대군은 태종의 장남으로 태자의 위치에 있었으나 폐위를 당하고 동생인 충녕대군이 왕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인간으로 최고의 권력을 앞에 두고 물러나야 했으니 아쉬움이 컸겠지만 기록이 전하는 그의 삶을 보면 오히려 예술과 색을 탐하는 그의 기질을 누릴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69세를 산 그는 세 살 아래였던 세종보다 더 오래 세상의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양녕대군의 사당인 지덕사는 1912년 서울역 근처인 남묘 부근에 있던 것을 양녕대군의 묘소 옆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어릴때 양녕대군의 묘소에서 놀곤 했는데 묘까지 쉽게 갔던걸 생각하면 지금처럼 돌담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묘소는 소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 주변을 정원으로 꾸며놓아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지는 느낌이 듭니다. 크지 않은 공간이어서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다 돌아 볼 수 있습니다. 마침 아무도 없는 안을 마음 편하게 걸었습니다.
잔디밭의 한 구석에 보라빛 오랑캐꽃이 햇볕을 즐기고 있고, 다른 한켠에는 만개를 며칠 앞둔 산수유가 노란 빛으로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산수유로 살던 오랑캐꽃으로 살던 봄의 햇살은 공평하게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살며 무엇을 남길까 골몰하기도 하지만, 욕심을 내고 집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산수유처럼 봄마다 노랗게 꽃을 피우고 때가되면 붉은 열매를 내는 나무도 좋지만 언제 피고 사라졌는지 모를 오랑캐꽃 한송이의 삶이 보잘것 없는건 아니니까요.
봄마당을 한바퀴 돌아 강화도에서 옮겨 심었다는 탱자나무를 만나러갑니다. 이 탱자나무는 밖의 세상이 좋은지 길을 걷다보면 담장너머로 고개를 빠꼼히 내밀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언제 꽃이 피는지, 또 열매를 달았는지 시간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나무입니다. 탱자나무는 아직 봄을 내뿜지 못하고 가시만 우거져 있습니다. 겉은 저래도 안으로는 땅속으로부터 부지런히 물을 올리고 있을 것입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출 때 무언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걸 다시 느끼는 날이었습니다.
* 입춘방 : 입춘에 집안의 기둥이나 대문에 봄을 맞이하는 내용을 써서 붙이는 글귀를 말하며 춘첩자(春帖子)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