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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Nov 17. 2023

그래, 이 따위 학교 다니지 말자!

[자퇴생 혼공르포르타주 5화]

딸은 중간고사에 비해 기말 국어 시험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진데다가, 문항수도 많아져서 시험문제를 다 풀지도 못하고 시험이 끝나버렸다고 했다. 이제까지 아이에게 국어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잘봐야 하는 과목이었다. 이제까지는 당연히 그래왔다. 국어를 망쳤다고? 이건 정말 정말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딸이 구겨버린 시험지를 찬찬히 폈다.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완전히 펴지지않는 구겨진 국어시험지를  살펴보았다. 국어교육을 전공한 나는 대체 어떤 문제가 나왔고, 왜 그토록 시간이 부족했나 싶었나 궁금했다. 전체 문항은 중간고사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큰 문제에 작은 문제가 딸려 있는 새끼 문항들이 있었고, 서술형 문제가 중간고사에 비해 어려웠는데 배점은 컸다. 그런데 그 문제들을 그냥 날려버렸으니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아이가 틀린 문제들을 살피던 중에 어떤 문제에 시선이 꽂혔다. 틀린 만한 것이 아닌데 어이없게 틀린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선지가 이상하다고 항변했다. 다시 읽어보았다. 아이가 왜 이상하다고 하는 지 이해가 되었다. 아이가 고른 선지는 문장이 중의적으로 해석이 되기 때문에 아이가 헷갈리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보다 출제 의도를 파악해서 더 명확한 오답이 존재하니 그걸 고르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평소 수학 공부를 할때나 책을 읽을때 무언가 애매하면 그거 가지고 고민하는 것이 습관이 오랫동안 몸에 베인 아이는 그 오류문장을 피해가지 못하고 함정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 3점짜리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버렸고, 뒤에 더 중요한 5점 이상의 서술형 문제들을 놓치고 마는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답안 정정을 요구하는 이의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음.


나는 그 날밤 시험오류 이의신청서를 써서 다음 날 아이 학교가는 길에 보냈다. 담당 국어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난 그 선지가 확실하게 잘못낸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난 선생님의 출제 의도를 모르는 게 아니며, 선생님이 출제한 의도를 이해하더라도 국어 문제이기에 선지에 중의성이 있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 선지의 중의성으로 지문 내용이 헷갈리기 충분하므로 그 선지 역시 오답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아이가 문장을 예민하고 더 정확하게 읽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생님의 정식으로 성적관리 위원회를 열겠다고 했다.


며칠 후 시험문제에는 오류가 없다는 답변과 함께 선생님의 의견서가 왔다. 나는 그 의견서를 읽어보고 기가 막혔다. 그 의견서 조차도 오류가 많았다. 더구나 그 문제의 선지를 '매력적인 오답'이라고 정의했다. 매력적인 오답이라! 이건 뭔 또 개소리냐는 상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즉시 그 의견서에 반박 의견서를 썼다. 다음날이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학교교감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해서 나더러 학교에 와서 선생님들과 함께 조정 시간을 갖자고 했다. 나는 그 자리가 나와 아이에게 유리할 게 없어보였다. 같은 편인 동료교사들과 이미 내려진 결론으로 날 설득하려는 의도가 빤히 보였다. 교감 선생님은 내키지 않으면 오지 않아도 되는데, 작년에 영어 출제 오류 문제로 어떤 아버지가 학교에 방문했고 잘 조정이 되었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학교에게 유리하게 결론이 난거였다. 아무래도 교감선생님은 내가 설득이 될거라 자신했던 모양이다. 나는 반박의견서를 가지고 가겠다고 말했고, 다음날 학교를 방문했다.


학교측 답변과 그에 대한 반박의견서


그 자리에는 출제하신 국어교사와 동료 국어교사 3명, 교감과 교무부장 교사가 참석했다. 난 몹시 긴장되었고, 이 논쟁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었다. 6대1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아차 싶었다. 내가 여기 이자리에 왜 왔을까 싶었다. 이미 결론은 정해져있었고, 출제한 교사는 정답을 정정할 마음이 전혀없다는 듯이 같은 말만 반복했다. 문장의 중의성을 인정하더라도 충분히 오답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건 국어 시험이므로 중의성을 인정한다면 지문 해석에 오류가 생기므로 이 선지 또한 오답이라고 주장했다.  2시간 논쟁에도 바뀐건 없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출제 국어 교사, 교무부장 교사와 교감은 차례대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어머니, 아직 @@에게는 앞으로 더 많은 시험이 남아있습니다.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

"정답을 정정하는 건 오히려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럴 경우 다른 아이들 내신 성적이 다 달라지게 되고, @@이 성적이 더 내려갈 수도 있어요."

"아이가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생각보다 잘 안나온다고 들었어요. 교육청에 공부 코칭을 해주는 상담이 있는데 그런 프로그램을 이용해보시는 거 어떨까요?"


오류가 있다는걸 인정한다는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황당한 말들이었다. 난 즉시 반박을 했다.


"선생님, 아이들 내신 성적은 소수점 2번째 자리까지 대학 당락을 가르는 게 현실입니다. 이 국어 시험 한문제가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교무부장선생님, 오답이어서 틀린 문제를 가지고 맞게 해달라고 생떼를 쓰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정답이 올바르게 정정되어 아이 내신이 불리해지면 그냥 받아들이겠어요. 그런데 문제 오류가 나서 아이가 불이익을 보는 것을 참고 넘어갈 수는 없어요."

