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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Oct 23. 2023

자퇴도 돈 없으면 못한다?

[자퇴생 혼공 르포르타주 2화]

자퇴를 하면 돈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퇴를 하면 하물며 급식으로 해결하던 점심밥도 비용이 든다. 그리고 공부를 해야 하니 적어도 스터디카페를 가거나 아니면 입시 단과 학원 또는 재수종합반으로 가는 것이 흔한 코스이기 때문이다. 특히 스터디 카페도 관리형이 있어서 일반 스터디카페보다도 비싸다. 그래도 혼자 공부하는 것이 힘드니 유명하다는 재수 종합반 또는 기숙형 재수 종합학원을 가기도 한다. 그럼 1년 입시 비용은 1년 치 대학 등록금을 훨씬 능가한다. 웬만한 대학교 4년 치 등록금을 능가한다.  


“애가 재수하면 부모는 징역 10월에 벌금 4000만 원 선고받는 거나 마찬가지라잖아요.” 어느 신문 기사에서 본 어느 재수생 부모의 말이다. 이건 자퇴생 부모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자퇴생 부모의 징역기간이 더 긴 것이 현실이니 자퇴를 고민할 때 돈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내가 딸아이에게 쓰고 있는 입시 관련 사교육비는 지난날 9월에 결제한 메가스터디 영어 강좌 1개와 국어와 수학 기출문제집과 개념서 사는 비용이 전부다. 9월에는 영어 인강 강좌 결제와 기출문제집과 개념서 여러권을 샀으니 대략 25만 원을 썼고 10월에는 지난달에 이어 공부를 하고 있으니 지출금액은 0원이다. 대신에 읽을 책은 매달 꾸준히 사주고 책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딸이 자퇴한 지 2주가 지났다. 2주 동안 딸은 내년 2024년 3월 첫 고3 모의 고사를 볼때까지 6개월 동안의 공부 방향을 정하고, 짧게 12월 모의고사까지의 3개월의 공부량을 정했다. 그리고 주 단위의 계획을 짜고, 일어나서 아침마다 그날의 공부 계획 및 어제의 일을 복기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입시 공부를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탐구할 주제를 하나 정해서 그와 관련된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쓴다.




딸의 혼공 기본 규칙은 집공부다. 스터디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공부해본 적이 있으나, 오히려 딴생각을 하기 쉽고 도서관에서는 공부가 안될 때 온종일 책만 읽다 온 적도 있다. 그래서 집공부가 아이에게는 제일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딸아이 말에 따르면 집에는 엄마라는 CCTV가 돌아가기 때문에 딴생각을 하다가도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 좋다고 한다. '엄마가 지켜본다'는 것이 딸에게는 그만큼 긴장을 하도록 한다는 말인 듯하다. 내심 아이에게 그렇게 어렵고 무섭고 깐깐한 엄마인가 싶어 서운할 뻔했으나, 그런 뜻은 아니란다. 진짜 그렇다면 불편해서 오히려 밖으로 나갈 게 아니냐며 오해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집에서 책 읽기 글쓰기를 일대일로 가르친다. 학생들이 나를 찾아오는 구조라 딸아이 어린 시절부터 많은 책으로 둘러 싸여 있고, 나는 늘 학생들과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글을 썼다. 그러니 아이에게는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딸아이는 내 일이 끝나길 기다리며 혼자 책을 읽고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운동과 영어 학원을 알아서 다녀왔다. 집이 딸에게는 '서당'같았으니 집이 공부하기에는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1학기 동안에도 거의 집에서 공부를 했다.


딸의 혼공 기본 규칙 또 하나는 예습이다. 딸아이는 창각적 주의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든 설명이든 오래 집중해서 듣는 것을 힘들어한다. 강의에 대한 내용을 듣다고 이해가 안 되면 거기서 정지상태가 되어 왜?라고 생각하다 강의를 모두 놓치고 만다. 그래서 아이는 선생님 혼자 일방적으로 나가는 현장 강의는 전혀 효과가 없다. 선생님이 꼼꼼하거나 세심한 사람이어서 아이가 멈칫하는 것을 알고 짚어주지 못하면 그냥 수업을 날리고 왔다. 그래서 잠시 수학 경시 관련 학원을 1년간 다녔을 때 안 풀리는 그 문제만 생각하다 수업은 다 놓치고 그냥 돌아오곤 했다고 나중에서야 고백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학교 수업을 안 듣고, 혼자 교과서를 다른 부분을 보고 있다며 선생님께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단 자신의 관심사이거나 좋아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높은 집중력을 보이는 아이였다. 그래서 성적도 과목별 편차가 크고 그것을 개선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입시는 꼭 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매우 강하므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과목인 영어도 열심히 하려고 매우 노력하는 중이다.


이런 아이의 개별적인 특징으로 모든 공부는 예습을 원칙으로 했다. 혼자 배울 내용을 미리 보고 거의 80%까지 소화를 하고, 좀 더 자신 있는 과목은 기본 문제까지 풀고 난 뒤 90% 소화를 한 상태에서 인강을 활용한다. 수학의 경우도 어떤 단원은 혼자 100% 공부하고, 어떤 단원은 도저히 혼자 완성이 안될 것 같을 때 인강을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아무리 아이들이 이해력이 좋고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낸 어른의 사고를 뛰어 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그 분야의 뛰어난 강사들의 개념설명이나 문제 풀이 접근 방식을 듣고 나면 쉽게 갈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는 한다. 선생님 도움을 받는 부분이 크지 않기에 학원은 시간 낭비가 심하고, 과외는 아이가 모르는 부분만 해결해 주면 되니 좋긴 하나 그에 비해 비용이 과하다. 그래서 인강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믿을 수 있고 필요한 부분만 봐도 되고 돌려봐도 되고 저렴하니 일석사조다.




