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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Dec 20. 2023

스마트폰 없는   슬기로운 자퇴생활!

[자퇴생 혼공 르포르타주 10화]

딸은 스마트 폰이 없다. 물론 딸뿐 아니라 중2 아들 역시 스마트 폰이 없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연락은 해야 하니까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스마트 폰 모양을 한 전화기가 있다. 아이들이 어릴적부터 스마트 폰은 대학생이 되면 가질 수 있다고 말해 두었다. 그래도 내 뜻과 다르게 한번쯤은 사달라고 조를만 한데도 딸과 아들 둘다 한번도 사달라고 한 적이 없다. 내가 스마트 폰 사용에 대한 입장이 너무도 단호해서 그렇기도 하고, 스마트 폰만 없지 테블릿과 노트북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게임과 영상들을 정해진 시간만큼 보기때문에 크게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애초에 가져본 적이 없으니 그것을 갖지 못한다고 안달이 나지도 않는다. 가졌다가 없어지는게 문제지, 처음부터 가져본 적이 없으면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겠는가. 사람은 어떤 환경과 상황에도 적응하기 마련이다.


주위에서는 이런 날 보고 대단하다고 때론 독한 엄마라고 한다. 어떻게 스마트 폰을 안사주고 버틸 수 있냐고 말한다. 때론 '애들도 사회 생활을 해야하는데 스마트 폰없이 어떻게 하냐며 너무 심한 처사 아니냐'고 나무라듯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마트 폰 없이도 불편함 없이, 다른 즐거움을 배우며 오히려 스마트 폰으로 인한 갈등 없이 살 수 있어서 더 좋다고 말해주면 '여하튼 대단하다'라는 말만 반복한다. 아이들이 딱히 조르지 않는것도, 스마트 폰을 사주지 않는 나의 고집도 대단하다는 뜻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아이들이 스마트 폰 없이 사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스마트 폰 없이도 잘들 살아왔는데 왜들 난리일까? 언젠가는 갖게 될 테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아이들에게 스마트 폰을 사주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은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어른인 나 역시 스마트 폰 사용에 대한 조절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20년 넘게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오랜 시간 관찰한 결과 스마트 폰이 없을 때와 스마트 폰을 가졌을 때의 아이들 행동에 큰 변화가 있었다. 더구나 책 읽기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본 스마트 폰은 책과 상극에 가깝다. 요즘 아이들에게 책은 점점 더 느리고 지루한 매체가 되어버려 그나마 '학습만화'만이 아이들이 책 읽기의 명맥을 유지시켜주고 있다고 봐도 과장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아주 특수한 교육 환경'에 의해 아이들은 학습에 대한 피로도가 무척 높고, 그래서 즉각적인 쾌락과 보상을 주는 스마트 폰과 그야말로 '찰떡 궁합'인 형편이다. 외부 세계에서의 좌절과 갈등이 많고, 내부 세계가 외로울 수록 스마트폰에 필연적으로 몰입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스마트 폰을 모두들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하면서 덜컥 사주고 만다. 그리고 '너무 많이 하면 안된다~!' 이 한마디 경고로, 시간 제한을 걸어 놓는 걸로 아이가 조절을 할 수 있을거라고 안일한 기대를 한다.


스마트 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컴퓨터다. 그런데 연락을 목적으로 사주었다고 말하는 부모들이 정말 많다. 그러면 그냥 전화기를 사주면 된다. 찾아보면 인터넷 연결이 안되는 전화기를 쉽게 살 수 있다. 아이들은 그런 전화만 되는 전화기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별로 신경도 잘 안쓴다. 아니면 학교 선생님이 공지로 카톡을 사용하거나 단체톡방을 개설해야한다는 이유로 사준다. 이건 부모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껏 나는 이런 학교 선생님을 만난적이 없으니 이상한 일이다. 있다하더라도 그런 교사는 학교 공지 사항을 왜 카톡으로 보내나? 조회나 종례때는 뭐하고. 그렇게 긴급하게 카톡으로 보낼 메세지가 무엇이란 말인지. 실제로 아이들 단체톡방은 학교에서도 권장하지 않는다. 듣기에 요즘 학폭은 주로 그런 단체톡방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들 관리 감독하에 학급 단체톡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다.


