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굳이?
나는 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는 더더욱 그렇다. 다투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프고 감정이 뒤섞여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래서 웬만하면 상대가 잘못한 상황이라도 먼저 사과하며 갈등을 피하려 한다. 가끔은 이해되지 않는다. 왜 굳이 자존심을 세우며 끝까지 부딪히려 하는 걸까. 정말로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친한 사람에게 승부를 걸어 이겼다고 해서 마음이 편안해질 리가 없는데 그 순간의 우위를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 관계를 계속 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 서로 조금만 비워내면 될 일에 끝까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결국 관계를 소모시키고, 그 마음 씀씀이조차도 야박하게 느껴진다.
노자의 ‘곡즉전(曲則全)’에는 *“굽을 줄 아는 사람이 온전하다”*는 말이 있다. 너무 곧으면 쉽게 부러지고 지나치게 단단하면 금이 간다. 그래서 노자는 부드러움이 오히려 강함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사람 또는 유연하게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가는 법이다. 자존심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굳이 고집을 세우며 얻어내는 승리의 희열이 과연 뜨겁기나 할까. 남에게 손가락질만 받지 않아도 다행일 텐데 그것을 무슨 업적처럼 자랑하고 다닌다면 그 모습은 오히려 초라함만 드러낼 뿐이다.
가끔 강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이 강함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끝까지 맞서고 절대 지지 않으려하고 상대를 설득하거나 굴복시키려는 사람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정작 이것은 비열함인데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낀 강함은 감정을 제어하고 불필요한 싸움을 피할 줄 알며 관계의 균열을 읽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누군가와 다투기보다 사과를 먼저 선택했다. 하지만 이것이 틀린 것임을 안다. 꼭 몇명 사람들은 이런 점을 이용해서 나를 만만하게 보기까지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약함이 아니라 내가 지키고 싶은 마음을 우선순위에 둔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과는 진 사람의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상황을 통제하고 관계를 관리하는 중재역할이면서 동시에 '나'를 놓는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감정이 격해질 때 한 발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은 패배자가 아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성숙한 사람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숙일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숙인 것이 아니다. 나는 요즘 건강한 관계를 끊임없이 배우는 중이다. 친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감정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의견이 달라도 존중을 기본값으로 해야 하고 말 한마디에 배려가 담겨 있어야 한다. 자존심을 세우며 끝까지 이기려는 사람 또는 감정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사람과는 굳이 인연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 관게에는 최소한의 예의와 온도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유연함은 굴욕이 아니고 부드러움은 약함이 아니다. 노자가 말한 굽을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고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너지는 것이 아닌 나를 아끼기 때문에 물러서왔던 것이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자존심을 지키는 데 힘쓰지 말고 나한테 자존심을 세우는 사람부터 먼저 끊어내라고. 누구와도 싸우지 않으면서도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나를 지치게 만드는 관계는 하루 빨리 끊어내고 나를 성장시키는 관계를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