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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 Sep 17. 2023

사랑에 관하여

#46. 사랑


  일상 수준의 인문학적 담론을 개진하는 데 있어, 사랑이라는 개념을 다루지 않는 것은 다소 불성실한 태도가 아닐까. 글을 올릴 때마다 매번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다. 다른 글에선 몇 번 언급하긴 했지만, 단일 주제로 사랑을 다루게 되면 내용이 너무 뻔해지거나, 혹은 너무 사변적인 수준에만 머무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에 문득 사랑이 천박해지기 쉬운 시대가 도래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런 조건은 오래전부터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사랑을 성적 쾌락과 동일시하는 세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관념들이 으레 그렇듯, 인문학적 성찰이 점차 결여되는 시기에 사랑 역시 시험대에 서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문명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격리되어 수감 중에 있다.


  하여 사랑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글을 쓴다. 사랑이 필요한 시대인 까닭이다.




  사랑은 여러 관계를 포괄한다. 흔히 떠올리는 연인 사이의 그것을 포함해 부모 자식 관계, 친구 관계, 불특정 다수와의 관계에서도 가능하다. 소위 짝사랑이라고 부르는 일방적인 사랑의 형태는 생면부지의 대상에 대한 사랑을 가능하게 하며, 여타 동물이나 무생물에게도 사랑의 관념을 투사할 수 있다. 이들 각각의 경우를 모두 다루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따라서 나는 일단 사랑의 가능한 유형을 자의적으로 구분해 내용을 개진하고자 한다. 이 유형들은 서로 위계적이지 않으며,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지도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 A 유형 - 도구화

 : 대개 젊은 남녀 사이의 관계로 표상되는 유형이다.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적 자극에 크게 좌우되는 사랑이며, 경우에 따라 과시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다. 이 유형은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자극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첫눈에 반했다던가)가 대부분이며, 이후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사랑을 유지한다. 이 관계의 질은 서로의 기분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는데, 따라서 구성원들은 상대방의 호오에 크게 집착하거나 신경 쓰며, 자신과 대상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즉, 일차적인 수준의 자아-동일화 현상이 일어나며 그만큼 애착을 비롯한 정서적 강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다만 이러한 강렬함은 오래가지 않아 동시에 흔들리기도 쉬우며, 바람이나 불륜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기제상 모든 자극은 반복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기에, 이 유형의 사랑에 고착되는 관계는 결과적으로 이별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A 유형에서는 상대방이 나에게 제공하는 긍정적인 감각적 자극이 중요한데, 외모에 관한 시각적 자극이나 일시적 쾌락을 공유하기 위한 유사한 활동들은 반복적으로 접하게 될수록 효용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이들은 종종 상대방에게서 '처음과 같은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곤 한다. 일차적 정념과 감각적 자극의 긍정적 해석을 사랑의 유일한 근거로 여기는 경우엔 특히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이들은 영원한 쾌락은 없으며, 모든 순간에 강렬한 정념이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후자는 이별에 관한 합리화의 기제로 작동하는 경우다. 


  다만 익숙함에 의한 자극의 저하에 대처하기 위해, 즉 감각적 즐거움의 수준을 이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경우엔 이런 관계도 비교적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괴상한 성벽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활동의 외연을 건전하게 넓혀가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로의 관계는 넓은 의미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관계, 즉 놀이의 이미지로 나타나며 활동의존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이 경우 만남은 즐거움을 야기하는 활동을 위한 시간으로 요약된다. 대화에 있어서도 진지한 토로보단 농담이 우위를 가진다.


  이 관계의 특징적인 한 형태는 사랑이 과시적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인데, 이때 구성원들은 사랑 관계를 하나의 지위로 간주하여 서로를 종속하는 데 만족한다. 즉,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자 하는 목표가 우선되는 탓에, 연인 관계를 대외적으로 유지하는 수준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정략혼과도 비슷하지만, 비교적 이탈과 대체가 자유로우며, 여전히 감각적 즐거움의 추구가 사랑의 주요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선 차이가 있다.


