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엄격했던 날들

숨 쉬는 방법을 까먹을 때

by 김청유

나는 열심히 사는 것이 곧 성실함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정해준 기준도 없는데 왜 끼니를 거르면서까지 하루를 바삐 보냈는지 모르겠다. 지나고 보니 열심히 한 것 비해서 허무함이 조금 크게 남는다. 가끔은 숨이 찰 때도 많다. 일을 하다가 숨이 막히는 순간에 의식을 못한 건지 바쁘게 움직이는 손에 비해서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았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깊이 숨을 내뱉고는 한다. 꼭 스스로를 작은 감옥에 가두듯 아무도 나를 감시하지 않는다는 걸 충분히 알면서도 쓸데없이 긴장시키며 살았다. 한줄기의 햇빛조차도 허락하지 않고 어디에도 들키면 안 되는 사람처럼 한순간의 자유라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완벽한 하루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존경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능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 민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순수했던 바람이 숨 막히는 과정이 필요할 줄 몰랐다. 하지만 그 단순한 바람들이 지나치게 선명해지는 순간 그것들은 칼날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날카로운 기준들이 오직 나에게만 적용이 되는 순간이다. 부드러운 깃털들이 끝부분을 뾰족하게 갈아서 나의 피부에 상처를 내면서 피를 내듯 나는 피할 수 없어서 그저 받아들였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의 깊이만 알 뿐 바깥세상은 모른다. 시야가 그 정도만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전부인 줄 알기 때문이다. 그 우물에서 벗어나야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파악할 수 있다. 나는 개구리 같은 사람이었을까? 넓은 세상을 보는 것 대신 '조금만 더 올라가자'라는 세계에서 살면서 무식한 방법으로 위만 바라보고 살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조금만 더 노력하며, 그렇게 '조금만 더'는 끝없는 무리수가 되었다. 도착지 없는 마라톤 같았고 사다리 없는 깊은 우물 같아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자리걸음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쉬는 날에는 제대로 쉴 줄 모르고 생각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나는 쉼을 즐길 줄 모르는 한심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과연 내 인생에서 커리어가 전부였을까, 돈이 전부였을까. 지나고 보면 어릴 때의 고민들이 별 거 아닐 때가 많다. 가끔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고민이 없어서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들도 그들만의 고충이 존재할 텐데 너무 가벼이 여겼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모든 일들이 이렇게까지 피 말리지 않을 텐데 왜 늘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는지. 세상이 나를 밀어붙여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밀여붙였다는 것을. 내가 실수를 해봤자 지구가 멈추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못했다고 세상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할 것도 아닌데 나는 왜 끝없는 목표를 향해 한시라도 쉬지 못하게 만들었는지. 나는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완벽한 선형 구조를 스스로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나는 엄격함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햇살이 얼마나 따뜻한 지도 느끼고 싶고 풀내음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맡아보고 싶다. 언젠가 나는 정말로 나에게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남에게만 따뜻한 사람이 아닌 나에게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괴롭히는 것이 사회가 아닌 나였음을, 나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내가 나의 편이 되도록 더 이상 나를 밀어붙이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했던 지난날 들어 넘어 이제는 작은 감옥에서 스스로 나오면서 밝은 세상에서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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