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상태에서 집을 수선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렇게 많을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경 쓰고 챙겨야 할 일이 많았다.
인테리어 소요 견적을 보고 업체를 선정하고 이것저것 선택하고 계약하는 일, 무엇보다 거주하고 있는 상태의 집을 고치는 것이기에 집을 비워줘야 해서 집안의 짐을 다 빼내고 그 짐을 어딘가에 보관하고 공사 후 다시 옮기는 입주 이사를 해야 하는 등 모두 쉽지 않았다. 이사 비용도 두 배로 들고 공사 기간 한 달 정도 거주해야 할 집을 단기로 구해야 하는 문제도 생겼다.
드디어 공사 기일을 정하고 짐 옮기는 이사 날 짜가 정해지고 나서 짐 정리를 거의 한 달 가까이했다.
버려야 할 짐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무엇을 이리도 끊임없이 쌓아놓으며 살아왔는지.
너무 많아서 책장, 옷장, 베란다, 주방, 서랍장 등 종류별로 날을 정해서 할 정도의 무지막지한 노동의 양이었다.
늘 옷걸이에 걸려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번도 입지 않는 옷들, 얼마나 비싸게 주고 산 건데, 유행은 좀 지났지만 여전히 버리기 아까운, 그러나 입으려니 선뜻 손이 안 가는, 뭐 그런저런 옷들이 옷장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열심히 몸에 옷에 매달고 다녔던 액세서리들, 그러나 지금은 역시 눈길이 안 가는 것들이었다.
잘 안 쓰게 된 전자제품들, 가구들, 가방, 생활소품들까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지만 결국은 쌓여 있는 셈인 물건들은 세월의 더께처럼 우리 집구석구석을 차지한 채 낡아가고 있었다.
그것들을 보니 나는 소위 요즘 트렌드인 미니멀리즘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쓰임이 없을 게 확실한 것들, 그렇게 쌓여있는 수많은 물건들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아들이
“엄마, 그거 그냥 버리지 말고 당근 해요”
“당근?”
“중고마켓 말이에요.”
“에이, 누가 이런 걸 사 간다고 거기다 내놔?”
“아니, 분명 있다니까요.”
아들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나는 중고마켓에 물건을 올려보았다.
사진을 찍어서 올린 후 그 물건을 판매를 할 건지 무료로 나눔을 할 건지를 선택해야 하는 데서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소형 가전제품, 등산용품, 의자, 장우산, 가방, 어린이용 미술 도구 등 한두 번 쓰고 넣어둔 물건들이 많았는데 판매를 하려면 얼마에 올려야 할지, 내가 안 쓰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물건을 돈을 받고 팔려니 좀 그런가? 하는 등등의 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나는 아이들 키울 때 구입해 놓고 안 쓴 미술용품과 놀이용 매트, 나들이 용품, 등산용품 등을 나눔으로 올렸다. 순식간에 여러 사람이 손을 들었다.
‘제가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받고 싶은데요.’ 하는 솔직하고 젠틀한 메지와 함께.
학생용 미술용품 등에는 20명 가까이 손을 들었다. 아마 초등생 아이를 둔 엄마들이지 싶었다.
딸이 쓰던 화장대와 작은 서랍장도 나눔으로 올렸더니 또한 여러 명이 신청을 해왔다. 화장대는 정말 인기가 많았다. 화장대와 서랍장을 건네주기 전날 밤 나는 알코올솜과 물티슈를 가지고 최대한 꼼꼼하게 닦았다. 괜히 주고도 욕 얻어먹지 않을까 싶은 소심함이 시킨 일이었다.
나는 사실 처음 해보는 중고 거래라 신기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손을 들어 내 물건을 가져간다 하니 신이 나기도 했다. 역시 아들의 조언을 듣고 여러 명이 손을 든 겨우는 가장 먼저 손 든 사람에게 물건을 나눔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들이
“봐요, 엄마. 이런 건 그냥 주면 안 된다니까요? 단 얼마라도 받고 판매하면 사람들이 금방 사가요.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인데 왜 그냥 줘요? 엄만 호구예요?”
