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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Dec 13. 2023

자퇴생 말고 프리랜서라고 불러줘!

[자퇴생 혼공 르포르타주 9화]

주말 아점을 먹는 중에 가족들은 소속이 없어진 딸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밥 잘 먹는 딸을 보면서 흐뭇해 하다가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와~ 우리 딸이 벌써 고딩이라니!"


"근데 이제 고딩아닌데 뭐라부르지?"


"엄마, 당연히~자퇴생이라고 해야지. 어이 자퇴생~!"


"백수네, 백수!! 하하하 "


" 아빠 백수 아니고 프리랜서. 프리랜서라고 불러줘! "


딸의 재치에 발풀이 튀어나오도록 웃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당당히 자퇴를 하긴 했지만 소속없는 자퇴생이라고 불리는 것은 싫었던 모양이다.


돈을 벌지는 않는 프리랜서가 된 딸은 토요일마다 요리를 시작했다. 재료들을 직접 장보고 손질하고 조리하고 치우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혼자 해보기로 한것이다. 예전에도 몇번 나의 도움을 받아 해보긴 했어도 모든 과정을 혼자 해보긴 처음이다. 자꾸 훈수를 두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지난주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카레를 만들었다. 밥솥으로 간단히 할 수 있는 무수분 카레를 만들었는데, 토마토, 양파, 당근, 고기, 고형카레를 밥솥에 넣고 물은 전혀 넣지 않고 찜기능을 이용하여 만든다. 아주 간단해서 누구가 쉽게 할 수 있다. 옆에서 나는 지켜보면서 채소 손질하는 방법과 칼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가르쳤다. 칼을 다루는 것이 서툴어서 손이 베일까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가르친다는 이유로 참견을 하다보니 절반은 내가 한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절대 끼어들지 않으리라 마음 단단히 먹었다. 이번주 도전요리는 한국사람인증 음식인 '된장찌개'를 해보겠다고 한다. 된장찌개와 함께 고기를 구워먹겠다는게 딸의 계획이다. 정말 이번에는 순수 자신의 힘으로만 모든 요리의 과정을 해보기로 했다. 나의 할일은 어떤 실수를 해도 그냥 지켜보는 것이다. 나에게 장착된 '선생모드'를 끄고, '잔소리 무음 모드'로 전환.


해본 경험이 적은데도 칼질이 꽤 정갈하다.



난 밥잘해주는 엄마다,  집에서 밥냄새가 나야 집이 하우스가 아닌 홈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그래서 정말 열심히 아이들과 남편에게 밥을 해주었다. 최근 2년간 내가 좀 지쳐 쉬어가는 기간이라 남편이 주로 밥을 하는데 솜씨가 어떨땐 나보다 낫다. 무엇보다 남편은 음식 간을 정말 잘 맞춘다. 난 좀 짜고 달게 음식을 하는데, 남편은 심심하고 달지 않게 한다. 처음 먹을때는 뭔가 빠진것 같은데 계속 먹다보면 남편의 간이 적당했다는 걸 알게 된다.


언젠가 딸과 아들에게 엄마, 아빠 음식 중 너희들의 최애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김치찌개와 엄마의 떡볶이를 꼽았다.  밥은 밥 그 이상의 의미가있다. 밥은 기억이다. 내가 자식을 사랑한 기억. 나는 매일 내 아이들에게 사랑의 기억을 먹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힘들때마다 김치찌개와 떡볶이를 먹을것이다. 그 음식을 먹으며 엄마를, 아빠를 떠올리며 우리가 자신을 사랑했음을 알고 힘을 내어 살것이다.