사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스마트 폰을 사주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아이만 스마트폰이 없는 게 불쌍하고 보기에 민망해서다. 다른 아이들이 스마트 폰을 보고 있을때 내 아이가 기웃거리듯 구경해야 하고, 다들 있는데 내 아이만 없는 모습이 부모 입장에서 상상해보니 아이가 뻘쭘해질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부모들의 상상이다. 나도 이런 걱정이 되어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스마트 폰이 없으면 학교 생활에 정말 지장이 있고, 혼자 없어서 뻘줌해지고 창피하냐고.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일단 학교에서는 스마트 폰으로 검색하도록 하기도 하지만 테블릿을 다 빌려주니 괜찮다, 다른 아이들도 어차피 학교 오고갈때만 하지 학교에서는 폰을 다 걷어 보관하니까 상관없다, 그리고 스마트 폰이 없다고 애들이 왕따를 시키거나 창피를 준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난 사주지 않기로 했고, 여태 사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텐데...  ' 엄마 아빠는 스마트 폰을 가지고 있고, 수시로 스마트 폰을 하면서 우리는 왜 사주지도 않냐!' 라고 항변을 할만도 한데...한번도 그러지 않는게 어쩔 땐 나도 신기하다. 그래서 한번은 딸과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들은 스마트 폰 가지고 싶지 않아?"


딸: " (베시시 웃는다) 가지고 싶지~"

아들: " (정색하며) 아니! 안가지고 싶은데?"

딸: (동생을 째려본다.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냐 이 베이비야!


"그런데 사달라고 왜 한번도 안 졸라?"


아들: 딱히 없어서 불편하지 않아. 그리고 정말 애들이 어딜가나 폰만 쳐다보고 있으면 이상해보여.

딸: 스마트폰만 없을 뿐이지 웹툰도 보고 할 수 있는 건 다하니까. 그래도 아쉬울 때는 있어.


"사줄까?" (떠보는게 아니라 어떨 땐 지금은 사줘도 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딸:( 어무니가 뭔 속셈인가 싶은 눈빛으로) 저 함정에 넘어가면 안된다...

아들: 아니! 난 이제 스마트 폰이 없는 게 뭔가 더 멋있는거 같아!

딸: 난 나에게 건강한 도파민을 느끼도록 할거야!

 

'오호~! '



자퇴생 딸은 평일에는 대체로 미디어 시청을 하지 않기로 하고, 토요일 하루만 원하는 만큼 즐기고 있다. 토요일 하루는 뭘하든 '잔소리 절대 금지!'를 고수하고 있다. 평일에는 공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딱히 심심할 틈이 없고, 공부하다 좀 지치면 멍때리거나 낙서를 하거나 심심풀이가 될만한 책을 읽는다. 가끔 굴러다니는 칼림바라는 악기를 연주해보기도 하고 반려견을 놀려 먹기도 한다. 그리고 산책을 하고 수영한다. 요즘은 목요일만 기다린다. 목요일에는 평일에 예외적으로 미디어 시청이 가능한 날인데, '싱어게인3'은 가족 모두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라 다함께 본다. 자신만의 원픽을 뽑고, 누가 Top10이 될 지를 꼽아보는 재미가 크다. 딸은 이 프로 시작할때가 되면 너무 설렌다고 말한다. 요즘 텔레비전 프로를 이렇게 기다리면서 보는 사람이 없으니 딸의 그런 반응이 재밌기도 하다.


이런 사정으로 좀 유별난 엄마 덕에 아직까지 열 일곱살 딸은 스마트 폰 없이 산다. 솔직히 난 내가 유별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랜시간 수많은 다른 아이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고 그 덕에 아이들에게 어떤 걸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것은 꼭 시키는 것이 좋은지를 좀 더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스마트 폰은 아이들에게 술과 담배를 권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과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 나라와 같이 특수한 교육열과 경쟁이 과도한 환경에서는 과한 생각이 아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에게 스마트 폰은 흡사 '오아시스'처럼 느껴 질 수 있는 마력을 지녔다.


스마트 폰 세상안에는 없는 것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아이들의 진짜 희노애락은 현실에 존재한다. 스마트 폰 안의 세상말고 아이들은 배워야 할 세상의 일들이, 누려야 할 세상의 풍경들과 사소한 사건들이 많다. 그런 일들은 스마트 폰이 주는 쾌락을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인간에게 유익한 즐거움을 주는 것들은 모두 하나같이 얻기 어려운 것들이기때문인데, 주변에 즉각적인 쾌락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는 요즘 아이들은 지나치게 인내심이나 끈기가 없다. 그래서 오랜 시간과 노력이 걸려 얻는 유익한 즐거움을 얻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사실 딸은 평일날 점심먹고 휴식시간에, 공부 끝내고 자기전에 노트북으로 몰래몰래 유튜브를 본다. 그 사실을 알지만 그냥 모른척하기로 했다. 딸 입장에서 나름 공부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보는 거니 괜찮다고 생각하고, 또 엄마와 갈등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슬기로운 대처방법인 듯 하다. 그래서 나도 슬기롭게 물러섰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딸도 알게 되었다. 딸은 평일엔 눈치껏 하겠다고 대답하며 웃는다.)


어쩌겠는가!! 유튜브 세상은 없는 게 없는 정말 재밌는 세상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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