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쫓는 추격자
오기만 해라, 최대한으로 즐겨주마
계절을 온전히 만끽하는 것을 좋아한다. 계절마다 딱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제철음식을 먹는다거나 그 계절에만 허락된 풍경과 액티비티를 즐긴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겨울이 가장 제한적이라고 생각되어 이 시기가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봄의 시작은 언제인가.
봄의 시작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했다. 천문학적 기준에 따라 입춘, 춘분 등의 절기를 척도로 볼 수 있고, 기후학적으로 일평균 기온이 5℃ 이상으로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은 첫 번째 날을 기준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 경량패딩 하나만 걸치고 밖에서 달리고 땀이 식어도 감기 걸리지 않는 요즘, 이미 봄이 시작됐다고 본다—실제 올해 내 달력 2월 10일에 ‘봄 시작’이라고 적어두었다.
시작된 이 계절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달리기만 한 것이 없다. 어느새 피부를 베어갈 듯 날카로운 삭풍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다. 옷을 가볍게 입고 기분 좋은 봄바람을 가르며 한없이 달릴 때면 엄청난 해방감이 느껴진다.
다만 나의 달리기 루틴에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그것은 연속으로 같은 코스를 두세 번 정도 달리고 나면 그 거리에 금세 질려버린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러닝 대회를 나가기 전 기록을 준비할 때는 신호등 없는 정석적인 러닝코스를 —물 길 따라—기계처럼 뛰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종류의 런이 아니다. 오직 나의 기쁨과 유희만을 위한 시간을 말하고 있다.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듣고, 멋진 풍경을 만나면 잠시 멈춰 사진으로 남기는, 걷뛰마저 허용된 그런 자유로움 말이다!
반복되는 풍경에 쉽게 질려버리는 내가 고안해 낸 한 가지 방법은 러닝을 다른 콘텐츠와 결합하는 것이다. 대개 집에서 5~10km 정도 떨어진 특정 목적지를 찍고 달려가는 방식인데, 해당 목적지에는 또 다른 콘텐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콘텐츠라 함은 영화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 공원에 누워 책을 읽으며 피크닉을 즐기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늘 다른 코스를 달릴 수 있는 데다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도 있다. 내 페이스대로 유유자적 즐겼을 뿐인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근사한 장소에 도착해 있는 식이다. 이동시간마저 나의 풍류로 채웠다는 만족감이 든다.
최고의 목적지: 빵
그중 가장 좋아하는 목적지는 평소에 가고 싶어서 지도에 좌표를 찍어둔 빵집이다. 물론, 아무 빵집이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숙련된 장인이 빵을 굽는 아티장(artisan) 베이커리여야만 한다.
빵을 정말 좋아한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는 것 같다. 그중에 아무 빵집 빵이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이들은 정말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양보할 수 없는 엄격한 기준이 있으며 어떤 집 빵은 안 먹느니만 못하다. 그것은 내게 미식이 아닌 불필요한 열량 섭취에 불과할 뿐이다. 퉤.
빵 종류 중에는 블랑제리(boulangerie)—식사빵류—와 비에누아제리(viennoiserie)—페이스트리류—를 선호한다. 바게트나 사워도우는 몸에 나쁘지 않아서 늘 냉동실에 얼려두고 꺼내먹는다. 너무 좋아하는데 참는 빵은 따로 있다: 크로와상과 뺑 오 쇼콜라. 이건 건강에 나쁜 빵이라서 평소에 참는 것들이다.
신나게 달려 빵집에 도착하면 우선 챙겨 온 단백이를 먼저 먹고 따뜻한 디카프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마침내 크로와상을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홀리 몰리. 그곳이 천국도다.
달리기와 빵집 탐방의 결합은 여러모로 완벽하다. 1) 매번 새로운 풍경을 즐기며 뜻밖의 코스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고, 2) 지도에 압정만 박아두고 미뤄왔던 곳을 하나씩 도장 깨기 할 수도 있다. 오직 그 장소만을 가기 위해 외출한다고 생각하면 왠지 아까워서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데 러닝과 결합하면 가는 과정마저도 이득이다. 3) 무엇보다 운동 후 단백질을 먼저 섭취하고 빵을 먹으면 더 건강하게 빵을 즐길 수 있다.
요컨대 내가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다. 벌써부터 다음 주말 날씨 예보를 찾아보는 내 마음은 이미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