특히 딸은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다. 먹는 즐거움이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는 듯 하다. 어릴때부터 군것질은 잘하지 않는 대신에 매 끼니 밥을 정말 잘 먹었다. 내가 밥상을 차려 놓고, '밥먹자~'하면 반찬 투정없이 밥을 언제나 잘 먹었다. 대신에 안 먹는 몇가지 식재료가 있는데, 그걸 빼고 음식을 하자니 좀 아쉽기는 했다. 세상 먹는 것들 중에 거의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비위가 상당히 좋은 아이인데, 딱 네가지를 먹지 않는다. 무와 오뎅과 맛살 그리고 마요네즈다. 그런데 저 재료들은 일상에서 꽤 많이 사용되는 식재료라 좀 아쉬울때가 많다. 그래서 무가 들어간 모든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안먹거나 무를 빼고 먹는다. 오뎅을 안먹으니 오뎅이 들어가는 각종 반찬과 음식을 잘 하지 않는다. 맛살과 마요네즈가 들어가는 샌드위치나 샐러드는 쳐다도 안본다. 하지만 떡볶이는 너무 좋아하는 음식이라 오뎅을 빼고 먹는 식이다.


딸이 요리하는 과정을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물을 너무 많이 잡길래 냅다 내가 물을 덜어냈다. 그렇게 그냥 지켜보려고 했건만....이런 만행을 저질렀다. 순간 아차 싶어서....딸의 눈치를 봤다.


"좀 물이 많은 거 같아서..."

"난 레시피 보고 정량으로 잡은 건데?"

"저 재료들 넣으면 냄비가 다 넘칠 것 같더라"

"흠....물이 모자랄 것 같아"

"그래 알았어. 그럼 아까보다는 조금 더 적게 넣으면 좋겠어. 냄비가 끓어오르면 넘칠 것 같거든"

"알았어"


딸은 된장찌개에만 집중하느라 너저분해진 주방의 꼬락서니는 눈에 잘 안들어오나보다. 그래서 행주를 가지고 뒷정리를 했다. 또 나선거다. 아~ 그냥 기다려주는 게, 그냥 지켜보는 게....이렇게 어려운거였다. 특히 나란 사람한테는....그래도 너무 지저분하다는 둥, 원래 정리를 해가면서 요리를 하는 거라는 둥 하는 잔소리는 안했으니 그것만도 내 자신이 대견했다. 분명 남편한테는 한소리 날렸을거다!   


딸의 첫 된장찌개!


딸이 완성한 된장찌개를 흰쌀밥과 함께 한 입 먹었다.

"와우~ 우리딸 된장찌개 천재네!"

남편이 먼저 찬사를 보냈다.  

나 역시 질 수 없어 얼른 떠 먹어 보았다.

"와~ 엄마보다 더 잘 끓이는데? 어떻게 이런 맛을 내?"

딸은 얼굴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역시~ 나야!"

누나가 무언가를 잘하면 질투심에 쉽게 인정하지 않는 남동생도 한 입 먹어보더니 맛있단다.

"이건 좀 인정이네~"


딸은 공부말고 자신이 잘하는 것 하나를 더 찾았다. 그리고 자신감을 저축했다. 학교를 나와 여유가 생기니 찬찬히 할 수 있는 것들을 작은 것 하나씩 해보는 중이다. 학교를 다녔으면 했을 경험들을 하지 못하는 대신에 학교를 다녔으면 하지 못할 경험들을 쌓아가는 중이다.


요즘 나와 딸은 '오늘을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중에 우리가 조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오로지 '현재'뿐이다. 그 사실을 잊고 사는 사회일 수록 그런 삶일 수록 불행하다. 물론 인간은 하루 살이가 아니기에 오로지 지금 당장의 쾌락만을 위해 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만날 수 없는 시간을 위해 오늘의 시간을 쏟다보면 후회하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특히 우리 나라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지나치게 '미래'를 위해 산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잊지 말아야할 소름끼치는 진실은.....우리에게는 내일이란 결코 만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내가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 딸은 학교 다닐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콜라나 주스를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자퇴 이후 스트레스가 줄자 그런 음료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영도 더 열심히 하고 식이 조절에도 성공하여 체중을 10키로가 넘게 뺐다.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적어지니 공부에 더 집중을 잘 해서 자체적으로 보고 있는 모의고사 점수도 만족스럽게 나오고 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딸은 요즘 자신의 모습에 충만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엄마! 요즘 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나의 리즈 시절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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