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체를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누군가 있는 힘껏 내 어깨를 누르는 듯 일어날 수 없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모두 시도해본다. 손톱으로 손등을 꼬집어 뜯고, 혀 끝을 깨물고, 엄지발가락을 움직여봐도 마치 남의 살을 꼬집는 듯 인지와 감각이 왜곡된다. 그렇게 가위에서 벗어나려 기를 쓰고 있는데,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내 방 앞에 서서 나를 내려보고 있다. 얼굴을 확인하려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아 얼굴은 볼 수 없다. 남자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는다. 그저 허리에 양손을 짚은 채 침대 위의 나를 내려보고만 있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망연자실한 나는 결국 포기하고 만다. 아득해지는 정신과 시야.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화들짝 잠에서 깬다. 아직 심장은 쿵쾅거리고 호흡도 가쁘다. 손등을 보니 손톱자국이 선명하다.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굴까. 넋이 나간 채로 책상에 앉아있는데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가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꿈에 나온 그 60대 남자는 다름 아닌 아빠였다. 아빠는 꿈에 나온 남자가 입은 옷차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전말은 이렇다. 당시에 나는 이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새벽 2시쯤 공부를 마친 뒤 잠에 들고, 오전 5시 30분쯤 부모님과 같이 기상을 한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부모님이 출근하고 나면, 다시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숙면도 공부도 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생활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날은 아빠가 모처럼 쉬는 날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회사에 데려다주고 목욕탕에 다녀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평소처럼 부모님을 배웅하고 다시 잠들었다간 목욕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에게 시험을 앞두고도 퍼질러 자는 수험생 딸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미 이 생활은 습관이 되었고…. 잠에 들던 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잠이 쏟아졌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자면 안 되는데…. 자면 안 되는데…. 진짜 자면 안 되는데….’만 중얼거리다 결국 잠드는 줄도 모르고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프로이트가 꿈은 억압된 무의식이라고 했던가. 아빠에게 자는 모습을 들킬까 두려워 안간힘을 쓰다 까무러치듯 잠든 탓에 내 무의식이 아빠를 무시무시한 귀신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부모님 두 분 모두 나에게 아침 일찍 일어날 것을 강요한 적은 없다. 순전히 나 혼자 눈치 보여서, 수험생이라면 응당 이 시간에는 일어나야 할 것 같아서, 부모님한테 이 정도 성실함은 보여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자정이 넘은 새벽에 공부가 더 잘 되는 유형이든 뭐든 의미 없다. 부모님 심기만 거슬리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저렇게 이상한 생활 패턴으로 살았다. 부모님이 어디다 자랑할만한 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자식들은 이렇게 이상한 행동들을 한다. 배우 이동휘는 일이 없던 시절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창밖으로 아버지의 정수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아버지의 동선에 맞추어 복도를 지나 비상구 계단에 숨어있다가 아버지가 집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나와서 공원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배우 이동휘나 나나 누가 그러라고 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리고 마음이 이상한 짓을 하게 만든다. 가장 편해야 할 집에서 이러고 살았다.
그날 꾼 꿈을 다시 복기해본다. 꿈에서 아빠는 어떤 행동도 없이 날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하지만 나는 아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다. 아빠의 표정이 궁금하다. 수험 생활 동안 나는 부모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 적이 많지 않다. 두려웠다.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볼까? 한심하게 볼까? 답답하게 볼까? 화가 났을까? 슬플까? 부모님의 표정을 읽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집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았다. 언젠가 그날 꾼 꿈을 다시 꾸게 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빠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리고 말씀드리겠다. 나 공무원 시험은 실패했지만 내 인생마저 실패한 건 아니라고, 어마어마한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저 먹을 만큼은 벌어먹고 살 자신 있다고, 그래서 아빠 소고기 사드리겠다고 당당한 표정으로 외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