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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울 Oct 31. 2023

너를 나라에 뺏겼다

D-50

대한민국 성인 남성은 모두 군대에 간다.

우리 아빠는 무려 3년이나 갔고, 어린 줄만 알았던 사촌 동생도 20살이 되자마자 입대를 했다.

너도 당연히 입대를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입대의 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우리의 시간은 왜 이렇게 금방 흘러가는 것일까.




내 동생도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서 곰신 생활을 한 적이 있다.

2년 넘게 만난 사이였지만, 군대를 보내고 얼마 안 되어서 헤어졌다.

대부분의 커플이 그렇게 군대로 인해 이별을 한다.

아니, 군대 때문에 헤어진다고 착각을 한다.


보통 남자가 군대에 들어가 있는 기간은 최소 1년 6개월이다.

그 기간이면 군대와 관련 없는 일반적인 커플들도 헤어질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런데 꼭 군대에서 이별을 하면 그건 군대 때문에 이별한 것이 되어버린다.


군대에 가면 연락과 만남이 어려우니 헤어지게 된단다.

하지만 그건 군인이 아닌 민간인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얻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주 연락하는 게 어려워지고, 거리가 멀어지면 자주 못 만나는 건 똑같다.

그렇기 때문에 연락과 만남이 어려운 게 아니라, 상대에게 소홀해져서 이별한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입대를 하기 전에 여자친구에게 미리 이별을 고하는 남자도 많다.

그 긴 기간 동안 여자친구가 기다리게 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이유로.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정말 여자친구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인지, 내가 군대 들어가서 힘들 테니 여자친구까지 잘 챙길 자신이 없어서인지.




나와 내 남자친구는 연애 기간이 길다.

작년에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낼 때는 5년 차 커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군대 간다고 내가 널 기다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은 우리 둘 다 상상도 안 했다.

의례적으로 하는, “나 기다려줄 거지?”라는 말, “나 널 기다릴 자신이 없어.”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그 시간이 왔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 같다.


네가 떠나던 그날도 난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하지만 내 정신은 내 것이 아니었다.

뭘 하든 불현듯 네 생각이 났고, 군대에 간 널 생각하며 잘 지낼지 걱정하는 마음에 그날은 밥도 잘 안 넘어갔다.

군대에 도착했다는 너의 전화에 나는 잘 다녀오라고 이야기하고, 남몰래 눈물을 훌쩍거리기도 했다.


그때는 그랬다.

너를 군대에 보내는 것이 너무 슬프고 막막했다.

넌 항상 내 곁에서 나와 함께였으니까.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던 나를 가족보다 더 잘 챙겨주던 너였다.

허리디스크가 터져서 누워만 있어야 할 때도 내 곁을 지키던 너였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길 때면 항상 나와 함께 있어주던 너였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너를, 나라에 뺏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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