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겸손하게

무지한 겸손은 자만의 변종

by 지전

유교권 국가에서 겸손은 굉장한 미덕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 부족한 덕목이기도 하고 그것이 오인되는 경우도 많고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오인되는 경우

무지가 낳은 자만: 너 뭐 돼?

겸손은 정점에 도달한 자들만의 전유물이다. 채워진 것이 없는데 무엇을 낮춘단 말인가. 즉,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려면 역설적으로 내세울 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부터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본적인 자격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어휴 아닙니다(씨익)” 하고 있는 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나는 이미 부정해야 할 만큼 대단한 존재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이다.


첫째로 그 자체가 얼마나 자만 가득한 행위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함이 싫고, 둘째로는 그 무지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아둔함이 안타깝다. 실체 없는 겸손은 위선을 넘어 일종의 코미디가 된다. 본인은 미덕을 실천했다고 만족할지 모르지만 그저 자기 객관화가 안된 사람의 자아 비대칭으로 보일 뿐이다.



정말 그것은 유효한 미덕인가

과대평가되어있다

정말 우리는 겸손해야 하는가. 사실 여전히 스스로 설득되지 않은 부분이다. 실력이 동일하게 뛰어난 사람이 둘 있다고 해보자. A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B는 내세우며 뽐내고 있다. 그렇다면 A가 더 뛰어난 사람인가? 왜? 드러내지 않고 참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기에?


겸손이라는 도피처

겸손을 권하는 이 사회에서 오히려 뽐내지 않는 것이 더 쉽다. 또, 자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맞는 부분은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 능력이 어떤지 상관없이 그냥 언제나 모든 것을 부정하기만 하면 노력 없이 인격자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에이 아니에요”, 그 근거 없는 손사래는 가장 게으른 방어기제이며 미덕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본인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


압도적인 성과 끝에 침묵하는 A보다 자신의 결과물을 당당히 세상에 발산하는 B의 용기를 더 신뢰한다. B는 사회적 압박을 이겨내고 정직한 자기 확신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안전한 침묵 속에 숨지 않고 본인의 실력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다. 혹시 누군가 그런 B를 미워한다면 그 마음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 사람의 미성숙함에서 나온 것이지 결코 B의 탓이 아니다.



겸손의 반대말은 교만이 아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

겸손하지 않음이 곧 교만함은 아니다. 있는 것보다 더 화려하게 포장하여 자신을 호소하는 행위 역시 내가 추구하는 객관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건조하게 팩트 체크를 하자는 말이다. 담백한 객관화를 통해 더 띄우지도 누르지도 않고 현 위치를 인지하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방향성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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