  A 유형의 사랑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서로의 정신성에 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든, 그러한 정신성의 이해가 가능한지도 모르든지 간에 말이다. 어쩌면 육체적 특성에 지나치게 심취해 있는 탓에, 사람의 내면이란 거기서 거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고, 서로 동일한 진심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상대방의 일상적 버릇, 사소한 취향 같은 것들은 실제로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관계 자체가 활동에 고착화된 탓에 이러한 이해는 피상적이며, 이 때문에 비교적 오랫동안 상대방의 '새로운 면을 새롭게 발견'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 설령 그 '새로운 면'이라는 게 관계 초기부터 상대방이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경우, 이들은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상대방의 모습을 사랑할 뿐, 대상 자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A 유형은 서로 가용할 수 있는 자본의 규모가 크거나, 정말로 운이 좋아 서로의 정신성의 세심한 부분들이 맞아떨어지는 경우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즉, 결혼을 하여 백년해로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A 유형에 있어 이런 경우는 확률적으로 지극히 드물다. 오늘날의 연인 사이의 많은 사랑이 이 유형에 해당하는데, 그렇기에 숱한 이별과 이혼이 일종의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A 유형의 핵심 키워드는 도구화다. 이 유형에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은 나를 만족시켜야 하는 도구로 간주된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내 것', '네 것' 등으로 표현하는 소유의 관념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소유물의 교체가 가볍게 일어나듯, 사랑하는 대상의 교체가 쉽게 이뤄지는 것도 이러한 특징을 반영한다.


· B 유형 - 자기 보존

 : 이 유형에선 사랑의 조건화가 두드러진다. 즉, 사랑의 주체와 대상이 동등한 자격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믿고, 이 자격은 주로 경제적 여건, 사회적 지위, 어떤 의미에선 외모의 서열화에서 결정된다. 언뜻 보기에 과시적 성격을 보이는 듯하지만, 이 유형의 사랑에서 조건을 따지는 건 꼭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B 유형에 해당하는 사랑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은 사랑이 개인의 내부에 위치한 정념의 결과라기보단 일종의 사회적 구성물로 간주한다. 즉, 동격의 상대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자신의 것을 대물림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어떻게 보면 B 유형이야말로 전통적인 의미의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관념은 존재의 영속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 즉, 자신의 일부, 혹은 자신을 대표하는 어떤 속성이나 물질 따위를 자신의 생물학적 죽음 뒤에도 유지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일종의 불멸을 지향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엔 괴상한 자기만족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존재에 관한 기억이나 흔적이 보존된다는 것은 필멸의 존재에겐 꽤 중요한 요소다. 100년 전에도 지구엔 억 단위의 인구가 존재했지만, 그들 중 자신의 존재에 관한 관념을 지금까지도 분명하게 유지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어느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어디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사자(死者)는 실상 무(無)와 동일한 것이 아닐까. 당신은 후대에 있어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 그 존재의 의미가 이 세상에 어떤 가치도 남기지 못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B 유형의 사랑은 이를 중요한 쟁점으로 간주한다. 아마도 A 유형은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B 유형에게 사랑은 존재의 보존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존재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조건을 얼마나 잘 갖출 수 있는지다. 통념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여겨지는 이들, 경제적 재산이 많아 평생 다 쓰지 못하고 스러져 갈 이들 등이 이런 사랑을 바란다. 그들은 크든 작든 하나의 존재론적 제국을 건설하길 바란다. 그래서 자신의 크고 작은 업적들이 사후에도 기억되길 바란다. 이 유형은 인간을 무엇보다도 사회적 존재로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의 과정 역시 행위지향적이라기보단 기록지향적이다. 이들은 종종 여행을 다니고, 반드시 사진 등의 기록을 남긴다. 아마 식도락 여행보단 유적지 방문이나 명소 관광을 더 즐길 것이다.

 

  B 유형은 사랑에 있어 신중하다. 그들은 사랑을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 쉽사리 결정하지 않는다. 인간인 이상, 이들 역시 순전히 일시적인 정념에 흔들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B 유형에게 있어 그러한 경험은 실수에 불과하다. 실수는 교정되어야 하고, 고쳐야 할 문제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기계나 소시오패스처럼 모든 걸 계산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아니다. B 유형은 사랑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결혼 이후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일단 관계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이들은 크고 작은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지위나 조건에 결정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또한 상대방과 자신에 대한 분리가 비교적 잘 이루어져 있는 편이다. 오히려 무심한 경우도 있는데, 이들에겐 말하자면 규범적인 선(line)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관계의 잘잘못을 따지는 기준도 서로의 기분보단 이러한 규범적 관례를 적절히 구사했느냐, 혹은 말하자면 무례했냐로 귀결된다.


