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으면 그걸로 충분한 에세이같은 세상

1.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by lcheRoy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생각난다고 친구가 빌려준 책

450년 전에 부모도 아닌 할아버지가 손자를 키우며 육아일기를 쓴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것도 명문 집안이지만 평범한 가정생활이 아니라 유배생활을 하면서 말이다. 이문건의 삶은 한마디로 너무 고독하고 외롭고 고단했다. 부모 형제 아내 자식까지 모두 잃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아들 온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손자 숙길을 낳았다는 것이다. 58세의 늙은 나이에 간신히 얻은 귀하디 귀한 손자 숙길은 당연히 이문건의 모든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숙길을 돌보는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행복했지만 숙길이가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늘 노심초사였다. 이따금 병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하늘이 무너질 듯 놀라 애를 태우며 밤낮없이 돌봤다. 그렇게 돌 본 숙길이 잘못을 저지르면 이문건은 가차 없이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를 내리쳤다. 울면서 용서를 비는 숙길을 보면 마음이 아팠지만 숙길의 나쁜 습관과 버릇을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매를 들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다. 훗날 숙길이가 할아버지가 쓴 일기를 보고 그 마음을 헤아려 어긋나지 않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문건은 숙길에게 바란 것은 다른 거 없었다. 인륜을 어기지 않는 사람이 돼라, 임금을 도와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어진 신하가 되라는 것이었다. 비록 의병장이 된 숙길이는 44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지만, 할아버지의 바람은 그대로 지키고 죽었던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육아일기다. 할아버지가 손주를 위해서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어떻게 먹이고 재우고 생활하며 위기상황을 대처했는지에 대해서 나온다. 그때 당시에 여러 명을 낳아도 환경 탓에 이와 벼룩이 득실거려 병균을 옮기고 학질이나 천연두 같은 질병으로 연례행사처럼 병치레를 치르고, 손 한번 쓰지 못하고 그냥 죽는 애들은 태반이었다. 잘 키워보고 싶어서 점쟁이를 찾아가 점쟁이 말대로 미신을 믿고 행하고,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고, 아프면 의원을 찾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민간요법이 일상이었다. 특히나 명문 집안은 자손번창과 가문을 잇는 명분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지금 역시나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대신 아프면 좋겠다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통하는 부분이다.

그래도 지금은 가문을 잇는 명분보다는 그저 하나 낳아서 잘 키우자는 뜻이 매우 크게 작용하는 시대이다.

사실, 지금 이 시대에 애 하나 키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시간적, 환경적, 경제력 등등 고려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출산율이 2020년 기준으로 가임여성 1명당 0.84명이라고 하면 말 다한 거 아닌가 싶다.

그만큼 출산율이 떨어지고 출산을 하더라도 과잉 애착으로 이어지다 보니 가정교육의 영향이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임신을 하고 초음파 검사를 할 때 심장을 비롯한 장기들과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여느 부모가 그렇듯 정상적인 아이를 낳고 싶은 건 똑같은 마음이다. 그러다가 출산을 하고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무수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고, 키도 컸으면 좋겠고, 사회생활도 잘해서 능력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부수적인 마음이 따라붙기 시작한다.

더 욕심내지 않고 건전한 생각과 착실한 행동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다 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어른들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외도 보타니에서 또치와 함께

나 역시도 지금 미혼으로 조카를 키우고 있다. 흔한 일이 아니라고 주변에서 엄청 말렸었다. 나는 원래 독신주의자도, 비혼 주의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혼기 가득하다는 이유만으로 생각 없는 결혼은 더욱이 하기 싫었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엄마가 혼자서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나를 불렀다. 나는 그때부터 육아를 직접 체험하게 됐다. 태어났을 때부터 현재(초등 1학년)까지, 엄마가 옆에 있지만 여느 엄마 못지않게 아직은 잘 키워내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고 싶을 만큼 애지중지 하지만 이문건처럼 훈육을 해야 할 상황일 때는 엄하게 다스리는 편이다. 그렇게 8년 동안의 내 시간은 오로지 또치에게 머물러 있다. 책을 읽으면서 측은지심의 마음과 오매불망 손주만을 생각하는 이문건의 마음은 동병상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도 또치가 성적보다는 도리를 어기지 않고 사랑하며 사는 것임을, 그것이 행복하게 잘 사는 길임을 항상 되새겨줄 것이다.

Written by lche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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