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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Dec 27. 2023

NO Kids!! 사회에서 자식 키우는 마음

[자퇴생 혼공르포르타주 11화 ]

2023년 올해 출생아 20만.출산율 0.7%.


베이비붐세대 90만

70대년생인 나때는 70-80만

내 자식 세대는 40-45만

이제는 또 반토막이란다.


자식을 낳지않는 게 현명한 것처럼 여기게 된 시대가 되었고, 그런 세대들이 등장했다. 나 어릴적에 산아제한정책을 하면서 홍보하던 그 슬로건들을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잘 낳아 기르자."

 

그랬더니 태아감별을 해 태어나지 못하고 낙태된 여아들이 비공식적인 통계로 한해 2만에 이르르자, 그 다음 슬로건이 등장했다.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


여튼 이제는 아들과 딸 중에 하나만 낳는다면 딸을 낳으려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이제는 하나 마저도 낳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는 추세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은 옛날에 속 썩이는 자식을 둔 사람들이 한풀이 하듯 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버린 느낌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두는 일을 인생사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던 시대는 갔다. 선택의 문제가 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무자식을 선택한다.




무자식 상팔자?


어떤 뜻으로 하는 말인지 너무도 잘 안다. 우리 부부는 딸과 아들을 어른들이나 베이비 시터 도움없이 키워서 그 어려움을 너무도 잘 안다. 특히 나는 8할은 혼자 키웠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들을 키우면서 감당해야했던 고통의 무게를 과장한 탓이라 생각한다. 남편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아이 둘을 어찌 혼자 키우겠는가. 다만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대체로 남자가 짊어져야할 몫보다는 여자가 짊어질 몫이 월등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임신기간과 출산 후 수유기간과 돌봄은 아무래도 어머니들의 역할 모델을 보아온 여성들에게 더 익숙한 일인지 모른다. 더구나 조카 일곱을 둔 나에게 아이 키우는 일은 일종의 예습이 되었던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던 것이 내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마치 엄마가 처음이 아닌것처럼 나는 엄마 역할에 꽤나 능숙했다. 겉보기에는.


하지만 자식을 막상 낳고 보니, 조카를 돌보는것과는 다른 차원이었고 그저 먹고 재우는 놀고 하는 기본적인 육아 말고도 감당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나의 부모세대와는 너무도 달라진 육아문화와 방식들로 부모의 역할은 늘어만 갔다. 그저 밥 세끼 굶기지 않고, 학교 보내면 부모 역할을 다했던 지난 세대와 달리 아이의 교육에 엄청 많은 시간과 비용과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교육시스템으로 인해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해야 하며, 공동체가 무너져 아이의 안전을 노상 걱정해야하는 것, 사라진 골목 문화로 아이들은 놀이 친구들을 잃어 부모가 대신 놀이 친구를 대신하는 것 역시 부모의 몫이 되었다.


더구나 권위주의적인 문화 속에서 집이나 학교에서 크고 작은 신체적인 언어적인 폭력을 일상적으로 겪고 자랐던 지금의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마음의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많다. 어쩌면 그래서 자식을 낳고 내 아이만큼은 그런 일을 겪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렇게 '내 자식 보호하기'에 열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나친 사교육 열풍과 영어 교육에 과도한 비용을 쏟는 것도, 내 자식이 기가 죽으면 안된다고 공공장소나 학교에서 무례하게 구는 것도 실은 '내 상처'일 수 있다.


부모는 자신의 결핍으로 자식을 키운다.


적어도 내가 이제까지 만나온 수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그랬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결핍을 겪게 하지 않으려고, 내가 받은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가. 우리 부모 세대는 '배고프고 못 배운 결핍'을 가지고 우리를 키웠던 것처럼, 우리세대 역시 우리의 설움을 자식을 통해 해소하고픈 무의식일 가능성이 높다.