  이런 사랑은 대개 어느 정도 자기애적이긴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한 수준도 더러 있다. 심각한 경우엔 순전히 자기 보존적 경향에만 심취하게 되고, 상대방은 그 수단으로 여겨질 뿐이다.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분신으로 취급하며 끔찍이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반려자에 대해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양육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에 그렇다. 만약 둘 모두 그런 경향이라면, 이들은 결혼을 서두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에게 집착하여, 극성인 부모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탄생시킬 수도 있다. 자녀는 가장 전통적인 의미의 자아에 관한 사회적 보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B 유형의 핵심 키워드는 자기 보존이다.


  덧붙이자면, 이 유형에 해당하는 사랑의 관념을 가지게 될 경우, 어쩌면 이들은 사랑이나 결혼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존재의 영속은 출산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학문적 업적을 남긴다던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사회적 성취를 이룬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들은 자기 보존을 도모할 수 있다. 이 경우 사랑은 에너지 낭비로 취급되며, 통상적으로 사랑에 들어갈 에너지는 노동이나 작업에 투입된다.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고, 학문 체계에 기여하는 것이 더욱 쉬워진 이 시대에 자기 보존에 있어 결혼은 필수가 아니게 된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이들은 순전히 자기 손으로 자기 보존을 이룩하고자 한다. 오늘날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 C 유형 - 영혼의 동반자

  : 사람들은 종종 정신적 일치, 정신적 고양의 경험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여기서 영혼은 말하자면 신경학적 기제를 통한 설명이나 물질-본위적 관념을 벗어난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사용된다. 물론 이런 느낌은 대개 착각이나 오해에서 기인하지만, 여하간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경험이며, 그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다. C 유형은 인간의 본성을 무엇보다도 정신에 둔다. 따라서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신비가 상대방에게 남아 있지 않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어느 정도 불가능한 목표에 종사하는 셈이다. 즉, 이들은 사랑하고 싶은 부분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대상 자체를 사랑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 자체로, 사랑받고 싶어 한다.


  타인의 정신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고도의 추상적 분별력이 요구된다. 인간의 행위는 설령 동일한 형태로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처한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또 그 행위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들에게 사랑은 일종의 퍼즐풀이 과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구성원들은 각자 상대방을 해체하여 각각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길 바란다. 그렇다고 이들이 항상 온갖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일종의 득도에 이른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정신성의 지향은 막연하게 나타날 수도 있고, 하나의 피상적 낭만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정신성에 관한 퍼즐풀이는 잘못된 숫자가 기입된 스도쿠처럼, 상대방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전체상을 도출할 수도 있다.


  이들은 아마도 행위나 기록보단, 대화를 중요시할 것이다. 현재적 차원의 관찰에 심취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정신은 다른 물질적 구성물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매일 같이 변할 수 있고, 또 실제로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공간의 한계로, 우리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낱낱이 목격할 순 없다. 그래서 C 유형은 주어진 조건 아래 상대방에 관한 최선의 이해를 위해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들에겐 순전히 우연적인 결과나 정신성의 구성에 다소 무관한 것들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말하자면 경제적 여건이나 사회적 지위, 외모의 서열화는 다소 거리를 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다른 조건들을 비교적 경시한다고 해서, 사랑에 관한 이들의 허들이 낮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특히나 C 유형 중에서도 세심한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동반자를 찾는 것이 무척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이들이 상대방을 사랑하게 된다면, 즉 착각에서든 온전한 이해에서든 상대방이 바람직한 정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대상의 교체나 이별이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신성은 개별적이고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을 대체할 대상을 찾는 것 자체도 문제일 뿐더러(이들은 또다시 수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보통은 그러한 대체 자체가 불가능하다. 똑같은 직업이라도 모두 경향이 다르고, 동일한 소득 분위라도 그 정신의 스펙트럼은 천차만별이다. 외모와 정신성의 불일치 여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C 유형의 사랑이 일단 성립하게 되면, 웬만한 문제들은 같이 헤쳐나갈 수 있게 되며, 아마 평균적으로 관계의 지속 기간이 가장 긴 유형일 것이다.