"교감 선생님, 아이 공부 방식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전 앞으로 아이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파 놓은 함정을 잘 피해가라, 문제 풀이를 연습을 위해서 학원을 다녀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


"저의 아이는 여기 계시는 선생님들 수업이 전부인 아이입니다. 다른 학원을 일절 다니지 않아요. 차라리 정직하게 문제를 어렵게 내세요. 그러면 차라리 내 아이를 다그치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할 겁니다. 이제 저는 아이를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학원을 보내야할지를 고민해야겠군요. "


결국 이 싸움은 나의 교육청 민원 신청으로 이어졌고, 다른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외부 자문을 받으면서 끝이 났다. 방학을 앞두고 다른 학교 국어 선생님 세 사람의 의견서를 받았는데, 모두 문제 출제에 이상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난 학교에서 어떤 식으로 외부 자문서를 의뢰했는지, 학교 측의 질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어처니가 없다못해 분노가 올라왔다.


내가 이의 신청을 한 내용은 문제의 선지가 중의성이 있어서 오답이 될 수 있음을 물었고, 학교 측과도 그걸로 논쟁을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외부 자문에 보낸 질문은 단순히 그 문제의 정당성을 묻는 것이었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학교 측에 유리한 질문으로 외부 자문을 구했고, 예상처럼 다른 외부 자문 교사들도 그 선지의 오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출제 의도만을 생각한다면 그 선지는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중의적으로 해석이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 중의성을 발견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매일 아이들과 책 읽기를 몇 시간씩 하는게 직업인 나는 문장을 매우 예민하게 읽는 습관이 베어있다. 명백하게 그 문장은 중의적 문장이다. 이건 다른 과목도 아닌 국어 시험이다. 문장 하나 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사실 중간에 빠뜨린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내가 집요하게 교육청과 학교와 교사들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한 결정적인 이유 말이다. 아이가 시험지를 가지고 온 날 그 선지의 중의성을 발견하고 나는 현직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친한 후배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 문제의 선지를 봐달라고 말했고, 경력 20년차 후배는 나의 의견에 동의하며 문장오류가 맞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는 국어 교사 모임 카톡에 그 문제를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결론은 그 모임에 속한 국어 교사들은 전부 그 선지의 오류에 동의했고 잘못된 문장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느 한명 학교측과 동일한 의견을 말하는 교사는 그 자리에 없었고, 그들은 나와 아무 일면식이 없는 교사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난 학교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다.


2023년 올해 수능에서는 2022년 수능출제 오류로 인해 인력을 늘려 출제자와 검토 위원 포함하여 730명의 인력을 투입했다. 그런데 학생수가 많은 학교 경우에도 기껏해야 주요 과목 담당 4-5명인 교사가, 작은 학교의 경우에는 1명의 교사가 2-3주만에 내는 것이 내신 시험이다. 그런데 국가의 막대한 예산과 출제자와 검토위원까지 포함하여 막대한 인력이 투입하여 최대한 오류를 줄이려는 수능 시험과 내신 시험의 지위가 같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학교 내신 시험은 여러번에 걸쳐 보는 것이지만 상위권 대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단 한번의 시험을 망해도 다음 시험 만회가 어렵다. 언제나 최상위권 아이들은 치열하게 공부하기때문이다. 그만큼 학교와 교사의 평가권은 막강하다. 그러니 학교 내신의 영향력은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크고, 아이들에게 주는 중압감은 어마어마하다. 좋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이 하는 일이니 오류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하고 그리고 인정은 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적어도 시험 문제에 대한 검토나 검증은 현장 교사가 아니어야 형평성이 맞는 게 아닐까? 가재는 게 편일 가능성이 높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권위를 가진 학교 선생님들이 지식이 부족한 아이들을 현란하게 설득하면 대다수 아이들은 그런가보다하고 쉽게 물러 선다. 전공이 아닌 부모는 문제가 잘못 출제되었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계속 다닐 학교에다 대고 대차게 끝까지 오류정정을 요구하는 일은 부모로서는 잃는 것이 더 많은 싸움일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런 민원들도 교권 침해이며 부당한 악성 민원이라고 할텐가?


교육당국은 이런 현실도 모른채 창의성이나 학업 능력 좋은 아이들을 기른다고 운운하지나 말든가! 아이 공부를 도우며 지켜보면서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대학은 염치도 없이 고등학교 현실이 뻔히 이런 줄 알면서 온갖 스펙을 요구한다. 기본 능력을 갖춘 애들을 데려다 좋은 교육을 해서 성장 시킬 생각 따윈 없고, 소숫점 둘째짜리까지 봐가며 줄을 세운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 입시비리 사건' 이후로 문재인 정부때 대학지원 서류가 대거 간소해져 불필요한 서류 제출을 없앴다. 그리고 정시 비율을 인서울 대학 40%라고 정해 놓아서 사정이 좀 나아진 것이 이 정도다.


이 나라에서 탁상공론 교육부와 학위 장사하는 대학들은 교육을 망치는 주범이다. 죽어나가는 것은 수시로 바뀌는 교육부 기준대로 지도해야하는 교사들과 그것을 아무 생각없이 묵묵히 해내야하는 아이들과 막대한 돈을 써가며 교육부 뻘짓에 장단을 맞춰야하는 부모들이다.


그것도 눈에 보이는 같은 반 옆자리 아이가 아이들의 경쟁자다.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경쟁자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 말로만 협력을 가르치는 이 나라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모르고 있는 이 지독한 무지가 소름끼친다. 결국 내 입에서 감정을 따르는 이 말이 튀어 나왔다.


그래, 이 따위 학교 다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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