결혼을 하고서 친정에 1박2일이나 2박3일 머물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와 남편의 몸무게가 3-4키로가 늘어있었다. 모두 모여 그렇게 하루 종일 먹어대는데, 밥 세끼는 물론이고 중간중간 술과 간식을 끊임없이 내어오는 엄마때문이다. 거의 하루종일 그렇게 주는 것을 다 받아 먹다오면 그 지경이 되곤 했다. 그렇다면 엄마는 왜 그렇게 자식들을 보면 '먹이지 못해 환장'한 것처럼 굴까. 엄마는 일제 강점기때 태어나 6.25를 겪은 사람이다. 거기다 스무살에 시집와 다섯형제 맏며느리 역할을 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평생 무책임한 한량 남편 대신 형편이 넉넉치 않은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했다. 대신 할아버지와 엄마의 부지런함과 책임감으로 우리 형제는 밥을 굶지 않았을뿐 아니라 대학 교육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윗세대 엄마들은 자식들을 보면 손주들을 보면 먹일 생각뿐이다. 그래서 자식들 입으로 먹을 것이 들어가면 그렇게 뿌듯해하고 흐뭇해 한다. 그래서 그렇게 우리들의 엄마들은 노상 '밥, 밥, 밥' 이다. 그리고 냉장고에는 1년 동안 다 먹지도 못할 양의 음식들을 저장하고, 밥솥에 밥은 24시간 언제나 대기 중이다.


이렇게 자란 나의 결핍과 내 또래의 40대 결핍이 무엇일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우리는 도대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많은 사교육을 시키고 아이들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결핍없이 키우려고 넘어지지 않게 않으려고 애쓰는가. 그리고 왜 그토록 내 아이만 유독 더 중요한가. 지금의 내 또래들의 유년을 들어보면 대체로 이렇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자기 일을 뭐든 알아서 해야했던 유년, 때로는 여러 안타까운 가정사로 너무 일찍 어른이 되었어야 했던 유년, 먹고 살기 바쁜 부모와 정서적 교감이 부족했던 유년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우리의 결핍들이 지금의 육아와 교육 문화를 만들었고,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 아이를 낳지 않는 결심을 하도록, 더 나아가 '아이 혐오증'을 갖도록 했을까. 우리는 언제나 앞 세대에 영향을 받고, 다음 세대의 영향을 주므로 지금의 저출산에 일종의 책무가 있음을 안다.


내 삶의 성공의 척도는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행복했어요. 고마워요" 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개인적인 결핍이 컸던 나는 '육아에 진심'이었던 사람이다. 서른에 엄마가 되고 이제까지 내 거의 모든 삶은 엄마라는 역할에 방점이 찍혀 있었고, 아이 키우는 일에 몰두했다. 돈버는 일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엄마가 될까를 고민했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늘 생각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전혀 결핍이 없게 키우고 해달라는대로 다해주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엄마라는 역할은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 정체성이 되었다.최선을 다했다는 얘기다.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만큼.


전적으로 내 뜻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돕는 일은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나의 영향을 받아 닮고 나의 삶의 방식과 문제 해결방식을 학습하는 아이들을 볼때마다 두려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단순히 돌보는 자를 넘어서서 역할 모델을 하게 되는 사춘기에 돌입하여 부모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볼 나이가 되자 그 두려움은 더 커졌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다. 그러다 가끔 아이들이 해주는 너그러운 인정과 칭찬에 몸둘바를 몰라하기도 했다.


결혼을 후회해본적은 있지만 자식을 낳고 키운 것에 대한 후회를 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리고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은 내 인생을 더 풍요롭고 가치있게 만들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은 아니지만 나는 단연코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돈이 없어서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자식을 키우지 못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럼 돈이 많을 수록 좋은 부모가 되고 부잣집 아이들일수록 훌륭해진단 말인가? 우리는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사실 자식은 부모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자식이면서 부모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자식에게 최고의 복은 부모복이고, 그 부모복은 돈 많은 부모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주는 부모를 만나는 행운을 말한다. 나란 존재를 그저 사랑스럽게 봐주는 그런 눈빛을 가진 부모, 언제나 내 이름을 한없이 사랑스럽게 불러주는 부모다. 그런 부모를 돈이 없다고 갖고 싶은 걸 사주지 않았다고 싫어하고 욕하는 자식은 결코 없다. 그런 싹퉁머리 없는 자식을 본적이 없다.


살아가면서 가장 값진 것을 주었는데 그깟 돈이 문제일까? 그런 사랑을 자식에게 줄 수 있다면 돈이 없어도 부모가 되어도 좋다. 그렇다면 당신의 자식은 무탈하고 건강하게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사랑 가득한 사람이라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자식을 낳아도 좋다고 말이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상이 열릴거라고. 자식이 없으면 겪지 못할 일들과 느끼지 못할 많은 감정을 느낄수 있다고. 그건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이 될거라고.


유자식은 상팔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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