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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Nov 15. 2023

자퇴를 지망합니다.

[자퇴생 혼공 르포르타주 4화]

"누나!! 학교는 다니고 말고하는 게 아니야. 학교는 그냥 다녀야하는거야!"


딸이 자퇴하기 전 가족들은 '딸의 자퇴 선언'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렇게 거침없이 말하는 아들의 말에 딸이 마음 상하지 않을까 해서 표정을 살폈다. 가족 중에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가장 꼰대스러운 중2 아들은 두살 위인 누나에게 이 말을 시작으로 연이어 쓴소리를 날렸다.


"그리고 누나가 자퇴를 하는 건 현실도피일뿐이지, 솔직히 미래를 위해 모험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고!"


 " 야! 내가 왜 현실도피야. 내가 그동안 공부를 안했던 것도 아니고, 자퇴하고 나서 놀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게 왜 현실도피냐."


"그리고 학교는 공부만 하는데가 아니라고, 친구들도 만나고 선생님들도 만나고 여러가지 학교에서 해야할 일들을 하면서 보내는 거야. "


"너같은 '인싸'새끼가 어떻게 알겠냐! 물론 재밌는 애들도 있고, 애들이 지루할때 드립치면 웃기기도 한데, 나는 너처럼 친구도 없고 너처럼 친구가 중요하지도 않아. 학교 수업은 열심히 들으려고는 하지만 너무 지엽적이고 지루해.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기가빨려. 혹시 내신이라도 잘 나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잖아. 그래서 나한테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낭비같단 말야!"


"그래 니 일이니 니가 알아서 해라. 엄마! 그냥 누나 자퇴하라고 해!"


"음.....둘다 틀린 말은 아니지. 당신 생각은 어때?"


"난 솔직히 다른 것보다 학교라는 울타리에를 벗어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뭔가 일반적인 경로를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을 것 같거든. 학교가 아무리 마음에 안들어도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희들은 보호가 되고 안정감을 주기도 하는 거야. 그리고 난 극단적으로 내신이냐 수능이냐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어찌되었든 2학년때까지는 둘다 병행하는 게 더 가능성이 많은거라 생각해"


"음....그것도 맞는 말이네..."


"엄마는 어떤 의견인데? 누나 자퇴 허락 진짜 해줄거야?"


"너처럼 친구에서든 선생님들에게 받는 인정이든 어떻게든 학교에서 의미를 찾으면, 학교가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더라도 안다니는 것보다는 다니는 게 나을지 몰라. 그런데 너랑 누나는 성격도 다르고 가진 장단점도 다르잖아. 누나는  너처럼 의미를 찾기 힘들고, 그럴바에 엄마는 누나가 수능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는 생각해. 그런데 그걸 학교 다니면서 하느냐 아니면 자퇴를 하고 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지"


"엄마! 그렇다면 자퇴를 하고 수능에만 집중하는게 훨씬 효율적이잖아. 학교에서는 내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야하는데 나한테는 의미가 없어"


"그런데  그렇지도 않아. 1학년때 배우는 것은 기초지만 2학년때 배우는 내신은 다 수능과목과 진도와 일치하니까 의미가 없는건 아니야"


"그래 그런데 학교에서는 사회나 과학 같은 건 하루면 보는 내용을 1주일동안 진도를 나가. 그리고 국어는 하나의 지문만 지엽적으로 분석하는데 그 시간에 여러가지 글을 읽는게 나아. 그리고 영어는 내가 학원도 안다니니까 가장 도움이 되기는 하는데 자퇴하고 인강듣는게 더 강의 질이 좋을거잖아. 그리고 수학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라 재밌기는 한데 수업에서는 개념위주로 하고 시험은 심화를 내버린다고."


