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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위험에 걸어도 가치로운 용기

소설&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LUDENS

나는 아직도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

인간 군상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다.

어쩌면 통찰하기를 일찌감치 거부하고 선을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니컬하면서도 인간의 선을 믿고 싶다.


부끄러움이나 양심이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이 피 흘려도 오로지 나의 안위만을 위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결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요즘 계속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요즘 침묵의 비겁함에 화가 나 있다.

Silence is compliance..

침묵은 너무나 쉽지만 결국 한번 큰소리쳐보는 악에 동조하는 지지의 목소리를 보태는 일이다.


클레어키건의 소설이자

최근 개봉한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사소하고 지루한 하품 나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강렬해서 그의 표정이, 그의 한숨이, 그의 내민 손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작품이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주인공과 같아도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고 동조했기에 그 끔찍한 막달레나 세탁소의 인권유린은 70년 가까이 자행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 빌은 내내 가슴 답답한 숨을 내쉬고 때로 강박적인 몸짓으로 더러워진 손을 씻는다.

그가 영화 속에서 단 한번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 듯한, 마음의 평온을 얻은 듯한 희미한 미소를 짓는 장면은 너무나 분명하게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내가 살아온 모든 안락한 것들이 무너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위험에 걸어도 가치로운 용기는 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선택을 내릴 때가 아닐까.

내가 부끄러움을 알고 양심이 있는 사람인데 외면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혹자는 빌의 선택을 "무책임"한 것으로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의 선택이 너무나 숭고하고 경외로우면서도 분명 가시밭길 속에서도 그와 함께 가줄 또 다른 빌들이 그의 고난을 덜 힘들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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