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의 나.
스물일곱,
유난히 포근했던 1월의 어느 날 오늘은 조금 부지런해 보기로 한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덩어리 식빵과 커피, 태블릿과 책 한 권을 챙겨서 목포대교로 향한다. 한산한 주말 아침 목포대교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주차를 하고 여락이들 여행 유튜브 영상을 재생한다. 준비해온 식빵을 느릿느릿 뜯어 입에 넣고 커피를 번갈아 마시고 바다를 바라본다. 잠깐 바다를 산책하다가 좋아하는 노래를 재생하고, 책을 펴고 올려다본 바다에는 햇살이 부서져 숨 막히게 반짝인다.
'아... 행복하다'
저 멀리 수평선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어느 날 깨달은 것들>
부끄럽지만 나라는 사람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러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지독하게도 나를 챙기는 성향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참 무관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 있어주는 내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세상을 살다 보니 내 기억력이 이렇게 안 좋았다니 싶은 순간이 많은데, 불과 몇 분 전에 말해준 숙경이의 스케줄이라던지 점심 메뉴들을 다시 한번 물어본다.
"너 점심 뭐라고?"
"사가지"
몇 번 웃어넘겼는데, 이런 상황이 종종 있다 보니 내 작은 오피스텔에서 간혹 쓰는 일기에는 이런 글이 써져있더라.
' 내 생활, 친구와의 소소한 대화, 내 인생의 순간들을 오래오래 기억하면 좋을 텐데.. 간혹 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기록해서 고쳐봐야지. '
열심히 기록하긴 개뿔,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머릿속을 일단 도화지로 만든 다음 잘 때까지 생각을 비우기만 한다. 그러다 보니 상황은 계속 반복된다.
"출근했냐?"
"나 오늘 휴가라고 했잖아..."
'아 맞다. 고치기로 했는데' 하지만 이내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만 내쉬다가 하루가 지나간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은행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사람을 참 많이 만나고, 내 소중한 고객 한 분 한 분마다 기억해야 할 일도 많다. 어르신들이 많이 찾으시는 이 지점은 사소한 것들을 기억해주면 나에게 한없는 정을 주시지만, 기억하지 못하면 호되게 잔소리를 하신다.
"양할머니, 저번에 마을버스에서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은 재발급하셨어요?"
"윤 고객님, 남편분 저번에 수술한다고 하셨는데 잘 퇴원하셨대요?"
이렇듯 기억력 없는 금붕어 같은 나는 온데간데없이 증발하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기록해놓은 고객 비망을 살피는 기억력 좋은 살가운 직원이 된다. 직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쏟아내 버리니, 동시에 공적인 곳이 아닌 사적인 내 관계에서는 참 기억력이 안 좋은 사람이 되어있더라.
'이러다가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내 젊은 시절 소중한 추억들을 다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그때 결심했다. 글을 써야겠다. 기록해야겠다.
내가 쓰는 이 글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도 있고, 나만 간직하는 글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너무 소중한 기록이, 자산이 될 것 같았다. 태생이 이과인 나는 글 쓰는 재주가 너무나도 없어서 우연히 보게되는 여러분이 불편할 수 있지만, 내 소중한 작은 추억들을 마음껏 기록하는 건 내 자유이지 않은가.
그래서 시작했다. 내 작은 버킷리스트 '소소하게 글써보기'. 아직 많이 서툴고,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나의 꾸준함으로 이뤄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