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의 깊이

남들이 모르는 내 모습

by 김청유

빙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눈에 보이는 부분은 극히 일부일 뿐, 더 큰 덩어리는 바닷속에 잠겨 있다. 우리는 흔히 이런 상태를 ‘빙산의 일각’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언제나 수면 위만 본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 말수가 적으면 조용하니까 내성적일 것이다, 늘 웃고 있으면 고민이 없어 보인다 등으로 멋대로 생각하고 단정 짓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판단은 대체로 간단하고 자신의 확신에 차있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보여주는 건 늘 최소한이고 한해씩 늙어갈수록 침묵을 유지하게 되는 것 같다. 과묵해지면서 굳이 싶은, 필요하지 않은 말들을 아낀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멋대로 추측하기 시작하다가 한번쯤 꼭 뱉는 말이 있다.


'정말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요.'


구설수를 방지하기 위한 침묵은 신비주의콘셉트를 가지도록 만들었다.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기억 속의 나는 조용한 사람으로 남겨있었다. 빙산이 떠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볍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부분이 반드시 물속에 잠긴다. 사람도 비슷하다. 겉으로 무거워 보이는 사람보다 오히려 조용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말수가 적다고 마음이 얕은 건 아니고 드러내지 않는다고 아무 일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상대가 한번 보고 말 사이니 굳이 나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하지 않을 뿐이다.


나에게도 바닷속이 있다. 그 바닷속은 오직 친한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나만 알고 있는 바닷속은 더 깊은 곳에 있고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다져진 가장 단단한 부분이다. 보이는 것이 여유로움이라면 그 여유는 그저 살면서 많이 겪어본 경험들의 결정체일 뿐이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오해해도 예전처럼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설명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설명이 길어지면 변명이 되기 쉽다. 공부할 때도 요약을 보면서 파악하듯 긴 글은 한 번 보고 넘기는 것과 비슷하다. 나를 정말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질문을 한다. 반대로 이미 겉만 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멋대로 생각한다면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믿을 것이다.


빙산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사람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부분은 단정하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나만 알게 남긴다. 오늘도 수면 위에서 조용히 떠 있는, 바자 속에서 여전히 흔들리지 않게 나를 지탱하며 잘 버텼다.

월요일 연재
이전 14화스스로에게 엄격했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