"그럼 일단 자퇴모드로 방학을 살아보고 자퇴를 했을때 장단점에 대해 방학끝나고 다시 얘기해보자! "






-블로그에 쓴 딸의 일기-


 



꼼꼼한 성격, 주변 상황을 잽싸게 파악하는 능력, 문제를 푸는 속도가 학교 내신 시험에서는 중요하다. 하지만 딸 아이는 그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학교 수업을 충실히 들어야 좋은 생기부가 써지고, 학교 시험인 내신과 수능시험을 둘다 잘 봐야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었다. 무엇을 하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고등학생이 되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기 시작했다.아이는 시험이 있는 달은 하루도 쉬지 못했고 학교 다녀 온 다음에 잠깐 한숨 돌린 뒤 12시-1시까지 공부를 했고, 아이의 눈밑 다크써클은 점점 짙어져갔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늘 애썼다. 아이가 가진 능력은 학교에서는 별 쓸모가 없어보였고, 단점만 부각되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고민이 더 깊어졌다. 아이의 내신 성적은 노력이야 하면 점점 오르기는 하겠지만 그 노력을 하는 게 정말 맞나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물론 말도 안되게 커트라인 높은 의대가 목표가 아니기에 꾸준히 성적을 올리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신 성적을 올리기위한 노력이란 것이 아이가 가진 결점을 메꾸는데 집중해야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난 평소 결점에 주목하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빨리 파악해서 그것을 극대화시켜야 사회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해왔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 1학기 내내 난 이런 고민들과 매일을 나 자신과 싸워야 했다.


'현실에 순응하고 참고 견디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딸아이를 위한 일일까?'


'그 현실이 잘못된 현실이라면 참고 견디는 것이 자아를 존중하는 방식이 아니여도 가치가 있을까?'


'이 모든 게 오로지 현실이라는 이유로 그래야하는 것일까, 정말 그래야하는 것일까?"


딸은 수능모의고사라고 실수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내신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주기때문에 실수가 적었다. 모의고사도 처음보는 문제 유형에 적응하지 못해 시간 안에 풀지 못하기도 했지만, 딸은 차차 문제풀이에 적응을 해나갔고 모의 고사 성적은 점점 더 괜찮은 성적들이 나오고 있었다. 학교 내신은 아는 범위에서 배운 곳에서 나오지만, 수능 모의고사는 국어나 영어의 경우 본적 없는 지문들이 나오고 수학의 경우는 범위가 더 넓고 사고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문제를 해석하고 생각해서 풀어야하는 시험이기때문에 암기와 이해를 바탕으로하는 내신보다 성적향상도가 빠를 수 없다. 공부 내공이 좀 쌓여야 한다.


여러면으로 볼때 확실히 수능은 딸이 가진 장점을 활용하기에 훨씬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딸의 수능 모의 고사 성적은 3월 , 6월엔 상위3%, 9월 모의고사에서는 상위 0.8%로 좋은 성적이 나왔다. 3월 모의고사는 중등범위라 실력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6월모의고사는 학생수가 가장 많은 서울 지역학교가 시험을 보지 않아서 상대적 위치를 알기 어렵다. 그래서 고1에서 첫 모의고사는 9월 모의고사라고 보는 게 무방하다. 1학기 고등학교 시험이 무엇인지 경험한 전국의 현 고1 인문계 고등학교 아이들이 모두 다 같이 보는 이 시험은 아이의 기본 공부능력과 위치파악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모의고사는 어디까지나 공부를 잘 하고 있는가 확인하는 '현재의 가늠자' 역할일 뿐이다. 딸의 모의 고사 성적이 수능까지 계속 유지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가장 큰 이유가 현재 수능시험에 재수생 비율은 무려 30%이상이란 점 때문이다. 그리고 재수생은 수능에만 집중하기에 현역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신보다는 수능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딸의 경우에 더 자퇴를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자퇴하면 수능에만 집중할수 있는건 딸이나 재수생들이나 같기 때문에 상위 1%안쪽의 성적을 유지하기가 수월하다고 보여졌다.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의 간극이 큰 것에 대한 고민은 1학기 중간고사를 보고 난 뒤로부터 계속 되었지만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와 나는 그래도 내신에 힘을 더 쏟고 성적을 모의고사 수준까지 올려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딸은 한동안 남동생에게 '자퇴지망생'이라고 놀림을 당해야했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가 1학기 기말 국어 시험을 보고 돌아왔다. 들어오자 마자 큰 탄식을 하면서 울상이 되는 동시에 문제가 이상하다고 시험지를 구겨버리는 것이다. 심상치않은 아이 행동에 식은땀이 났다. 그리고 결국 1학기 기말 국어 시험은 아이가 자퇴를 결심하게 된 트리거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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