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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Jan 17. 2024

자퇴생의 소울푸드!

[자퇴생 혼공 르포르타주 12화]

최근에 요리를 시작한 딸은 매주 어떤 요리를 해볼까? 생각해 보는 일만으로도 즐거워한다. 이번주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해보겠다면서 가르쳐달라며 의욕을 보인다. 확실히 10대 시절에는 많은 일들이 새로운 경험이라 아주 사소한 것에도 잘 웃고 설레는 것 같다.


문득 내 고등학교 때 지금의 내 나이쯤 되는 선생님들께서 작은 농담 한마디에도 '까르르' 웃어대는 우리들을 보며 이런 말들을 하시곤 하셨는데 나도 그 나이가 되어 딸을 보니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니들은 지금 너희가 얼마나 이쁜지 모르지? 가랑잎 구르는 것만 봐도 웃는 니들은 그걸 아직 모를거다."


딸이 직접 끓인 김치찌개


딸은 자퇴 이후 정말 많이 웃는다. 딸이 그렇게 잘 웃고 떠드는 아이였는지 세삼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어느 날은 남편이 딸에게 자퇴생이 그렇게 행복해도 되냐고 묻기도 했다. 딸은 행복하면 왜 안되냐고 되물었고, 남편은 "그래도.... 뭔가 이상하잖아? 하하" 하며 얼버무렸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자퇴를 했을 때의 흔히 예상되는 흐트러진 생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공부, 부모와 아이의 갈등 그리고 아이를 두고 벌어지는 부부의 싸움과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는 아직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가 학교생활을 할 때보다 훨씬 더 평화롭다. 자퇴한 지 3개월 아니 그전 여름방학부터 자퇴모드로 살아 왔으니 대략 5개월 넘은 시간 동안, 딸 아이는 여전히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하루 계획을 하고 그것에 맞춰 공부와 휴식과 운동을 하면서 자기 리듬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저 아이 생활을 모두 아이에게만 맡겨 놓지 않고, 공부는 잘 되고 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힘들지는 않는지 수시로 대화하면서 체크하고 자퇴생활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돕고 있다. 그래서 딸은 전반적으로 고달프지 않게 공부를 꾸준히 잘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 역시 행복하다.


딸이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은 바로 식사 시간이다. 특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먹는 날이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선 밥을 먹는다. 고봉밥을 퍼오는 딸을 보면서 혼자 들리지 않게 '그렇게나 많이~'라며 중얼거려 보지만, 이내 딸의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고 같이 행복감을 느낀다. 이번에는 직접 김치찌개를 끓여보더니, 이게 이렇게 쉬운 음식이었냐며 언제든 먹고 싶을 때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겠다고 즐거워했다.


그렇다. 김치찌개는 딸의 '소울푸드'다. 그래서 우리는 딸이 질리지 않도록 다양한 돼지고기 부위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가장 일반적인 돼지고기 앞다리나 뒷다리 말고, 고기 식감이 쫄깃한 돼지고기 사태나 기름기가 있어 걸쭉하고 진한 삼겹살을 이용하기도 하고, 가끔 등갈비나 감자탕용 돼지 등뼈를 이용하여 김치찌개를 만들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국이나 찌개에 들어간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찌개 국물이 가장 맛있는 돼지 등뼈로 끓인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한다. 가족들 모두 입맛이 조금씩은 달라 선호하는 돼지고기 부위는 다르지만 딸은 단연 기름기가 충분하여 국물이 진한 삼겹살을 넣은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한다. 삼겹살을 넣은 김치찌개는 국물이 진할 뿐 아니라 기름이 잘 배인 김치 건더기와 비게가 적당한 삼겹살을 밥위에 올려 먹으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모양이다.


어느 날은 남편이 삼겹살을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 주었더니, 그렇게 한입 먹고는 아빠에게 엄지를 번쩍 치켜든다. 아는 맛이고, 먹던 맛일 텐데 그렇게도 맛있을까 싶다. 딸은 살아 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그 어떤 김치찌개를 먹어도 맛있다며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김치찌개에는 없는 아빠의 김치찌개에만 있는 특별함을 알게 될 것이다.


너무 자주 먹어 지겹다고 투덜대는 아들과 나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김치찌개를 1주일에 한 번씩은 꼭 끓이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찌개에는 차마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딸에 대한 아빠의 사랑과 응원이 겨 있었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아빠의 소울이 담긴 그 김치찌개가 사는 내내 딸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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