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바고 징크스

원기옥이 모이기 전까지

by 지전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특정한 상황이나 행동이 반복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때 우리는 흔히 ‘징크스(jinx)에 걸렸다’는 표현을 쓴다. 미신에 가까운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괜히 시험 전날 미역국을 먹으면 낙제를 할 것만 같고 새 신발을 신은 날마다 꼭 비가 내리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스포츠에서는 이것이 단순 ‘기분 탓’ 정도로 치부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진지한 요소로 다뤄진다.


나도 오랜 기간 지녀온 징크스가 있다. 그것은 확정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해 발설하는 순간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버리는, 그래서 스스로 정보를 봉쇄해야만 하는 이름하야 엠바고 징크스! 설명을 덧붙이자면 어떤 계획이나 관계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에게 진척상황이나 목표를 공유하는 순간, 그 일을 감싸고 있던 어떤 매끄러운 흐름에 즉시 균열이 생겨버리는 징크스이다.


마치 어떤 일이 성사되기 위해 필요한 성숙도의 임계점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만 같다. 충분히 일이 성숙될 때까지 자체적으로 엠바고를 걸어버려야만 하는 이 징크스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학창 시절 때였던 것 같다. 무심코 “나 요즘 옆반 누구랑 부쩍 친해지는 중” 말하는 순간 가까워지던 관계가 그대로 파스스 산란해버리고 말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적어도 내가 알기로는—나의 의지가 아닌 외부적인 상황에 의해 흐름이 기가 막히게 엉뚱한 방향으로 꼬여버리고 만다. 이후에 자격증이나 중요한 시험을 준비할 때에도 엠바고가 조기에 깨져서 정보가 노출되어 버리는 경우 기묘하게도 일이 좋지 못한 방향으로 어긋나기 일쑤였다.



엠바고 징크스 작동 원리

그런데 이 엠바고 징크스는 어떤 메커니즘으로 동작하는 것일까. 정말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미신에 불과할까. 다음 세 가지 논리를 들어 작동 원리를 설명해 보겠다.


하나, 동기의 착시현상

실제로 뇌는 단순한 면이 있어서, 흥미롭게도 계획을 말하는 순간 이미 그 목표를 달성한 것과 같은 착각이 일어나 동일한 수준의 쾌락 신호(도파민)를 수신한다고 한다. 멋진 계획을 말하며 얻는 박수갈채에 취해, 정작 실행에 써야 할 동력을 미리 가불해서 써버리는 셈이다. NYU에서 진행한 관련 연구에 따르면 목표를 공표한 그룹이 말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달성률이 더 낮게 나왔다고 한다.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라 뇌가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둘, 관측자 효과

엄밀한 비유는 아닐 수 있지만 양자역학에서도 ‘관측’ 행위가 대상의 상태를 결정짓는다. 해당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아주 유명한 사고실험이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ödinger's Cat)다. 관측 전 입자는 모든 가능성이 겹쳐 있는 ‘중첩’ 상태에 놓여있다. 나의 계획 역시 입 밖에 나오기 전까지는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상자 안에 고양이처럼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그 가능성을 보존하기 위해 상자를 절대 열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셋, 방어기제

계획을 떠벌리지 않으면 그것의 달성 여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엠바고를 치는 행위는 달성에 실패했을 때의 머쓱함을 원천 차단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방어기제일 수 있다. 계획한 일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능청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비상구를 확보해두고자 하는 마음인 것이다.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려주는 나침반

다년간 안고 지내온 이 지독한 징크스의 메커니즘을 한 번은 샅샅이 해체해보고 싶었다. 심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고, 오히려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엠바고가 발동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신호인 셈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남몰래 조용히 원기옥을 모으고 싶은 일은 그만큼 나에게 소중한 일이라는 사인이다. 징크스가 간절한 마음을 인식하는 나침반이 되는 순간이다.


그러니 이 징크스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다루는 나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꽤 귀엽지 않나.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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