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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난 가슴에

구멍은 구 멍으로(픽션과 논픽션 사이3)

by 헬로하이디

차를 바꿨다. 타고 다니던 차 중에서는 가장 비싼 차다. 나름 무리를 했고 그만큼 만족도도 높았다. 처음엔 그랬다.

장맛비처럼 퍼붓는 봄비를 두들겨 맞으며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었다. 어두운 일요일 저녁, 도로는 한적했다.


서울 문산 간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우회전하려는 순간, 차는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심하게 출렁거렸다. 곧바로 스크린 계기판이 깜빡깜빡 난리를 피우며 제 할 일을 한다. 운전석 쪽 앞타이어가 펑크 났다는 알림 메시지에 놀란 가슴이 마구 뛰었다.

‘어, 이거 비용이 만만치 않겠는데?’

속도를 줄이고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무렵 한 번 더 계기판이 요란하게 깜빡였다. 이번엔 뒤쪽 바퀴에도 펑크가 났음을 알렸다.

도로에 난 ‘구멍’으로 어찌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을 겪고 난 후부터 생긴 웃픈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운전할 때마다 바닥에 난 구멍에 집중한다는 것!

메꾸지 않고 방치한 구멍은 누군가의 타이어에 생채기를 내고야 말 것이다. 결국엔 내가 조심할 수밖에 없는 걸까?


‘구멍’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바람이 들락거리는 콧구멍부터 답답하다며 얼굴 내민 존재감 갑인 빵꾸난 양말까지 알고 보니 구멍투성이다.

‘구멍가게’는 왜 ‘구멍’이라는 말을 붙였을까? 궁금해졌다. ‘조그맣게 차린 가게’라고 사전은 말한다. 아주 큰 구멍도 많다. 사람 목숨까지 앗아가는 싱크홀은 얼마나 위협적이란 말인가?


마음에 난 구멍은 또 어떤가? 쉽게 메꿔지지 않는 이 뻥 뚫린 허전함을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해결해야 하니 구멍 때문에 평생 힘들 수도 있다.

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세상은 호기심이 가득하다. 몰래 보아 재미있거나 충격을 받기도 하니까.

한편, 이 ‘구멍’은 어려움을 헤쳐나갈 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모나서 충돌하고 상처받아 찢겨나간 조각들을 매끈하고 둥근 공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구球)을 멍하니 바라보며 도를 닦아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치고 힘들어 힐링이 필요할 때 하는 불 멍, 물 멍처럼 구 '멍’을 해 보는 거 말이다. 아주 작고 볼품없다 싶어도 모두 둥글둥글한 공을 사유해보는 것.


불 멍, 물 멍을 위해 어디론가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공 하나만 있으면 앉은 자리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구 '멍’을 한번 해 볼까나? 구멍 난 타이어로 인해 구멍 난 내 마음을 달래보는 구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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