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지심과 열등감 그리고 수치심
“하시는 일이…?”
“아… 저, 저 지금 학생이에요.”
형식상 묻는 질문에 다급하게 둘러댄 것이 ‘학생’이라니. 간호사가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처치실을 나간다. ‘93년생이 학생일 수가 있나?’, ‘대학원생이라 생각해주려나?’, ‘대학원생 치고도 많은 나이 아닐까?’, ‘중간에 ‘지금’은 왜 붙였을까.’, ‘그냥 대충 직장인이라고 할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문제를 가지고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바쁜 머릿속을 한참 떠돌다 보니 시선 끝에 걸리는 나의 신속항원검사 키트. 두 줄이 선명하게 보인다.
전날 약국에서 산 자가진단검사 키트로 흐린 두 줄을 본 터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아, (결국은) 나도 걸렸구나.. 다만 계속해서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것은 병원에서 간호사가 내 인적사항을 물었다는 것…. 병원에서 확진자의 직업을 묻는 이유를 아직까지도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크게 중요한 질문은 아니었던 듯싶다. 중요한 건 마치 역린이라도 건드린 양 너무 크게 놀라버린 것이다. 맞다. 나에게 가장 큰 약점은 내가 아직도 백수, 그것도 공시생이라는 것이다. 주변 (몇 없는)친구들은 모두 직장 생활이든 자영업이든 일을 하고 있고, 인터넷 세상에서도 내 또래는 모두 사회생활을 하고 있거나 적어도 회사 생활 경험은 있는 것 같다.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니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삼십 대가 되어있는데, 주변에서 나만큼이나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삼십 대는 찾기 힘들었다.
⚠️ 리빙 포인트: 우울할 때 불특정 다수를 구경하면 우울감이 완화된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 30년 가까이 살다 보면 소소한 불편정도는 바로바로 처치할 수 있는 매뉴얼이 몇개 생기기 마련이다. 작년 여름, 또 이유 없이 찾아온 우울감에 일주일을 버티다 결국 나의 리빙 포인트를 하나 써먹기로 했다. 막연히 홍대 쪽에 가면 불특정 다수가 많겠지 하며 홍대로 목적지를 정하고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보았다. 다행히 친구 둘이 퇴근 후에 만날 수 있다고 했고, 나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이 도착해 지나가는 사람들과 광고, 가게들을 구경했다. ‘역시 사람은 돌아다녀야 해. 리프레시는 필수야.’ 하면서 조금 상기된 기분으로 친구들을 맞이 했다. 오랜만에 만난 서로를 반가워하며 어떻게 지냈냐며 너스레를 떨고 난 뒤 각자 사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낯선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느 회사 주식을 얼마를 샀다는 둥, 요즘은 미국 주식을 공부하고 있다는 둥, 승진을 앞두고 있어서 신경 쓸 게 많다는 둥, 남자 친구와 결혼 얘기가 오간다는 둥…. 지금 생각하면 다들 흔하게들 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에 나는 친구들이 대화하는 틈 사이에서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벌이가 전무해 재테크는커녕 엄마 카드만 눈치 보면서 쓰는 내 상황과 ‘태정태세문단세…’ 하는 공부 중이라 신경 쓸 상사도 쌓을 커리어도 없는 내 상황이 너무 작고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결혼 자금으로 몇 천이니 몇 억이니 하는 대화를 할 때는 아마 일부러 딴생각을 했던 거 같다. 얼굴은 뜨거워지고, 표정은 굳어가고, 말은 없어지고…. 그 와중에 지금 창피해 죽겠는 이 감정이 과연 친구들의 눈에도 표가 날지를 살폈다. 억지로 목소리 톤을 높여 ‘야, 이거 진짜 맛있다. 먹어봐. 이 집 맛집이네.’만 남발하는 내 모습이 구차해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카카오톡을 탈퇴했다. 꽤나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전부터 고민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탈퇴를 했다. 내 또래들은 다들 이렇게 번듯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었구나, 나만 아직도 학생처럼 세상 물정 모르고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수치심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와도 연결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알던, 재기 발랄하고 자신감 넘치던 과거의 나를 알던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영구 삭제해버리고 싶었다.
카카오톡 탈퇴 자체는 의미가 크지 않았다. 수험 생활을 시작하면서 친구와 잡담하는 시간이 줄어 어차피 카카오톡 이용시간은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카카오톡 탈퇴의 진짜 의미는 성공할 때까지는 다시는 가입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카카오톡은 재가입을 하면 내 전화번호를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친구’라며 동네방네 재가입을 알린다. 이는 나를 스쳐간 이들로부터 잘 잊혀서 살고 있다가 별안간 ‘저 여기 살아있어요!’ 하며 벌거벗은 나를 내보여야 하는 일이다. 카카오톡 재가입은 어느 정도 나 자신에 당당해졌을 때,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때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한 카카오톡을 다시 설치했다. 재가입을 할 정도로 마음이 회복된 거냐고? 재가입이 아니라… 신규가입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몇 달 뒤 전화번호마저 바꾸었다. 그 사이 내가 카카오톡을 탈퇴한 것을 알아챈 지인들이(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감사한 마음들이지만) 무슨 일이냐며 문자 메시지와 전화로 연락을 준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 너무너무 잘 지내고 있으며, 시험에 집중하려고 탈퇴했다며 파이팅 넘치게 ‘시험 끝나면 연락 줄게!’ 했지만 내 속은 썩어 문드러져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 너무너무 못 지내고 있으며, 시험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멋지게 잘 먹고 잘 사는 당신들 앞에 설 용기가 안 나서 도망간 거라고 말할 용기는… 죽었다 깨나도 없었다. 그렇게 전화번호를 바꾸고 연락처를 정리하며 과거 인연들에게 일방적으로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동아리 활동과 대외활동 등으로 활발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의 연락처에는 가족들과 다섯 명 남짓한 친구들의 전화번호만이 남아있었다.
자격지심과 열등감 그리고 수치심. 최근 몇 년간 나를 지배해온 감정이다. 2년 정도면 붙는다는 9급 공무원을 4년째 준비 중인 인간,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인간, 소득이 없는 인간, 비생산적인 인간, 한심한 인간, 잉여인간...
남을 향했다면 떠올리지도 못했을 잔인한 수식어를 수없이 만들었다. 그걸 내 손으로 내 목에 걸어놓고서는 이 꼴로 어떻게 나가냐며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며 살았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