  이들은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이해받는 걸 중요시한다. 어쩌면 이해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조건들이나 혹은 상대방의 정신성이 자신이 바라는 이상에 가깝지 않더라도, 우연이나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에 대한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다. 조금 더 공정한 이들은 '이해의 일치'보단 '이해를 위한 노력'에 방점을 찍을지도 모른다. 말했듯이, 인간은 매일 같이 달라질 수 있고, 또 달라지는 존재다. 어제의 상대방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내일까지, 한 달 뒤까지, 일 년 뒤까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을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에 대해 항상 온전한 집중과 분별력을 발휘하길 바란다. 이는 어떤 의미에선 정신의 경합을 추구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승패로 귀결되진 않더라도 말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정신정 성숙함을 지향하지만, 그 자신이 꼭 그를 성취해 있는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C 유형은 서로를 독립적인 주체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건강한 독립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기도 하지만, 오히려 다른 유형보다도 더 심각한 의존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말하자면 극악의 확률을 뚫고 나타난 좋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에 매몰될지도 모른다. 이때 미성숙한 정신성은 상대방과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키려 하며, 상대방에게 귀속되기도 한다. C 유형의 핵심 키워드는 영혼의 동반자다. 여기서 영혼은 정신성에 관한(아마도 보다 총체적인 의미를 가지는) 비유적 표현이다.




  성급한 독자는 내가 궁극적으로 C 유형의 사랑을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가장 높은 위계를 가지는 유형으로 상정하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교훈적인 얘기가 으레 그렇듯, 이 글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시하라는 조언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위에서 각 유형이 위계적이지도, 우열을 나눌 수 있지도 않다고 전제했던 것이다. 실제로 각 유형은 장단점이 있으며, 어떤 사람도 하나의 유형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랑만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실천의 영역에서 사랑은 각 유형의 부분들을 취합해서 나타나며, 어쩌면 여기서 다루지 않는 다른 속성도 보일지 모른다.  그러니 나는 어떤 사랑이 더 좋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나는 어떤 사랑이 부정적인지에 대해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상의 담론을 토대로 말하자면, 우리가 지양해야 할 사랑은 각 유형의 극단적인 형태다. 


  특히나 A 유형의 극단은 오늘날의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기 쉽다.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물질화, 도구화, 쾌락 만능주의, 피상적 정신성에의 만족은 사랑을 천박하게 만든다. 물론 사랑이 반드시 고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상함은 좋지만, 현실에서 최선의 지점은 천박과 고상함의 중간 지대일 것이다. B 유형의 극단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소시오패스에 관한 얘기에 익숙하다. 이런 사태는 속칭 상위 1%의 영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존재를 계급적으로 파악하는 인식의 실태가 자신의 특권 의식에 대한 착각을 공고히 하고, 이는 각종 논란을 야기한다. C 유형의 극단은 아마도 종교적 맹목성과 닮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상대방을 온전이 이해하고 있다는 믿음에 빠져 어떤 문제 상황에서도 애정을 철회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방이 폭력을 가하거나 범죄를 저질러도, '그런 사람이 아니다'는 말만 되뇌며 망상에 침잠할 수도 있다. 이들은 각종 심리적 범죄에 취약하다.


  각 유형의 극단화는 오늘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현상들과 맞닿아 있다. A 유형의 극단은 불륜이나 가학적 성행위로, B 유형의 극단은 집단 이기주의나 결혼에 관한 무관심으로, C 유형의 극단은 심리적 범죄의 노출로 표상된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문제들은 우리가 현재 처한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 조건 아래 양산되기 쉬운 것들이다. 다른 말로, 우리는 각 사랑의 극단을 부추기는 거시적 조건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그러한 거시적 조건들로부터 사랑을 구제하는 일일 터다. 말하자면 우리는 좀 더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해야 하며, 몸과 정신의 균형을 지향해야 한다. 건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하고, 또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여러 요소들의 혼재된 인상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반성하고 숙고해야만 얻을 수 있는 관념이다. 따라서 사랑을 구제하기 위해선, 사랑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사랑을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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