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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Nov 08. 2023

자퇴하니까 좋니?

[자퇴생 혼공르포르타주 3화]

딸아이가 자퇴한지 한달이 되었다. 사실 한달 밖에 안 지났나 싶게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는 게 너무도 익숙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얼마후에 자퇴서를 내서 그런가 아이가 자퇴를 한 것이 아니라 아주 긴 방학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자퇴는 사실 우리 가족의 일상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 그냥 전과 같은 평온한 일상의 연장선이다. 오히려 아이는 표정이 더 밝아졌고 학교 다닐때보다 스스로에 대해 더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생각이 난 김에 오늘은 커피를 마시며 아이에게 물었다.


자퇴하니까 좋니?


느린 성격이 장점이 되는 커피 내리기


딸아이는 크게 3가지가 좋다고 한다.최근 딸은 직접 커피를 갈고 내리는 취미가 생겨서 커피 원두별 고유의 맛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르쳐 준 드립 커피를 이제는 나보다 더 맛을 잘 내어 딸의 전담이 되었다. 그래서 아점을 먹고 난 후에 직접 커피를 내려 수다를 떠는 커피 타임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한다. 오전에 일어나서 간단한 하루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한 후에 12시30분쯤 아점을 먹는데, 그 이후 1시간 정도 직접 내린 커피와 함께 수다 타임을 갖는다.


커피 마시며 듣고 있는 음악이야기 부터 정치 이야기, 그주의 사건 뉴스 이야기, 반려견 이야기, 수능 공부에 대한 계획이나 입시 이야기, 진로에 관련된 이야기, 외모 이야기, 책 이야기, 웹툰 이야기, 날씨와 계절이야기 등.  이 시간에는 정해진 주제는 없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또 하나는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해서 쓸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학교에 다닐때는 정해진 시간에 일률적으로 모든 아이들이 같은 과목을 공부해야한다. 좋든 싫든 강제적으로 굴러가는 하루를 살아내는 게 자신은 조금 힘들었는데, 자퇴를 하니 하루의 모든 시간을 자신의 뜻대로 운영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학교에 다닐적에는 늦어도 7시30분에 일어나야 등교시간을 맞출 수 있고, 어쩌다 지각이라도 하게 되면 생기부에 기록이 되니 늘 압박감을 갖고 살았는데 그런것이 없어 아침이 여유로워 좋다고 말한다.


사실 아이의 이런 만족감과는 별개로 나는 내심 아이가 자퇴를 해도 동생이 학교가는 시간에 맞춰 일찍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길 바랐다. 그런데 딸아이는 자퇴를 하자마자 늦잠을 자기 시작했다. 빨리 일어나도 8시30분, 전날 에너지 소모가 많은 공부를 했다면 9시나 9시30분에 일어나기도 했다. 나는 딸에게 오전 시간을 잘 활용하면 하루가 더 여유로울 것 같다는 조언을 했다. 딸은 알았다고 말은 했지만 여전히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난 여기서 더 잔소리를 해야하나 그냥 스스로 깨닫고 생활리듬을 조정할때까지 기다려야하나 고민했다. 한번 리듬이 굳어지면 바뀌기 힘드니 지금 당장 생활 리듬을 바꾸도록 해야한다는 내면의 소리가 커졌다. 난 딸에게 몇차례 아침을 조금 더 일찍 시작하면 좋겠다고 말했고, 딸은 매번 알겠다고 했지만 한두번 지켜지다가 다시 느슨해졌다.


나는 딸에게 잔소리를 더하기전에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왜? 학교도 다니지 않는데 일찍 일어나야 하지?  여기에 나 역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듯한 말이야 있었다.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자퇴를 한게 아니고, 수능 시험도 일찍 시작하니 그 리듬대로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궁색하게 찾은 이유였다.


하지만 딸 아이는 일어나는 시간만 학교 다닐때보다 1시간에서 1시간 30분 늦어졌을뿐 자신의 속도와 리듬대로 계획을 짜고 불가피하게 아픈 상황이 아니면 하루 계획한 공부를 너무도 잘 실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아침에 조금 더 자는 게 크게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수능 시험이 일찍 시작하니 지금부터 그 리듬대로 살아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것 역시 그럴듯하지만 필연적이라 할수는 없다.


난 더 이상 아침에 일어나는 문제로 아이와 실강이를 벌이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생활리듬이 공부 과정과 결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했을때 다시 이야기해도 좋을 듯 싶었다. 일단 지금은 아이 뜻대로 하게 두고 나는 그저 지켜보고 따라가는 게 우선 인 듯 싶었다.


어차피 공부도 본인의 일이고, 삶을 사는 것도 딸의 몫이다.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부모가 아이일에 자꾸 개입하는가, 아니면 일단은 그냥 두고 아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해서 수정해가는 가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가는  '삶의 태도'를 만드는 핵심이다.





중국 송나라에 한 바보같은 농부가 살았다. 어느 여름날 모내기를 마친 후 벼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해 못견디다 논으로 나가 벼를 살펴봤다. 그러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옆 집 논의 벼보다 덜 자란 것 같았다. 농부는 한 가지 꾀를 냈다. 그는 벼의 순을 잡아 빼보니 약간 더 자란 것 같자 논 전체의 벼를 잡아 당겨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아주 만족한 마음으로 잠을 푹잤다. 이튿날 그는 어제 들어 올려놓은 벼가 얼마나 더 자랐나 보기 위해 논으로 나갔다. 아아... 이게 무슨 일인가. 밤새 벼가 모두 시들어 고개를 푹 처박고 있었다.


발묘조장이란 고사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조장(助長)이라는 말이 나왔다.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뭔가 잘해 보려고 빨리 서두르면 도리어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의미가 있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내 아이를 기르면서 가장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이 바로 이 조장이란 단어다.


먼저 살아 본 경험은 때론 지혜가 아니라 편견과 아집으로 쓰이기도 한다. 내가 해봤는데, 내가 아는데, 이 생각은 넌 안해봐서 모른다로 귀결되고 어린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강권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만큼 어린사람들을 대할때 경계해야할 태도도 없는 것 같다.


먼저 앞서 살아 본 사람들은 어린 사람들의 많은 행동들이 미숙해서 어리섞어 보이기 쉽다. 그건 그들이 진짜 어리섞어서가 아니라 그저 삶의 경험이 부족하고 아는 것이 어른들에 비해 적어서다. 그런 격차야 자연히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없어지고 어느덧 부모보다 선생보다도 훌륭하게 자라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내가 아는 것을 전부 아이에게 가르치려거나, 내가 대신 아이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려는 태도는 아이에게 당장에는 도움이 되는 듯하지만 장기적으로 아이 성장을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다. 부모와 어른들은 당장 아이에게 좋은 것을 편리한것을 안기고 불편함과 힘듦을 벗어나게 해주는것이 사랑이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사랑은 '스스로 깨닫고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아니고, 나의 시대와 그들의 시대는 다르고, 그러므로 나의 경험은 그들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 비슷할수는 있으 나 아마 다른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스스로 자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도움이나 조언이라고 포장하지 말자고 늘 다짐했다. 그저 부모의 조바심이고 불안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으니.


언제나 부모와 어른의 올바른 자세는 '믿음'과 '기다림'이며 이게 힘들다면 아이를 닥달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성찰해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혼자 태어나지 않았고, 혼자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언제나 부모의 성장과도 맛 닿아 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의 성장 역시 '조장'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난 두 아이에게는 평생 부모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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