딸아이는 간혹 지나치게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고, 무엇이든 완성도는 높지만 속도가 지나치게 느린 경향이 있다. 쉽고 단순하게 갈 수 있는데 가르쳐준 대로 절대 가지 않는다. 그 쉬운 방법조차 왜 그 길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이 돼야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한테 쉬운 문제는 쉬운게 아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쉬운것도 그런 식으로 납득이 될때까지 고민하니, 어려운 것은 오히려 쉽게 가고 고민한 것들은 휘발되지 않고 차곡차곡 잘 쌓여갔다. 그래서 결국 많은 양의 문제를 풀지 않아도 일부러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  


처음엔 뭐든지 그냥 받아들이는 법이 없는 아이가 이해되지 않았고, 답답했다. 세상에 그냥은 원래는 없다고 가르쳐왔고,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걸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 '그냥''원래'라는 말을 하는 것이니 잘 생각해 보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딸아이는 정도가 지나쳐 보였다. 그냥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제껏 가르쳐온 말과 모순되어 참았다. 대신에 '때때로 쉬운 건 그냥 쉽게 가는 것도 좋아'라고 말해주었고, 쉬운 시험 문제들을 틀려 올 때는 '너는 어려운 시험에 엄청난 강점이 있으니 수능 시험이 어렵기를 바라보자'라며 단점을 장점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했다. 비록 속은 터지더라도.


모든 일에는 타임제한이 있다. 그래서 마냥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등학교 내신 수학시험은 타임어택이 지나치다. 마킹 시간 5분 빼고 45분 동안 21-23문제를 풀어야 한다. 쉬운 문제는 1분 안에, 조금 어려운 문제도 5분 이상 시간을 쓰기 힘든 구조다. 긴장감이 높아지고 실수를 유발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기계처럼 엄청나게 많은 다양한 문제를 풀어 제낀다. 그에 비하면 수능은 좀 낫다. 전체 100분을 주고 30문제를 푸는 구조라 시간이 더 여유가 있다. 딸아이는 이제 더 이상 초인적인 시간 안에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연습을 하지 않아서 수학 공부가 다시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신 수학 시험 구조를 개선할 생각이 없는 학교와 교사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시간 안에 누가 누가 빨리 풀어 변별을 해내는 게 아이들의 수학적 사고능력보다 더 중요한 게 대한민국 학교이고 입시다.




기본적으로 자퇴를 하고 혼공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자녀와 부모가 소통이 잘되는가. 둘째 자녀가 시간관리하고 계획하는 능력이 있는가. 셋째 부모와 자녀 모두 본인의 장단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가.


딸의 블로그


딸의 경우에는 시간을 관리 계획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자퇴서를 제출하기 전인 여름방학부터 블로그를 만들어 시간계획을 짜고 관리하는 것을 연습했다. 내가 기본적인 틀은 딸아이에게 가르치고 이후 차차 자신에게 맞는 관리 방법과 계획을 만들어 갔다. 그렇게 매일 계획을 짜고 실천하는 연습을 2달 넘게 한 뒤 자신감이 생겼고 자퇴서를 10월 6일에 제출한 것이다.


실제로 딸아이는 여름방학 동안 가족 휴가 기간을 제외하고 모두 공부를 했고 계획한 일들을 거의 지켰다. 지키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할지도 생각해보게 했고, 그것에 대한 대안도 마련하도록 했다. 월-금까지 공부계획이 있지만 아프거나 정말 공부가 안될 때도 있어 공부가 밀리면 1주일에 한번 쉬는 토요일 저녁 시간에 그 일을 처리하거나 다음날 공부량이 더 잡는 식으로 해보았다. 아이는 몇 번 해보더니 주중에 계획했던 걸 하지 못했을 때는 주 1회 노는 토요일의 절반을 반납하겠다고 결정했다.


입시는 지루하고 재미없다. 그러나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이다. 압박감이 크고 불안할수록 공부는 잘 안된다. 그것을 원동력 삼아 더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불안이 높아지면 사고 능력은 저하된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에게 '자신의 속도'를 강조한다. 자신의 속도대로 가도 타인의 속도에 크게 뒤져지지도 않고, 그 속도에 '제대로'라는 방법까지 더해지면 속도는 저절로 빨라진다는 것을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오로지 '입시결과'에 집중하다 보면 쉽고 빠르고 확실한 길을 선택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래서 자퇴를 하면 당연하게 막대한 비용을 치르더라도 강남의 어느 유명 재수학원들로 직행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선택인양 이야기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라면 기꺼이 감수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형편이면 자연스럽게 돈 계산을 하게 되고, 그러면 자퇴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난 그것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교육과 입시도 핵심은 '입시과정'이 중요하다. 올바른 과정은 좋은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부모와 자녀는 함께 대화를 나누며 가는 것이다. 아무리 아이가 똑똑해도 아이는 삶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적은 미성년이다. 그래서 아이의 일을 전적으로 아이 책임으로만 맡기는 것도 난 찬성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일방적으로 부모가 결정해서도 절대 안 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아이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게 하고 책임지게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퇴를 하고 혼공이 가능하려면 자녀와 부모가 평소 잘 소통해 왔는가가 중요한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세상에 대화를 하다가 풀리지 않는 문제는 별로 없다.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 있다. 그리고 대화의 기본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다. 아이와 대화를 잘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답정너'가 최악인 이유다.


'대화와 타협'은 그저 도덕 교과서에나 볼 법한 지루하고 뻔한 단어가 결코 아니다. 삶의 해법이다. 자퇴한 자녀와 살아갈 때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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