“아니, 저렇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나는 너무 좋아. 그리고 저 놀이 매트나 미술용품 등 어차피 우리 집에서는 이제 아무도 쓸 사람이 없는데 주면 일석이조잖아. 나는 따로 버리는 비용 안 들고 가져가는 사람은 무료로 잘 쓰게 되니까 더욱 좋고, 안 그래?”
“내 말은 한 푼이라도 돈을 받고 판매를 하라는 거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거래’라는 거 몰라요?”
와우! 또 낯선 20대 아들의 일성이 시작되었다.
“그래, 그렇기도 하지. 판매를 해서 수익을 올리는 것도 뭐 나쁘지 않지. 그런데....”
하고 나는 더 이상 할 적당한 말을 못 찾은 채 여전히 거실에 쌓여있는 물건 더미를 바라보았다.
“엄마, 솔직히 말해봐요. 그거 얼마 한다고, 구차스럽게 팔아봐야 몇천 원 몇만 원 할 텐데 이런 거 한두 개 중고로 거래를 해서 수익을 내는 게 뭐, 구차하다, 신경 쓰기 싫다, 엄마는 그런 생각인 거지요?
내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아들은 거침없이 나를 압박했다.
“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서 나는 여전히 얼버무렸다.
“그래서 엄마는 부자가 못 되는 거야. 하하하.”
“그런가?”
하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들과의 대화는 일단락되었지만 목에 뭔가 걸린 듯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계속 나를 붙들고 있었다
나를 규정한 아들의 표현
‘소소한 물건들을 중고로 거래해서 수익을 내는 게 뭐 구차하다, 신경 쓰기 싫다.’
정말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정말 그렇다면 나는 '중고 거래'라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시스템과 그 이용자들을 폄훼하는 사람일 뿐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중고 거래, 재활용이라는 이 합리적인 소비문화는 얼마나 근사한가? 얼마나 멋진 아이디어인가?
난 그걸 폄훼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돈을 받고 충분히 판매할 수 있는 물건들을 나눔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람들과 주고받은 거래 채팅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순간 떠올렸다.
나는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누군가에게 아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필요한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물건을 나눔 받은 사람들이 ‘고맙다’ ‘잘 쓰겠다’고 답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나는 생각보다 많이 기뻤다는 사실을.
그 기쁨, 만족감이 물건 값을 받고 판매를 했을 때의 만족도보다 더 크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끙끙대던 수학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기뻤다.
다음 날 나는 아들과 마주 앉아 말했다.
“음 이제야 알았어. 내가 왜 판매를 하지 않고 나눔을 했는지.
판매해서 수익을 얻는 너나 다른 사람들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어. 그냥 나에게는 판매했을 때의 만족도보다 나눔 했을 때 주는 만족도가 더 컸기 때문이야. 분명히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다고..”
나는 마치 초등학생처럼 아들에게 항변했다. 몇천 원 몇만 원을, 그 정도의 거래를 우습게 아는 같잖은 허세로 가득 찬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바득바득 알리려는 내 모습이 일견 우스워 보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개운해졌다.
“음, 엄마의 생각이 그런 거라면 존중!”
역시 쿨하고 깔끔한 20대다. 생각이 다른 엄마를 온전히 존중해 주는 아들의 시선은 신선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묵은 짐을 정리하며 만나는 또 하나의 단상이 내 일상을 의미롭게 채웠다.
하나의 단상을 더 보탠다면
‘버리자, 버리자’이다. 필요한 물건의 70% 만으로도 만족하게 살 수 있는 구력을 기르고 싶다. 최소한으로만 채워서 많이 비워진 공간에 더 많은 빛이 들어와 머물게 하고 싶다, 더 맑은 공기가 시원하게 흐르게 하고 싶다.
리모델링 후 가지게 될 새로워진 공간에 더 이상 불필요한 것들로 채워 녹슬고 먼지 쌓이게 하지 말자.
내 마음 안의 공간도 리모델링하게 되는 것 같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